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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238화 (238/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38화>

“영주님을 뵙습니다.”

라우니는 영주이자 성의 주인인 쇼펜에게 인사를 올렸다.

침대에서 막 내려온 쇼펜이 가운 끈을 묶으며 웃었다.

“아아- 라우니 경. 사막은 잘 다녀왔나?”

쇼펜이 질문을 던지고는 물을 먹다가, 대답이 없는 라우니를 돌아보았다.

“어찌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쇼펜의 말에, 라우니는 피에르 사막에서 거대 전갈, 로클에게 함께 간 자신의 부하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보고 올렸다.

쇼펜의 얼굴은 굳었고, 잠시 침묵이 가라앉았다.

“로클이라…… 활동기가 아닌데, 이상하군.”

쇼펜이 가라앉은 라우니의 얼굴을 잠시 응시하다가 쓴웃음을 흘렸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라우니 경은 인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군.”

쇼펜이 무거운 눈으로 라우니를 보며 말을 이었다.

“마음 가볍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너무 무겁게 가지진 말라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보다 가져왔나?”

쇼펜이 라우니를 직시하며 물었다.

“예.”

라우니가 그늘진 얼굴로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를 보는 쇼펜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고생했어. 예기치 못한 사고가 있긴 했지만, 역시 라우니 경이 있었기에…….”

밝은 표정으로 말하던 쇼펜의 표정은 라우니의 낌새에 이내 급격히 굳어졌다.

“라우니 경?”

쇼펜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라우니의 눈에 푸른 불꽃과도 같은 빛이 스쳐 지나갔다.

살기는 아니었다.

라우니는 현재 쇼펜에게 저항하고 있었다.

이건 아니라는 걸,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리고 싶은 것이고, 그것이 영주인 쇼펜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자 호소였다.

그러나 지배자는 그런 저항이나 호소에 흔들리지 않는다.

더구나 욕망에 지배된 이들은 추진력에 멈추지 않는 힘이 붙는 법이다.

쇼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라우니!”

쇼펜이 소리치자 저릿저릿한 기운이 라우니의 전신을 휘감았다.

라우니는 그 격렬한 감정의 잔재가 만든 마나의 파동에 온몸이 흔들렸지만, 라우니 역시 생각을 꺾을 의지가 없다는 것을 전달했다.

“그럼 피에르 사막에 보관했던 그 계약서는 왜 가져온 것이냐?”

쇼펜이 분노가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이 계약을 깨트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영주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요.”

“당연히.”

쇼펜이 흔들림 없는 눈으로 라우니를 쏘아보며 말했다.

“이 계약서를 깬다는 것은 쇼펜 영주님의 영지를 버리는 것과 같은 셈입니다.”

“하여…… 내 명을 어기겠다는 뜻이냐? 그깟 백성들 목숨을 왜 그렇게 귀히 여기는 것이냐? 라우니 경, 잊었나? 여긴 베아트리체다!”

쇼펜의 호통에, 그리고 마지막 말에.

베아트리체라는 말에 라우니의 시선이 흔들렸다.

쇼펜이 말을 이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어설픈 마음으로 대의를 그르칠 생각 따위는 마라.”

쇼펜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 계약서를 깬다는 것은 마르텐 영주와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전쟁을 위해 백성들의 피를 모아 마법의 핵을 제조하는 것에 대한 결정이기도 한 것이며…….”

“라우니 경.”

쇼펜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한 번만 더 내 명을 어기겠다는 걸로 간주 된다면, 난 그대가 반역을 일으키는 것으로 받아들이겠네.”

“…….”

라우니가 침통한 표정으로 템창에서 계약서를 꺼내 천천히 무릎을 꿇고 머리 위로 그 계약서를 받쳐 올렸다.

쇼펜은 여전히 불쾌감이 남은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라우니가 바친 계약서가 두둥실 떠올라 쇼펜의 손에 들어갔다.

“나가 보라.”

쇼펜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라우니가 엎드렸던 몸을 일으킬 때, 쇼펜이 그를 불렀다.

“라우니 경.”

“예, 영주님.”

라우니가 자세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현 시간부로 당분간 군 지휘권을 박탈한다. 자중하면서 마음을 다잡도록.”

라우니는 어두운 얼굴로 인사를 올린 뒤, 나갔다.

* * *

바가지는 머리를 끼리릭 돌려 방문 쪽을 돌아보았다.

문 밖으로 느껴지는 영롱한 기운에 마치 취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는 것처럼 바가지는 탁탁 뛰어가 방문을 열고 복도 밖으로 나섰다.

복토는 텅 비어 있었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이미 어디선가 전해져 오는 감각이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바가지는 그 방향을 향해, 검은 혼불의 눈을 불태우며 뛰어갔다.

바가지는 이러한 기분이 드는 경험을 한 적은 흔치 않았다. 처음 알게 된 건 자신의 주인을 만났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일하며, 주인에게 받은 마석을 먹을 때가 그 이후.

그래.

이건 마석의 냄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 정체가 보다 분명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복도를 뛰어 한쪽 코너를 돌았을 때, 바가지는 우뚝 멈춰 섰다.

피에르 사막을 지날 때 만났던 ‘라우니’가 넓은 복도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바가지는 볼 수 있었다.

그가 앉아 있는 벤치 옆의 조각상에 붙어 있는 하나의 마석을……!

꿀-꺽!

마석에 대한 갈증과 복잡함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저 인간 남자만 없다면 조각상에 박혀 있는 마석만 쏙 빼먹고 돌아갔을 테지만, 아무래도 저 인간 남자 때문에 눈치가 보였다.

그러던 가운데 라우니가 얼굴을 돌려, 눈이 마주쳤다.

그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고, 바가지는 배꼽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말까지 하자 라우니는 눈을 크게 뜨며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바가지를 이상하다는 듯이 보며 일어섰다.

“몬스터?”

라우니가 그렇게 물었고, 이러다 여차하면 싸움이 날 것 같아 바가지는 자신이 주인을 모시고 이 성에 들어오게 됐다는 경위를 설명했다.

“흠…… 신기하군. 이런 펫 같은 몹이 있었다니. 그런데, 왜 혼자 여기 있는 거지?”

라우니가 바가지를 보며 물었다.

바가지는 손가락으로 조각상에 박혀 있는 마석을 가리켰다.

“마석이 먹고 싶어서요. 먹으면 안 되겠죠?”

바가지가 순순히 자신의 속셈을 밝히자 라우니는 그 석상을 돌아보고서는 푸핫 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표정을 고쳤다.

“마음은 잘 알겠다만, 여기의 이 석상도 결국은 영주님의 소유다. 허락 없이 이 마석을 건드렸다가는 네 주인에게 큰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주인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는 않겠지?”

바가지는 시무룩한 상태로 마석을 아쉬운 듯이 보며 한숨을 쉬었다.

라우니는 그런 바가지가 귀엽다는 듯 보다가 다시 벤치에 앉아 입에 담배를 물었다.

“혹여나 네가 영주님의 물건에 손을 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니, 잠시 지켜야겠다. 하하.”

라우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벤치에서 먼눈으로 허공을 보며 어두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담배를 피웠다.

뿌연 연기가 허공에 흩날렸다.

바가지는 잠시 그런 그를 지켜보다가 탁탁 뛰어가 풀쩍 뛰었다.

그리곤 그의 옆에 앉았다.

“……?”

담배를 피우던 라우니가 이상하다는 듯이 바가지를 보았다.

바가지는 그저 말없이 앉아 있기만 했다.

마치 인형처럼.

라우니도 이내 다시 먼 곳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

고요한 복도에서 담배 타는 소리만이 들렸다.

“……결국 여기까지인가.”

라우니는 허공을 보며 홀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바가지는 라우니를 돌아보았다.

검은 안광이 심연을 품고서 라우니를 응시했다.

언데드의 왕이 리치다.

비록 주인을 모시는 권속이 된 상태지만 자신은 리치.

죽음을 꿰뚫어 보는 사안(死眼)을 가졌다.

그런 바가지의 시야에 라우니는 죽음을 각오한 것으로 보였다.

그에게서 죽음이 보였다.

머지않아 생명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 바가지 자신의 사안에 보였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왜 죽으려고 하는 거죠?”

바가지가 물었다.

그 질문에 라우니는 놀란 표정으로 바가지를 보았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느냐는 의미를 담은 시선이었다.

“저는 죽음을 조종하는 리치거든요.”

“하…….”

라우니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구나. 너에겐 내가 그렇게 보이는 거구나.”

라우니는 씁쓸함이 잔뜩 배어든 눈으로 먼 곳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담배를 한 개비 더 꺼내 피우며 라우니는 생각을 정리한 끝에 일어섰다.

그리고 바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덕분에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이유를 설명해줄 수는 없지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네. 고맙다, 꼬마 해골.”

라우니는 바가지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은 후, 복도를 떠났다.

그가 사라지고 난 뒤 바가지는 벤치에서 내려와 조각상에 박혀 있는 마석을 꺼내 아작아작 씹었다.

그리곤 라우니가 간 방향으로 곧바로 미행을 시작했다.

* * *

라우니는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빠르게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게.

이성은 이미 자리를 잡았다.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었고, 자신의 뜻을 확고히 정리했다.

후회는 없을 것이며 그로 인한 책임은 모두 스스로 짊어질 생각이었다.

쇼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는 괜찮은 사람이었으며 멋진 성격을 가진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는 변했다.

탐욕에 물들었으며 그 탐욕에 삼켜져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자행했다.

그동안의 인연이 늘 발목을 잡았다.

다시 돌아올 거라고.

이 세계를 구할 거라고 했던, 그 빛나던 때로.

하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고, 이제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가고자 했다.

막아야 했다.

더 이상은 지켜보고 있을 수 없었다.

피에르 사막의 계약서는 쇼펜과 마르텐의 평화 조약을 깨는, 전면 전쟁을 선포하게 될 열쇠였다.

그리고 쇼펜은 마르텐을 이기기 위해 백성들의 피를 제물로 하는 마법진을 준비해 왔고, 이제 막 끝낸 상태였다.

무고한 베아트리체인들을 잡아와 그들의 시체를 조건으로 쇼펜은 흑마법을 자행하여 마르텐을 타격할 생각인 것이다.

라우니는 그 끔찍한 시도를 막고자 했고, 그러기 위한 계획이 마법진을 파괴하는 일이었다.

연구실과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쿵쿵 뛰었다.

지금 행하게 될 일은 배신이면서도 쇼펜을 향한 반역이었다.

그로 인해 발생되는 모든 감정을 씹어 삼키며 라우니는 연구실 앞에 이르렀다.

라우니는 심호흡을 하고 결단을 굳히고서 연구실의 문을 강하게 열어젖혔다.

템창에서 자신의 무기인 바스타드 소드를 꺼내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채채채채채챙!

수십 개의 무기가 연구실 안으로 들어온 라우니를 겨누었다.

라우니는 놀란 눈으로 안쪽을 살폈다.

쇼펜이 고급스럽고 화려한 의자에 앉아 웃고 있었고 쇼펜 영지 내 최상위 플레이어들이 각자의 무기를 자신에게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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