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18화>
“이호성, 이 아이 것도 한 그릇 내어 줘라.”
“예, 헌터님.”
이호성이 밝은 표정으로 아이가 먹을 수 있는 만큼 규동을 만들어 아이에게 주었다.
숟가락이 있었지만, 아이는 숟가락을 쓰지 않고 손으로 덮밥을 먹었다.
그리고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마, 맛있다…….”
아이가 그렇게 감탄하여 말하곤 다시 허겁지겁 규동을 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어. 체할라.”
이호성이 아이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사이 민성은 역시 한 숟가락 뜬 규동을 한입 먹어 보았다.
우물우물.
민성도 마치 아이처럼 규동을 먹으면서 이 신선하고도 새로운 맛에 깜짝 놀랐다.
한국식으로 호칭을 붙이면 쇠고기 덮밥이지만, 일본 가정식인 이 규동은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먹는 쇠고기 덮밥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결국 같은 쇠고기 덮밥이긴 하지만, 한국의 쇠고기 덮밥은 보통 당면이 들어가 있다.
간장을 베이스로 한 소스에 의해 포만감이 들고 강한 고기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한국식 덮밥의 특징이다.
반면에 규동은 완전히 다른 매력을 가진 음식이었다.
우선 쇠고기가 엄청나게 얇아서, 부드럽고 편하게 씹어 먹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규동이라는 덮밥 자체는 가쓰오부시와 양파. 그리고 맛술과 설탕을 쓰는 만큼 그 달콤함이 굉장했다.
달짝지근한 쇠고기 덮밥.
얼핏 떠올려 보면 별달리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막상 덮밥으로 먹어 보게 되니 굉장한 매력을 뿜어냈다.
달달하게 씹히는 덮밥의 맛은 오묘하면서도 다채롭고 또한 풍부했으며 쾌속으로 포만감을 전달해 주었다.
“맛있다.”
가장 심플한 극찬이 민성의 입 밖으로 흘러 나왔다.
이호성은 싱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민성이 감탄하며 다시 규동을 먹으려고 할 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슬쩍 고개를 들자 두 명의 플레이어로 보이는 남자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을 보는 이호성의 눈빛 역시 경계심으로 가득해졌고, 쏠은 민성의 등 뒤로 숨었으며, 바가지는 검은 안광을 빛냈다.
“아아……. 싸우려는 것 아니니까, 너무 경계들 말라고. 텃새 부리려고 온 거 아니니까.”
두 명의 플레이어 중 M자형 탈모가 조금 심한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민성은 듣지도 않고, 이미 두 번째 숟가락을 입에 넣은 후였다.
우물우물.
민성은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규동을 먹었으나.
쨍그랑-!
7살 여자아이가 들고 있던 규동 그릇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들을 보는 여자아이가 벌벌 떨면서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두 명의 플레이어는 그런 여자아이를 불쾌하다는 듯이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민성은 뒤늦게 여자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서, 차가운 눈으로 두 플레이어를 응시했다.
“어른들 얘기하는데 얼쩡거리지 말고 꺼져. 죽여 버리기 전에.”
탈모 남자가 그렇게 말하자 여자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둑고양이처럼 달아났다.
탈모 남자는 멀어지는 여자 아이를 보며 혀를 찬 뒤, 민성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것을 이호성이 가로막았다.
“식사 중입니다. 방해하지 마시죠.”
이호성이 말했다.
탈모 남자는 이호성을 노려보다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네가 전달을 해. 이곳 로이스 마을의 규칙에 대해서.”
“규칙? 그게 뭡니까?”
이호성이 되물었다.
탈모 남자는 규동을 먹고 있는 민성을 슬쩍 흘겨보며 입을 열었다.
“베아트리체는 플레이어들의 세상이다. 베아트리체인들에게 있어 우리는 절대적인 갑이라는 얘기지. 저것들은 그냥 가축 벌레, 뭐 이런 거야.”
탈모 사내가 길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람대우를 해 줄 필요가 없지. 우월한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고 볼 수 없으니까.”
반응 없이 식사를 계속 이어 가고 있는 민성을 보던 탈모 남자가 이호성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 우리가 베아트리체인들에게 무슨 짓을 하든 관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규칙이다.”
이호성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탈모 남자는 싸늘한 눈으로 이호성을 보며 말을 계속했다.
“만약 방해한다면, 여기 로이스 마을에 존재하는 모든 플레이어가 너희들의 적이 될 것이다. 보아하니 길드도 없이 온 것 같은데. 너무 스스로를 믿지 않는 게 좋아. 여기는 뉴티 도시와는 차원이 다른 곳이니까.”
이호성이 마른침을 삼키며 이를 꽉 깨물었다.
탈모 남자는 이호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준 후, 민성을 흘깃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럼 식사들 맛있게 하라고.”
몸을 돌리려던 탈모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민성을 돌아보았다.
“아, 하나 더.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탈모 사내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런 쓰레기들에게 음식 같은 걸 주지 마라. 너희 같은 것들이 자꾸 나타나니까 저것들이 스스로 인간인지 알고 저렇게 함부로 굴잖아.”
이호성이 이를 바득 갈며 그를 노려보았지만, 탈모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어린아이든 뭐든, 앞으로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들이 있으면 그 자리에 죽여 버려. 안 그럼 여기 플레이어들에게 미움을 받게 될 거다.”
탈모 사내는 큭큭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그냥 자유를 즐기고 놀아. 그게 바로 우리 플레이어들의 특권이니까.”
그는 동료와 함께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민성이 규동을 다 먹은 민성이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드르륵 의자를 밀고 테이블 앞에서 일어났다.
그 소리에 탈모 사내와 동료가 뒤를 돌아보았다.
민성이 다 먹은 규동 그릇을 사내들을 향해 집어 던졌다.
탈모 사내가 그 그릇을 주먹으로 쳐 냈다.
퍽!
규동 그릇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탈모 사내는 자신의 손에 규동 소스가 묻은 것을 보고 눈살을 확 찌푸렸다.
민성이 느슨한 눈으로 탈모 사내를 보며 미간을 구겼다.
“누가 가래?”
탈모 사내가 소스가 묻은 손을 털어 내며 얼굴을 굳혔다.
“와우. 패기가 넘치는 신입이네.”
탈모 사내가 킥킥 웃으며 휘파람을 세게 불었다.
그러자 하나둘, 플레이어들이 사방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여든 플레이어들의 숫자는 총 10명이었다.
그들의 눈빛은 스산했다.
언제라도 칼을 쓸 수 있을 것처럼 냉엄해 보였다.
급격히 얼어붙는 분위기였지만, 민성의 태도에는 당연히 변화가 없었다.
랭커들이 있는 세계.
거기의 시작점 로이스 마을에서 만난 양아치들.
이런 양아치들을 잡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준비하는 단계 따위는 밟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어쩌면 잘못된 판단이라고 할지라도.
적어도 민성은 현 시점에서 놈들에게 저런 양아치조차 눕히지 못한다면, 아이리스 나무를 잘라 내고 지구로 돌아갈 생각 따위는 애초에 접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준비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은 충돌해야 하며, 넘어서야만 한다.
그것이 자신이 살아온 방식이었으니까.
민성이 손을 허공에 가볍게 휘젓자 테이블과 의자가 저절로 날아가 이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벽에 쿵! 하고 틀어박혔다.
“신기한 재주를 가진 놈이네.”
탈모 사내가 피식 웃으며 템창을 열었다.
그를 필두로, 로이스 마을에서 자유를 즐기고 있는 10명의 플레이어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M자 탈모 사내가 먼저 앞으로 나서는 것이 신호탄이었다.
10명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민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민성도 템창을 열어 장비를 풀로 장착했다.
철컥! 철컥!
민성의 머리 위로 투구가 쓰이고, 온몸을 용 사냥꾼의 갑옷 세트가 휘어 감았다.
그리고 민성이 잡은 창 궁니르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번쩍거리는 방어구와 무기를 보고 10명의 플레이어들은 흠칫 놀랐지만, 공격을 위해 접근하는 속도를 늦추지는 않았다.
* * *
가장 먼저 공격이 들어온 건 탈모 사내였다.
그가 오른손에 쥔 검을 휘둘렀는데, 속도나 파워가 지금까지 봐 왔던 플레이어와는 확실히 그 격이 달랐다.
하지만 격이 다르다고 했지, 그들이 민성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었다.
민성은 그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문뜩 느낀 것은 하나였다.
주신이라는 존재들이 준 업적 포인트를 통해 성장한 힘이라는 것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힘이라는 것을.
애초에 눈앞의 이들과 자신은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다.
쿠그그그그-!
민성의 마기에 의해 땅이 진동하고 허공이 뒤틀리는 듯 했다.
민성은 적의 오러가 담긴 칼을 방패로 쳐 내고 상대의 심장에 궁니르를 찔러 넣었다.
단순하지만 가장 강한 찌르기 공격이었다.
플레이어 하나 즉사.
그리고 플레이어 한 명을 죽이게 됨으로써 드러난 민성의 빈틈을 향해 플레이어들이 공격을 쏟아부었다.
쏟아지는 공격은 그들에게 아무런 유효타도 되지 못했다.
민성의 몸은 마치 연기처럼 흐려져 그들의 공격을 피해냈다.
땅이 갈라지고, 주변의 집들이 모두 박살이 나면서 허물어졌지만, 민성은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았다.
그들이 민성을 찾았을 때는 이미 2명이 피를 뿜으며 쓰러지고 있었다.
속도의 차이는 확연했다.
마기를 바탕으로 하는 민성의 민첩함은 그들이 육안으로 구분하고, 감각으로 반응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퍼억!
궁니르가 플레이어 한 명의 머리를 터트렸다.
수박 깨지듯이 머리가 터져 나가고, 민성이 창을 휘두르자 그 마기의 힘에 의해 3명의 플레이어가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민성의 우월한 능력에 의해 플레이어들이 기가 죽어 다소 위축되기 시작했을 때, 민성의 공격은 훨씬 더 무서울 정도로 퍼부어졌다.
쓰러져 바닥에 버둥거리는 이들에게 민성의 궁니르는 자비 없이 3명의 플레이어들 살과 뼈를 헤집었다.
“아아아악!”
“크윽!”
“아아악……!”
죽어 가는 소리가 빗발쳤다.
마계에서 민성이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은 비명 소리였다.
익숙한 비명은 민성에게 조금도 타격이 되지 않았다.
민성은 냉정하게 공격을 이어 갔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10명이나 되는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민성이 유령 같은 눈으로 살아남아 있는 플레이어들을 보며 기민하게 움직였다.
피하기도 전에 민성은 이미 플레이어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쇄액!
퍽!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궁니르가 플레이어의 목을 꿰뚫었다.
민성의 공격은 그들에게 벌판에서 마치 피할 수 없는 바람을 마주한 것과 같았다.
이기어검술로 궁니르를 날리자 궁니르는 눈부신 속도로 그대로 플레이어의 이마를 꿰뚫었다.
민성이 걸음을 옮기며, 이기어검술로 날렸던 궁니르를 다시 손에 잡았을 때, 서 있는 플레이어는 고작 한 명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