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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252화 (252/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52화>

장로의 손에서 소용돌이치던 마력이 이호성을 향해, 거침없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다 늙은 다크엘프의 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강대한 힘이었다.

일이 이렇게 벌어진 이상 정면 전투는 승산이 없었다.

이호성은 즉각 그림자술을 발동하여 출입구 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호성을 맞추지 못하고 벽을 맞춘 힘에 의해 지하가 쿠르르 울리고, 뿌연 흙먼지가 퍼지기 시작했다.

하나 장로의 눈빛은 분명하게 이호성을 뒤쫓고 있었다.

“흥……! 어딜!”

장로가 달아나고 있는 이호성의 그림자를 향해 어림없다는 듯 마법을 걸었다.

장로가 건 것은 바로 속박 마법이었다.

빠르게 계단을 타고 올라가던 이호성이 변한 그림자는 마치 로프에 묶인 듯 꼼짝 없이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이걸로 증명이 됐군. 네놈의 이야기는 모두 순 엉터리 거짓말이라는 것을.”

장로는 승리감에 취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힘이 빠진 이호성이 그림자에서 서서히 위로 솟아 올라오며 다시 본래의 몸체로 되돌아왔다.

이호성의 몸 주변에는 검은 빛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는데, 그것이 속박 마법의 형태 중 일부인 듯했다.

이호성은 지친 얼굴로 웃으며 장로를 돌아보았다.

“영감. 눈치 빠르네? 하하.”

웃고 있는 이호성에게 장로가 펄쩍 뛰어 날아가듯 이동해 그의 멱살을 잡고 계단 아래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휙 하고 날아간 이호성이 바닥에 떨어지며 데굴데굴 굴렀다.

* * *

‘……빌어먹을.’

이호성은 속이 터지는 것만 같았다.

이번에 제대로 건수를 잡았다 싶었다.

강민성에게 어필할 수 있을 만한 실적이 될 거라고 생각했건만, 일은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저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다크엘프 장로라는 늙은이는 정말로 자신을 공격해 버리고 말았으며, 정말 자신을 이 안에서 죽이고 은폐하려는 작정인 모양이었다.

도박의 승부가 나 버렸다.

그 결과, 도박을 한 건 결국 장로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사실이 뼈아팠다.

이렇게 황당하게 저 늙은 장로에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엄청난 공포감이 되어 이호성의 머리를 꽉 눌렀다.

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이렇게 허접하게 죽는 것이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아서였다.

이호성은 필사적으로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짧은 찰나의 순간에 모든 집중력을 끌어 올려 고민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내려진 결정은 수비가 아닌 공격이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그리고 상대가 아무리 고위급 마력을 사용하는 다크엘프라고는 하나 늙은 다크엘프.

분명 빈틈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살기 위해서는 외려 공격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이호성은 도망만 칠 것이라고 예상했던 장로의 생각을 뒤집으며, 그에게로 바짝 접근했다.

장로의 눈이 반달로 휘어졌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하나 이호성은 그런 비웃음에 굴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한 줄기의 굵은 검기가 장로를 향해 날아갔다.

장로는 손바닥으로 그 검기를 쳐 내고, 바로 연이어 이호성의 가슴을 강타했다.

퍼어어엉!

수십 개의 가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이호성이 훌쩍 날아가 벽에 처박힌 후, 바닥에 철퍽 쓰러졌다.

“끄으으…….”

이호성은 엎어진 채로 신음을 흘리다가 울컥 한 움쿰의 피를 토했다.

쓰러진 채, 가늘게 떨고 있는 이호성을 보며 장로는 우월함에 젖은 미소를 지었다.

“이방인의 일행이라 긴장했었는데, 보잘 것 없는 수준을 넘어서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군.”

장로가 쓰러진 이호성을 보며 끌끌 웃었다.

“네놈은 여기서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방인은 너를 찾지 못할 것이야.”

이호성은 피로 물든 몸을 겨우 일으켜 벽에 등을 대고서는 숨을 몰아쉬며 장로를 올려다보았다.

“하아…… 하아, 쿨럭! 이봐. 당신, 큰일 났어.”

지친 눈으로 말하는 이호성을 보며 장로는 혐오스럽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이 와중에도 그리 자신감이 넘친다니. 단순히 머리가 나쁘거나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좀 모자란 녀석이었군.”

“모자란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지.”

“…….”

“아까 전에 당신이 날린 오러로 인해 땅이 흔들렸잖아. 아무리 마법 장치가 되어 있다고는 해도, 충격은 분명 존재했다고.”

“그게 뭐 어쨌…….”

말을 하던 장로는 이내 이호성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눈치챘다.

이호성이 말한 것, 그리고 장로가 눈치챈 것은, 바로 강민성이 이 충격을 느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한 마디로 당신 X된 거야. 명분을 던져 버리고 만 거라고.”

장로의 머릿속에 스치는 것은 다크엘프의 멸족이었다.

그러나 장로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이 지하 공간은 강력한 방어 마법으로 설계되어 있다. 충격이라고 해 봐야 이곳에서는 크게 느껴져도 외부에서는 느끼기가 힘든 정도에 불과하다.”

“대책이 없는 건 당신이야, 이 늙은이야. 대체 그분을 뭐로 보고 있었던 거냐?”

장로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네놈의 그 침도 바르지 않은 입 따위에 현혹될 내가 아니다. 네놈의 명은 여기까지라는 것만 기억하거라.”

이호성이 장로를 보며 피식 웃고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답답한 사람이네. 그게 뭐라고 대체 그렇게까지 오버해 가면서 일을 크게 만드는 건지.”

“닥쳐라! 네놈의 시신은 이 베아트리체가 멸망할 때까지도 수습되지 않을 것이다.”

장로가 마력이 휘몰아치는 손을 치켜들고 이호성에게 저벅저벅 걸어갔다.

장로의 눈에 거대한 살기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하지만 이호성은 그 강대한 살기에도 주눅 들지 않고 웃음을 흘렸다.

“나 이호성이야. 그깟 눈빛으로 날 떨게 할 수 있을 것 같냐? 이때까지 내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들을 봐 왔는지 아냐고.”

장로는 이호성을 내려다보며 코웃음 쳤다.

“네놈에겐 말도 아깝다. 영원히 구천이나 떠돌아라.”

쇄애애애애액!

퍼어어엉!

장로의 손바닥이 이호성의 가슴을 또다시 강타했다.

이호성은 쿨럭! 피를 토하며 눈이 흐려졌다.

그의 가슴에는 장로의 손바닥만 한 크기의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이호성은 그대로 고개를 풀썩 늘어트렸다가 스르륵 바닥으로 넘어갔다.

장로는 시체가 되어 버린 이호성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입만 산 꼬맹이 같으니라고. 흥!”

장로는 신경질적으로 혀를 차고선, 품 안에 있는 고대의 문서를 손으로 건드려 체크해 본 뒤, 지하 공간을 떠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

“크르르르…….”

마치 짐승의 소리와도 같은 것이 들렸다.

“……?”

장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호성이 침을 흘리며 구부정하게 서 있었다.

그의 두 눈에는 흰자밖에 없었고, 송곳니가 자라 있었으며, 머리는 붉게 긴 데다, 근육마저 달라져 있어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보는 듯했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넌 분명 죽었을 텐데……?”

장로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당혹감에 빠진 눈으로 이호성을 보았다.

그의 가슴에 뻥 뚫려 있던 구멍은 서서히 아물고 있었다.

눈으로 직접 보고 있음에도 믿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꿀-꺽.

“설마…… 네놈, 불사(不死)라도 된다는 말이냐?”

장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호성의 투기는 조금 전에 상대했던 그 애송이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장로가 당혹감에 빠져 멍하게 서 있는 사이, 버서커가 된 이호성이 자신의 본능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크와아아아아아!”

이호성은 마치 폭발하듯 화염을 흩뿌리며 장로에게 지면을 차고 달려들었다.

“……흡!”

장로는 전혀 달라진 그의 기세에 헛바람을 삼키며 황급히 마력을 끌어 올렸다.

머리를 향해 내리긋는 이호성의 검과 장로의 장(掌)이 서로 맞부딪쳤다.

콰아아아앙!

내실을 가득 울리는 폭음.

손끝이 욱신거리긴 했지만 힘과 오러의 출력이 겨우 이 정도에 불과하다면, 충분히 압도할 수 있을 거라고 장로는 확신했다.

‘괜히 긴장했군.’

검이 튕겨져 나가고 자세가 흐트러진, 버서커 상태의 이호성을 향해 장로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오러가 머금어진 손바닥을 빠르게 내밀었다.

쇄애애애액!

콰아앙!

이호성의 복부에 장로의 장이 찍혔다. 그리고 그대로 훌쩍 날아갔으나 이내 허공에서 한 바퀴를 회전하며, 바닥에 착지.

다시 탄환처럼 장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장로는 질린 표정으로 자신에게 날아오듯 오고 있는 그를 보며 어금니를 바드득 갈았다.

……공격이 전혀 먹혀들지가 않는다.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리자 장로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어떻게 공격을 막아 낼 수 있고, 역공까지도 가능하다고는 해도, 데미지도 입지 않는 데다가 만약 그가 또다시 더 강해진다면?

그런 추측은 장로의 마음을 작아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대체 뭐야, 이 괴물은?’

그러고 보면 지금의 이 미친놈처럼 변해 버린 녀석은 그 이방인에 비해 이자는 너무하리만큼 약하긴 했다.

베아트리체의 전사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이런 식의 단기 성장형 괴물의 특성을 가진 놈이라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장로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런 변종 괴물 같은 놈이었을 줄이야.

죽지 않는 불사와 같은 괴물체를 상대하고 있다 보니 불안감이 잇따랐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호성의 공격이 눈에 띄게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일정 시간이 지나자 이호성은 비실비실해지더니 힘을 잃고 바닥에 철퍽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변화하기 시작했다.

길었던 붉은 머리는 다시 짧아졌으며, 송곳니는 들어가고, 근육은 줄어들었으며 흰자위밖에 없었던 눈에는 다시 동공이 생겨났다.

“고작 1차 각성 단계가 전부인 녀석이었던 건가? 하. 하하. 하하하하……!”

장로는 긴장이 다소 가라앉은 얼굴로 이호성을 보며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장로는 의식을 잃고 대(大)자로 누워 버린 이호성을 보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혹시나 하고 놀랐는데, 알고 보니 별 볼일 없는 쓰레기였다.

이런 놈에게 그런 상상력을 발휘하다니.

창피할 정도군.

장로는 시간을 체크했다.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다.

서둘러 놈을 죽이고, 본래의 계획을 수행해야 했다.

장로는 쓰러져 있는 이호성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놈의 질기고 질긴 숨을 거두기 위해 손바닥을 뒤로 당겼을 때-

콰아아아아앙-!

출입구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고.

시선을 출입구 쪽으로 돌렸을 때, 그때는 이미 누군가의 손바닥이 자신의 얼굴을 움켜쥐고 있는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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