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16화>
‘12던전’ 주변은 뉴티 도시 인근에 위치했던 ‘1던전’과는 달리 개미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플레이어들이 많아서, 티켓을 구하기 위해 꽤 북적거릴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조용한 걸 보면 난이도가 꽤 있는 모양입니다.”
민성은 대답하지 않고 ‘12던전’의 입구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민성의 공격적인 걸음을 보며 이호성은 핏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나 도무지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이 바로 강민성이었다.
이호성은 초조함에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는 늘 정면으로 모든 걸 깨부수고 앞으로 나아갈지는 몰라도, 자신은 아니었다.
늘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걱정해야 했고, 그에게 필요한 서포터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노선을 바꿔서 탔던 만큼, 반드시 뛰어난 서포터가 되어 보이겠다고, 이호성은 굳게 마음을 먹으며 담배를 버리는 것과 동시에 던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베아트리체라는 이 세계는 정당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열심히 노력을 하는가?
그리고.
엔터테인먼트적인 재능이 있는가?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결국은 주신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느냐로 결론된다.
베아트리체에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몬스터를 사냥하여 경험치를 먹는 게 아니다.
그런 정도로는 작은 업적 포인트밖에 올릴 수 없다.
이미 기득권의 랭커들이 비일비재한 마당에, 그들과 섞이기 위해서는 베아트리체 안에서 주신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유망주로서의 스타성이 있어야만 했다.
결국 주신들의 도박판 안에서 움직이고 있으니, 그들을 이용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것이 ‘베아트리체’라는 세계였다.
민성도 그 논점에 대해서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이미 현재 주신들에게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현재 주신들은 자극적이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일종의 지루함을 주기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자극에 약한 것이 ‘주신’이라는 족속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성은 주신들의 장단을 맞춰 줄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단순히 주신에 대한 저항이나 반항심 같은 것이 아니라, 무리하게 자극적인 일을 벌이는 건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건은 벌어지게 되어 있다.
준비가 되고, 랭커와 부딪치기 시작하면 진짜 게임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적어도 지금은, 직면한 상황을 침착히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외려, 어설프게 관심을 끄는 건 시간만 축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에 불과했다.
퀴에에에엑!
등에 천사의 날개와도 같은 것을 달고, 그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오크를 닮은 괴물이 오러가 담긴 커다란 칼을 휘둘렀다.
민성은 눈을 번쩍이며 감정을 배제하고, 전투에만 집중했다.
민성의 집중력은 놀라운 저력을 과시한다.
콰르르릉!
귀를 찢을 듯이 때리는 천둥소리.
그 커다란 소리에 던전의 몬스터가 흠칫 놀라고, 뒤이어 몬스터의 몸이 찢겨져 나간다.
업적 포인트를 통해 성장을 이룬 이후, 몬스터는 민성에게 시시한 수준에 불과한 잡몹으로밖에 치부되지 않았다.
민성 자신에게 있어 현재의 던전은 지루할 정도로 쉬운 사냥이었다.
* * *
[티켓을 확보합니다!]
티켓을 확보했다는 시스템 문장을 보았을 때, 민성은 템창을 확인해 보았다.
‘티켓’이 확실히 자동 지급되어 있었다.
티켓에는 포탈 게이트를 사용할 때 필요한 코드 번호가 적혀져 있었다.
저 코드 번호를 통해 다음 도시로 넘어갈 수 있는 듯했다.
민성의 일행은 뉴티 도시로 다시 되돌아왔다.
“묘인족과 엘프에게 다음 도시로 넘어갈 거라고, 지금 당장 워프 게이트로 넘어오라고 해.”
민성이 말했다.
“예.”
이호성은 신속히 움직였다.
그사이, 민성은 워프 게이트 쪽으로 이동하면서 도시를 훑어보았다.
꽤 상당수의 플레이어들이 보였는데, 그중 제1 던전 앞에 있었던 플레이어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민성의 전투를 두 눈으로 지켜봤던 플레이어들은 확연히 티가 났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모두 민성과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곤 했다.
딱히 거슬릴 것도 없고, 문제 삼을 만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거리의 풍경과 뉴티 도시의 사람들을 보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워프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워프 게이트에는 커다란 간판이 하나 있었는데, 그 간판에는 티켓을 통해 ‘랭커의 세계로’라는 이름이 다채로운 색감으로 걸려 있었다.
또 그 옆에 다음 단계에 대한 이런 저런 광고 문구들이 붙어 있었으나, 굳이 정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그저 다음 도시로 넘어가고 싶은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런 만큼 민성은 이곳 뉴티 도시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랭커에 대한 집착이 강한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게이트 주변에서는 티켓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랭커에 대한 대화, 그리고 온갖 추측과 억측이 난무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민성은 관심을 거두고 가까운 벤치에 앉았다.
민성이 벤치에 앉고, 바가지와 쏠이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있자 ‘플레이어’들의 시선은 자연히 민성과 바가지 그리고 쏠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관심도 잠시, 그들은 다시 자신들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기본적으로 민성은 청각이 뛰어났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민성은 그들의 생각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민성은 ‘티켓’을 확보했다.
티켓을 확보할 수 있는 ‘12던전’은 민성이 봤을 때, 그렇게 어려운 난이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은 이토록이나 12던전에 대한 도전과 접근을 꺼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민성은 그 던전을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고 클리어했다.
자신을 기준점으로 둔 것이 아니라, 뉴티 도시 부근의 1던전과 비교해 봐도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티켓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 거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민성은 벤치에서 일어나 부근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다가갔다.
“제1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을 만한 플레이어들이 왜 티켓을 구해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지 않는 거지?”
민성의 물음에 대화를 나누고 있던 3명의 플레이어가 핏 하고 웃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군. 그러고 보니 길드에 소속되지도 않았고. 노비스인가?”
턱에 새겨진 칼자국이 인상적인 사내가 민성을 흘겨보며 물었다.
민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비스 주제에 어디서 스테이지를 운운…….”
칼자국 사내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동공이 커지면서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민성이 뿜어낸 살기가 칼자국 사내의 전신을 휘어 감았기 때문이다.
어설픈 살기라면 코웃음을 치며 칼을 뽑아 들었겠지만, 민성의 살기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내면의 공포가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막히게 하는, 본능적인 두려움의 반응이다.
칼자국 사내는 식은땀이 가득한 얼굴로 눈을 크게 뜨고, 먼 곳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민성의 살기가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칼자국 사내는 힘겹게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후욱……! 후욱…….”
민성은 칼자국 사내를 물끄러미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설명해라.”
민성이 차가운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칼자국 사내는 가늘게 떨면서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함께 있던 플레이어들은 칼자국 사내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은 민성의 살기를 느끼지 못한 탓이었다.
살기가 오로지 화살처럼 칼자국 사내 하나만을 타깃으로 잡았던 것이다.
“티켓을 구해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지 않는 이유는, 랭커들 때문이다…….”
칼자국 사내는 여전히 후유증이 남은 듯 힘겹게 목소리를 냈다.
“기득권의 방해 공작 같은 건가?”
민성이 물었다.
“그것도 사실이고. 랭커들을 피해 사냥을 한다고 해도, 애초에 던전 수준부터 차원이 다르니까.”
“가 보지도 않았는데, 그 사실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돌아온 이들이 있다.”
“돌아온 이들?”
“뉴티 도시로 돌아온 플레이어들. 그들은 두 번 다시 다음 스테이지로 돌아갈 수 없다. 평생 동안.”
민성은 헛웃음을 흘렸다.
칼자국 사내가 말을 이었다.
“랭커가 되기를 포기한다는 건 결국, 나라를 잃는 게 아니라, 별 자체를 잃는 일. 때문에 보통은 폐인이 되어 버리거나 방탕한 삶을 이어 가지.”
민성은 칼자국 사내의 설명으로 인해 왜 ‘12던전’에서 플레이어들을 볼 수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결국 랭커라는 육식 동물로부터 살아남아 사냥을 통해 성장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이곳 뉴티 도시에서 그 생존을 위한 힘을 기를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더 이상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시간은 유한하다.
적어도 베아트리체에서는 훨씬 더 그 시간이 값비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들이 돌아가야 할 별은 죽어 가고 있으니까.
어쩌면 그들은 이미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태어난 별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의 이주에 만족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이나 여유롭게 다음 스테이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할 리가 없다.
그리고 그만큼, 이 ‘티켓’이라는 것은 역대급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들의 말대로, 만약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 성장을 방해하려는 랭커를 만나게 된다면, 그 길로 끝이었다.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어쩌면 이 티켓이 죽음으로 가는 고속 열차처럼 느껴졌으리라.
민성은 옅게 웃었다.
인간은 이토록이나 다를 수 있다.
납득은 되지만, 자신은 상상조차 못할 선택이다.
어떻게 물러설 수 있는 건지.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는 건지.
어떻게 포기할 수 있는 건지.
민성 자신의 인생에서는 없었던 일이다.
위험한 선택이 대부분 가장 안전한 길이었다는 걸 마계에서 배운 그였다.
“헌터님!”
그때 이호성이 묘인족과 엘프를 데리고 오고 있는 게 보였다.
잠시 후, 그들이 민성의 앞에 도착했다.
바가지는 민성의 주머니 안으로 폴짝 뛰어 들어갔고, 쏠은 자신의 머리를 민성의 다리에 친근하게 비벼 댔다.
이호성이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묘인족과 엘프도 이호성의 예법을 따라 했다.
묘인족과 엘프.
그녀들은 새로운 곳으로 갈 생각에 들떠 있는 표정이었지만.
“너희들은 함께 갈 수 없다.”
민성의 말에 의해 기대에 차 있던 그녀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