<귀환자의 삼시세끼 258화>
퍼어어엉!
용암으로 이루어진 골렘은 상반신이 마치 순식간에 증발한 듯 사라졌다.
하반신만 남은 몬스터가 털썩 쓰러졌고, 이내 흘러내린 용암이 바닥에 쭉 퍼져 나갔다.
민성은 들고 있던 궁니르S를 아래로 내리면서 놈이 막고 서 있던 안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용암이 들끓는 곳인 만큼 열기가 후끈후끈했지만, 온도는 민성에게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민성은 거침없이,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는 안쪽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 * *
플레이어 ‘레프만’은 본연의 그 외양이 굉장했다.
이마에는 두 개의 뿔이 달려 있었으며, 두꺼워 보이는 근육에 커다란 덩치를 가진 그의 온몸은 마치 용암과도 같이 붉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눈 또한 붉었고 입에서는 검은 연기가 숨을 쉴 때마다 푸쉬식 하고 흘러나왔다.
도저히 보통의 인간 플레이어라고 보기 어려운 외양이었다.
그는 나체로 용암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을 마치 목욕탕 온탕을 즐기듯 들어가 앉은 그는 나른한 표정으로 기분 좋은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이내 옆으로 돌아갔다.
레프만의 시선에 길게 이어진 용암이 보였다.
그리고 그 용암 속에서 베아트리체인들과 플레이어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온몸이 용암 덩어리로 된 레프만의 하수인들은 몬스터와 같은 외양을 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베아트리체인과 플레이어로부터 생체 에너지를 쥐어짜 내고 있었다.
화산 지대 안 레프만이 있는 현재의 위치는, 일반 용암과는 전혀 상반된 다른 성질의 용암이 흐르고 있었다.
레프만의 스킬 특성이 가진 흑마법 효과 중 하나였다.
일단 용암 속으로 베아트리체인이나 플레이어를 던져 넣으면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지르게 되며, 이내 온몸이 용암의 일부로 변해 간다.
그와 동시에 하수인들이 추출하는 생체 에너지는 레프만에게 강력한 힘의 바탕이 되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잔혹한 일이었지만, 레프만이 그 광경을 그렇게 느낄 리 없었다.
더 강해지고 싶어 하는 레프만은 그 광경을 보며 웃음 지었다.
“어차피 쓸 곳도 없는 생명. 내게 힘을 실어 주는 것을 영광으로 삼거라, 흐흐흐흐.”
레프만은 용암 속에서 늘어지듯 누우며 입가에 띠운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 * *
이호성은 현재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곳곳에서 몬스터가 보였는데 그 존재감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현재 그림자술로 도망 다니면서 탐색 중이긴 한데, 만약 자신의 위치나 존재를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 이후의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뭔 놈의 몬스터가 용암으로 되어 있어……. 살벌하네, 진짜.’
용암이 살짝만 튀어도 자신의 몸에 구멍이 날 것 같았다.
몬스터들은 용암을 바닥에 뚝뚝 흘리며 걸어 다녔다.
두려웠지만 이호성은 오그라든 가슴으로 어떻게든 탐색을 이어 나가기 위해 용기를 갖고 전진했다.
그렇게 화산 지대를 탐색하며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던 가운데, 이호성은 한 거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몬스터들이 쓸 만한 거처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니, 아마 이곳 화산의 지배자 레프만의 거처 중 한 군데가 아닐까 하고 추정되는 장소였다.
이호성은 주변에 위협적인 대상이 없는지 살펴본 후, 그 거처 안으로 들어가 보기 위해 그림자술을 이용하여 다시 움직였다.
검은 그림자가 되어 바닥을 타며, 거처와 가까워지던 중 멀지 않은 곳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이호성은 서둘러 거처의 그늘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그 타이밍과 거의 동시에 뭔가가 나타났다.
늑대의 형상을 닮은, 전신이 불에 활활 타오르고 있는 몬스터였다.
“크르르르르…….”
몬스터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어슬렁거리다 다시 멀어졌다.
이호성은 기절할 것만 같은 정신을 붙들고, 몬스터가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다시 움직였다.
그림자술의 장점은 아주 작은 틈만 있어도, 그 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호성은 납작한 검은 그림자인 만큼 출입문의 작은 틈을 발견하고, 그 틈을 통해 출입문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거처의 입구 안쪽으로 들어가자 긴 복도가 펼쳐진 게 보였다.
오른쪽 벽에는 랜턴이 구간마다 있어 붉은 조명이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이호성은 일단 마력을 아끼기 위해, 그림자에서 다시 본체로 돌아왔다.
그리고 벽에 등을 기댄 뒤, 긴장한 탓에 참았던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미치겠네, 정말. 같이 다니면 좋을 텐데. 이러다 죽으면 당신 밥은 누가 챙기냐고.”
이호성은 아주 작은 소리로 그렇게 투덜거린 후, 마른침을 삼키며 다소 으스스한 느낌이 강한 복도를 조심스레 걸었다.
그렇게 걸어간 끝에 이호성은 하나의 문을 발견했다.
그 문은 돌로 되어 있었는데, 손으로 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아주 미세한 틈이 있었기 때문에, 그림자술을 극대화시켜 마력을 집중시키면 통과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잠입 능력에 있어서는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게 바로 자신이 선택한 서포터 능력으로서의 최대 장점이었으니까.
이호성은 검은 그림자로 변한 후, 그 미세한 틈 사이로 진입을 시도했다.
* * *
“후. 됐다! 역시 이럴 땐 최고의 능력이란 말이지. 크크. 그나저나 뭐가 이렇게 어두워?”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던 이호성은 안쪽이 워낙 어두워서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음을 깨닫고 투덜거렸다.
그러면서 템창에서 손전등이라도 꺼내려고 할 때였다.
갑작스레 예고 없는 현상이 나타났다.
번쩍! 하고 푸른빛이 일렁이더니 벽이 온통 푸른색 글자로 가득 차는 것이 아닌가?
이호성은 깜짝 놀라 입을 벌리며 커다랗게 뜬 눈으로 당황하면서 주변을 훑었다.
바닥과 천장, 그리고 벽면 모두가 푸른 글자로 가득 차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대의 문자였다.
그렇게 한 차례 영문 모를 현상의 문자가 사라진 이후, 팍―! 하고 두 개의 횃불에 불이 켜졌다.
횃불에 불이 붙자 밀폐된 공간이 확 밝아졌다.
이호성은 굵은 침을 꿀꺽 삼키며 전방을 응시했다.
그곳엔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진 듯한 목재 탁상 위에, 동그란 구(球)의 형태로 핏물과도 같은 것이 둥둥 떠 있었다.
“……저게 뭐야?”
이호성은 충격을 먹은 표정으로 그 괴이한 붉은 구체를 보며 다가갔다.
보면 볼수록 기묘하고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 드는 구체였다.
가까이서 그것을 보고 있자 구체의 신비함은 더 깊어졌다.
목재 탁상의 지면과 30센티미터 정도 위에서 스스로 허공에 떠 있는 액체 덩어리로 보이는 붉은 구체를 보면서 이호성은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했다.
주변을 훑어봐도 단서로 보일 만한 것은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붉은 구체를 지켜보았고 어느새 이호성은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오묘하고 기묘한 핏빛의 구체를 향해 얼굴을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그것은 주술 같은 것이 아닌, 그저 본능적인 이끌림이었다.
그리고 이내 이호성이 코앞에서 핏물처럼 보이는 몽글몽글한 액체가 허공에 돌고 있는 구체에 곧 닿을 듯이 가까워졌을 때-
붉은 구체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대로 이호성의 안면을 훅 휘어 감았다.
“흡!”
이호성은 버둥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이 붉은 구체가 자신의 얼굴로 뛰어들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황한 이호성은 버둥거리다가 철퍽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갔다.
“크흡!”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어깨와 가슴이 들썩거렸고 얼굴은 순식간에 터질 듯이 붉어졌다.
이렇게 어이없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치자 엄청난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마력을 전력으로 개방시켜 얼굴을 휘어 감은 붉은 액체를 떼어 내려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산소가 부족해져 고통스러워하던 와중에 이 붉은 액체 덩어리는 이내 이호성의 눈과 콧속으로, 그리고 입과 귓구멍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숨이 막혀 의식을 잃기 직전, 숨이 다시 쉬어지기 시작했다.
“허어어어억! 허어어어억!”
이호성은 참았던 숨을 급격하게 들이마시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시피 했다.
숨을 쉬지 못하는 것은 엄청난 공포였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이호성은 거의 패닉에 빠진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목재 탁상을 보았다.
탁상 위에 떠 있던 붉은 구체는 없었다.
눈과 귀, 코와 입 안으로 들어왔다는 건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불안감에 심장이 빨리 뛰었다.
일단 이 이상한 장소를 어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 순간-
또다시 불안감이 서서히 수면 위로 머리를 드러냈다.
부글부글…….
마치 설사라도 한 것처럼 뱃속이 아려 오기 시작했다.
굳어 있는 얼굴로, 잔뜩 긴장한 채 그 증상을 느끼던 가운데, 통증이 폭발했다.
“허억!”
이호성은 눈을 번쩍 크게 뜨고, 입을 쩍 벌렸다.
뒷걸음질 치던 이호성은 벽에 바짝 등을 대고 선 채로,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피부는 갈라지고 찢어지기 시작했으며, 뼈가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솟구쳤다.
어마어마한 고통이었다.
생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엄청난 고통.
하지만 이호성은 그 순간 민성과 있었던 지난 일들을 떠올렸다.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겨왔던 순간들.
그 기억은 너무나 분명해서, 죽기 전에 경험한다는 이 필름 속에는 오직 민성과 함께한 길에 생사를 넘어온 기억밖에 흐르지 않았다.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
억울하다는 생각이 팽배하게 머릿속을 지배했다.
“으으으으으……!”
이호성은 비명을 씹어 삼키며 무릎을 꿇고 엎어진 채로, 전신을 휘어 감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견디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뼈가 마치 박살이 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고통을 견디면서 자신의 몸을 흘겨보았다.
엎어져 있는 터라 어깨와 팔만 간신히 보였는데, 팔은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었으며, 뼈가 살을 찢고 튀어나와 있었다.
안 돼…….
이대로 죽을 수 없어.
난 살아야 한다.
이호성의 피가 흐르는 눈에서 살겠다는 의지가 고통을 뚫고 나왔다.
이대로 버서커가 되면 위험하다.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최대한 버티고 버텨야만 한다.
그래야만 시간이라도 끌 수 있어.
결코, 생의 의지를 끊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우드드드득!
마치 뼈가 갈리는 듯한 혹은 분쇄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이호성의 의식이 서서히, 어둠에 잠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의식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벽면에 처음 보았던 푸른빛의 문자가 사방을 메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