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15화>
* * *
복면 사내는 민성의 여유를 보고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다.
어차피 미행이 들통난 이상, 그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건 불가피했다.
이왕 붙는 거라면, 전력을 다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다.
복면의 사내는 자신의 오러를 개방시켰다.
복면 사내의 발아래로 풀이 죽고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어둠을 바탕으로 한 검은 오러가 뿜어져 나오면서 복면 사내의 눈이 요사스럽게 번쩍거렸다.
하지만 민성은 그런 복면 사내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해할 수가 없네.”
“……?”
복면 사내는 의문이 담긴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민성이 말을 이었다.
“각 별에 최고의 플레이어만 오는 곳이 여기 베아트리체잖아.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약한 것 같아서.”
민성의 말에 복면 사내는 속에서 뜨거운 것이 끓는 걸 느꼈다.
“오만 떨지 마라. 이 세계에서 네놈은 랭커에도 들지 못하는 하위 플레이어니까.”
민성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어차피 내 밑으로 내려가게 될 거야.”
“근거 없는 자신감 부리지 마라. 랭커는커녕, 넌 내 손에 죽게 될 테니까.”
복면 사내가 양손을 합장하듯 합쳤다.
그러자 베아트리체에서 습득한 기술이 펼쳐졌다.
검은 연기와도 같은 오러가 굵직하게 합장한 복면 사내의 손에 맺히더니, 이내 마치 안개처럼 넓게 분포되기 시작했다.
이미 공격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성은 움직이지 않았고, 대응하지도 않았다.
그저 미동 없이 서서 지켜볼 뿐이었다.
‘건방진 놈. 그 오만이 네놈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트릴 것이다.’
이미 저 플레이어에 대해서 올려야 할 보고는 모두 올렸다.
추가 미행이 실패했을 뿐.
하지만 여기서 놈에게 당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복면 사내는 그가 아직 베아트리체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재능 있고, 강한 플레이어라고 해도 아직 베아트리체 안에서는 햇병아리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복면 사내는 자신의 기술에 최대한의 마력을 쏟아부었다.
이 안개처럼 퍼지는 검은 오러는 자신의 고강한 비기 중 하나였다.
일단 오러가 퍼져서, 일정 공간 안에 상대를 가두기 시작하면, 상대는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시야도 사라지며, 독성을 가진 이 기술은 상대의 감각 체계를 무너트린다.
방향 감각부터 시작해 손, 발을 마비시키고 냄새마저 잃게 만든다.
베아트리체에서 있는 동안 그는 이 기술을 단련시키는 데 모든 노력을 할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높은 스펙을 가진 플레이어라고 해도, 내성을 가진 이들은 많지 않았다.
노비스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 검은 오러의 안개가 퍼지기 전에 그는 최소한 자신에게 3번의 공격을 가해야 했다.
하지만 저 오만방자한 놈은 고맙게도 시간을 주었다.
그 시간 덕에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복면 사내는 승리를 확신했다.
이제 저 노비스의 몸이 서서히 굳어지면서 당황하는 표정을 보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게 다한 거냐?”
“……?!”
복면 사내는 놀람으로 눈을 커다랗게 떴다.
팔다리가 마비되고, 방향 감각을 상실한 후 걷기는커녕 바닥을 기어야 했으나, 민성은 눈부신 속도로 날아와 주먹을 휘둘렀다.
꽈앙!
콘크리트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안면이 반 이상 함몰되고, 복면은 찢어졌다.
복면 사내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피를 흩뿌리며 허공을 날아 바닥에 떨어진 후,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컥……. 크윽!”
솟구치는 통증과 시려진 시야.
이어질 공격을 막기 위해 일어서려고 했으나, 애초 계획과 달리 휘청이는 건 상대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복면 사내는 마치 막 태어난 망아지 같았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행동이 반복됐다.
민성은 저벅저벅 걸어가 비틀대는 복면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방심했다거나 실수였다거나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야.”
복면 사내가 뒤틀린 표정과 흔들리는 동공으로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다만 네가 지나치게 약했을 뿐이다.”
“……!”
민성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미처 보고를 올리지 못했겠지.”
“빌어먹…….”
콰앙!
민성의 주먹이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복면 사내의 머리를 내리쳤다.
복면 사내는 그대로 절명하며 엎어져 축 늘어졌다.
[감시꾼을 처치하였습니다.]
[업적 포인트를 선물한 주신들이 즐거워합니다.]
[몇몇 신규 주신들이 흥미가 없다며 외면합니다.]
[주신들의 흥미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플레이어를 지켜보는 ‘주신’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민성은 쓴웃음을 흘렸다.
시청자를 늘리기 위해 재롱이라도 피우라는 건가?
민성은 코웃음을 치며, 일행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 * *
이호성과 바가지, 그리고 쏠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시스템 지도 때문에, 굳이 길을 외우고 떠나지 않아도 그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일찍 오셨네요. 어떻게 됐어요? 감시꾼 찾았습니까?”
이호성이 물었다.
“때려죽였다.”
민성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이호성은 이제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는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민성은 다시 한번 지도를 체크했다.
여기서 다음 목적지까지는 거리가 꽤 남았다.
식사를 해야 한다면 지금이 적기였다.
“알아서 준비해.”
“네.”
“사실 헌터님이 오실 동안 미리 생각해 놓은 메뉴가 있습니다.”
센스하면 이호성이라는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이호성은 자신이 감시꾼을 처리하고 돌아올 동안, 미리 음식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쏠!”
이호성이 박수를 두 번 짝짝 치고, 휘익!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쏠이 황금 주머니를 어깨에 들쳐 메고서 달랑달랑 뛰어와 이호성의 옆에 섰다.
“맛있는 한 끼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이호성의 미소는 당당했다.
* * *
숲속에서 테이블 위에 음식이 놓여 있는 광경은 확실히 이색적이다.
깨끗하게 닦아놓 은 상 위로는 멋진 한 끼가 차려져 있다.
의자는 굳이 필요가 없어서, 일행은 템창에서 꺼내 쓰는 테이블 앞에 서서 먹기로 했다.
메인 메뉴는 하나였고, 반찬은 오직 단출하게 김치뿐.
테이블 위로 덩그러니 놓여 있지만,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한 뚝배기.
그것은 바로 ‘삼계탕’이었다.
삼계탕.
한국이 전통적으로 자랑하는 최고의 보양 음식.
거기다 삼계탕에 들어가 있는 재료는 가히 임금님 수라상에 올릴 만한 퀄리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황기, 당기, 엄나무 껍질, 둥굴레, 겨우살이, 칡, 오가피, 대추는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재료에 불과했으며, 이 삼계탕을 빛내는 것은 두 가지의 추가 건더기 재료였다.
바로 자연산 송이버섯과 산삼이다.
자연산 송이버섯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양만을 넣었고, 산삼 역시 과하지 않게, 먹기 좋을 만큼만 넣었다.
대체 얼마를 받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삼계탕 한 그릇을 내려다보면서 민성은 조금은 봉인되어 있었던 식욕이 폭발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삼계탕이 보여 주는 비주얼은 그 파괴력이 대단했다.
수줍게 다리를 꼬고 있는 닭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젓가락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민성은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닭을 젓가락으로 해체하기 시작했다.
화력이 강한 바가지의 검은 불로 익혔기 때문인지, 너무 잘 익어서 거의 젓가락을 대자마자 살코기가 손쉽게 발라졌다.
그사이 민성은 삼계탕의 뽀얀 국물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헌터님, 살코기는 여기 소금에 찍어 드시면 됩니다.”
이호성이 소금이 담겨 있는 아주 작은 그릇을 민성의 앞에 놓아 주었다.
민성은 두툼한 살코기를 소금에 아주 살짝만 찍어 입에 홉! 하고 넣었다.
짭쪼롬한 소금 맛과 푹신한 닭고기의 식감은 꿀꺽 삼키면 벌써부터 기분 좋은 포만감을 주는 것만 같다.
민성은 숟가락을 들고, 뚝배기에 뜨거운 온도로써 자리 잡고 있는 뽀얀 삼계탕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후룹!
끝내준다.
어떻게 국물이 이 정도로 진할 수 있을까?
민성은 놀란 눈으로 잠시 이호성을 보았다.
이호성은 늠름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민성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다시 삼계탕에 집중했다.
송이버섯이 보인다.
자연산 송이버섯의 맛은 어떨까?
민성은 젓가락으로 조심스레 푹 젖어 있는 송이버섯을 들어 보았다.
자연산이라 그런지 색깔이 살짝 어두운 빛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맛은……?
쏙.
송이버섯이 입안으로 쏙 들어왔다.
미쳤군!
민성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자연산 송이버섯의 맛에 눈을 크게 뜨며 충격에 빠진 얼굴이 되었다.
한 번도 자연산 송이는 먹어 본 적이 없던 민성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받은 충격은 예상을 거의 파괴하는 수준이었다.
무슨 버섯이 이렇게 맛있어?
민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 맛을 음미했다.
뜨거운 삼계탕 육수로 축축하게 익은 송이버섯의 향은 그 깊이감이 온 몸을 울리게 할 정도였다.
진한 향은 황홀함이 되어 마치 전신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한없이 깊은 송이버섯의 향에 민성은 취해 버리고 말았다.
압도적인 향이다.
왜 사람들이 자연산, 자연산 노래를 부르는지 피부로 절절하게 와닿을 정도로 자연산 송이버섯의 힘은 대단했다.
민성은 감탄한 표정으로 머리를 갸웃거린 후에, 다시 국물을 떠먹고, 부드러운 닭다리 살을 젓가락으로 찢어 먹은 다음, 국물과 함께 송이버섯을 떠먹었다.
머릿속이 텅 빌 정도로 맛있다.
맛에 취해서 마치 백지가 된 것처럼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민성은 삼계탕 안에 들어 있는 산삼 뿌리를 씹어 먹으며 이호성을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이호성은 기분 좋게 웃으며 정중히 목례했다.
그리고 이호성도 뒤이어 준비된 삼계탕을 먹기 시작했다.
* * *
한 끼의 식사를 마치고 나자 체온도 오르는 듯했고, 기분 좋은 포만감에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듯했다.
보양도 했으니, 이제 목적지로 달려야 할 때다.
뉴티 도시에는 다음 도시로 가는 포탈 게이트가 있었지만 게이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티켓이 필요했다.
그 티켓은 지금 오르고 있는 산의 정상 부근에 위치한 12던전으로 가는 표였다.
뉴티 도시와는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는데, 이 던전을 클리어해야만 다음 도시로 갈 수 있는 그 ‘티켓’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런 연유로 12던전으로 빠른 속도로 이동했고, 곧 던전 앞에 민성의 일행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