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50화>
* * *
장로는 엘란의 방문을 닫고 복도를 걸으며 어금니를 으드득 갈았다.
고대의 문서가 본래 다크엘프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나 다크엘프의 전통이 묻어 있는 것 또한 사실.
멋대로 요새에 침범하여 고대의 문서를 강탈하려고 한 이방인의 행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였다.
이대로 물러날 거라고 생각했다면 이는 오산이다.
장로는 흉흉한 눈으로 이방인을 떠올리며 공격적인 걸음으로 복도를 빠르게 걸었다.
* * *
“이호성.”
샤워를 마치고 나온 민성이 젖은 머리를 손으로 털어 내며 그를 불렀다.
바가지 머리에 헤드락을 걸고 있던 이호성은 발딱 일어나 민성 앞으로 뛰어갔다.
“예, 헌터님.”
“배가 고파졌다. 식사 시간이다.”
“알겠습니다. 알아서 준비할까요?”
“그렇게 해.”
이호성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곧장 음식 준비에 나섰다.
그러자 바가지는 자신도 할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신난 듯 이호성에게로 탁탁 뛰어갔다.
이호성은 테이블 세팅을 하고 잠시 어떤 메뉴를 할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불현듯 스치는 하나의 생각이 있었고, 그 것은 불안감이었으며 그 불안감은 이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호성은 민성을 보았다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일단은 식사부터.”
이호성은 프라이팬을 꺼냈다.
* * *
“식사 준비 끝났습니다.”
“벌써?”
민성은 테이블 앞에 앉으며 수저를 들었다.
오늘의 한 끼 메뉴는 오므라이스였다.
노란 지단에 볶음밥이 싸여 있고, 그 위로는 케첩이 아니라 돈가스 소스처럼 보이는 것이 한쪽 부분에 고여 있었다.
민성은 케첩을 소스로 오므라이스를 먹었던 기억밖에 없었기 때문에, 처음 보는 소스로 인한 오므라이스의 맛에 대한 기대는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장웅의 레시피.
그리고 나날이 성장하는 이호성의 요리 실력이라면, 분명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맛이란 건 분명했다.
숟가락을 들고 지단을 건드리자 툭! 하고 가볍게 찢어지며, 김이 솔솔 올라오면서 오므라이스는 수줍게 자신의 속살인 볶음밥을 보여 주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꿀꺽! 하고 침이 넘어갔다.
민성은 소스를 살짝 떠서 버무려 준 다음 노란 지단과 함께 오므라이스 볶음밥을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맛있다!
머릿속에서 느낌표가 빵 하고 터지는 기분이다.
달콤함에 취하고, 고소하게 씹히는 볶음밥.
계란 향이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이 맛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거기에 소스 맛이 진정 일품이었다.
“어떠십니까?”
이호성이 언제나처럼 살짝 긴장한 채로, 물었다.
“맛있다. 굉장히.”
“다행이네요. 저, 헌터님. 저는 잠시 다녀올 때가 있어서 나갔다 오겠습니다.”
“그렇게 해.”
이호성이 나갔지만, 민성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오므라이스에 온 정신이 집중되어 있었다.
달고 진한 오므라이스의 소스 맛은 이곳이 베아트리체라는 사실마저 잊게 할 정도로 강렬했다.
민성은 뜨거운 김이 솟아오르는 오므라이스를 마치 학살자처럼 지단을 삭삭 찢으며 입안으로 가져갔다.
* * *
엘란의 스승이었던 장로는 손에 랜턴을 들고서 지하에 위치한 요새의 비밀 공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교적 좁은 통로인 데다 지하였기 때문에 발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그의 발소리는 점차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장로는 현재 고대의 문서를 가지러 가는 중이었다.
장로는 이 고대의 문서를 고분고분 이방인들에게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대신 이 고대의 문서를 드워프에게 던질 생각이었다.
그럼 이방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크엘프와 앙숙인 드워프의 영역에 발을 디딜 수밖에 없다.
어차피 넘겨야 하는 고대의 문서라면 넘겨도 이쪽에서도 이득을 보는 선에서 넘겨야 했다.
사사건건 생계를 위협할 정도로 압박해 온 드워프를 어쩌면 이번 기회에 일망타진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몰랐다.
이방인들이 드워프의 요새로 가면 간단히 불을 지피는 것만으로도 큰 싸움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만 된다면 고대의 문서가 가진 가치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현재의 상황에서는 최대치의 이득을 볼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장로는 절대 이 기회를 그냥 날려 버릴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이윽고 그는 긴 통로를 지나, 커다란 돌문 앞에 도착했다.
주문을 외우자 돌벽에 마법 문자가 새겨지기 시작했고, 이내 그르륵! 하는 돌이 갈리는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장로는 돌벽이 열린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온통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으며, 대리석 테이블 위에는 유리관 안에 오래된 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고대의 문서였다.
장로는 마법 시스템을 사용했다.
엘란이 서명한 사인을 통해, 마법 장치로 잠겨 있던 유리관이 오픈되었다.
만약 엘란의 서명 없이 이 유리관을 오픈하게 되면 고대의 문서는 제2차 보관 장소로 워프되게끔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엘란의 서명이 있는 만큼 고대의 문서는 사라지지 않았고, 장로는 그 물건을 손에 들 수 있었다.
장로는 고대의 문서가 상하지 않도록 보자기에 잘 싼 다음, 나와서 돌문을 닫았다.
장로는 걸음을 옮기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이방인들은 결코 만만한 인간이 아니었다.
엘란은 다크엘프 중에서도 가장 특출 난 재능을 가진 전사였다.
내대륙의 플레이어보다는 못해도, 그래도 그렇게 쉽게 패배할 실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장로는 이방인을 떠올리고서 한차례 몸을 가늘게 부르르 떨었다.
생각만으로도 체온이 내려가는 듯했다.
그 이방인은 마치 다크엘프의 군주인 엘란을 가지고 놀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 지금까지 그에 대한 명성이 퍼지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였다.
하나 실력이 좋은 만큼, 고대의 문서를 미끼로 쓰기에 그만한 인물도 없다.
그러니 묵은 감정을 해결하기에 제격.
장로는 비장한 각오로, 보자기에 싼 고대의 문서를 챙겨 지상 위로 나와 문을 걸어 잠갔다.
시스템 마법 언어를 내뱉자, 쇠사슬이 튀어나와 문을 휘어 감고 그 위로 자동적으로 흙이 덮어졌다.
비밀 통로는 그렇게 감쪽같이 감춰졌다.
장로는 보자기에 싸인 고대의 문서를 로브 안쪽으로 넣어 잘 숨긴 뒤, 그 길로 곧장 요새 밖으로 나서기 위해 움직였다.
요새의 문은 총 2개다.
정문과 남문.
정문은 물론 정문으로 가는 길목 역시 보는 눈이 많기 때문에, 은밀히 움직이기 위해서 장로는 남문 쪽으로 향했다.
우선 계획은 밖으로 나가, 드워프 요새에 이르러 외교 사신으로서 드워프를 찾아가 고대의 문서를 떠넘길 생각이었다.
드워프라면 고대의 문서를 보는 순간 침을 질질 흘릴 게 틀림없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제작에 미친 종족 특성을 가지고 있어, 마법 도구라면 사족을 못 쓸 테니까.
그렇게 고대의 문서를 떠넘기고 난 다음, 다크엘프의 요새로 돌아와 이방인에게 드워프가 고대의 문서를 강탈해 갔다고 하면 이방인은 즉시 드워프의 요새로 갈 것이다.
거기서 모든 계획은 완성된다.
전투적인 성향의 드워프라면, 엘란과 달리, 이방인의 침입을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피와 목숨으로 이방인을 물리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그럴 경우, 드워프가 입게 될 타격과 피해는 엄청날 것이며, 그 틈을 노려 다크엘프의 군사를 뿌린다면 드워프는 순식간에 무너지게 될 것이다.
완벽한 작전이라고 장로는 생각했다.
시작이 반이다.
우선은 은밀히 요새를 나가기만 하면 50퍼센트는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주변을 살피며, 빠르게 이동하던 장로의 앞에 검은 그림자가 위로 훅! 하고 솟아올랐다.
장로는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이내 우뚝 멈추어 서서 굳은 얼굴로 전방을 보았다.
그곳엔 다크엘프의 요새를 침범한 이방인의 일행.
이호성이 서 있었다.
장로는 그를 보며 굵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자가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장로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고대의 문서를 들고 있는 만큼 긴장감은 당연히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자신의 의도를 눈치챘단 말인가?!
하지만 어떻게?
장로의 머릿속은 당혹감으로 가득 했고, 반면 그런 장로를 보는 이호성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 했다.
장로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고대의 문서는 로브 속 품 안에 잘 숨겨 두었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티가 나지 않을 것이다.
침착하게 대응하면 된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십니까?”
이호성이 미소를 가볍게 지은 채로 물었다.
장로는 빠르게 머릿속으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고, 정리를 한 다음 입을 열었다.
“장로 회의가 있어 곧 준비를 앞두고 있지요. 한데…… 무슨 일입니까?”
장로는 어색하지 않게 말하며, 자신의 앞을 막은 이호성에게 그 의중을 물었다.
“다크엘프의 군주는 저희 헌터님과의 연무를 통해 후유증이 남아 거동이 힘들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장로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호성을 쏘아보았으나, 이호성은 흔들림 없이 말을 이었다.
“하여 엘란 님을 찾아가 언제 고대의 문서를 받을 수 있는지 물었더니, 그 권한을 장로님에게 위임하였다 하더군요.”
그 말에 장로는 확신했다.
의심이나 확증을 통해 자신을 찾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다는 건 아직 기회가 남아 있음이었다.
“……그렇군요. 사실입니다. 엘란 님은 제게 권한을 위임하셨죠. 헌데 혼자 오셨습니까?”
장로가 이호성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네, 식사 중이시라.”
장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따라 오시지요. 고대의 문서를 넘겨 드리겠습니다.”
장로는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걸었다.
이호성은 그런 장로의 옆으로 붙어 따라 걸었다.
그는 작게 콧노래를 부르면서 주변을 눈으로 훑고 있었다.
장로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를 데려가 비밀 지하 통로 안에 가둘 생각이었다.
한번 갇히고 나면, 탈출 시도를 할 경우, 비밀 지하 통로는 완전히 붕괴되며 그와 함께 마법 장치로써의 역할을 한다.
결국 지하와 지상을 완전히 붕괴하고 뚫고 나와야만 하며, 그 상황에 대해서는 시스템 마법 문구가 갇힌 이에게 그 전에 미리 알려 줄 것이다.
지하 비밀 통로는 500년 전, 선대 다크엘프들이 본래 감옥으로 썼던 곳이었다.
고대의 문서는 미리 챙겨 놨으니 그를 그 안에 가두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 필요한 건 그를 완전히 속여, 지하 비밀 통로에 가둘 수 있는 연기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