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17화>
“같이 갈 수 없다니……. 어째서죠?”
엘프가 물었고.
“저희들이 귀찮아지신 건가요?”
묘인족이 글썽거리는 눈물 맺힌 눈으로 민성을 보며 물었다.
함께 갈 수 없다는 말에 그녀들은 떨고 있었지만, 그런 그녀들을 보는 민성의 시선은 변함이 없었다.
“설명을 들었다. 이 티켓으로 뉴티 도시를 떠나게 되면 너희들이 며칠도 못 버티고 죽을 수 있다는 얘기야.”
민성이 덤덤하게 말했지만, 민성이 말한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엘프와 묘인족의 동공은 두려움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었다.
고민하고 있는 걸 보고 민성은 쐐기를 박았다.
“솔직히 말해서, 전투 능력이 없는 너희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너희들은 내게 불편한 짐이다.”
묘인족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엘프는 텅 빈 눈으로 먼 곳을 보았다.
터전을 잃어버린 그녀들로서는 민성만이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그녀들에게 뉴티 도시는 그저 가혹한 환경에 지나지 않았다.
묘인족이 울고 있는 사이, 엘프는 민성의 앞으로 걸어와 가까이 섰다.
그녀의 눈에는 결심이 배여 있었다.
“은혜를 받은 당신에게 짐이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뿐. 너무 죄송하고…… 감사했어요.”
엘프가 물기가 배인 눈으로 진심을 담아 말했다.
묘인족도 엘프 옆으로 뛰어와 서서 눈물을 흠뻑 흘리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묘인족이 이호성에게 배운 대로, 머리를 훅 숙였다.
민성은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는 묘인족과 엘프를 번갈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덕분에 길을 쉽게 찾을 수 있었어. 나도 고마웠다.”
엘프도 젖은 눈을 손등으로 훔쳐 내고는 민성에게 꾸벅 인사했다.
“이호성.”
“네, 헌터님.”
“이 아이들이 뉴티 도시에 적응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을 내어 줘.”
이호성은 싱긋 미소 지었다.
“알겠습니다.”
이호성은 주변에서 누가 지켜보는 이가 없는지 확인한 뒤, 묘인족과 엘프를 데리고 인적이 드문 골목 안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쏠을 불러, 황금 주머니 안에 가득 차 있는 물건 중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몇 개 꺼낸 뒤, 묘인족과 엘프에게 건네주었다.
묘인족과 엘프는 그 아이템을 받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바, 받을 수 없어요.”
“이런 값비싼 것들을…….”
묘인족과 엘프가 당황하여 말했다.
이호성이 쓰게 웃었다.
“헌터님의 선물입니다. 부디, 잘 지내는 걸로 보답해 주시길 바랍니다.”
묘인족과 엘프가 그 물건을 받고서 눈물을 삼키며 연신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 그리고. 마지막 인사는 여기까지인 걸로. 우리가 시간이 없어서. 만약 기회가 된다면…… 인연이 닿는다면 다시 만나게 되겠죠. 그사이 부디 잘 지내시길!”
이호성은 그 인사를 끝으로 쏠을 데리고 민성에게로 돌아갔다.
골목 안에서, 묘인족과 엘프는 민성의 일행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엘프와 묘인족은 민성의 일행의 앞길에 축복이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 * *
민성은 티켓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거기에는 이 하나의 티켓으로 갈 수 있는 인원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파티원으로 총 8명.
민성의 일행이 티켓을 통해 포탈에 들어가는 건 전혀 문제가 없었다.
워프 게이트 앞에서 시스템을 열어 설정 코드 번호를 입력하자 워프 게이트에 포탈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이내 포탈이 완전히 열렸을 때, 주변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뉴티 도시를 떠나는, 플레이어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주변에 퍼지고 있는 사이, 민성은 완성된 포탈을 향해 걸어가며 얼굴을 굳혔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내는 건, 위험과 경고를 직면했을 때다.
바로 지금처럼.
가장 먼저 민성이 신비로운 푸른빛 포탈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콰지지직!
강한 전류가 흐르는 것만 같은 소리와 함께 민성은 번쩍! 하며 사라졌다.
뒤이어 이호성과 바가지, 그리고 쏠이 그 길을 뒤따랐다.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목소리를 죽인 채 멍한 눈으로 민성의 일행이 사라진 방향을 지켜보고 있었다.
* * *
포탈을 통해 워프하여, 새로운 곳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였다.
[‘랭커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환영한다는 인사말.
그리고 포탈을 타기 전에 포스터에서 봤던 화려한 세계와는 전혀 상반적인 분위기가 민성의 일행 앞으로 펼쳐져 있었다.
작은 마을이었다.
이 작은 마을은 지금까지 봐 왔던 그 어떤 곳보다도 최악의 환경을 갖고 있었다.
벌레와 파리가 들끓었으며, 몇 걸음만 옮겨도 시체가 보였고, 어린 아이들이 피죽도 먹지 못해 퀭한 상태로 굶주림을 버티고 있었다.
어른들은 하나같이 어깨와 등이 굽어 있었다.
“대체 뭐 이런 곳이…….”
이호성이 충격에 빠진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민성은 그저 덤덤한 눈길로 참혹한 마을의 풍경을 보았다.
“저 헌터님…….”
민성이 손을 살짝 들었다.
이호성은 입을 다물었다.
민성은 이호성이 하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았다.
적어도 아이들에게만이라도 가지고 있는 음식을 나누어 주자는 것.
“이호성.”
“예, 헌터님.”
“식사 시간이다.”
민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고, 이호성은 빙긋 미소 지었다.
바가지와 쏠은 의아한 눈으로 민성과 이호성을 올려다보았다.
* * *
거리의 중심에서 이호성이 템창에서 테이블을 꺼내,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상하기로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면 사방에서 굶주린 자들이 달려나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음식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테이블 위로 만찬이 차려지고 있음에도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쩐지 분위기가 저희 예상이랑은 전혀 다르네요.”
이호성이 음식을 만들면서 말했다.
템창에서 꺼낸 의자에 앉아 있던 민성은 이호성의 말을 듣고 주변을 훑었다.
적어도 욕망은 확연하게 느껴진다.
굶주림과 갈증에 의한 시선들이 따가울 정도로 쏟아지고 있었으나, 모두 훔쳐보기만 할 뿐 자신들의 식탁 앞으로 다가오는 이들은 없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어른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음식의 냄새를 맡는 것이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둘 중 하나다.”
민성이 말했다.
이호성이 음식을 준비하던 중에 민성을 돌아보았다.
민성이 말을 이었다.
“누군가 이들을 통제하고 있거나, 플레이어를 두려하는 것.”
이호성도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휴……. 제가 가서 한번 얘기를 해 볼까요?”
“끝까지 책임질 게 아니라면, 섣부른 동정은 집어치워.”
민성이 싸늘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호성은 다시 음식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여전히 주변에서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민성은 무시하고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편안하게 호흡하면서, 음식이 만들어지는 냄새를 맡으며 음식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인기척이 느껴졌다.
천천히 눈을 뜨고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꾀죄죄한 몰골의 7세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민성은 시선을 들어 주변을 훑었다.
어린아이들을 품에 꼭 안고 훔쳐보던 어른들이 얼른 다시 몸을 숨겼다.
그들을 보건대, 이 아이는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자리를 비운 것.
그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여자아이는 민성을 쳐다만 볼 뿐, 딱히 말을 걸지 않았다.
민성은 마치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다시 눈을 감았다.
* * *
‘로이스 마을’에는 굶주린 베아트리체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는 플레이어들도 있었고, 그중 힘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이곳 로이스 마을의 주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자유로웠다.
암묵적으로 서로를 터치하지 않는 한에서, 그들은 그 자유를 즐겼다.
돈을 내지 않고 숙박했으며, 마음대로 여자들을 겁탈하기도 했다.
제멋대로 농작물을 이용해 음식을 먹었으며, 술을 마시고 기분이 안 좋을 때면 화풀이로 로이스 마을의 주민들을 죽여 대기도 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 간에도 갈등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호전적인 이들이었고, 암묵적으로 서로를 터치하지 않는 룰이 존재했지만, 그 룰은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플레이어들 간에 싸움도 자주 일어났다.
랭커가 속해 있는 길드에서 로이스 마을을 위해 음식을 지원하기는 했다.
그러나 지원 팀이 사라지고 나면, 하이에나 같은 플레이어들이 나타나 그들이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음식을 뺏고 괴롭혔다.
그런 플레이어들에게 로이스 마을의 중심에서 대범하게 음식을 만들고 있는 민성의 일행은 눈에 확연하게 띌 수밖에 없었다.
그중 민성의 일행을 지켜보고 있는 두 명의 플레이어가 골목 어귀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새로 들어온 녀석 같은데.”
“길드 없이 혼자서 이 바닥으로 오다니. 대범해.”
“어떻게 할까?”
“글쎄. 일단 이 바닥 규칙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고, 말귀를 못 알아먹으면 상부에 보고를 올려서 처리하는 쪽이 좋겠지.”
* * *
음식이 완성됐다.
굳이 광대처럼 오랫동안 식사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이호성은 그런 민성의 심정과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 냈다.
때문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한 끼로 준비했다.
그 메뉴는 바로 일본 가정식 덮밥이었다.
일본 가정식 덮밥으로 유명한 규동의 비주얼을 보고 민성은 이호성이 이런 것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너 실은 요리 쪽에 엄청난 재능이 있었던 건가?”
민성의 말에 이호성이 하하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저 역시도 제 요리 실력에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민성은 다시 ‘규동’을 보았다.
규동은 쇠고기에 양파와 함께 달게 끓인 재료를 그릇에 담은 밥 위에 올려 먹는 일본의 요리였다.
쇠고기가 밥을 가득 덮고 있는 걸 보고 있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뱃속이 식욕 자극으로 꿈틀 거렸다.
“헌터님, 여기 수저입니다.”
이호성이 우동 스푼처럼 생긴 넓고 걸기가 있는 스푼을 내어 주었다.
민성은 그 스푼으로 규동을 삭삭 비볐다.
소스가 잘 배합되어 있었고, 의외로 덮밥임에도 불구하고 그 소스 때문인지 엄청 잘 비벼졌다.
달콤한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덮밥을 비비고 있는 가운데, 강렬한 시선이 느껴져 민성은 왼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일곱 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먹고 싶다면 주마.”
민성이 말했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입을 반쯤 벌리며 다급한 표정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끄덕여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