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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227화 (227/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227화>

“……그렇긴 하죠.”

이호성이 씁쓸한 표정으로 동의했다. 그사이 커피가 테이블에 놓였다.

민성이 커피를 홀짝이는 가운데, 소년 알피가 창문 근처를 기웃거렸다.

이쪽을 살피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어지간히도 급하고 초조한 모양입니다.”

이호성이 알피의 편에서 거들었다.

“페우스가 있다는 곳까지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그는 개인 별장 같은 곳에서 지내고 있다고 하더군요. 경비가 꽤 삼엄하다고 합니다.”

민성은 커피를 마시면서 피식 웃었다.

“제물 얘기는 뭐야?”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쉬쉬하는 분위기예요.”

민성은 콧김을 길게 뿜다가 창밖의 알피와 눈이 마주쳤다.

민성은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맥주 먹듯이 들이켠 다음 잔을 내려놓았다.

“가자.”

민성이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예.”

여느 때와 같이, 마실 나가는 듯한 민성의 표정과 달리 이호성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짙게 굳어 있었다.

* * *

이호성은 말 두 필을 빌렸다.

꽤 거리가 멀었다면 오히려 직접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고, 그런 이유로 귀찮은 걸 질색하는 민성이 말을 타고 편하게 이동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달그락달그락!

민성과 이호성이 각기 탄 말이 빠르게 내달렸다.

바가지는 민성의 주머니 안에 있었고, 쏠은 이호성의 뒤에 타서 허리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렇게 약 15분 정도를 달리자,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곳인 듯합니다.”

이호성이 말했다.

민성은 높은 지대에서 멈춰 서서 페우스가 머무르고 있다는 곳을 내려다보았다.

지대가 높아서, 페우스가 거주 중인 구조 자체는 꽤 잘 보였다.

회색빛이 진한 건물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는데, 마치 바다를 등지고 있는 요새처럼 만들어져 있는 듯했다.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른다면 해가 저물고 금세 컴컴해질 것 같았다.

민성이 말의 옆구리를 살짝 차자 멈춰 있던 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노을이 져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해는 금방 떨어졌고, 밤이 찾아오자 ‘페우스’의 요새에서는 북을 울리고 제물을 받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거대한 제단이 있었고, 그 근처에 페우스가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병장기를 찬 수많은 사람들이 제물을 받치기 전에 춤을 추고 뿔피리를 불거나 여러 가지 연주를 하는 모습들은 종교적인 느낌이 아주 강해 보였다.

이호성은 서포터의 능력을 각성하게 되면서 기척을 죽이고 은밀한 잠입 능력에 중점을 두었다.

그 덕에 현재 그는 몰래 페우스의 요새 안의 현장을 똑똑히 두 눈에 담고 있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기척을 지우면 쉽사리 그 기척을 감지하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하지만 결코 만만한 상대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호성은 혹여나 발각될 가능성을 염두하고 신중히 움직였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잠입 활동을 이은 끝에, 철창 안에 갇힌 채, 이호성은 산 제물로 바쳐지게 될 사람들까지만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빠져 나오기 위해 움직였다.

잠시 후, 아주 좁은 틈을 통해, 연기처럼 변해 바깥으로 빠져나온 이호성이 본래의 신체로 되돌아오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내 가까운 곳에서 민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민성을 발견하자마자 이호성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약 5명의 사내들이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이호성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현재 이호성이 바깥으로 나와서 민성을 만난 위치는 요새의 정문 쪽이 아니라 경비대의 시야에 보이지 않는 쪽이었다.

일종의 CCTV 앵글 각도를 피하고 있는 셈이었다.

민성은 그냥 들어가자고 했었다.

그러나 이호성은 서포터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다며 안쪽의 병력 수와 현재의 상태, 그리고 분위기를 읽는 것이 훨씬 안정적일 거라고 설득했고, 민성은 수락했다.

“어때?”

민성이 턱짓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담배 한 대 피워도 될까요? 지금이 아니면 필 시간이 없거나, 앞으로 영영 없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헌터님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제 자신을 못 믿는 겁니다.”

민성은 손을 슬쩍 들어 보임으로써 수락을 했다.

이호성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 다음 초조하게 담배를 피워 댔다.

“스읍, 후우-!”

여느 때보다 빠르고, 강하게 담배를 피웠다.

민성은 눈살을 반쯤 찌푸리며 그런 이호성을 지켜보았다.

이호성은 담배를 던져서 발로 비벼 끈 다음, 땀으로 젖은 앞머리를 위로 훅 쓸어 올렸다.

“수가 제법 많아요. 족히 한 이백은 되어 보입니다.”

민성은 흘깃 요새의 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200?”

민성이 확인 차 되물었고, 이호성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실 겁니까?”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수가 훨씬 많으니까……. 아닙니다.”

이호성은 이내 의미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들어가실 헌터님이 아니죠.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긴 베아트리체입니다. 지구나, 마인들과는 달리 정보가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때문에 전력 파악이 안 된 상황에서, 섣불리 전면전으로 갔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네가 추천하는 전략은?”

“함께 잠입해서, 제가 먼저 서포터의 능력으로, 인원과 위치를 말씀드리면 헌터님이 하나씩 제거하는 방향으로 숫자를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헌터님, 정보가 빈약합니다. 아무리 지금까지 쉽게 왔다고 해도, 앞으로도 쉬운 길이 계속 펼쳐지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여긴 베아트리체고, 온갖 우주 군상들이 다 모여 있는 곳 아니겠습니까? 조심을 기해서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 그럼. 바로 시작하지. 출발해.”

이호성이 벽을 한 번 돌아보았다.

“저는 연기처럼 변해서, 벽을 넘어갈 수 있는데. 헌터님은 방법이 있으십니까?”

“물론. 먼저 들어가.”

“……알겠습니다.”

이호성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린 후, 순식간에 팟! 하고 연기처럼 변했다.

그리고 이내 그 연기는 아주 미세한 틈 사이로 들어갔다.

그리고 벽 너머에서 벽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민성은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퍼어억!

벽이 그대로 우루루! 무너져 내렸다.

마법 장치가 없는, 그저 두껍기만 한 벽이었기 때문에 주먹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쉽게 구멍을 낼 수 있었다.

민성은 쏠을 데리고 함께 자신이 만든 구멍을 통과했다.

그리고 이호성은 황당하다는 듯이 민성을 응시했다.

“이럴 거면 뭐 하러 저보고 먼저 들어가라고 하셨어요. 그냥 뚫으면 될 걸. 그리고 분명 이 소리를 듣고 플레이어들이 몰려올 겁니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지금은 제물을 받치기 위해 시끄러운 마당이고, 이 작은 소리에 반응하는 경비는 몇 명 되지 않을 거야.”

때마침 기척이 느껴졌다.

“온다.”

민성이 말했고, 이호성은 이번에도 순식간에 퍽! 하고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민성은 여유 있게, 소리 나지 않게 걸어 나무 뒤로 숨었다.

페우스가 주인으로 앉아 있는 요새에서 거느리고 있는 플레이어가 200이라…….

꽤 많긴 많네.

민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뚫린 벽을 체크하러 온 2명의 경비 플레이어의 뒷모습을 나무 뒤에 숨은 채로 볼 수 있었다.

민성은 템창에서 궁니르를 천둥소리가 나지 않게 뽑은 다음, 그들에게 귀신처럼 고요하게 다가갔다.

그리고 뚫린 벽을 보고 그들이 다급히 대화를 나누며 뒤를 돌아서려고 할 때, 민성의 궁니르가 그들을 공격했다.

궁니르가 경비 한 명의 얼굴을 관통했고, 뒤이어 민성의 왼손이 남은 경비병의 목을 틀어잡았다.

“컥! 크윽!”

민성의 손에 목이 붙들린 플레이어는 제대로 된 힘을 쓰지 못했다.

마치 드라큘라를 만난 듯 생기가 빨리면서 미라처럼 변했다.

민성은 미라 같은 꼴을 한 시체를 바닥에 내던지고, 자신의 무기인 궁니르도 챙긴 후, 몸을 돌렸다.

그 곳에 이호성이 서 있었다.

“지금 바로 탐색 시작할까요?”

이호성이 물었고.

“기다려.”

민성은 창에 묻은 핏기를 털어 내면서 ‘상점창’을 오픈 했다.

200명의 플레이어 수하를 이끄는 랭커라면, 꽤나 명성을 빨리 올릴 수 있겠군.

민성은 보유 중인 +12,000의 업적 포인트로 소모성 아이템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소모성 아이템을 모두 구입하고 나자 +4,000포인트밖에 남지 않았지만, 별로 아쉽거나 아깝지는 않았다.

민성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이번 임무를 빨리 끝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때-

띠링!

알림 소리와 함께 퀘스트가 나타났다.

[‘페우스는 자신의 주관 아래 제물을 바치는 악의 행태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악명이 높은 플레이어인 만큼, 페우스를 제거할 경우 높은 명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물로 바쳐질 베아트리체인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으니 신속하게 해결해야만 합니다.]

[페우스를 처치할 경우, 높은 명성뿐만이 아니라 큰 보상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시점을 기준으로, 플레이어 ‘강민성’에게 랭커 도전 자격을 획득하였습니다.]

[성공 조건 A : 페우스 처치]

[성공 조건 B : 제물로 삼고 있는 베아트리체인의 구출]

[성공 조건 C : 구출하는 인원이 많을수록 높은 명성과, 높은 성공 보상을 받게 됩니다.]

[이 퀘스트는 거절할 수 없는 퀘스트입니다.]

민성의 눈앞에 보이는 메시지는 방금 전의 그것이 전부였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긴 했지만 구출하는 인원이 많을수록 높은 명성과, 높은 성공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은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구역질 나는 세상에서부터 빨리 벗어나, 평온한 일상을 즐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일단은 ‘퀘스트’라는 놈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는 수밖에.

민성은 짜증이 배어든 얼굴로 이호성에게 전방을 체크할 것을 지시하며 전음을 날렸다.

- 서둘러라. 시간 오래 끌지 않는다.

전음을 전해 들은 이호성은 민성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다음, 다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이호성이 서포터로서, 민성의 눈이 되어 주기 위해 먼저 움직이고 있는 사이 민성은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며 시간을 체크했다.

잔챙이들을 처리하고 놈들의 우두머리이자 하이크만 항구 도시의 지배자이며 랭커 플레이어인 ‘페우스’를 처치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아니, 몇 분으로 끊을까?

민성은 고민 끝에 10분으로 결정하고서 손목시계의 타임 워치 기능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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