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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246화 (246/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46화>

이호성은 흙이 묻은 얼굴을 들어 손으로 눈가의 흙을 털어 낸 뒤 민성을 보았다.

“저, 정말입니까……?”

“그래. 그 정도면 쓸 만했다. 나 혼자였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을 잡아먹었겠지.”

저 인간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에 이호성은 지금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허공을 보며 잠시 낭창하게 눈을 깜박이던 이호성은 다시 민성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 맞다. 다크엘프는요? 혹시 잡으셨습니까?”

민성은 이호성이 쓰러졌을 때, 자신이 다크엘프를 찾았던 상황을 설명했고, 그 이후의 이야기까지 전하자 이호성은 눈을 크게 떴다.

“그냥 보내셨다고요?!”

“당연히 그냥 보낸 건 아니지.”

이호성은 엎어져 있던 몸을 일으키면서 뒷목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헌터님이 그냥 보내셨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바가지의 망령술.”

민성의 말과 동시에 바가지가 주머니 안에서 나와 칵칵 웃으며 뼈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만들어 보였다.

“그렇군요……. 가장 안전하면서도 피를 보지 않는 좋은 방법이네요.”

이호성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행입니다. 다크엘프를 찾아서.”

“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쉬운 일이 될 것 같지는 않아.”

“어째서요?”

민성은 대답보다 한숨이 먼저 나왔다.

이런 모습은 거의 처음 보는 것이어서, 이호성으로서는 적응이 되지 않아 살짝 긴장될 정도였다.

“뭐 엄청난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는 건가요?”

“그런 걸 벌써 내가 알 리가 없잖아.”

“그럼 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긍지다.”

“……예?”

이호성은 민성이 갑자기 명분이라는 말을 꺼내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적어도 이호성에게 있어 강민성이라는 남자와 명분이라는 글자는 도저히 매칭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성이 불편한 감정이 잔뜩 들어 있는 시선으로 먼 곳을 보았다.

이호성은 이내 민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다크엘프 하나가 가진 긍지는 곧 그들의 종족성이자 특성이다.

그 말인 즉, 그들은 결코 쉽게 민성이 원하는 고대의 문서를 넘길 생각이 없다는 것이며, 죽음마저 불사할 종족이라면 이 일은 훨씬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고대의 문서라는 사사로운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수많은 다크엘프를 죽여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며 그것은 곧 악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이다.

또한 죽이지 않고 고대의 문서를 획득하는 것은 그 것보다도 훨씬 더 어렵고 힘겨운 일이 될 것임이 자명했다.

“후……. 어쩌면 헌터님 말씀대로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건을 찾는 능력은 없겠지?”

이호성이 식은땀 한 줄기를 흘렸다.

“아직 거기까지는. 살아 있는 생명체한테만 가능합니다.”

“그럼 결국 희망은…….”

민성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쏠을 보았다.

“쏠 밖에 없을지도.”

민성의 말에 쏠이 와아? 하고 자신의 주인인 민성을 돌아보았다.

이호성은 그런 쏠을 보면서 짧게 한숨 쉬었다.

“아무리 쏠이 빠르다고는 해도, 작정하고 숨겨 둔 물건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결국 다크엘프의 본거지를 쳐들어가서 전면 협상, 아니…… 협박을 하는 수밖에 없겠죠. 우리가 그들에게 제안할 만한 건 사실상 없을 테니까요.”

“없으면 만들어야지.”

“……예? 어떻게요?”

민성이 소용돌이치는 검은 눈으로 이호성을 응시했다.

이호성은 굵은 침을 꿀꺽 삼켰다.

불안한 추측이 파고든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찾아야지.”

자신의 인생에서 불안한 추측이라는 건 언제나 늘 예외 없이, 비껴가지 않고 적중하는 이호성이었다.

* * *

요링은 더 이상은 추적의 꼬리가 없다는 것을 확신한 이후에야 요새 쪽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자신을 뒤쫓고 있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지만 자신의 뒤를 밟는 이는 없는 듯했다.

빠르게 이동하여 요새 앞에 도착하게 된 요링은 한 번 더 주의 깊게 주변을 살핀 후 다크엘프 경비병이 열어 준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뭐라고?! 침입자. 그것도 고대의 문서를 찾는 플레이어라고 했느냐!”

나이가 많아 주름이 가득한 마른 체구의 다크엘프 장로 한 명이 소리치듯 물었다.

“그렇습니다.”

요링이 굳은 얼굴로 장로를 보며 대답했다.

“고대의 문서라니. 감히 인간 놈이 다크엘프의 뿌리를 거둘 셈인가! 어서 엘란 님에게 이에 대한 보고를 올리고 곧장 회의를 소집해야겠다. 요링, 너는 군대가 동요하지 않도록 하면서 바깥출입을 잠정 금지시키도록 해라.”

“네. 장로님.”

장로가 떠난 후, 요링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요새를 잠그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제부터 요새는 개미 한 마리 들어올 수 없을 만큼 견고한 철옹성이자 완전한 방어 태세로 변환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설령 요새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결코 침입할 수 없을 터였다.

요링은 주먹을 꽉 쥐며 민성을 떠올리고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 *

“제12 장로가 엘란님을 뵙기 청합니다.”

엘란의 비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자가 보고를 올렸고.

“들어오시라 해.”

미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로는 정중한 자세를 갖춘 채로, 다크엘프 숲의 지배자인 엘란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신 콜키지, 엘란 님을 뵙습니다.”

침대에서 막 몸을 일으켜 겉옷을 걸쳐 입은 엘란이 장로를 내려다보았다.

다크엘프는 기본적으로 피부가 검다.

하지만 엘프라는 이름에 걸맞게 검은 피부에 아름다운 백인의 외양과도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런 만큼 그 아름다움이란 상당히 특별한 느낌을 만들어 낸다.

그중, 다크엘프 숲의 지배자인 엘란은 젊고 어렸으며 미모 또한 다크엘프 역사상 유례없는 수준이라고 할 만큼 뛰어났다.

붉은 입술과 검은 흑발, 그리고 검은 눈은 마치 실제 여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눈부셨다.

“무슨 일이 생겼나요?”

“저희 숲에 침임자가 나타났습니다.”

장로를 보는 엘란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플레이어입니까?”

“네. 상당히 고랭크의 플레이어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엘란의 아름답고 편안했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요새는…….”

“닫았습니다. 외부로의 출입 역시 통제를 하라고 지시를 해 둔 상황입니다. 장로 회의를 소집할까요?”

“물론입니다.”

처음 여성스러웠던 모습과는 달리 엘렌에게서는 지배자로써의 카리스마가 철철 흘러나왔다.

그녀가 회의를 위하여 옷을 갈아입기 위해 움직일 때, 장로는 공손히 물러났다.

* * *

“생각했던 것 이상이네요. 굉장합니다.”

이호성이 다크엘프의 요새를 보면서 말했다.

그의 말대로 다크엘프의 요새는 으리으리했다.

머리카락 한 올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빈틈이 없어 보였다.

둥그런 돔 형태의 요새는 대체 어디에 문이 있는 건지, 어떻게 들어갔다가 나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두 꽉 막혀 있었다.

공기는 통하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마치 거북이의 등딱지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요새였다.

물론 주먹 한 방이면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렇게 쉽게 무너질 요새는 아닌 듯했다.

민성의 능력 정도 되면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계산이 서는데, 그가 보기에 다크엘프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이 요새에는 굉장한 힘이 서려 있는 듯했다.

“어쩌죠. 이대로 무한정 기다릴 수도 없고. 부수자니, 마법 결계가 심상치 않게 세팅되어 있는 듯한데요.”

이호성이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단단한 요새의 외벽을 매만지며 말했다.

손으로 만져 보면 그저 별다를 건 없는 평범한 벽이지만, 힘을 쓰거나 마력을 운용하면 그에 맞춰 엄청난 방어력을 만들어 내는 신기한 요새였다.

“방법은 많지.”

민성이 말했다.

“……방법이 많다고요?”

이호성이 민성을 보며 물었다.

“예컨대 숲에 불을 지른다든가…….”

이호성은 퀭한 눈으로 민성을 보면서 굵은 침을 삼킴과 동시에 간담이 서늘한 것을 느꼈다.

애초에 생각하는 기준이 자신과는 차원이 다르다.

만약 강민성이 세간의 기준으로 악인의 삶을 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애초에 지구라는 세계부터 멸망해 버렸을 것이다.

그를 통제하거나 컨트롤할 수 있는 건 하늘에서 재밌게 도박놀이 하듯 구경 중인 신 정도에 불과할 테니까.

그렇다는 건 민성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고, 그 감정은 의외로 꽤 올바른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점이기도 했다.

다만, 어쩌면 그가 준법에서 무법으로 가는 선을 넘어가는 순간 감당 못 할 세상을 자신이 지켜보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워지는 이호성이었다.

간단히 민성이 무표정하게 숲에 불을 지르는 걸 상상만 해 봐도, 단순히 숲에 불을 지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로 인한 나비 효과로 강민성이 어떻게 변해 갈지가 더 두려운 것이다.

때문에 이호성은 이런 방식은 절대 시작도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건 좀 너무하는 것 같습니다. 주, 주신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페널티가 있을지도 모르고요. 이제 막 숲에 도착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조금은 전략을 세울 시간을 가져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민성은 양손을 허리에 얹은 채, 주변을 잠시 훑었다.

그 모습에서 이호성은 설마? 하고 식은땀이 훅! 하고 솟았지만, 다행히 민성의 행동은 그뿐이었다.

“그런가?”

“예.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분명.”

“그럼 10분 안에 답을 찾아내라.”

“……예? 10분이요?”

“10분이다.”

민성은 그렇게 못을 박았다.

만약 10분 안에 해결점을 찾지 못한다면 정말로 숲에 불이라도 지를 기세처럼 느껴져서 이호성으로서는 아찔한 감각에 빈혈마저 일 정도였다.

아무리 민성이 지금은 함께해 온 시간과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부분을 감안해 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무엇보다 여긴 베아트리체였으며,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는 그 누구보다 강민성이 가장 크게 반응하는 부분이었다.

10분.

10분 안에 반드시, 결단코 해결점, 아니, 최소한 강민성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뭔가를 찾아내야만 했다.

뭐가 있을까?

침착히 생각해 보자.

강민성이라면 아무리 강한 보호막을 형성하고 있는 요새라도 뚫을 수 있지 않을까?

힘으로.

힘으로 뚫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하지만 만약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방어벽이 강하고, 강민성이 마기를 소모한 가운데 다크엘프의 병력이 쏟아져 나온다면?

이호성은 앞머리를 손으로 꽉 틀어 잡아당겼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지만, 주어진 시간은 고작해야 10분뿐이다.

째각째각-

초침 가는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하게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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