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20화>
[그런 놈이 도전 자격을 얻었을 리가 없다. 신원을 확실히 체크하고 놈이 아니라면, 약점으로 잡아라.]
답변을 확인한 그 즉시 ‘앵커’의 눈에 살기가 파고들었다.
그 모습에 이호성은 눈이 커지고, 몸은 오그라들었다.
“뭐, 뭐야? 왜들 그래요?”
이호성이 놀란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앵커와 세 명의 부하들이 템창을 열어 무기를 꺼내 들었다.
무시무시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아, 왜들 그러냐고 갑자기!”
이호성이 소리쳤다.
앵커가 한쪽 입꼬리를 위로 말아 올렸다.
“다 알고 있다. 네가 신규 플레이어로 로이스 마을에 들어와 난장을 쳤고. 그로 인해 도전자 자격을 얻었다는 것을.”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거 나 아니에요.”
앵커는 이호성을 쏘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아니라고?”
“그래. 나 아니라고. 사람 잘못 짚었어. 내가 안내해 줄게요. 당신들이 찾는 그 사람한테 말이에요.”
살짝 떠보자 그는 술술 불었다.
자신들의 주인인 ‘오든 ’님의 말이 맞았다.
단순한 하수인에 불과했어.
그저 잡일을 하는 일행 중 한 명에 불과한 놈.
그렇다면?
앵커는 생각했다.
지금 자신들과 맞추진 이호성을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해.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해서는 경험이 많은 만큼 빠르게 결정지어졌다.
가장 확실한 초대장은 바로 눈앞의 이놈이 될 것이다.
도전하는 쪽이 반드시 찾아와야만 하는 입장을 가진 만큼, 준비를 할 수 있는 이쪽이 훨씬 유리해진다.
주인에게 ‘이점’을 바칠 수 있다는 것으로 앵커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놈이 그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건 잘 알겠다. 하지만 네놈이 필요 없는 건 아니지.”
“그게 무슨 개소립니까? 아니, 그냥 제가 안내해 드린다니까요?”
앵커가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약점이 있는 게 훨씬 더 편하겠지.”
이호성이 앵커를 보면서 속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기 여보세요. 제가 약점이라는 게 될 수가 없어요.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데. 인질이 될 리가 없다고요.”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리고 혹시 알아? 네가 꽤 그럴듯한 무기가 될지 말이야. 크크큭.”
“환장하겠네, 진짜.”
이호성이 노래진 얼굴로 앞머리를 꽉 쓸어 올렸다.
* * *
이호성은 심장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만약 이대로 놈들에게 끌려간다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몰랐고, 강민성이 자신을 구출할 가능성 따위는 0퍼센트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때문에 위험도는 그야말로 최상이었다.
서포터로 전향한 데다가, 애초에 전향하지 않았더라도 여기서 놈들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배제해야 했다.
반드시 도망쳐서, 강민성 앞으로 도달해야만 한다.
“허튼수작 부릴 마음먹지 마라. 네놈 따위가 우리를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이호성은 부하를 대동하고 있는 앵커를 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제가 그런 생각을 왜 하겠습니까? 어? 헌터님?”
이호성이 앵커와 부하들 뒤쪽을 보며 말했다.
앵커와 부하들이 이호성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봤을 때 이호성은 그 즉각 그림자 이동술을 썼다.
이호성의 몸은 순식간에 사라지며 하나의 그림자가 되어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지면을 타고 벽을 타면서 이호성은 최선을 다해 달아나기 시작했고, 그사이 바가지는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다.
“이런……!”
앵커가 뒤늦게 놈들이 달아났음을 눈치채고 뒤쫓기 시작했다.
* * *
침대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민성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뭔가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점점 분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총 다섯.”
민성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자신의 감각에 걸린 숫자였다.
작정하고 은신하는 경우만 아니라면, 기감을 통해 놈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민성은 방에서 나왔다.
계단을 타고 1층 아래로 내려가 나무로 된 낡은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해가 지고 난 이후라, 저녁이 되어 사위는 컴컴했다.
민성은 자신의 감각이 알려 주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이호성이 그림자 이동술을 사용한 탓에 추격하는 데 조금 애를 먹긴 했지만, 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내 거리를 좁혀 내어, 시야에 이호성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그 순간, 앵커는 들고 있던 장검을 휘둘렀다.
쇄애애애애액-!
발출된 오러의 힘이 빠르게 날아가 그림자를 맞췄다.
이호성은 마치 격추된 비행기처럼 보였다.
그는 그림자 밖으로 튕겨져 나가며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앵커가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숨을 길게 뱉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감히 나를 속여 먹고 도망을 가? 응?”
앵커가 달려가며, 비틀거리며 일어나려는 이호성의 복부를 걷어찼다.
퍼엉!
커다란 소리가 나며 이호성이 허공을 훌쩍 날아 다시 한번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쿨럭! 컥!”
이호성은 피를 뿜으며 흐릿한 동공으로 다가오는 앵커를 보았다.
앵커가 자신의 무기인 장검을 들고서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인질로 잡을 땐 잡더라도, 네놈의 팔 한짝은 가져가야 속이 시원하겠다.”
앵커가 이호성의 머리맡에 서서 장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때-
콰르르릉!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앵커가 ‘음?’ 하고 뒤를 돌아보자.
자신의 부하 셋이 몸이 잘려 나간 채로 쓰러져 있었다.
“……?!”
앵커는 깜짝 놀란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대체 누구의 소행인지 알 수 없었다.
“누, 누구냐?! 누구야!”
앵커가 당황한 채로 소리쳤다.
자신의 부하들도 일정 수준에 다다른 실력자였다.
그런 부하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죽여 버리다니.
앵커는 침을 꼴깍 삼켰다.
한쪽 마음 안에서는, 부하들을 죽인 것이 누구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바로 자신이 초대장을 날려야 할 대상.
도전 자격을 가진 플레이어!
그놈이 틀림없었다.
길드에도 소속되지 않은 플레이어.
플레이어가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다.
앵커는 식은땀이 배어든 채로, 쓰러져 있는 이호성을 내려다보았다.
이호성은 입가에 피가 잔뜩 묻어나 있었는데, 그런 상태로 자신을 보며 피식 웃고 있었다.
앵커는 이호성을 보며 눈을 치켜뜨고 어금니를 바드득 소리 나게 깨물었다.
앵커는 이호성을 인질로 잡고, 놈을 끌어내기 위해, 이호성의 멱살을 잡으려 검을 잡지 않은 왼손을 뻗었다.
그 순간-
서걱-!
멱살을 잡기 위해 뻗었던 왼쪽 손목이 잘렸다.
잘려 나간 손 하나가 허공에서 팽글팽글 돌다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
앵커는 손이 없는 자신의 손목을 보다가 얼굴을 푸들푸들 떨었다.
고통을 참으며 주변을 훑었지만, 여전히 놈은 보이지 않았다.
앵커는 미칠 것만 같아 온몸에 벌겋게 된 채로, 허공에 칼을 휘저어 댔다.
“크아아아악!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어서 나와라. 모습을 드러내란 말이야!”
앵커는 발악하듯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앵커는 튀어나올 것 같은 눈으로 소리가 나는 곳을 쏘아 보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한 사내가 보였다.
그는 평범한 옷차림에, 한 손에는 창을 들고 있었다.
그가 바로, 최하위 랭커 오든이 찾는 플레이어인 듯했다.
“……너구나? 도전 자격을 갖춘 플레이어가.”
민성이 앵커를 보며 옅게 웃었다.
“도전 자격이라. 그럼 네가 최하위 랭커의 하수인이라는 얘기인가?”
앵커가 굳은 얼굴로 민성을 응시했다.
민성은 미소 지은 채로 천천히 걸어왔다.
“찾으려면 꽤 애를 먹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렸군.”
앵커는 피가 줄줄 흐르는 자신의 왼쪽 손목을 보다가 다시 민성을 보았다.
그는 굵은 침을 삼켰다.
왼쪽 손목이 잘렸다고는 하나, 전투 자체에는 그렇게까지 큰 영향은 없었다.
다만 문제는…… 어떻게 해도 놈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임무였다.
“나는 랭커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을 뿐이다.”
앵커가 말을 이었다.
“도전 자격을 얻었으니, 친히 초대해 주시겠다는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이다.”
앵커가 오른손으로 들고 있던 장검을 바닥에 푹 꽂고, 템창을 열어 거기서 카드 한 장을 꺼내 민성에게 던졌다.
직선으로 빠르게 총알처럼 날아간 카드를 민성이 가볍게 낚아챘다.
민성은 앵커가 초대장이라고 말한 그 카드를 확인했다.
카드 안에는 인터페이스 시스템 지도를 통해 찾아갈 수 있는 코드가 적혀 있었다.
그 것은 일종의 내비게이션 주소와도 같은 것이었다.
민성은 그 카드를 주머니 안에 넣은 뒤, 서늘한 눈으로 앵커를 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로 가면, 그 최하위 랭커를 만날 수 있는 건가?”
“최하위라는 말을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수많은 플레이들이 도전했지만, 그들은 모두 썩은 고깃덩이가 되어 버렸지. 네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앵커가 핏기가 오른 눈으로 민성을 쏘아보며 말했다.
민성은 그런 앵커를 보며 옅게 웃었다.
“과연 그 충성심이 얼마나 지극한지 내가 한번 확인해 보지.”
민성이 앵커에게 걸어갔다.
앵커는 굳은 얼굴로 땅에 꽂아 넣었던 장검을 뽑아 들었다.
초대장은 전달했다.
그는 자신을 죽일 생각인 듯했고, 앵커는 오늘 이 순간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이왕 죽을 거라면, ‘그분’을 위해 검을 들고 죽고 싶었다.
“으아아아아아!”
앵커는 기합이 담긴 외침을 터트리며 민성을 향해 달려갔다.
“……?!”
앵커는 순간 확장된 동공으로 민성을 보았다.
민성은 들고 있던 창을 템창 안에 던져 넣었다.
아무런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무방비 상태.
앵커는 뛰어들던 것을 급격하게 멈춰 섰다.
뿌연 흙먼지가 날렸다.
“뭐 하는 거냐? 왜 무기를 도로 넣는 거지?”
앵커가 물었다.
민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얘기했잖아. 네 충성심을 한번 확인해 볼 생각이라고.”
앵커는 장검을 쥔 채로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놈의 모욕에 의해 참을 수 없는 감정이 가슴에서 폭발하듯 터졌다.
“너처럼 오만한 놈은 절대, 그분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플레이어가 시체가 됐듯이 네놈 역시 그 꼴을…….”
타아아앙!
앵커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육안으로 반응하기도 전에 마기가 실린 민성의 손바닥이 앵커의 복부를 찍었기 때문이었다.
앵커의 몸이 쭈욱! 날아가며 폐가와도 같은 집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쿠우우우웅!
앵커의 몸이 벽을 뚫었고, 집은 그대로 우루루! 무너져 내렸다.
“안 죽었겠지?”
민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앵커가 날아간 방향, 무너진 집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