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57화>
* * *
“맛있었다. 신선하고 충격적인 맛이었어.”
민성이 물티슈로 입을 닦으며 말했고, 이호성은 빙긋 웃으며 민성이 먹은 그릇과 냄비를 치웠다.
“참 헌터님, 고대의 문서 아직 확인 안 하셨죠?”
“아직은. 왜?”
“궁금해서요, 하하.”
이호성이 걸레로 식탁을 닦으면서 말했다.
“조금 쉬었다가 확인하고 출발하는 걸로 하지.”
“알겠습니다.”
이호성이 빙긋 미소 지으며 서둘러 정리에 힘을 썼다.
그사이 민성은 숲의 끝자락에 위치한 커다란 나무에 등을 대고 앉았다.
배가 부르고, 그늘에 바람이 스쳐 지나가면 행복이란 그리 거창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끼의 식사.
그것이 곧 행복이라는 것이 민성의 가치관이었고, 그 가치관은 아마 그에게 있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다.
민성은 풍경의 먼 곳을 보며 두둑하게 부른 배를 만졌다.
편안하다.
이 편안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안식이었다.
* * *
설거지를 마친 이호성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민성의 앞에 섰다.
고대의 문서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기대감 때문인 듯했다.
어렵게 구한 물건인 데다 고대의 문서는 다크엘프들이 오랜 시간 동안 보관해 온 보물이었다.
기대할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민성은 근처에서 놀고 있던 쏠을 불러 고대의 문서를 넘겨받았다.
고대의 문서는 건드리면 바스라질 것처럼 낡아 있었다.
민성도 나름 조심하면서, 고대의 문서 겉표지부터 이래저래 살폈고, 이호성도 고개를 빼꼼 내밀어 민성이 살피는 고대의 문서를 함께 구경했다.
고대의 문서 겉표지는 종이가 조금 더 두껍다는 것을 빼면 다른 문서들과 아무것도 다를 게 없었다.
제목도 없었고, 그렇다고 색이 다르지도 않았다.
그저 두꺼운 종이가 책 겉표지임을 알릴 뿐이다.
민성은 무성의하게 만들어져 있는 겉표지를 한 차례 훑어본 후, 첫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자 여백이 가득한 페이지 상단에 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 모든 것을 알게 되리라.
우습게도 주신들은 베아트리체에 입성한 플레이어들에게 언어의 능력을 주었다.
그 능력은 권능일 것이고, 그로 인해 글자를 해석하고 대화를 하는 데 있어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것이 고대의 문서에도 통용이 되었고, 그 덕에 민성과 이호성은 고대의 문서에 나타나 있는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문서의 첫 페이지에는 ‘모든 것을 알게 되리라’라는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것으로 인해 이 고대의 문서가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얼추 추측할 수 있었다.
“……이거 베아트리체에 대한 엄청난 정보가 들어 있는 모양인데요?”
이호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민성은 무시하고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그런데 다음 페이지에는 글자는 하나도 없고 텅 비어 있었다.
“어? 왜 아무것도 없지?”
이호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내 여백으로만 되어 있던 페이지에 글자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이호성은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떴고, 민성의 눈에도 아주 작은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 글자는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고대의 문서 첫 페이지에 저절로 새겨진 글자의 내용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위치.
화산에 대한 내용이었으며, 그 화산의 지배자 ‘레프만’이라는 랭커 플레이어 사내에 대한 내용이기도 했다.
또한 그 사내 ‘레프만’을 쓰러트리면, 엄청난 명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정보 또한 나타나 있었다.
“완전 대박인데요……? 이 고대의 문서 말입니다.”
이호성이 민성을 보며 말했다.
민성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베아트리체에서 가장 골치가 아픈 건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무엇이 명성의 기준점이 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 속도를 늦추는 큰 원인 중의 하나다.
하지만 그 문제를 고대의 문서를 통해 풀 수 있게 되었다.
그건 곧 실패가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엄청난 효용 가치네요. 튜드 장로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이 물건을 지키고자 했던 것인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고대의 문서를 사용하지 않고 보관만 했다는 건,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지.”
“전 생각이 다른데요. 그냥 그들의 문화 같은 것 아닐까요? 아무래도 미신이라든지 그런 걸 믿기도 좋은 환경이고요.”
“그럴지도.”
“그럼 이제 다음 목적지는 화산이네요.”
이호성이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민성은 시스템창을 띄웠다.
지도를 보자 지도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목적지를 찾지 못해 다음 행선지에 대한 확실한 길이 결정되지 않았는데, 고대의 문서 때문에 눈이 확 밝아졌다.
시스템 지도에 화산이 표시된 곳이 보였고, 그곳으로 가서 단순하게 레프만을 쓰러트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민성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즐긴 뒤, 일행을 이끌고 화산으로 출발했다.
* * *
화산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온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점점 더워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찜질방에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후끈한 열기가 피부를 덮쳐 왔다.
먼 곳에서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화산에 가까워졌음이 점점 분명하게 느껴졌고, 이호성은 어쩐지 으스스하다는 듯 몸을 가늘게 떨었다.
빠르게 이동한 끝에, 이내 용암지대의 땅이 보였다.
이호성은 담배를 피우며 인상을 퍽 썼다.
“이야, 온도가 장난이 아니네. 이렇게 더운데 왜 여기 있는 거야? 여기에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네요.”
이호성은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장관이었다.
“근데 들어가다가 용암에 빠지면…….”
이호성이 사색이 된 표정으로 입꼬리를 아래로 내렸다.
그 정도로, 지금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압도적이었다.
화산재가 쌓인 불규칙하고 검은 바닥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굳을 정도로 엄청난 광경이었다.
이호성은 혹시 모를 자연 재해가 두려운 듯 어깨를 움츠렸고, 그것은 쏠도 마찬가지였다.
쏠은 오들오들 떨면서 불안하게 눈알을 굴렸다.
민성과 바가지만이 화산 앞에서 감정의 동요가 없을 뿐이었다.
“이호성.”
민성이 주변을 눈으로 훑으며 불렀다.
“예, 헌터님.”
“탐색을 시작해라.”
“……예?”
“레프만이 있을 만한 곳을 찾으란 얘기다. 너 서포터잖아.”
민성이 이런 얘기까지 덧붙여야 되냐는 식으로 이호성을 쏘아보았다.
“아……. 그렇죠. 서포터.”
이호성을 콧물을 들이키며, 입을 쩝쩝거리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솔직히 여기 화산에 오게 되면서 이호성은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아니,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화산재가 날리고 곳곳에 용암이 흘러넘치는 곳을 홀로 탐색한다는 건 상당히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기에 생각은 길게 가져가지 않았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이호성은 각오를 굳히고서, 곧장 걸음을 떼었다.
시커먼 바닥을 밟으며, 스킬을 사용하여 탐색을 시작했다.
* * *
이호성이 화산의 지배자 레프만을 찾기 위한 탐색을 나선 사이, 민성 역시 화산을 파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꽤 오랫동안 걸었지만 베아트리체인이나 플레이어를 볼 수도 없었고,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런 곳에 정말 누군가 살고 있다는 것이 확실히 의심스러웠지만 고대의 문서는 분명 이 지점의 화산에 레프만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고대의 문서가 이런 걸로 거짓이나 장난을 칠 리는 없다고 민성은 생각하고 점점 더 화산의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내 드디어 하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족적이다.
누군가가 밟았을 발자국이 분명하게 남아 있었고, 이호성의 것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족적이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까.
아마 이 근방까지가 화산에서 살고 있는 누군가의 이동 범위인 듯했다.
서로 다른 족적들이 꽤 많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이 화산에는 지배자 레프만뿐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도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했으나 아무리 둘러봐도 역시 누군가를 만나지는 못했다.
조금 더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자 작은 용암이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했다.
출렁이는 용암은 눈부시게 밝았다.
잠시 그 용암을 구경하던 민성은 어떠한 기운의 변화를 감지해 냈다.
그리고 감각을 끌어 올리며, 템창을 열어 궁니르S를 꺼냈다.
그와 동시에, 작은 용암 안에서 뭔가가 바닥을 뚫으며 커다란 몸을 이끌고 위로 튀어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몬스터였고, 그것은 온몸이 용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돌골렘과 닮은 몬스터였다.
그것은 그그극! 하는 소리를 내며 용암을 뚝뚝 흘려 댔다.
“이곳 화산 지대 역시 레프만 님의 영역이다. 더 이상의 접근을 불허한다.”
몬스터가 말했다.
온몸이 용암으로 되어 있는 돌골렘이 말을 한다니.
민성은 신기해서 그 몬스터를 잠시 응시했다.
“그 레프만이라는 놈 어디 있어?”
민성의 말에 용암으로 되어 있는 몬스터의 전신에서 강력한 투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일반 몬스터라고 하기에는 필요 이상으로 강한 투기였으며, 지금까지 만나 온 랭커 플레이어들보다도 강한 투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민성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지금까지 봤던 랭커 플레이어들에 비해 보다 조금 나은 투기일 뿐, 놈이 자신의 기준 안에서 하위종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었으니까.
“이 이상 막아서면 죽는다.”
민성이 말했다.
당연히 레프만이라는 플레이어를 지키고자 하는 몬스터는 민성에게 길을 열어 줄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어 보였다.
결국 귀찮지만 전투는 불가피했다.
민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몬스터를 보며 궁니르S를 뒤로 살짝 당겼다.
물어본다고 곱게 대답해 줄 것 같지가 않으니 팔다리 중 하나 정도는 일단 박살을 내 줘야 될 듯싶었다.
민성이 궁니르S를 휘둘렀다.
콰르르르르릉!
천둥 벼락이 주변으로 퍼져 나가며, 강력한 마기의 힘이 용암으로 이루어진 몬스터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얇은 마기는 몬스터의 몸을 잘라 내긴 했지만 아주 작은 틈을 만들어 내기만 했을 뿐이라 타격이 적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몬스터의 반격이 가능해졌다는 것이기도 했다.
몬스터는 민첩했고, 순식간에 민성의 앞으로 튀어나온 몬스터가 용암으로 된 커다란 주먹을 휘둘렀다.
민성은 지면을 차고 뛰어 뒤로 거리를 벌이면서 마기를 궁니르S에 응축시켰다.
해당 몬스터는 마기의 강도보다 범위를 넓혀서 용암 덩어리의 본체를 날려 버리는 것이 유효한 타격이 될 것 같았다.
보다 확장된 마기가 실린 힘이 궁니르S를 통해 발출되었다.
마치 빛이 퍼져 나가는 것과 같이 넓은 면적의 마기가 돌진하듯 달려오는 놈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