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22화>
[명성의 하락 수치가 높을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주신들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주신들이 ‘플레이어’가 어서 ‘오든’을 처치할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민성은 무시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빨간 소스와 버무러진 주꾸미를 하얀 쌀밥 위에 올려 작게 비빈 다음 그것을 입안으로 넣는다.
달콤한 소스의 맛이 느껴지고, 뒤이어 화끈한 매운맛이 입안을 감돌며 코끝으로 흘러나온다.
주꾸미는 탱탱하면서도 쫄깃하다.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식욕을 바짝 끌어 올린다.
민성은 그다음에 깻잎 한 장을 집고 주꾸미와 비벼진 밥을 싸서 입안으로 쏙 넣었다.
우물우물!
깻잎의 깔끔한 향과 맛과 더불어 매운 주꾸미의 맛이 입안에서 강렬하게 헤엄쳤다.
맛있어.
민성은 매운맛을 즐기며, 화끈하게 달아오른 상태로 식사에 집중했다.
[주신들이 랭커와의 대전을 앞두고 음식에 빠져 있는 플레이어를 보고 답답해합니다.]
[주신들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주신들이 어서 식사를 그만 하고 ‘오든’을 잡을 것을…….]
“더럽게 시끄럽네. 입 좀 다물어라, 이 도박 중독자들아. 밥맛 떨어지게……. 한 번만 더 밥 먹는데 떠들어 대면 너희들이 투자 업적 포인트를 그냥 던져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
민성이 으르렁거리며 말하자 시스템 메시지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이호성은 주신들에게 협박을 해 버린 민성을 보며 입을 쩍 벌렸지만, 민성은 다시 이성적인 차분한 상태로 돌아와 식사에 집중했다.
잠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이호성은 쏠의 황금 주머니에서 재료를 꺼내 탁탁 자른 다음 민성의 앞에 내어 주었다.
“매운맛이 조금 가실 겁니다.”
이호성이 민성의 앞에 내어 준 것은 채소나 과일에 각종 향신료를 첨가하여 만든 서양식 장아찌 ‘오이 피클’이었다.
이호성의 말대로 피클을 한입 깨물어 먹어 보자 매운맛이 가시는 게 느껴졌다.
새콤한 것이 참 개운한 맛이다.
“주꾸미를 준비하면서 조금 걱정되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침부터 조금 자극적인 음식은 아닐까 했는데, 헌터님은 소화 능력이 좋으실 것 같아서 만들어 봤습니다. 입에 맞으십니까?”
“훌륭해. 이번에도 놀랐다.”
이호성은 빙긋 미소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저도 그럼 이제 식사 좀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평화로운 아침 식사였다.
* * *
식사를 마치고 떠날 준비를 했다.
템창이 있는 만큼 짐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기 때문에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민성은 초대장에 나와 있는 코드를 통해 시스템 지도를 보며 빠르게 이동했다.
그렇게 얼마쯤 이동하자 사막이 나타났다.
그 사막을 건너면 최하위 랭커 ‘오든’이 있는 도시에 도착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꽤 거리가 있긴 했지만 이호성과 바가지의 속도를 맞춰 주어도,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지도를 보며 빠르게 이동한 결과, 일행은 이내 오든의 영지에 이르렀다.
오든의 지배 아래에 있는 영지 역시 로이스 마을과 다르지 않은 척박한 곳이었다.
묵묵히 이동하여 영지 안에 위치한 ‘케레니’ 성문 앞에 민성의 일행이 도착했다.
민성이 앞장서서 걸어갔다.
성문 입구에는 두 명의 경비병이 서 있었다.
경비병들은 모두 갑옷으로 중무장하고 있었는데, 투구와 갑옷은 마치 고슴도치처럼 뾰족한 모양이었다.
위압감을 조성하기에는 충분한 무장 차림이었지만, 그런 모습이 민성에게 영향을 끼칠 리는 만무했다.
채챙!
두 경비병이 들고 있던 창을 서로 X 자로 교차시켰다.
“신원을 밝혀라.”
신원을 밝히는 방법 중 하나는 시스템 인터페이스를 통해 정보를 넘기는 방법도 있었지만, 민성은 신원을 초대장으로 대신했다.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초대장 카드를 꺼내 경비병에게 던졌다.
경비병은 그 카드를 확인한 뒤, 민성의 일행을 한 번 더 눈으로 훑었다.
그러곤 두 명의 경비병은 “흐흐흐!”거리는 저급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주제 파악도 못하고 랭커님에게 도전을 하러 오다니. 겁을 상실해도 단단히 상실했구나. 네까짓 놈이 오든 님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으냐?”
오른쪽에 선 경비병의 말에 민성은 코웃음을 쳤다.
“입 닥치고 길이나 터.”
민성이 짤막하게 명령했다.
경비병은 당장이라고 공격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피식 웃었다.
“오든 님의 장난감을 내가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지. 네놈은 곧 처참한 시체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 것이다. 죽음의 길에 들어선 것을 환영해 주지.”
경비병들이 창을 치우며 길을 터 주었다.
민성은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성문을 통과했다.
이호성과 바가지 그리고 쏠도 민성을 따라 성문을 통과했다.
“성안은 으리으리하네요.”
이호성은 너무한다는 듯 말했다.
그의 말대로 성을 통과하고 보이는 풍경은 성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봤던 주민들의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건물들이 하나같이 번쩍거렸다.
성벽과 공터의 바닥에 깔린 흙들도 고왔다.
오든의 영지에 처음 왔을 때 마을은 마치 폐허와도 같았다.
여기저기가 부서지고 손상된 건물들이 줄지어 이어져 있었으며, 거리에는 부랑자로 보이는 이들이 도둑고양이처럼 배회하고 있었던 것과 있었다.
그와 달리 이곳은 마치 다른 세상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나 민성은 그런 대조적인 풍경에 대해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고 시스템 지도를 통해 오든이 위치한 곳으로 향해 이동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전투를 앞두고 긴장하는 건 이번에도 오직 이호성뿐이었다.
* * *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집사처럼 보이는 늙은 남자가 따라오라며 안내를 시작했다.
민성은 일행들과 함께 오든을 만나기 위해 그런 집사를 뒤따랐다.
“헌터님, 이렇게 순순히 만나 주는 게 조금 수상한데요. 함정 같은 것을 준비해 놓지 않았을까요? 제가 지금 스킬로 미리 파악 중이기는 한데…….”
“필요 없어.”
“네?”
“함정이 있으면 피하거나, 없애면 그만이다.”
이호성은 식은땀 한 줄기를 흘렸다.
“……알겠습니다.”
말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이호성은 내심 불안했다.
지금까지 간단하게 승리를 취해 왔다고는 하나, 랭커라면 분명 일반 플레이어들과는 그 수준이 다를 것이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불안감을 품은 가운데, 계단을 통해 꽤 높이 올라갔고, 복도를 걸은 끝에 늙은 남자가 커다란 나무로 된 문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는 똑똑 노크를 한 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끼익-!
문이 개방되었다.
민성은 문이 열리자마자 거침없이 걸음을 옮겨 열린 문 너머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이호성과 바가지, 쏠도 뒤따라 안으로 들어왔고 그와 동시에 문은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문 안쪽은 넓은 방이었다.
그리고 그 넓은 방에는 침대가 있었는데, 그 침대 위에는 약 7명의 미녀들이 나체의 몸으로, 한 근육질 사내의 주변으로 엉켜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근육질의 남자.
랭커 플레이어 ‘오든’이었다.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스스로 벗은 몸임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럽다는 듯 어깨에 힘을 주며 이쪽을 응시해 왔다.
“드디어 납셨구만. 우리의 도전자.”
오든이 굵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민성은 짧게 한숨 쉬며, 검지를 까닥였다.
“일어나라.”
민성이 말했다.
오든은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로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민성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나를 이기고 랭커가 되면, 이 영지. 그리고 이 영지 부근의 모든 것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권력의 끝에서 음식이든 여자든 마음껏 취하고, 편하게 노예를 부리며 살 수 있지. 어때? 유혹적인가?”
민성은 건조한 눈빛으로 오든을 보며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옷이나 입어라. 곧 죽겠지만.”
“지금까지 패배를 모르고 살아온 눈빛이군. 당당하고, 여유가 있고, 확신마저 있어. 하지만, 죽음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고…….”
오든은 침대에서 내려와 실크로 된 가운을 입고 끈으로 묶으며 말을 이었다.
“그게 자신이 될 거라고는 흔히들 예상하지 못하는 법이지.”
오든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너를 위한 함정이라든지, 잠복된 병력이라든지. 그런 건 없으니 안심해도 좋아. 널 상대하는 건 오직 나뿐이야.”
“말이 많아서 빨리 죽여야겠다.”
민성이 템창에서 궁니르를 뽑아 들었다.
콰르르릉!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전투가 벌어질 기미가 보였음에도,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나체의 여인들은 약에 취해 있는 것인지 두려움을 모르고 해롱거렸다.
“아름답지 않나?”
오든이 침대 위의 여인들을 보며 상기된 표정으로 웃었다.
그때, 민성이 달려가 맨손으로 오든의 가슴을 밀며 달렸다.
콰아아아앙!
벽을 뚫으며 민성과 오든이 공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오든이 바닥에 가볍게 착지하며 실크 가운에 묻은 가루를 털어 내고는 웃었다.
“야외를 좋아하나 보군.”
오든이 징그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면, 네 나약한 부하들이 혹여 다칠까 우려했던 건가?”
“좋을 대로 생각해라.”
민성이 서늘한 눈으로 오든을 보며 창을 고쳐 잡았다.
오든이 저열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템창에서 자신의 무기를 꺼냈다.
평범한 장검이었다.
그는 자신의 검을 혀로 핥으며, 서늘한 눈빛으로 민성을 직시했다.
“베아트리체에서 획득한 스킬은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그중에서도 내가 가진 스킬은 랭커가 될 수 있는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오든이 검의 손잡이를 꽉 쥐고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부분의 도전자 플레이어들은 한 번의 공격조차 제대로 막아 내지 못했지. 넌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오든은 자신이 절대 지지 않을 것이리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수많은 도전자 플레이어들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랭커 자리를 지켜 온 플레이어인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성이 보기에, 변하지 않는 최하위 랭커라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결론은, 그다지 세지 않다는 것.
민성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선공을 지켜보았다.
“오늘 네 머리통으로 새로운 트로피를 올려 주마.”
오든이 하늘을 향해 장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민성은 의아한 눈으로 시선을 위로 들었다.
오러의 힘이 담긴 빛이 마치 수백 개의 화살처럼 떨어져 내렸다.
민성은 소낙비와도 같은 그 수백 다발의 오러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순간 궁니르가 하늘을 향해 휘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