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42화>
어둡고 눅눅한 습기가 몸을 덮쳐 오는 그 긴 복도를 걸어간 끝에, 민성은 하나의 문 앞에 이르게 되었다.
커다란 철문이었다.
끼이이이익- 철컹!
손잡이를 잡고 문을 옆으로 당기자 문은 쉽사리 열렸다.
문을 열고 가장 먼저 들린 것은 흐느끼는 울음 소리였다.
“으흐흐흐흑…….”
쇼펜은 오른팔을 잃어버린 상태로 벽에 이마를 박고서 기대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는 크고 넓은 마법진이 바닥에 그려져 있었고, 어두운 가운데 촛불로 마법진 주변으로 장식되어 있는 불빛은 기괴한 기운을 형성하고 있었다.
“어디서 저런 괴물 같은 새끼가 튀어나온 거야. 내 계획은 충분했어. 완벽했다고. 저 자식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야…….”
쇼펜은 자신이 ‘진짜’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고 어깨가 흔들릴 정도로 울어 대며 그렇게 혼잣말을 떠들어 댔다.
그의 울음은 그의 화려한 제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어이.”
민성이 불렀다.
그 부름에, 쇼펜은 그제야 눈물이 잔뜩 번진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쇼펜은 퉁퉁 부은 눈과 얼굴로 멍한 시선으로 자신을 보았다.
잠시 눈이 마주쳤고, 쇼펜은 웃음을 터트렸다.
“흐흐. 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웃음소리가 연구실을 크게 울렸다.
그는 마치 미치광이처럼 웃어 댔다.
예컨대 그는 자신의 상태도, 몰골도, 그리고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까지도.
하나같이 꿈이었으면 소원이 없을 만큼 처참하고 끔찍한 악몽이라는 것처럼, 웃는 듯 우는 듯했다.
웃는 소리로 들렸던 것은 지금에 와서 어떤 소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베아트리체……. 베아트리체라는 세계란 그런 곳이지. 잠시 잊고 있었어.”
그는 초췌한 얼굴로 말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힘을 가지면 힘을 가진 만큼 누릴 수 있는 세계가 베아트리체지만, 힘을 잃게 되면 모든 걸 잃게 되는 곳이 바로 이 세계, 베아트리체인 거지.”
쇼펜은 비틀거리며 벽에 기대어 일어서서 축 늘어진 채 민성을 보며 쿡쿡 웃었다.
“내가 이런 꼴을 당하게 될 줄이야. 크크크큭, 상상도 못 했다고.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싸움을 해 왔지만 이토록이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음을 앞두게 된 건 처음이다.”
“그런 지겹고 뻔한 이야기 말고. 왜 이 연구실로 도망 왔는지가 궁금한데.”
민성은 마치 관통하는 듯한 시선으로 쇼펜을 응시했다.
그는 길게 미소 지었다.
마치 귀신같은 웃음이었다.
쇼펜은 왼손으로 오른팔이 있었던 날아가 버린 자신의 어깨 쪽을 가리켰다.
치료를 통해 출혈은 막았지만 여전히 흉측했다.
“검을 쥐는 자가 검을 쥘 수 없게 됐으니, 이보다 더한 죽음이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알고 있거든……. 너 같은 괴물한테서는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그래서 죽을 거라면 이 연구실에서 죽고 싶었다. 뭐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그것도 있고. 하나 더 있지. 당신이 궁금해할 만한 것으로.”
민성은 낮은 시선으로 그를 보며 템창에서 궁니르를 꺼냈다.
쇼펜은 초췌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에는 굉장한 감정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민성은 알고 있었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굉장히 아끼는 무언가를.
별달리 함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시한 것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의 눈에 투영된 감정이 그 사실을 말하고 있었으니까.
“뭔지는 몰라도…… 날 상대로 재미 볼 생각은 지우는 게 좋을 거야.”
“과연 그럴까?”
쇼펜이 흐흐 하고 저급하게 웃었다.
본래 인간은 벼랑 끝에 몰리면, 이렇듯 쉽게 저열해지고 품위를 잃어버리기 쉽다.
얼마나 많은 것을 누렸든 간에 죽음이라는 벼랑 끝에 서게 되면, 더군다나 그 죽음을 선사할 수 있는 대상이 코앞에 있다면 이성보다는 본성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은 일종에 스스로를 지키는 방어기제일 것이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민성이 궁니르를 들고 그를 향해 걸어가며 마법진 위를 지나기 시작할 때였다.
쇼펜의 얼굴에 광기가 어린 듯한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법진에 금빛이 번져 나왔다.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선 하나하나에 금빛이 들어찼다.
마치 최고급 시계처럼 영롱하고, 짜임새 있으며, 완벽한 균형을 맞추고 있는 마법진의 황금빛이 화려하게 번쩍거렸다.
그 마법진 위에서 민성은 전혀 동요하지 않은 시선으로 쇼펜을 보았다.
놀람과 실망감이 섞인 감정이 그의 눈에 가득 찼다.
“내가 기대한 건 이런 반응이 아니었다고.”
쇼펜의 눈에 흥미가 사라지고 낮은 톤의 살기가 배여 들었다.
민성이 다시 그에게 걸어가려고 하기 직전.
쇼펜이 입술을 열었다.
“마법진을 손보았지. 네가 날 찾는 동안.”
쇼펜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시한폭탄이다.”
쇼펜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민성을 보며 말했다.
그 짧은 말 한 마디로 민성은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예감할 수 있었다.
금빛을 쏟아 내고 있는 마법진을 내려다보고 있는 민성의 눈을 보고 쇼펜의 미소는 진해졌다.
“그래! 그런 얼굴을 보고 싶었어. 그런 얼굴을 보고 싶었다고!”
쇼펜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민성은 쓴웃음을 흘렸다.
“기쁘나?”
민성이 시선을 들어 쇼펜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기쁘냐고.”
쇼펜은 완전히 굳어 버린 얼굴로, 이내 감정의 비틀림이 튀어나왔으나, 쇼펜은 가까스로 그 감정을 붙잡고 웃음 지었다.
“비웃을 생각 마라. 이 마법진의 힘은 네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일 테니까. 이 연구실을 기점으로 반경 500키로 미터를 흔적도 없이 잿더미로 만드는 파괴력이지. 아무리 네놈이라도, 버티지 못할 거야. 결국 나랑 함께 가는 거다.”
마법진에 숫자가 나타났다.
그 숫자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폭발 시점을 예고하는 시간인 듯했다.
“기분이 어때? 너도 예상하지 못했지? 이런 곳에서 죽을 거라고 말이야. 푸히히!”
쇼펜이 경박하게 웃었다.
하나 민성은 가벼운 미소를 입에 걸었다.
“왠지 너무 약하다 싶더니 결국 이런 마법진을 그리는 힘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간 거였군. 그래서 내대륙 안에서도 외곽에 겉돌고 있었던 거고. 결국 넌…….”
민성이 짧게 한숨 쉬었다.
“완전 잔챙이잖아.”
쇼펜이 넋이 나간 시선으로 민성을 보았다.
민성은 쇼펜을 보며 옅게 웃었다.
“내대륙의 플레이어라 해서 명성이 꽤 오를 거라 기대했는데. 허튼 기대였어.”
쇼펜이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거냐? 얘기했잖아. 못 들었어? 넌 이제 죽는다고!”
민성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남은 시간은 30초.
민성은 다시 시선을 들어 쇼펜을 응시했다.
“잘 봐라. 네가 왜 잔챙이인지.”
민성이 마법진의 금빛에 물든 채로 말했다.
쇼펜은 코웃음을 흘리며 웃었다.
“……잘난 척할 것 없어. 넌 물론이고, 네 일행. 그리고 이 근방의 베아트리체인들은 모두 저승으로 올라갈 거다. 바로 나로 인해서! 나 쇼펜의 힘으로 인해서 말이다!”
쇼펜이 피를 토할 듯이 소리쳤다.
“그건 네 생각이고.”
민성은 자신의 마기를 전력으로 개방하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르르르!
연구실이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곧 갈라질 듯이 엄청나게 흔들렸다.
그것은 민성의 마기를 개방한 것만으로 일어난 반응이었다.
쇼펜은 그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감에 숨을 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등이 벽에 닿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게 된 쇼펜은, 일종의 공포감마저 느끼며 민성을 지켜보았다.
“……설마, 설마 아닐 거야. 아닐 거라고.”
믿고 싶지 않다는 듯, 쇼펜은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5초, 4초, 3초, 2초, 1초.
금빛이 연구실 전체를 가득 채울 듯 퍼져 나오며 그와 동시에 마법진에서 오러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민성이 자신의 궁니르를 마법진 바닥에 내려꽂았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전신이 뜯겨져 나갈 것만 같은 엄청난 감각이 쇼펜을 집어삼켰다.
경험해 본 적 없는 그 전율은, 민성의 힘이 만들어 낸 여운이었다.
“이, 있을 수 없는…….”
콰과과과과과과광!
귀를 멀어 버리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소리가 터졌다.
하지만 그것은 충돌로 인한 소리가 아니었다.
뒤이어지는 소리는 쇼펜이 두 눈으로 보면서도 도저히 현실이라고 인지할 수 없는, 마치 꿈과 같은 장면이었다.
콰지지지지지지지지직!
민성의 창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마법진에서 터져 나오는 거대한 오러를 흡수하고…… 아니, 씹어 삼키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악마가 그 마법진을 조잡하다는 듯 비웃으며 즐기듯이 소화하고 있었다.
쇼펜은 찢어질 듯 크게 뜬 눈으로 민성을 보며 입술과 굳은 목으로 인해 얼굴을 마치 진동하듯 푸르르르 떨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콱!
쇼펜은 경악으로 물든 얼굴로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저 마법진에 지금까지 저축된 오러의 양은 무려, 1차지는 1서클 마법사 하나가 서클을 만들어 내는 공격력이라고 할 때, 50만 차지의 마력에 달하는 힘이었다.
그 힘을…… 저 검은 머리의 인간이 홀로 삼켜 내고 있었다.
“……있을 수 없잖아, 그런 건.”
쇼펜은 과호흡을 하며 왼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았다.
쇼펜의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들고 있었다.
그건…… 두려움이나, 억울함, 분노, 살기 같은 것이 아닌.
그저 경외심(敬畏心)이었다.
마법진의 금빛이 서서히 옅어지더니, 이내 촛불이 꺼지면서 어둠이 가라앉았고.
찰나의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궁니르에서 천둥 벼락이 흘러나오며 바닥에 쩌저저저적! 금이 가면서 벼락이 연구실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뇌전의 빛으로 인해 비친 민성의 모습은 쇼펜에게 있어 마치 천둥의 신처럼 보였다.
세상을 깨트릴 것만 같던 소리가 멎고, 고요함이 찾아왔다.
쇼펜은 여전히 숨을 쉬지 못했고, 민성은 어둠 속에서 마법진에 꽂아 넣었던 궁니르를 서서히 뽑아 들었다.
콰드드득!
마법진을 깨트리며 바닥에 꽂혀 있던 궁니르가 뽑혀 나왔다.
민성의 창 궁니르는 마법진의 힘을 그대로 흡수하여서인지 서서히 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 금빛에 의해 주변이 밝아졌다.
민성은 강렬한 힘이 꿈틀거리는 자신의 창을 눈으로 훑었다.
황금으로 도배되다시피 변해 버린 궁니르는 ‘+9 궁니르’라는 이름에서 ‘궁니르 S’라는 이름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또한 그 능력의 스펙 역시 확연하게 달라졌음을 민성은 직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