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255화 (255/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55화>

엘란은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 튜드 장로를 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장로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엘란이 말했다.

튜드는 눈물자국이 번진 얼굴을 들어 엘란을 보았다.

엘란의 눈빛을 보는 순간 튜드는 오열하는 울음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아니 됩니다. 절대 아니 됩니다. 저의 죄를 엘란 님이 짊어지는 것은 절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튜드 장로…….”

“뭣들 하느냐?! 나는 엘란 님의 명을 거역한 반역자다. 어서 나 튜드를 다크엘프의 규율대로…….”

“튜드 장로! 규율은 우리의 것이지만 이 일에 대한 처분은 이방인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튜드 장로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엘란이 자신을 대신해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든, 자신에 의해 전쟁을 통해 엘란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튜드 장로의 마음을 완전히 꺾어 버리고 말았다.

튜드 장로는 네 발로 기어가다시피 하여 절뚝거리며 다가와, 민성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그를 올려다보고서 애원했다.

“다! 전부 다 내가 한 짓입니다. 이방인, 당신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이 직접 나를 끌고 왔으니, 가장 잘 알 것이 아닙니까? 엘란 님, 엘란 님은 안 됩니다.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죽으라면 죽을 것이고. 고문을 하겠다면 고문을 받겠습니다.”

엘란을 포함한 장로와 다크엘프들이 튜드를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길로 보았다.

언제나 누구보다 현명한 자였으나, 지금 보이는 그의 모습은 도저히 예전의 영광이란 찾아볼 수 없는, 그저 단순히 늙은 다크엘프였다.

민성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그를 보며 미간을 구겼다.

“다크엘프의 규율마저 지켜지지 않는 것인가?”

민성이 엘란을 보며 물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엘란으로서도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수가 없었다.

이방인이 이 사건에 대한 결정을 단락 지었다.

튜드 장로의 죽음.

그것으로 이 사건을 끝맺겠다는 뜻이었다.

고대의 문서를 맡긴 튜드 장로가 직접 자신의 죄를 자백함으로써 더 이상은 거부할 수 없는 결과였다.

엘란은 착잡한 표정으로 가까운 장로에게 군사를 불러 형벌을 집행할 것을 명령 내렸다.

다크엘프 군사 한 명이 튜드 장로의 몸에 포박줄을 감았고, 다른 두 명의 군사가 각자 크로우를 들고 그의 양 옆에 섰다.

“마지막으로 할 말을 남기세요.”

엘란이 말했다.

장로 튜드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저 엘란 님에게 면목이 없을 뿐입니다.”

엘란이 울먹임을 삼키며 말했다.

“힘이 없는 저를…… 용서하십시오.”

엘란이 그늘진 눈으로 튜드 장로를 보며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신호였다.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손을 내리긋는 순간, 마치 부모처럼 자신을 돌봐온 튜드 장로를 자신의 명으로 죽이게 되는 것이었다.

엘란이 눈을 감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팔을 내리는 그 순간.

덥석!

누군가 자신의 팔목을 잡는 걸 엘란은 느끼고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엘란은 자신의 손목을 잡은 이를 보았다.

그는 크게 부상을 입고 치료를 했던 이방인 강민성의 일행 이호성이었다.

엘란은 놀람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호성을 보았고, 이호성은 자신이 모시고 있는 민성을 보고 있었다.

민성은 그런 이호성을 보며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이호성이 입을 열었다.

“헌터님, 비록 저자가 약속한 물건을 가지고 저희를 계략에 빠트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저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민성이 물었다.

“봐주세요.”

그 예기치 못했던 발언에, 엘란과 장로들 그리고 다크엘프들이 크게 뜬 눈으로 이호성을 보았다.

“생각해 보면 이자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해하지 못할 일이 아닙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 면, 나라의 국보를 가져가겠다는데. 어떤 사람들이 그리 쉽게 그 국보를 내어 줄 수 있겠습니까?”

“…….”

“이자들을 죽이면 헌터님의 명예에도 흠집이 날지 모릅니다.”

“…….”

민성의 시선이 죽음을 각오한 튜드 장로에게 머물렀다.

“고대의 문서는 손에 넣었고, 굳이 마무리를 나쁘게 가져갈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충언이니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물론 전적인 결정은 헌터님의 뜻이고 이 이상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토를 달지 않겠습니다.”

이호성은 엘란의 손목을 잡은 채로, 다시 민성을 응시하며 긴장한 채 대답을 기다렸다.

민성은 엘란과 튜드 장로, 그리고 여타 다른 장로들과 다크엘프들을 보며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은 꽤 길게 이어졌고, 현장에 있는 다크엘프 모두 민성의 말 한 마디를 기다리며 초조해했다.

그리고 마침내.

민성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지. 단 거기까지다. 이 이상 불필요한 일로 내 심기를 건드린다면, 그때는 하나의 목숨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민성의 말에 이호성이 눈을 지그시 감고서 안도의 숨을 쉬며 엘란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다크엘프들도 참았던 숨을 풀었다.

* * *

엘란이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이호성을 보았다.

전체적으로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이호성은 한숨 쉬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장로들과 다크엘프의 눈빛은 엘란과 전혀 달랐다.

뭐, 이해 못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말했던 대로, 어떠한 미사여구를 붙여도, 자신들은 다크엘프 요새를 침범한 고대의 문서 강탈자에 지나지 않는다.

곱게 보일 리 만무하지.

그러나 여긴 약육강식이 문화인 베아트리체 세계다.

그런 만큼 최소한, 강자의 아량은 가치가 있다.

강민성은 강자로서 아량을 내보인 것이다.

그리고 다크엘프들은 그것 또한 모두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엔 굴욕감이자, 수치감이 깃들어 있다.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주절주절 위로도 되지 않을, 그저 갑질에 지나지 않을 헛소리를 늘어놓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리고 강민성도 어쩌면 이런 결말을 원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분명 이번 일을 불쾌하게 여겼었으니까.

“감사해요. 덕분에 큰일을 막았습니다.”

이호성은 엘란을 보았다.

그녀가 진심이 담긴 얼굴로 감사의 인사를 전해 오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감사의 인사를 받는 쪽이 민망해진다.

아무리 대전의 결과를 통해 고대의 문서를 가져간다고는 해도, 침범이자 강탈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육식동물이 생존을 위해 초식동물을 잡아먹듯 베아트리체 역시, 자신들의 입장 또한 다르지 않다.

섭리에 순응해야만 한다.

하고 싶은, 해야만 하는 이야기들이 많았으나 마음 안에 꾹꾹 눌러 담았다.

* * *

본래 묵고 있던 거처 앞으로 돌아가자 민성이 그늘막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외모와 재력, 거기에 헌터로서의 막강한 강함까지 갖추고 있는 인간이라 그런지 그늘막에 대충 앉아만 있어도 아주 그림이다.

성격이 조금만 부드러워져도, 여자들한테 엄청 인기가 많을 텐데.

아깝다, 아까워.

사상 최대의 소비가 아닐까 생각하며 이호성은 민성에게 흑마 두 필을 이끌고 다가갔다.

“헌터님. 말 가져왔습니다. 필요하다고 했더니 흔쾌히 내어 주더군요.”

“당연히 그래야지.”

민성은 그렇게 말하며 일어서서 말을 한 차례 살핀 후, 곧바로 한 마리 위로 올라탔다.

“어? 지금 바로 출발하시려고요?”

“왜? 문제 있나?”

“아, 그런 건 아닙니다만 곧 저녁이기도 하니까요.”

“일단 여기부터 벗어나지. 불쾌하니까.”

민성이 탐탁지 않다는 시선으로 요새 내부를 훑으며 말했다.

이호성은 식은땀 한 줄기를 흘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다크엘프들은 민성의 일행이 바깥으로 편히 나갈 수 있도록 닫혀 있던 요새의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엘란과 장로들, 그리고 다크엘프 군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요새 밖으로 나가는 순간, 이호성은 꽤 이상한 기분이었고 불편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자신과 달리 민성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늘 포커페이스의 얼굴이긴 하지만, 오늘따라 더 그의 목적 지향적인 색깔이 두드러지는 듯했다.

그게 단점은 아니지.

이호성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며, 연기와 함께 한숨을 흘려보냈다.

저런 남자와 함께 이 무시무시한 곳을 다니는 주제에, 명확한 색깔이 없다는 것은 곧 무능함과도 직결되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어쨌거나 이번에도 실패구만.

헌터님에게 서포터로서의 능력을 입증하는 건.

나름의 칭찬이 있긴 했지만, 사실 그건 식사하기 힘든 이 베아트리체에서 식사 당번인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하라는 충고에 지나지 않는 딱 그 정도의 수준이라는 것.

자신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고 강민성의 초반 성격을 감안해 보면,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이지만.

“멈춰.”

민성이 고삐를 당기며 말했다.

요새를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성은 말을 세웠다.

이호성은 요새와 적당히 떨어졌으니 이제 저녁 식사를 일찍이 생각하는 건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민성은 쏠을 불렀다.

“고대의 문서를 가져와라.”

명령이 떨어지자 쏠은 자신의 황금 주머니 안에서 고대의 문서를 꺼내 재빨리 민성에게 내밀었다.

민성은 허공섭물의 능력으로 고대의 문서를 두둥실 끌어당겨 손에 탁 잡았다.

* * *

[퀘스트 클리어.]

[고대의 문서를 획득했습니다.]

[막대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명성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주신들의 관심이 폭발적입니다.]

[모든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누적된 업적 포인트는 23만 7천입니다.]

[팔괘를 획득했습니다.]

[축하합니다. ‘권능서’를 획득하였습니다.]

권능서?

민성이 정체를 몰라 의아하게 생각할 때 시스템창이 시끄러워졌다.

[권능서를 획득한 것에 대해 주신들이 경악합니다.]

[일부 주신들이 플레이어를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주신들의 시청수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명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

·

계속해서 시끄럽게 울려 대는 시스템 탓에 민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더 이상 울려 대는 시스템 문구는 주신들의 호들갑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라 신경을 끄고, 민성은 일단 템창을 열었다.

미리 설명을 들은 대로, 템창 안에는 팔괘가 들어 있었다.

팔괘는 8개의 괘로, 사용 즉시 지구와 베아트리체가 연결된 아이리스 나무의 활동을 잠시 멈출 수 있는 아이템.

획득한 이상 아낄 필요가 없기에 민성은 그 즉시 팔괘를 터치했다.

그러자 화려한 문양을 가진 팔괘는 순식간에 모래처럼 흩어졌고 이내, 민성은 아이리스 나무가 제약을 받기 시작한다는 시스템 문구를 볼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