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43화>
그렇게 민성이 변모한 자신의 무기를 보고 있는 사이, 쇼펜은 절망과 좌절로 인해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마치 세상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던 마법진은 그 힘을 온전히 잃어 볼품없는, 그저 그림밖에 남아 있지 않은 형태로 남아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된 쇼펜은 그저 눈을 깜박이며 죽음이 배정된 사형수처럼 생기를 잃은 상태로, 허한 눈으로 허공을 보았다.
그런 그의 시선 앞에 민성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금빛이 일렁이는 민성의 궁니르를 보자 쇼펜은 웃음이 났다.
민성과 이 영지 전체를 날리려고 했던 시도는 결국 그의 무기에 힘을 실어 주는 역할만 하게 되었으니까.
쇼펜이 킬킬 웃는 모습을 보며 민성은 말없이 ‘궁니르S’를 들었다.
그리고 어깨를 흔들며 미친 사람처럼 웃고 있는 쇼펜에게 벼락같은 속도로 뇌전의 궁니르S가 박혀 들어갔다.
콰르르르릉!
번쩍거리는 벼락의 빛과 함께 목을 관통당한 쇼펜이 눈을 감지도 못한 채 죽음에 이르렀다.
벽에 등을 진 채 머리를 축 늘어트리고 있는 쇼펜을 내려다보다가 민성은 몸을 돌렸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업적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주신들이 플레이어의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업적 포인트 선물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누적된 업적 포인트는 +130,000입니다.]
[추가 내대륙 스페셜 오더]
[앞으로 내대륙 스페셜 오더가 정상 실행됩니다.]
민성은 걸음을 멈췄다.
그동안 전혀 본 적이 없었던 낯선 단어 때문이다.
……내대륙 스페셜 오더?
민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서 있을 때 요정 아린이 팟! 하고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아린이 방실방실 웃으며 활기차게 인사했다.
“내대륙 스페셜 오더가 뭐야?”
민성이 아린을 보며 물었다.
“흥! 늘 인사를 받아 주지도 않고 본론만 얘기하시네요.”
“본론만 얘기해.”
“……네.”
요정 아린이 시무룩하게 수긍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곤 입술이 심술 맞게 퉁퉁 나온 채로 아린은 내대륙 스페셜 오더에 대해 설명했다.
아린의 설명을 들어 보자 내대륙 스페셜 오더라는 것은 퀘스트이긴 했지만, 보다 어렵고, 어려운 만큼 명성을 올릴 수 있는 폭이 컸다.
다만 실패할 경우, 불명예와 같은 리스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대륙에서 일정 이상의 능력을 입증한 플레이어만이 주신들의 업적 투자를 받아 시작할 수 있는 특전 퀘스트 같은 것이었다.
빠른 명성 습득으로 랭킹을 올려야 하는 민성으로서는 피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승인 / 거절]
이 제안을 수락할 것인지를 물어 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거부할 이유가 없다.
민성은 고민 없이 승인을 터치했다.
[스페셜 오더를 수락하였습니다.]
그 시스템 메시지 문구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요정 아린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아주 짧게 번쩍였다.
그리고 이내 요정 아린은 꽃가루 같은 것을 흩날리며 민성의 주변을 휘휘 날아다녔다.
민성은 이유 모를 아린의 행동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두 바퀴 정도를 민성을 원형으로 돌면서 날아다닌 아린은 방긋 웃으며 민성에게 새로이 인사했다.
“저희 요정들만의 인사법이랍니다, 헤헤.”
“스페셜 오더라는 건 결국 퀘스트인 거지?”
민성의 물음에 요정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죠. 아주 어려운 난이도의 퀘스트랄까……? 하지만 그런 만큼 높은 보상을 받을 수 있고요.”
“그 퀘스트는 언제 받을 수 있는 거야?”
“정해진 것은 없어요. 사건이 발생하면, 그것에 대해 주신들이 회의를 하고, 회의 결과 해결이 필요한 미션이라면, 제가 그것을 플레이어님에게 전달하는 것이죠.”
“알겠다.”
민성은 짤막하게 대답하고 다시 복도를 걸었다.
여전히 습하고, 어둡고 쾌쾌한 복도는 불쾌한 공간이었다.
요정 아린은 어두운 기운이 가득한 철창과 길게 이어진 복도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했다.
고요한 가운데, 복도에서 민성의 발소리만이 크게 울렸다.
지하를 나가기 직전, 요정 아린은 곧 다시 뵙겠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 * *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자, 입구 밖에는 이호성과 바가지, 그리고 쏠이 있었으며, 그 옆으로 피를 뒤집어쓴 라우니가 서 있었다.
“……어떻게 됐어요? 쇼펜을 찾았습니까?”
“죽였다.”
민성이 짤막하게 대답했고, 이호성은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하셨습니다.”
민성은 시선이 느껴지는, 라우니 쪽을 보았다.
라우니는 조용히 짧게 목례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궁금하다는 질문이 눈에 남아 있었다.
아마 마법진에 대한 질문이 목 언저리까지 올라와 있겠지.
“마법진은 파괴했고, 쇼펜은 죽었다.”
충분히 대답이 되었다는 듯 라우니는 복잡한 심경이 얽혀 버린 표정으로 다시 한번 민성에게 인사를 올렸다.
주변을 훑어보자 바로 근처까지 쫓아온 쇼펜의 병력들이 있었던 듯 시체와 피가 뿌려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민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영지 전체를 날려 버리려고 했던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게, 조금은 씁쓸했다.
“말이 필요한데. 도움을 줄 수 있나?”
민성이 말했다.
마법진에서 폭발된 오러를 흡수하기 위해 상당량의 마기를 써야 했고 민성은 지구로 귀환한 이후, 거의 처음으로 가장 크게 지쳐 있는 상태였다.
“가능합니다. 지금 바로 마구간으로 가시겠습니까?”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처럼 지쳐 있는 라우니가 앞장서서 걸어갔다.
민성은 이호성과 바가지, 그리고 쏠을 데리고 그를 뒤따랐다.
그때였다.
띠링!
알림 소리와 동시에 시스템 문장이 나타났다.
속으로 설마 벌써? 하고 살짝 놀랐는데 정말 나타나 버리고 말았다.
[스페셜 퀘스트 : 다크엘프의 숲]
[다크엘프 ‘엘란’이 가진 고대의 문서를 획득할 것]
[승인 / 거절]
어떠한 보상을 주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았으며, 리스크나 퀘스트의 내용 역시 힌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짧은 내용이었다.
불친절한 퀘스트였지만 외려 이렇게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퀘스트가 나타났다는 사실에 민성은 기분이 좋았다.
민성은 시간을 질질 끄는 건 어느 누구보다 질색이었다.
“말은 몇 필 정도 필요하십니까?”
라우니가 마구간 앞에 이르면서 물었다.
“두 필.”
민성의 말에 뒤에서 이호성은 쾌재를 부르는 표정을 지었지만. 민성은 보지 못했다.
그사이 라우니는 두 필을 말을 골라 내주었다.
흑마와 백마로 두 필이었다.
이호성은 민성이 먼저 말을 고르기를 기다렸다.
민성은 두 마리의 말 중 흑마를 선택했고, 곧장 말의 안장 위로 올랐다.
우람하게 골격도 좋고 체력도 넘쳐 보이며, 근육량도 굉장해 보였다.
“고맙다.”
민성이 안장 위에서 라우니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라우니는 옅게 웃었다.
“별말씀을. 외려 제가 고맙지요. 쇼펜의 영지를 지켜 주었으니 말입니다.”
옅었던 그의 미소가 짙어졌다.
민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호성에게 눈짓을 던졌다.
이호성도 재빨리 새하얀 백마 위로 올랐다.
“어디로 가십니까?”
라우니가 물었다.
이호성도 궁금하다는 듯 민성을 응시했다.
“다크엘프의 숲.”
민성의 그 대답에 라우니는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지만, 민성은 그 반응을 채 보기도 전에.
“이랴!”
말의 옆구리를 차며 빠르게 출발 해버린 상태였다.
“저도 그럼 가 보겠습니다. 고생하십시오.”
이호성도 인사를 남기고, 뒤처지지 않도록 앞서간 민성을 향해 고삐를 잡고 빠르게 내달렸다.
그 뒤를, 쏠이 쫓아갔다.
라우니는 민성의 일행이 성을 나가는 모습을 보며 미간을 구부렸다.
“다크엘프의 숲…….”
라우니는 굵은 침을 삼켰다가, 짧은 한숨을 뱉으며 웃었다.
그리고 대단하다는 듯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 * *
지도상으로 본래라면 다음 영지의 중심지로 향했겠지만, 퀘스트 때문에 다크엘프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북서쪽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야만 했다.
가을이 지나고 초겨울의 날씨가 느껴졌다.
꽤 찬 바람이 불었지만, 민성도 그렇고 이호성도 그렇고 바가지와 쏠까지도 날씨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한겨울이 된다고 해도 마기나 오러의 운용으로 체온은 따뜻하게 유지된다.
바가지야 리치이니 온도라는 것 자체를 느낄 수 없겠지만, 쏠 역시 체온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일이었다.
역시 평범한 고블린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다만 체력을 비축하면서 메마른 대지의 땅을 오랫동안 이동해야 함은 변하지 않는다.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말을 타고 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동 속도는 당연히 늦었다.
이대로라면 목적지까지는 며칠이 걸릴지 알 수 없었으나, 지금은 체력과 마기를 회복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민성은 조급해하거나 서두르지 않았다.
애초 계획은 체력과 마기를 회복하기 위해 말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몬스터의 존재로 민성은 보다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고릴라를 닮은 근육질의 2미터는 될 법한 몬스터가 나타났고, 그 몬스터를 발견하자마자 민성의 눈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하얗게 번쩍였다.
민성은 안장 위에서 그대로 가볍게 뛰어오르며 몬스터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손을 뻗는 즉시, 고릴라를 닮은 커다란 몬스터는 눈을 치켜뜨며 자신의 몸이 저절로 민성에게 날아가자 당황스러워했다.
민성의 손에 몬스터의 목이 붙들리는 순간, 이호성은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콰드드득! 콰득! 콰드드드득!
뼈가 갈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것은 몬스터가 민성에게 생기를 흡수당하면서 살이 쪼그라들고, 뼈가 충격에 의해 으스러지는 소리였다.
민성은 순식간에 쥐포처럼 바짝 말라 버린 몬스터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후, 다시 안장 위로 올랐다.
“그 서포터 능력이라는 걸 발휘해서 몬스터가 발견하면 곧장 보고해라.”
“아, 알겠습니다.”
이호성은 말라비틀어진 몬스터 사체를 보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무슨 흡혈귀도 아니고, 저렇게 생명을 쪽 빨아먹다니…….”
“다 들린다.”
민성이 노려보자 이호성은 어색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정말 대단한 능력이라서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하하. 저, 그런데 배고프지 않으십니까? 식사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 말씀이 없으셔서요.”
“몬스터를 통해 조금 회복되었어. 허기도 가셨고.”
“저렇게 하면 허기도 가시는 겁니까?”
이호성이 충격적이라는 듯 말했다.
“목적지 앞에 도착하면, 식사 후에 휴식 후 진입할 예정이다. 넌 가면서 중간중간 간식으로 열량을 챙기면 될 거다.”
“네, 알겠습니다.”
민성이 다시 속도를 올렸다.
목적지, 다크엘프의 숲을 향해 민성과 이호성의 말 두 필이 흙먼지를 휘날리며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