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26화>
“좋은 생각이다.”
민성이 긍정했다.
“즐거운 식사되시길 바랍니다.”
이호성이 꾸벅 인사를 한 후, 자신도 밥을 먹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식사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잡채밥은 전복까지 들어 있는 데다, 잡채 자체가 파괴력이 있기 때문에 풍부한 포만감이 빠르게 뱃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하지만 민성은 허겁지겁 먹지 않고 속도를 조절했다.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맛을 느꼈다.
이호성의 말대로 청양 고추가 있어 그 매콤함은 가볍게 잡채밥의 느끼함을 제압한다.
그리고 달달한 소스는 분명 장웅 셰프의 비결이겠지만 놀라우리만큼 그 맛의 구현을 잘했다.
이 정도면 거의 수제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정식으로 수업을 하기 시작하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꽤 놀랄 정도로, 현재 이호성의 요리에 대한 잠재 능력이 대단했다.
“헌터가 아니라 요리사를 했어야 했군.”
“슬퍼지니까 그만해 주세요.”
“그러지.”
민성은 다시 먹는 데 집중했다.
먹으면서도 새삼 맛있다는 생각이 연이어 드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
이호성의 요리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듯했다.
이호성은 똑똑하고 눈치가 빠르다. 그런데 요리까지 잘한다라. 비서로 쓰기에 이만한 인재를 찾기란 쉽지 않다.
민성은 맛있는 잡채밥을 먹으면서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성.”
“네?”
이제 막 잡채밥을 떠먹으려던 이호성이 숟가락을 놓고 정갈한 자세로 민성을 보며 말을 기다렸다.
“만약 인질로 잡히게 되면 상대를 쓸데없이 자극하지마라.”
“……예?”
“내가 알아서 구해 준다는 뜻이다.”
이호성은 멍한 표정으로 민성을 보았다.
민성은 그의 시선을 느끼곤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할 필요 없다. 내게 네가 그 정도의 가치는 생겼다는 뜻이니까.”
“정말이십니까?”
“그래.”
이호성은 경이롭다는 듯이 민성을 보았다.
“놀랍네요.”
“뭐가?”
“그럼 만약 오늘 이전까지는 제가 인질로 잡혔다면 구해 줄 생각이 없으셨다는 뜻이잖아요.”
“당연하지.”
이호성은 가재미눈으로 민성을 보며 이마가 식은땀으로 젖었다.
“그게 당연하지가 되는 겁니까?”
“문제 있나?”
“문제는 없죠. 다만 놀라울 뿐 인거죠. 뭐 어쨌든 엄청 다행이네요. 인질로 잡히면 살려 주신다니.”
“하지만 네가 인질로 잡히면, 네게 실망하게 되겠지. 나를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만든 거니까.”
“뭘 어쩌라는 겁니까?”
이호성이 장난 섞인 짜증을 냈다.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까. 앞으로도 잘하라는 얘기다. 밥 먹는다. 입 다물어.”
민성이 다시 식사를 이어 갔다.
이호성은 그런 민성을 보며 피식 웃었다.
“노파심은 접어 두십시오. 제 뛰어난 능력으로, 헌터님을 오늘처럼 놀라게 만들어 드릴 테니.”
“입 다물라고 했다.”
민성이 잡채밥을 한 수저 뜬 채로 말했다.
이호성은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하십시오.”
바가지가 테이블 밑에서 칵칵 웃었다.
* * *
어린 소년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필사적으로 뛰었다.
이제 갓 8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소년이었다.
곧 혼절할 것같이, 지쳐 있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해 맨발로 달렸다.
그리고 이내 애초 목표로 했던 집을 찾은 듯 소년은 속도를 늦추고 빨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년은 헉헉거리는 호흡을 뱉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식당에서 그릇을 닦고 있던 한 젊은 여자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서 있는 소년을 보고 헛바람을 삼키며 그만 들고 있던 그릇을 손에서 놓쳤다.
그릇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쨍그랑 소리가 났다.
“…….”
정적 속에서 여자는 고요하게 피투성이의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다 뒤늦게 여자는 소년이 누구인지 알아챘다.
“알피?”
여자가 묻자,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겹게 침을 삼키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고르고 패밀리를 없앴다는 용사님들 여기 있다고 들었어요. 맞나요?”
알피라 불린 소년이 여자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여자는 물수건으로 알피의 얼굴을 닦아 주며 걱정스런 눈길을 보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여자가 물었다.
알피는 울먹이는 눈으로 여자를 올려다보며 다급함을 드러냈다.
“그분들을 어서 만나야 해요. 어디 있죠?”
알피가 초조해하며 물었다.
여자는 짧게 한숨 쉬며 알피를 보다가, 아이의 손에 새로운 물수건을 하나 쥐어 주었다.
“피라도 좀 닦으면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말씀을 드려 볼 테니까.”
여자는 알피의 작은 어깨를 토닥여 준 후, 계단을 삐걱삐걱 밟으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 * *
식사를 마치고, 떠나기 전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질 때였다.
노크 소리가 울렸고, 민성이 문을 열자 문 너머에는 주근깨가 가득한 여종업원이 초조함과 두려움이 배어든 상태로 서 있었다.
“뭡니까?”
여종업원이 손가락 끝은 만지며 우물쭈물거릴 때, 누군가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소리가 났다.
마른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8살짜리 꼬마 아이 알피였다.
“용사님……. 용사님!”
꼬마 소년이 민성의 발아래에서 넙죽 엎드려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민성은 거슬린다는 시선으로 꼬마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부탁드립니다. 저희 어머니를 구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제발요!”
소년 알피가 이마를 바닥에 박은 채로 애원했다.
알피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뒤늦게 이호성이 여종업원과 알피 그리고 민성이 있는 자리로 올라왔다.
“무슨 일이에요?”
이호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민성은 짧게 한숨 쉬며 턱짓으로 알피를 가리켰다.
“이야기 좀 들어 봐.”
민성은 그렇게 말하고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이호성은 전신이 마른 피로 가득한 소년 알피에게 다가가 무릎을 굽혀 앉아 시선을 맞춰 주었다.
“이름이 뭐지?”
이호성이 물었다.
“알피, 알피예요.”
알피가 불안의 후유증으로 흔들리는 동공으로 이호성을 보며 말했다.
“형이랑 따뜻한 차 한잔하자.”
이호성은 엎드려 있는 알피를 일으켜 세워 준 뒤, 여종업원과 함께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이호성은 적당한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알피와 마주 보고 앉았다.
여종업원에게는 차 한 잔을 내어 달라고 부탁을 해 놓은 상태였다.
의자에 앉아 있는 알피는 이곳저곳을 보면서 정처 없는 눈길을 허공에 쏘아 대고 있었다.
초조함의 증거였다.
“천천히 말해 보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이호성이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피의 작은 눈에 눈물이 맺혀 들었다.
“페우스의 일당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누나를 데려갔어요!”
알피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호성은 미간을 구기고 알피를 응시했다.
“페우스가 누군데?”
알피가 자신이 알고 있는 한에서 설명을 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이곳 하이크만 항구 도시의 지배자인 듯했다.
“혹시…… 왜 데려갔는지는 알아?”
이호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물, 제물로 바친다고 했어요.”
이호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제물?”
“네. 제물을 바치기 위해서 데려갔어요.”
몇 가지를 더 물어봤지만 알피가 알고 있는 건 그 정도까지가 전부인 듯했다.
이호성은 여종업원이 가져다준 차 한 잔을 알피의 앞에 놓아 준 후, 곧바로 일어서서 민성을 찾아 나섰다.
민성은 어느새 근처 거리의 한쪽 노점상에서 뭔가를 먹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자 민성이 먹고 있는 것은 과일이었다.
“헌터님.”
이호성이 민성의 옆에 서서 그를 불렀다.
“맛있어, 이거. 완전히 새로운 맛이군.”
민성이 과일을 심각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호성은 고민했다.
민성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되는 건지 말아야 되는 건지.
그는 철저히 목적과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남자였으니까.
“얘기해 봐.”
민성이 빨간 과일을 씹으면서, 태양이 뜨거운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며 말했다.
“페우스라는 인물이 제물을 바치기 위해, 아이의 아비를 죽이고, 아이의 어미와 누나를 데려갔다고 합니다. 아마도 아이의 아비는 가족을 지키는 과정에서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호성은 딱 보고해야 할 만큼만 했다.
거기에 개인적인 견해 같은 건 붙이지 않았다.
늘 결정은 민성이 내리는 일이었으며, 그는 감정으로 호소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때문에 이호성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민성의 말을 기다렸다.
“페우스가 누구야?”
민성이 과일을 한 번 더 으적! 씹고 이호성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는 길에 자세히 물어봤습니다. 하이크만 항구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인물 같았습니다. 랭커라고 하더군요.”
민성은 다 먹고 남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하나 더 집은 다음 옷에 대충 닦았다.
“계산해.”
민성이 먼저 걸어가면서 과일을 아작 씹었다.
“어디로 가실 예정이십니까?”
“페우스에게 간다.”
이호성은 반색하는 얼굴로 민성을 보다가 얼른 노점상 주인에게 계산을 치르고 뒤쫓았다.
“숙소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페우스의 거처에 대해 알아온 뒤 보고드리겠습니다.”
민성은 과일을 우물우물 씹으며,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 * *
과일을 먹고 나자 손이 조금 진득진득해졌다.
손을 씻고 나서 숙소 안으로 들어가자, 식당 입구 근처에서 여전히 몸에 묻은 피도 제대로 닦지 못한 소년 알피가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었다.
민성은 그런 알피를 물끄러미 보았다.
“……도와주시는 건가요?”
알피는 절박한 눈빛으로 민성을 보며 물었다.
“글쎄 딱히 도와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할지도.”
민성은 걸음을 옮겨 창가로 가서 앉아, 커피 한 잔을 시켰다.
소년이 종종 걸음으로 따라와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해 왔다.
“그만 사라져.”
민성이 서늘한 눈으로 소년을 보며 말했다.
소년은 침을 꿀꺽 삼키며, 믿겠다는 눈빛을 마지막으로 도장처럼 찍은 뒤, 숙소를 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호성이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페우스의 위치. 알아냈습니다.”
이호성이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커피 한 잔만 하고 바로 출발하지.”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서 있지 말고 앉아.”
이호성은 꾸벅 목례를 하고, 의자 하나를 당겨와 앉았다.
“휴. 그나저나 이놈의 베아트리체라는 세상은 정말 난장판이네요.”
“…….”
“아마 페우스라는 랭커 플레이어가 죽는다고 해도 악순환은 계속되겠죠. 저희는 내대륙으로 들어갈 거고. 그럼 새로운 쓰레기들이 여기 하이크만 항구 도시를 장악할 테니까요.”
“그런 건, 어디든 마찬가지다.”
민성이 공허한 눈으로 창밖을 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