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31화>
이호성이 사나운 시선으로 플레이어 사내를 노려보며 말했다.
“현장을 잡았는데, 말해 뭐 해?!”
“그러니까 저 아이가 물자에 손을 댄 것을 봤다는 겁니까?”
“그, 그건……!”
이호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현장을 잡았다면서? 저 아이가 물자에 손을 댔다는 증거는 뭡니까?”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이년 말고 대체 누가…….”
“어떻게 저 조그마한 아이가 물자를 건드릴 수 있을 만큼 허술하게 관리할 수가 있죠? 제가 보기엔, 물자를 건드린 건 저 아이가 아니라 당신일 거라는 추측이 드는데?”
“무슨 미친 소리야?!”
플레이어 사내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푸들푸들 떨면서 소리쳤다.
“이 정신 나간 놈이 정황도 모르고 꼬마 애새끼 편을 드는 꼴이라니! 당장 네놈부터 걸레짝으로 만들어 주마.”
플레이어 사내가 거칠게 호흡하며 채찍을 쥐고서 이호성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어쩔 수가 없다고 판단하여, 이호성도 템창을 열어 자신의 무기인 검을 꺼내 들었다.
본격적으로 싸움이 벌어지려 하자 구경꾼들은 서둘러 허겁지겁 거리를 두어 물러났다.
혹여나 배가 파손되거나 하여 배가 침몰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선박의 직원들은 노심초사하는 표정으로 플레이어 사내와 이호성을 번갈아 보았다.
본래 선박에는 선박을 보호하는 플레이어들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실력이 높지는 않다.
더군다나 개인적인 문제로 붉어진 일에 괜히 관여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선박에 오르는 플레이어들의 수준을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하이크만 항구 도시를 지배하고 있었던 페우스가 죽음으로써 입김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라 개입이 불가능한 여건이었다.
가장 큰 걱정은 전투로 인해 선박에 문제가 생기고 침몰까지는 가는 게 최악의 경우였다.
만약 싸움이 거칠어진다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중제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사이, 이미 치렁치렁하게 긴 갈색머리 플레이어의 채찍은 이호성을 향해 거칠고 빠르게 날아들고 있었다.
이호성은 검은 그림자가 되어 위치를 벗어났고, 채찍은 허공을 찍고 땅겨지며 파아아아앙! 하는 소름끼치도록 강렬한 소리를 남겼다.
오러가 깃들자, 그 힘은 일반 채찍의 힘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힘을 만들어 낸다.
그 여파가 지켜보고 있던 구경꾼들에게도 저릿저릿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호성은 여전히 떨어진 곳에서, 그림자 밖으로 튀어나오며 입을 열었다.
“싸움은 그만하는 것이…….”
이호성이 그만하자고 나섰지만, 갈색머리의 플레이어 사내는 그만 둘 마음 따위는 없다는 듯이 다시 채찍을 휘둘렀다.
말을 하고 있는 중간이었기 때문에 반응이 늦어졌다.
파아아아악!
이호성의 왼쪽 팔이 찢어지며 허공으로 피가 훅! 하고 튀었다.
“크읏!”
이호성은 잇새로 신음을 흘리며 살이 터져 버린 왼팔을 붙잡고 뒤로 물러났다.
가공할 만한 위력이었다.
말을 하고 있는 중이라 미처 방비가 미흡했다고 하더라도, 채찍의 속도는 더 빨라졌다.
거기다 놈이 아직 스킬조차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굉장한 압박감이 되어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는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단지 두 수를 피하고 받았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이길 수 없는 전력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이길 수 없는 전력이라는 걸 알면서도 싸우는 건 멍청한 걸 넘어선 자살 행위다.
‘우선은 피해야 돼.’
일은 자신이 벌인 셈이나 다름없다.
강민성에게 도움을 요청할 만한 거리도 못 되는 일이지만, 욕을 먹더라도 저 소녀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강민성에게 이 사안을 전하기 위해 움직이려 했을 때, 플레이어 사내는 마치 자신의 속셈을 훤히 내다보고 있는 듯 혀를 내밀며 웃었다.
“도망칠 기회 따위를 줄 것 같으냐?”
그가 곧 스킬을 사용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끔찍한 공포의 감각이 전신을 휘어 감아 오는 듯했다.
이호성은 피하려 했으나, 압도적인 스킬의 공격에 대해 반사적으로 몸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그 순간-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탁 하고 짚었다.
강민성이었다.
* * *
“팔은 왜 그 모양이야?”
민성이 짜증 난다는 듯이 이호성의 찢어진 왼쪽 팔을 보며 물었다.
“엉? 저 자식은 또 뭐야? 이제는 아주 세트로…….”
치렁치렁하게 긴 갈색머리의 사내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말했기 때문이다.
“페우스를 죽인 남자다.”
“정말?”
“맞아. 내가 봤어. 그가 페우스의 요새에서 나오는 모습을 말이야.”
“저자가 틀림없어?”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잘됐군. 저놈, 뻑 하면 애들을 쥐 잡듯이 잡았잖아.”
“맞어. 이번이 한두 번도 아니지 않나?”
“아까 젊은 남자 말대로 저 자식이 빼돌리고 괜히 애꿎은 애들만 잡은 거 같군. 애들이 바보도 아니고 말이 안 되잖아.”
“쯧쯧……!”
이상이 긴 갈색 머리의 사내의 귀에 들린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다.
다른 건 들리지 않았다.
‘……페우스를 죽인 랭커 플레이어라고?’
갈색머리의 사내는 자신의 코에서 콧물이 흐르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는 생각이 들었고, 죽음이 목 언저리까지 올라왔다는 게 실감이 나면서도 좀처럼 피부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이 멍했다.
그사이 이호성에게 모든 설명을 들은 민성은, 갈색머리 사내를 보며 단 한 가지만을 물었다.
“어이. 팔을 이 모양으로 만든 게, 네가 한 짓이라고?”
민성이 짜증 난다는 듯이 갈색머리 사내를 보며 물음을 던졌다.
사내는 대답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전신을 가늘게 떨었다.
그러다 만에 하나에 희망을 걸고 입을 열었다.
“혹시…… 당신이 페우스를 죽인 플레이어?”
“이미 죽여 버린 자식 얘기는 왜 꺼내는 거야. 질문에나 대답해. 이거 네가 한 거지?”
민성이 이호성의 찢어진 팔을 쿡쿡 가리키며 물었다.
“그, 그, 그, 그 것이…….”
여자처럼 긴 갈색머리의 플레이어 사내는 민성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말을 더듬는 건 기본이었으며, 현재 그의 심정은 언제 바닷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가장 안전한가? 지금? 뛰어들려 하면 죽일까? 하고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했다.
“안 죽일 테니까. 이리 와 봐.”
민성이 손을 까딱였다.
플레이어 사내는 눈알을 돌리며 눈치를 살피다가 민성의 앞으로 쭈뼛대며 갔다.
민성은 플레이어 사내의 어깨 너머로 힘겹게 꿈틀 거리며 옅은 호흡을 흘리고 있는 소녀를 응시했다.
“이호성, 넌 저 아이부터 포션 써서 치료해.”
민성이 말했고, 이호성은 즉각 팔의 통증마저 잊은 채 서둘러 소녀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민성은 플레이어 사내의 눈을 보았다.
당연히 그는 민성의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그는 마치 한여름의 땡볕 더위 속에 있는 것만큼이나 얼굴과 목에 땀이 가득했다.
“힘 좀 있다고, 힘없어 보이는 것들 앞에서는 그렇게 무자비하게 굴더니 지금은 왜 그래? 두렵나?”
“…….”
사내의 얼굴이 두려움에 의한 흥분으로 숨이 거칠어지는 게 보였다.
“숨은 또 왜 그렇게 쉬어?”
민성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것보다 내가 페우스라는 놈을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 어떻게 알고?”
“드, 드, 들었, 습…….”
사내는 이내 철퍽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살려 주십시오!”
사내가 바들바들 떨면서 말했다.
“네가 그렇게 선수를 쳐 버리면 내가 꼭 악당 같잖아.”
민성의 눈빛이 변했다.
그리고 민성에게서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엎드려 있던 사내의 몸이 저절로 공중에 두둥실 부양하기 시작했다.
사내는 만약 그가 살기를 품고 무기를 빼내려 한다면, 즉시 바닷물 속으로 뛰어 들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저절로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으니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래서는 도망도 칠 수 없다.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플레이어 사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당연히 죽음은 싫었다.
절대 죽고 싶지 않았다.
더 오래오래 살고 싶었으나, 민성의 눈빛은 무정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희망이 완전히 없었던 것만은 아니다.
“조용히 좀 살아라. 시끄럽게 굴지 말고.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 말고.”
민성이 손을 슬쩍 들자, 공중에 떠 있던 플레이어가 마치 자석처럼 민성의 손으로 날아와 목이 덥석 잡혔다.
“컥……!”
그의 손아귀에 목이 붙잡히자 말은 나오지 않았고 그저 입술 밖으로 침만 튀어나왔다.
“쿨럭!”
마치 거대한 거인의 손에 붙들린 것처럼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반사적으로 살려 달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이상한 기류가 몸속으로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다.
불쾌했다.
마치 벌레가 살 속을 움직여 다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을 느끼는 것과 거의 동시에 마치 마취된 것처럼 힘이 쭉 빠지기 시작했다.
고통이라고 설명하기엔 애매했다.
그저 힘이 쭉 빠지는 것 같달까?
처음엔 그랬는데, 몇 초 더 흐르자 깨달았다.
자신의 생명력.
살아 숨 쉬는 인체의 생기가 그에게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허업?!’
대경실색하며 어떻게든 벗어나려 해 봤지만 부처의 손 안에 갇힌 손오공이다.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사위가 검은 어둠으로 변하는 듯했고, 눈에 보이는 건 악령과도 같이 자신의 생명력을 빨아먹고 있는 저 남자였다.
스스로가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 아주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사실에 민성이 확인 사살과도 같은 말을 박아 넣었다.
“맛있게 먹으마.”
결코, 정의를 위해서, 저 소녀를 위해서 자신을 이리 잔혹하게 처리한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악마의 명분에 자신이 재물이 되었을 뿐이다.
“어그그극…… 끄어!”
살이 죽죽 빠지고 머리털은 바닥에 낙엽처럼 떨어져 내렸다. 피부는 거뭇거뭇해졌으며 몸이 미라처럼 말라 갔다.
흡혈(吸血)이다.
생기가 날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내,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을 때 민성은 자신의 목줄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털썩.
긴 갈색머리의 사내는, 마치 좀비라고 해도 무방할 만한 상태가 되어 바닥에 철퍽 널브러졌다.
“앞으로는 조용히 좀 살아라.”
민성이 그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났다.
시선을 돌리자 멀어지고 있는 그의 발이 보였다.
산 건가?
그래도 살아남은 건가?
사내는 쿨럭거리면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바닥을 짚은 자신의 팔을 보는 순간, 사내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졌다.
팔은 뼈밖에 남아 있지 않은 사시나무와도 같았고, 마치 썩은 나무가 물에 젖은 듯이 시커멓고 볼품없는 상태였다.
사내는 충격에 빠져, 그대로 눈을 뒤집으며 의식을 잃고 철퍽 쓰러졌다.
그런 사내를 지켜보고 있던, 몇몇 베아트리체 상인들이 그를 들고 바닷물 밖으로 던져 버렸다.
첨벙!
소리가 내며 그가 물속으로 꼬르르! 소리를 내며 잠겼다.
그를 던진 상인들은 속이 시원하다는 듯, 그리고 징그럽다는 표정으로 손을 신경질적으로 탈탈 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