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28화>
달칵!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1초. 2초. 3초.
시간이 흐른다.
앞으로 전력 파악을 하기 위한 용으로 기억해 두기 위함이다.
-전방 좌측 45도 방향 2명입니다. 무장 상태이나, 등을 보이고 있어 쉽게 제압 가능해 보입니다.
서포터로서 새로운 능력 중 하나.
이호성은 전음(傳音) 능력을 가지게 됐다.
개인이 개인에게 타인이 들리지 않는 소리를 전달하는 능력.
물론 그 능력 하나 쓰는 데 엄청난 마력을 소모해야 한다.
사실 혼자 움직여도 상관없는데, 이호성이 뭐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깔짝대고 있으니 장단을 맞춰 주는 것 정도는 해 줄 수 있다.
최근 베아트리체에 오면서 이호성의 요리 실력이 날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었고, 그런 만큼 이호성의 가치가 올라갔다.
인정해 줘야겠지.
민성은 궁니르를 쥐고서 이호성이 알려 준 방향으로 유령처럼 움직였다.
민성의 움직임에는 소리가 없었다.
작은 바람 소리조차 나지 않았으니, 정녕 유령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정도였다.
* * *
이호성은 숨어서 민성의 움직임을 체크 중이었고 그런 민성의 움직임에 이호성은 혀를 내둘렀다.
민성은 여기가 베아트리체인지 지구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플레이어들을 개미 죽이듯이 간단하게 처리했다.
민성이 창 궁니르를 쓰면 플레이어들은 반응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축 늘어지면서, 생명력이 사라지는 모습은 같은 아군인 이호성이 보기에도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이니, 만약 적이라면 얼마나 끔찍할까?
-이번엔 인원이 좀 많습니다. 하지만 술을 즐기고 있어서 방심하고 있을 여지가 높아 보입니다. 일시에 제거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보를 전달하고 나자, 민성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해냈다.
일곱 명이나 되는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는데, 술을 먹고 있던 자들 뒤에서 창을 휘두르자 7명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안주와 술잔 위를 피가 잔뜩 뒤덮었다.
그리고 다음 정보를 기다리는 민성을 보면서 이호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대단하다.
무지막지하게 강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번 스테이지 역시, 가볍게 밟고 다음 스텝을 밟게 될 거라고 이호성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 * *
“46초, 47초, 48초…….”
민성은 들릴 듯 들리지 않는 소리로 시간을 재면서 급하지 않지만, 빠르게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리고 벽에 비스듬히 기대 주변을 살폈다.
이호성의 전음이 이어 들려왔다.
-헌터님 위치에서 2시 방향에 제물로 바쳐질 사람들이 갇혀 있습니다. 현재 집중되어 모여 있는 인원은…….
-인원 파악까지 할 필요는 없어. 내가 놈들을 쓸어 담는 사이,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출해라. 그들을 요새 밖으로 내보내고. 혹시나 더 남아 있을지 모를, 제물로 바쳐지려고 했던 사람들을 찾아라.
-알겠습니다!
민성은 제단 쪽을 응시했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그들은 제물을 바치는 것을 무슨 파티처럼 즐기고 있었다.
술을 퍼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었고, 신을 향해 경배했다.
지금까지 방심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암습으로 제거하면서 어느 정도의 힘이면 놈들을 죽일 수 있는지 계산을 이미 끝마친 상태였다.
궁니르의 창대를 쥔 민성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궁니르에서 새하얀 기류가 스멀스멀 피어올랐고, 민성의 두 눈은 신의 격노처럼 하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민성이 궁니르를 휘두를 때.
지금까지 난 적 없었던, 천둥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콰르르르르릉!
천둥소리에 제단 앞에서 축제를 벌이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으나.
그사이, 민성의 마기가 담긴 빛이 하늘을 보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일제히 베어 버렸다.
서걱!
잘려 나가는 소리는 하나였다.
하지만 쓰러지고,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것은 결코 하나가 아니었다.
축제였던 그 공간은 한순간에 비명이 점철되었으며, 아비규환의 현장은 지옥을 방불케 했다.
대부분의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에게 벌어진 일이 누구에 의한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주신의 분노를 산 것이라고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이들과 달리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채, 상처 하나 없었던 자들은 권좌에 앉아 있는 페우스와 그 주변을 지키고 있는 세 명의 사내뿐이었다.
민성은 시체와 팔다리가 잘려 나간 부상자들로 피범벅이 되어 있는 바닥을 저벅저벅 밟으며 페우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넓은 부근에 있었고, 민성은 그들에게 가던 걸음을 돌려 제단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페우스를 보며 목을 삐딱하게 꺾어 그를 응시했다.
“뭐 하냐? 안 일어나고.”
민성이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있는 페우스에게 말했다.
3명의 부하들이 즉각 반응하여 움직이려 하자 페우스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3명의 부하들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다시 제자리를 지켰다.
“새로운 최하위 랭커. 그게 너였군.”
페우스가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민성은 그저 지루하다는 시선으로 페우스를 지켜보았다.
“용기와 패기, 추진력. 뭐 여러 가지가 그대를 여기까지 이르게 만든 것이겠지.”
“…….”
페우스는 제단 아래로 수북이 쓰러져 있는 플레이어들을 보며 마치 안쓰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신을 위한 자리가 엉망이 되어 버렸군…….”
페우스의 얼굴에 분노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거칠게 표현되지 않았다.
페우스는 제단 위에 서 있는 민성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야. 베아트리체라는 곳은 그런 세상이니까.”
민성이 미간을 구겼다.
“헛소리 그만 늘어놓고 일어나라. 건방지게 앉아서 주절거리지 말고.”
페우스는 껄껄 웃었다.
“자네는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인가? 제단에 바쳐질 제물들을 위해서? 아니면 랭킹을 위해서?”
“밥.”
“……?”
뜻밖의 대답에 페우스는 영문 모를 눈길로 민성을 보았다.
“……밥이라니?”
페우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등받이에서 등을 떼면서 물었다.
“밥 먹으러 가는데 걸리적거리면 뻔하잖아. 치워야지. 쓰레기라면 더더욱.”
“식사를 위해서라…….”
페우스는 이내.
“하하하하하하하하!”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마력이 실린 웃음소리가 천지를 울릴 듯 울려 퍼졌다.
그리곤 시선을 돌려, 이호성이 모두 빼내어 텅 비어 버린, 제물들이 있는 철창 우리를 응시했다.
“제물로 바쳐져야 했을 베아트리체인들은 범죄자였다.”
페우스가 얼굴을 굳힌 채, 민성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식량을 훔치거나, 살인을 저지르거나와 같은.”
페우스는 민성의 변화 없는 눈빛을 보고 가볍게 미소 지었다.
“거짓말이 아니었어. 정말 저들을 구하려고 시작된 마음이 아니었어.”
민성은 페우스를 보며 비웃었다.
“죄를 저질렀다고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였다면, 그 범죄자의 식솔들을 죽인 것은 대체 무엇으로 변명할 생각이지?”
“방관자도 범죄자다.”
페우스의 눈이 번들거렸다.
민성은 헛웃음을 흘렸다.
“머릿속이 꽃밭이군.”
“냉정하고, 쓸쓸하고, 강인한 남자여. 그대의 오만이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 내가 친히 알려 줄 것이다.”
페우스가 턱짓했다.
그러자 페우스의 등 뒤에 서 있던 3명의 남자들이 병장기를 챙긴 채, 제단 위에 서 있는 민성에게 향했다.
민성은 3명의 플레이어와 대치했다.
“지금 자네가 마주한 그 3명 역시 만만치는 않을 테니 내가 직접 상대하지 않음에 서운하다 여기지 말게.”
민성은 세 명의 플레이어들을 체크했다.
한 명은 자신과 같은 무기인 창을 들고 있고, 한 명은 봉을 들었다.
마지막 한 명은 특이하게도 도끼를 들고 있었다.
“머릿속이 꽃밭인 건 내가 아니라 자네인 것 같군.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어. 이 세 명의 수준급 플레이어들이 왜 나를 보좌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페우스의 눈에 살기의 무거움이 내려앉았다.
“이 많은 플레이어들이 죽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묻겠네. 격이 다르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거야.”
세 명의 플레이어가 민성을 향해 각자 무기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
민성은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보면서 입을 열었다.
“자세를 잡는다는 것. 준비를 한다는 것부터가 잘못됐다.”
민성이 말했다.
세 플레이어는 물론, 페우스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격이 다르다는 건……. 이런 걸 보고 하는 말이다.”
민성이 아무런 자세를 잡지 않고 세 명의 플레이어들을 향해 걸어갔다.
세 플레이어가 각자의 무기를 들고 민성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땅이 뒤집어질 듯 흔들리고, 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느낌이 왔다.
확실히 그들의 공격력은 축제를 벌이고 있던 평범한 플레이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그 차원 위에도, 또 다른 차원은 존재하는 법이다.
주변의 웬만한 공간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찢어발길 수 있을 만한 힘이 민성에게 쏟아졌지만 그들의 공격은 민성에게 닿지 않았다.
마치 닿을 듯 닿지 않는 미지의 영역처럼.
“느리고 약해.”
민성이 세 명의 플레이어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말했다.
“난 타고났거든. 그런 데다 120년 동안 괴물들 사이에서 칼밥을 먹고 살았으니.”
콰르릉!
민성의 궁니르가 봉을 들고 있던 사내의 이마를 깨끗하게 꿰뚫었다.
민성은 찔렀던 창을 회수하면서 허리를 틀며 몸을 회전 시켰다.
마기가 실린 풍압이 아직 살아 있는 두 명의 플레이어에게 휘몰아쳤다.
퍼버버버버버벅!
살이 찢어지고 터져 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광경을 보고 의자에 앉아 있던 페우스가 벌떡 일어섰다.
세 명의 플레이어들은 거의 초죽음이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민성은 감정이 거의 없는 시선으로 쓰러져 있는 이들을 보며 짧게 한숨 쉬었다.
소모용 아이템을 구매했는데, 딱히 아직은 쓸 일이 없었다.
민성은 기대가 담긴 눈으로 페우스를 응시했다.
어차피, 강한 놈들은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 시작점이 언제인지가 문제일 뿐.
“제법……. 아니, 그 이상이구나.”
페우스가 순수하게 감탄한 눈으로 민성을 보며 걸음을 옮겨 제단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가 손을 휘저어 버리자, 제단 위에 쓰러져 있던 세 명의 플레이어가 후두둑! 소리를 내며 날아가 제단 밖으로 풀썩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페우스가 민성을 향해 빙긋 웃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페우스의 손 주변으로 마력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