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24화>
최하위 랭커로 등록되자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했던 리액션이 나타났다.
하이크만 도시의 경비병들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민성의 일행이 도시 안으로 입성한 후, 경비병 두 명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랭커들은 대부분 성격이 포악한 것이 보통이었다.
힘이 있으면 쓰고 싶은 것이 본능인 만큼 그들은 우월주의에 젖어 있었으며, 늘 경쟁하며 살아가야 했었기 때문에 예민했다.
그 예민함은 늘 폭력성으로 나타나고는 했다.
조금만 불쾌해도, 예컨대 날씨가 별로라는 등과 같은 이유로 경비병을 죽이거나 베아트리체인, 혹은 플레이어들을 죽였다.
적어도 베아트리체 세계에서, 개인이 가진 힘은 곧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보통 각 랭커가 한 지역을 맡고 있는 실정이었기 때문에 랭커가 곧 왕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지역의 랭커가 이곳 하이크만 항구 도시로 왔으니, 조만간 큰 싸움이 나겠어.”
“하지만 페우스 님은 산속에 있지 않으신가?”
“그렇긴 하지만, 돌아오게 된다면.”
두 경비병은 굵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바로 그 순간, 멀리서 말을 타고 오고 있는 무리가 보였다.
“페, 페우스 님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금껏 대화를 나누던 주제의 주인공인 페우스가 나타났다.
경비병이 깜짝 놀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경비병의 옆에 있던 동료 역시 극심하게 긴장하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확실해?”
“그래! 보면 몰라?”
“긴장하자.”
“응.”
랭커가 하이크만 항구 도시에 입성을 했으니, 이제 곧 둘이 격돌할 테고 그건 곧 피바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두 명의 경비병은 얼굴이 하얗게 될 정도로 긴장했다.
이내 그들의 앞에서 페우스가 고삐를 당겼다.
“히이잉!”
말이 울음소리를 내며 앞발을 들면서 멈춰 섰다.
“페우스 님을 뵙습니다!”
두 경비병이 동시에 경례를 올려붙였다.
“플레이어 하나가 들어갔을 텐데?”
페우스가 특유의 그늘진 시선으로 경비병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처음 보는 랭커 플레이어였습니다.”
“들어간 지 얼마나 됐나?”
“그들이 들어가고, 거의 얼마 되지 않아서 페우스 님이 보였습니다. 아마 몇 분도 흐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군. 알았다.”
두 경비병은 이미 길을 터 준 후였고, 페우스의 일행은 타닥타닥 말발굽 소리를 내면서 느긋하게 경비병 사이를 통과했다.
경비병들은 페우스가 사라질 때까지 경례를 올려붙인 채로 숨을 참았다.
* * *
“분위기가 영 딴판인데요?”
이호성이 도시의 풍경을 보면서 말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로이스 마을이나, 오든의 성 주변과는 달리 하이크만 항구에는 그래도 사람이 최소한의 여유를 갖고 살아갈 수 있을 만한 환경은 되어 보였다.
음식과 술을 사 먹는 사람들이 있었고, 음식이나 물건을 사고파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열에 아홉은 여자네요.”
이호성이 헛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윗대가리들은 하나같이 여자에 미친놈들인가.”
이호성은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민성을 보고 민성의 시선을 따라갔다.
민성이 보고 있는 것은 꽤 분위기 있어 보이는 술집이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더운 바람이 분다.
그래서인지 이호성이 보기에 민성이 보고 있는 것은, 아마 술집 안에서 사람들이 먹고 있는 맥주인 듯했다.
“들어갈까요?”
이호성이 민성을 향해 물었다.
“거의 쉬지 않고 이틀을 달려서 여기까지 왔다. 잠깐 저 그늘에서 쉬었다가 가자.”
민성이 그렇게 말하며 먼저 술집 가게를 향해 걸어갔다.
이호성은 주변을 한 차례 훑어본 후, 민성을 뒤따랐다.
가게 내부와 외부는 모두 나무로 되어 있었는데, 다른 건물들도 마찬가지였다.
고급스럽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오랜만에 사람이 사는 것 같은 환경을 본 것 같아 이런 공간이 상당히 쾌적하게 느껴졌다.
민성은 바에 앉았고, 이호성은 민성의 옆에 앉았다.
바가지는 민성의 주머니 속이었고, 쏠은 민성이 앉은 의자 밑에서 바 벽에 기대 꾸벅꾸벅 졸았다.
종업원 여성이 민성의 일행이 처음 보는 플레이어라는 것을 알고 조금 긴장한 채로 메뉴판을 예의 있게 가져다주었다.
민성은 자연스럽게 그 메뉴판을 이호성에게 슥 밀어서 넘겼다.
이호성은 빠르게 메뉴판을 확인했다.
“안주는 간단한 거면 된다. 일단은.”
민성이 그렇게 말했다.
제대로 된 식사는 숙박을 잡고 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호성은 그것을 파악하고 신중하게 메뉴를 살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성은 종업원을 불러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맥주가 뭐냐고 물었고 대답을 들었다.
“쏠의 황금 주머니 안에도 캔 맥주랑 병맥주가 있긴 한데, 여기만의 맥주를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떠십니까?”
민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안주는 말씀하신 대로 식전에 먹기 좋을 정도인 걸로 주문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이호성이 손을 들었고, 종업원이 다가왔다.
주문을 하고, 종업원이 물러갔다.
바에 앉아서 살짝 뒤를 돌면, 벽이 없고, 활짝 개방되어 있어서 거리가 훤하게 보였다.
민성은 소리 없이 거리의 풍경을 구경했다.
그사이 종업원이 맥주를 먼저 가져다주었다.
“헌터님, 맥주 나왔습니다.”
민성은 몸을 돌려 맥주를 내려다보았다.
기포가 뽈뽈 올라오는 맥주가 보였다.
잔은 유리잔이 아니라 이 역시 나무로 되어 있는 잔이었다.
이호성이 공손하게 건배를 청해 왔다.
민성은 맥주가 들어 있는 잔을 들어 건배를 탁! 소리 나게 하고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꿀꺽-!
두 모금을 마신 뒤 민성은 맥주를 내려다보며 “흠…….” 하고 아주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바가지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바가지가 잠이 덜 깬 듯 휘청거리며 주머니 안에서 꾸물꾸물 나왔다.
“부르셨나요, 주인님. 하암-.”
바가지가 입을 크게 벌리며 하품했다.
“차갑게 좀 만들어 봐.”
민성이 맥주를 가리켰다.
바가지는 테이블 위로 올라가더니, 흑마법을 사용했다.
바가지는 흑마법으로 불과 물, 그리고 얼음을 다룰 수도 있었기 때문에, 맥주를 차갑게 만드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바가지의 뼈 손가락 끝으로 검은 기류가 흘러나오자, 나무잔 안에 들어 있던 맥주는 순식간에 냉기가 풀풀 날리는 맥주로 변모되어 있었다.
그 광경을 종업원과 손님들이 놀란 눈, 혹은 신기해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민성은 다시 맥주를 먹어 보았다.
차갑게 만들었더니 지구에서 먹었던 맥주의 맛보다는 못했지만 아까에 비해서는 확실히 훨씬 더 맛있어졌다.
민성이 바가지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자신의 임무를 마친 바가지는 칵칵 웃어 보이곤, 다시 민성의 주머니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바로 그때였다.
웬 놈팡이 같은 것들이 심기를 건드려 온 것은.
“후후! 재밌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구만. 방금 그건 뭐지? 맥주를 차갑게 만든 건가?”
태닝된 것처럼 보이는, 거뭇한 피부의 두 사내가 빙글빙글 웃으며 다가와 바에 앉아 있는 민성과 이호성에게로 다가와 섰다.
두 남자 모두 보디빌더와도 같은 근육질의 사내들이었는데, 둘 모두 상의를 벗고 있어서 그 근육이 아주 잘 드러났다.
이호성이 의자에서 내려와 그런 그들을 민성의 앞으로부터 막아섰다.
“뭐 하자는 겁니까, 지금?”
이호성이 날 선 목소리로, 그들을 뾰족하게 보며 물었다.
그러자 두 명의 사내들은 클클거리며 웃었다.
“방금 그 주머니 안으로 들어간 쬐그마한 녀석이 아주 재미있어 보여서 말이야.”
두 사내 중 앞니 두 개가 빠져 있어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남자가 여전히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이호성은 민성의 눈치를 살폈다가 다시 그들을 불쾌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조용히 물러가라.”
이호성이 말했다.
그러자 두 사내는 서로를 보며 커다랗게 웃었다.
“길드도 없이 나돌아 다니는 주제에 꽤나 패기가 좋은데? 하긴 그렇게 간이 배 밖으로 나왔으니 여기 하이크만 항구 도시로 기어 들어왔겠지만 말이야.”
머리가 꼬불꼬불한 라면처럼 생겼고, 머리숱이 많지 않아 보이는 두 번째 사내가 눈에 살기를 담은 채로 말했다.
민성이 의자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이호성은 손으로 눈가를 짚었다.
“야단 났군……. 저 멍청이들.”
이호성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 거렸다.
그러다 그들을 보며 이호성은 피식 웃었다.
“뭐 어차피 쓰레기들이니까 죽어도 상관없는 건가?”
두 명의 사내들은 이호성이 말한 뜻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상기된 표정으로 웃을 뿐이었다.
“길드도 없이 여기 하이크만 항구로 들어왔다는 건 그래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거겠지. 그게 실력이든 뭐든. 하지만 한 가지 모르는 게 있어.”
두 사내 중 한 사내가 뒤로 시선을 돌리자, 술집 안에 있던 거한의 사내들이 하나둘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초의 두 사내 등 뒤로 모여든 사내들의 숫자는 모두 9명이었다.
“크크큭. 어때? 비겁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천만에. 비겁한 게 아니라 너희들이 멍청한 것이며, 주제 파악을 못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오늘 신입들에게 산뜻한 신고식을 치러 주지.”
사내들이 변태처럼 웃어 댔다.
민성은 그런 그들을 무표정하게 보며 주방 쪽을 보았다.
안주가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음식을 먹기 전에 피를 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따라 나와.”
민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귀찮음이 만연한 얼굴로 느릿하게 밖으로 나섰다.
“크크큭! 저 자식 여유 부리는 거 봐라. 꼴사나워 죽겠군.”
구불구불한 라면 머리가 웃으면서 턱짓했다.
9명의 인원이 우르르 밖으로 나가자 그나마 평화로워 보였던 풍경이 삽시간에 얼어붙으면서, 베아트리체인들은 서둘러 근처에 있던 자리를 피했다.
민성은 양손을 허리춤에 얹은 채 그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덥고 강한 햇빛 아래, 사내들은 마치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처럼 뚜둑, 뚜둑 관절을 풀면서 걸어 나왔다.
민성이 보기에 아마도 그들은 자신이 최하위 랭커라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아니면, 랭커임을 알지만, 그들 9명이라면 충분히 제압이 가능하다는 것에 확신을 얻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뭐, 이렇든 저렇든 중요한 건 안주가 완성되기 전에 놈들을 처치해야겠다는 것뿐이었다.
놈들이 뭐라고 말을 하기 전에, 민성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시간 없다. 어서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