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51화>
* * *
“여기입니다.”
장로가 그렇게 말하며 멈춰 섰다.
이호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요? 아무것도 없는데?”
이호성이 그렇게 말했을 때, 장로는 마법 시스템을 통해 문을 열었다.
흙이 후드득 떨어지고 쇠사슬이 풀리면서 문이 열렸다.
“오……! 중요한 물건이라 이렇게 감춰 놓은 거군요.”
이호성이 신기하다는 듯이 보며 말했다.
“들어가시죠.”
랜턴을 들고 앞장서서 지하로 가는 계단을 먼저 밟고 내려가는 장로를 보며 이호성이 뒤따랐다.
계단을 모두 내려가 긴 통로를 걸은 끝에, 돌벽이 나타났다.
전처럼 마법 시스템을 통해 돌벽이 열렸고, 이호성은 대리석으로 된 내부를 보며 또다시 감탄사를 뱉었다.
“이야. 이렇게 이중으로 숨겨져 있으니 작정하고 찾으려고 해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겠네요.”
“들어가서 물건을 한번 보시죠.”
장로가 손짓으로 돌벽 안쪽의 공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호성은 주먹으로 턱을 괴고서 “흠…….” 하는 소리를 내며 고민하는 표정으로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장로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지켜보며 물었다.
“이상하군요.”
이호성의 말에 장로는 일순 눈빛이 흔들렸지만 금세 다시 침착함을 되찾았다.
“이상하다니……. 뭐가 말입니까?”
“당신의 행동 말입니다.”
이호성이 장로를 돌아보며 말했다.
장로는 이호성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맞받으며 웃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하나같이 수상한 것들 투성이라서요.”
이호성은 명확하게 말하지 않고 말을 흐렸고, 그런 탓에 장로는 긴장이 더 무거워지는 가운데 짜증이 솟았지만 얼굴에 내색하지는 않았다.
“어떤 점이 말입니까?”
장로가 웃는 얼굴로 물었다.
“흠……. 일단 아무리 제가 모시는 분을 대리해서 물건을 가지러 왔다고 해도. 고대의 문서라는 이 중요한 물건을 이렇게 장로 한 명이 간단하게 넘겨준다는 것도 그렇고. 여기 안으로 먼저 들어가라는 말도 그렇고. 어쩐지 좀 찝찝한 기분이 들어서 말이죠.”
이호성이 하하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뭐 딱히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만,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호성이 장로에게 눈을 감으며 애교 있게 싱긋 웃어 보였다.
‘……뭔가를 알고 있는 건가?’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뭔가 작은 갈고리 같은 게 걸려 있다는 느낌.
장로는 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쨌든 현 상황에서 의심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장로는 손을 뻗어 허공을 터치했고, 그러자 돌벽이 다시 그르륵 소리를 내며 닫혔다.
이호성이 장로에게 물음표를 던졌다.
“저를 믿지 못하는 것 같으니 어쩔 수가 없군요. 정식 절차대로 하시죠. 엘란 님도 뵙고, 다 같이 움직이는 걸로.”
이호성이 빙긋 웃었다.
“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장로는 속이 뒤틀렸다.
이럴 거면 왜 따라온 건가? 싶었지만, 그런 사사로운 감정 따위는 배제하고 최선의 판단을 해야 했다.
고대의 문서는 자신의 품 안에 있고, 그가 덫에 걸려 주지 않았으니 덫을 던져서라도 놈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를 여기서 제거한다.
아무리 엘란 님을 쓰러트린 이방인이 강한 인간이라고 해도, 이곳을 찾는 건 이호성이 말한 대로 불가능한 일이니까.
쥐도 새도 모르는 완전한 살인이 될 것이다.
장로는 이 비밀 지하 공간 안에서 이호성을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 후, 곧바로 드워프에게 고대의 문서를 미끼로 던진다.
시간을 끌수록 변수가 많아지기 마련이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였다.
이방인은 강했지만, 기척으로만 봐도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내, 이호성은 자신보다 몇 수나 아래에 있는 자였다.
스스로가 가진 오러의 투기를 감추지 못하는 자이니 자신의 눈은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장로.”
그때, 이호성이 불렀다.
장로는 스산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품 안에 있는 고대의 문서는 저 안에 다시 넣어 두는 게 어떻습니까?”
이호성이 물었다.
장로의 눈이 커졌다.
“어, 어떻게…….”
장로가 당황하여 뒷걸음질 쳤다.
자신의 로브 속 품 안에 고대의 문서가 있다는 걸 저 놈이 어찌 알았단 말인가?!
“제가 아무런 대책 없이 당신을 따라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설마? 정말?”
이호성이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정말 그런 거예요?”
이호성이 재차 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다. 네놈은 여기서…….”
“잠깐. 말을 거기서 멈추는 게 좋을 텐데요?”
장로가 이호성을 노려보았다.
이호성은 계속 말을 이었다.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아무런 대책 없이 당신에게 붙은 게 아닙니다. 이대로 조용히 고대의 문서를 넘기신다면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최악의 결과?”
“다크엘프의 멸족.”
쿵.
장로의 얼굴이 급격히 무거워졌다.
“만약 당신이 여기서 날 제거하려 든다면 당신은 제가 모시는 헌터님에게 죽게 될 겁니다. 그분이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죠.”
장로는 커다랗게 뜬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무지막지하게 강한 이방인이 있다고? 이곳에?
아뿔사. 함정에 걸렸구나.
순순히 따라온 이유가 그런 것이었어.
장로는 뒤늦게 자신의 미련함을 탓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였다.
* * *
이호성은 겉으로는 편안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은 절대 그렇지가 않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거짓말이니까.
저자에게 이방인, 그러니까 강민성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당연히 순 새빨간 거짓말이다.
강민성이 그리 친절할 리도 없는 데다가, 애초에 이 사안은 보고도 하지 않고 그저 의심스러운 마음에 한번 나서 본 것뿐이었다.
진실은 서포터 능력으로서 그의 품 안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 정도에 불과했고 그것을 떠보자 운이 좋게도 장로가 딱 걸려든 것이다.
문제는 이 안에서 저자와 싸우면 필패일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그는 늙었긴 했지만, 그가 가진 아우라는 결코 적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비밀 지하 공간은 그가 아주 잘 알고 있는 공간인 만큼 여러모로 이호성에게 불리한 여건이다.
이호성으로서는 현재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지 말길 바랍니다.”
이호성이 장로를 직시하며 침착하게 말했다.
장로는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주먹을 꽉 쥐고서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 떠는 걸 멈추고 고개를 들어 살기가 배어든 눈으로 이호성을 노려보았다.
“하나 만약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면?”
장로가 이호성에게 블럼핑을 하고 있지 않느냐는 의문을 던졌다.
그 의문의 파장은 컸다.
이호성은 “그럴 리가요.” 하고 곧장 받아쳤지만, 한번 생긴 의심은 본래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 법이었다.
장로와 이호성의 대치는 그 순간부로 도박판으로 완전히 변해 버리고 말았다.
“하하. 이보세요, 장로. 설사 제가 거짓말을 했다고 한들, 당신이 설령 날 이대로 죽이고 내 시신을 은폐하여 죽음마저 은폐한다고 치죠. 그럼 이 다크엘프의 요새 안에서 제가 사라진 마당에, 당신들이 무사할 거라 생각합니까?”
“불리하다고 게임이 꼭 지는 것만은 아니지.”
“아니, 다크엘프 전체를 걸고 그렇게 무리하게 밑장을 빼고 싶어요? 그러다 당신들 다 죽는다니까?”
“이 고대의 문서는,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적어도 내 판단에는! 엘란 님께서는 간단하게 포기했지만, 적어도 내 눈에 이 물건의 가치는 겨우 그 정도가 아니란 말이야!”
장로가 흥분하여 소리쳤다.
이호성은 답답하다는 듯 장로를 보며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켰다.
담배를 피우면서 미간을 구기고 이호성은 장로를 쏘아보았다.
“이봐요.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몇 백년 동안 모셔 놓기만 한 물건 가지고,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당신이 뭐라고 다크엘프의 목을 걸어? 당신이 그러고도 다크엘프의 장로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장로가 이호성을 노려보며 붉게 상기된 채 얼굴을 푸들푸들 떨었다.
“완전 똥고집 가득한 꼰대로구만. 휴……. 뭐, 보기에 따라 당신들한테 우리는 도둑이고 강탈자겠지만, 애초에 이 베아트리체라는 세계가 그렇게 생겨 먹은 걸 어떡하겠어?”
그 말에 장로의 얼굴이 뒤틀렸다.
이호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리의 별을 지키고, 그 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 빌어먹을 물건이 필요한데, 그래서 협의를 봤잖아. 당신의 지배자는 졌고, 당신들은 약속을 지켜야 돼. 그런데 힘도 없으면서 당신은 다크엘프의 목숨을 걸고 이따위 도박을 하려 들어? 너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다는 생각 안 드나?”
장로의 손에서 마력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이호성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았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정말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아 쇄기를 박아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난 분명히 경고했다. 당신들이 우리 뒤통수를 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줬어. 그런데 그 기회를 날려 먹으시겠다? 잘 들어.”
이호성이 강렬한 눈빛으로 장로를 쏘아보며 씹어 먹듯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날 죽이려고 그 힘을 쓰는 순간, 헌터님이 나타날 거고, 그렇게 되면 당신 머리가 터져 나가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을 거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그가 나타나지 않는 건, 네놈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로밖에 안 보이는데?”
“아직 말 안 끝났어, 이 꼰대야. 다크엘프는 멸족할 것이며, 당신들의 지배자 엘란도 죽음에 이를 것이고, 다크엘프의 역사 또한 오늘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이 요새는 불에 타오를 것이며, 영원히 사라진 역사로 남게 되겠지.”
이호성은 담배를 버리고 발로 비벼 끄면서 장로를 노려보았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장로. 고대의 문서를 넘겨라.”
이호성이 낮은 톤으로 말했다.
장로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어차피 넘겨야 할 물건이었어. 다크엘프의 멸족을 걸어 가며까지 무모한 도박은 하지 마라. 그 고대의 문서를 가져가는 우리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다고.”
이호성이 이제 그만하자는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지금까지 내가 나이를 헛먹은 걸로 생각하는군. 네놈 같은 놈은 그동안 수 없이 봤다. 우리 다크엘프가 결코 나약한 전사가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려 주마.”
장로의 눈이 확정된 살기로 번뜩였다.
이 망할 늙은이가……!
이호성은 커다랗게 뜬 눈으로 장로를 보며 이를 꽉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