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14화>
민성의 일행뿐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타 플레이어들이 보이고 있다는 게 한국의 던전과 달랐다.
하나의 길드에서 차출된 파티원들이 던전에서 몬스터를 찾아 나서고 있다.
그런 그들은 민성의 일행을 볼 때마다, 마치 떡을 빼앗기기 싫은 어린아이들처럼 경계 가득한 눈초리를 보냈다.
이미 던전 안에 들어가 있던 플레이어들은 민성의 전투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길드가 없는 민성의 일행을 따가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으르렁거렸다.
이미 현 지역의 플레이어 수준은 모두 파악한 후였다.
더 이상 잔챙이들과 시간 낭비를 할 필요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민성은 빠르게 이동했다.
이호성과 바가지, 그리고 쏠은 다른 플레이어들을 제치며 앞서 나아갔다.
* * *
던전 안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앞서가는 민성을 보며 코웃음을 던졌다.
자신들이라고 해서 게으르거나 멍청해서 앞서가지 않는 게 아니었다.
이곳은 무려 7성급 던전이다.
몬스터의 수준 여부를 떠나, 기본적으로 부비트랩 같은 기계 장치나 함정이 설치된 기관이 곳곳에서 목숨을 노린다.
길드에 소속되지도 않은 노비스 플레이어가, 저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가다가는 몬스터를 사냥하기도 전에 틀림없이 죽고 말 터였다.
길드에는 기관을 분석하고 해제하는 전문꾼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무식한 노비스들 같으니.”
“크크큭.”
“미쳤군, 정말.”
“무식한 건지 용감한 건지.”
앞서간 민성의 일행을 향해, 던전 안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웃어 댔다.
* * *
[경고]
[함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음?’
이호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함정이라고?
“헌터님!”
이호성의 외침에 앞서가던 민성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함정이 있습니다.”
“……?”
그 순간.
드르륵! 철컹!
거친 쇳소리와 함께 거대한 오러가 맺힌 날카로운 쇠창이 바닥에서 튀어나와 민성의 몸통으로 향했다.
민성은 자신에게 오는 그 쇠창을 방패로 막았다.
콰아앙-!
묵직한 무게감이 방패로 전해져 왔다.
온몸이 울릴 정도의 타격감.
방패가 부서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다.
단순하긴 하지만 그래도 제법 수준 높은 기관이라고 생각했을 때, 기관 장치의 공격이 연달아 이어졌다.
사방에서 화살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호성은 회피성에 많은 스탯을 부여했다.
때문에 그림자 이동술은 이럴 때 빛을 발한다.
이호성은 그림자가 되어, 모든 공격기를 회피했다.
문제는 공격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이지만, 어차피 이런 세계에서 자신의 공격력 따위는 무의미했다.
결국 최고의 선택이 된 셈이다.
파티 경험치만 먹으면서 서포터로 성장하는 것이 최고의 효율을 낸다.
분명 강민성도 자신의 선택에 만족할 것이라고 이호성은 확신했다.
* * *
기관의 트랩 함정은 분명 강력한 공격력을 가진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것은 일반론적인 이야기일 뿐이었다.
민성에게 있어 뉴티 도시 제1 던전의 기관 장치는 별 달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위협적인 건 시간이다.
시간이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고, 여유를 사라지게 만들며, 급하게 만든다.
민성에게 적은 오로지 시간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냉정하게, 그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민성은 자신을 향해 쇄도하듯 쏟아지는 함정들을 가볍게 파훼하며 침착히 앞으로 나아갔다.
* * *
베아트리체의 던전은 일정 시간마다 몬스터는 리젠되고 숨겨진 함정 장치 역시 다시 준비된다.
하지만 일정 시간 안에는, 한번 파훼된 함정 장치는 작동되지 않는다.
그 점이 현재 던전 안에 들어와 있는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왜 함정은 작동하지 않는가?
그 논제가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또한 아무리 던전 속을 걷고 또 걸어도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귀신에 홀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앞서 나간 그 노비스가 그들에게는 귀신처럼 느껴졌다.
살아 있는 플레이어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노비스가 함정 장치를 모두 뚫고, 모든 몬스터를 제거했다?
적어도 베아트리체에서 짬밥 좀 있는 플레이어라면 코웃음을 칠 얘기였다.
뉴티 도시의 제1 던전은 결코 만만한 던전이 아니었다.
이 정도라면, 고위 스펙을 가진 길드가 아닌 다음에야 불가능했다.
그들은 꿈속에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의 뺨을 꼬집어 보고 있었다.
* * *
민성은 던전을 클리어하고, 포탈을 통해 최초 입장했던 던전 입구 앞으로 되돌아왔다.
[업적 포인트를 선물한 주신들이 플레이어의 경이로운 사냥 능력에 감탄하며 즐거워합니다.]
[주신들의 기대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으로 업적 포인트를…….]
민성은 계속해서 알림으로 뜨는 시스템 메시지를 무시하다시피 하며, 시스템 지도를 통해 주변에 다른 사냥터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때, 여러 팀의 길드가 포탈을 통해 던전 입구 앞으로 줄줄이 나왔다.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시스템 지도를 보고 있는 민성을 빤히 응시했다.
그들의 시선에는 오조지 ‘미스테리’라는 의미가 들어 있었다.
각 길드의 길드장들이 서로 얘기를 나눈 뒤, 한 길드의 길드장이 시스템 지도를 보고 있는 민성의 앞으로 걸어갔다.
“제1 던전. 당신이 클리어한 건가?”
민성은 웬 떨거지냐는 눈빛으로 길드장을 보았다.
그의 눈빛은 진지했고, 반드시 확답을 받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였다.
저런 것들과 굳이 대화하고 싶은 마음 따위 민성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민성은 지도창을 끄고, 그들을 무시하며 다음 행선지로 걸음을 옮겼다.
“이봐.”
길드장이 민성의 어깨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을 때, 민성은 단순히 그를 뒤돌아보는 것만으로 그를 꼼짝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손을 뻗다 만 길드장은 그 자리에서 마치 돌처럼 굳어 버린 채 부들부들 떨면서 앞머리가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민성의 살기 어린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거대한 공포가 전신을 굳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 * *
길드장은 살아생전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죽음이 목전에 드리웠다는 사실을 경험한 건 실로 끔찍한 일이었다.
뭔 놈의 노비스가…….
‘아니, 노비스일 리가 없다.’
길드장은 확신했다.
‘놈은 노비스가 아니야.’
주신들에게 힘을 부여받을 기회가 극히 드물었을 노비스에게 저런 힘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저 정도의 실력자가 왜 굳이 뉴티 도시의 제1 던전에?’
의문이 어지럽게 거미줄처럼 머릿속에 엉켜들었고, 그와 동시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가슴을 물들이고 있었다.
어서 그의 살기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한 번만 더 내 시간을 뺏으려 들었다간 너뿐만이 아니라, 네 식구 전부가 죽게 될 거다.”
절대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허세로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말은 진실이다.
살기가 실린 눈빛만으로 움직일 수조차 없게 만드는 플레이어였다.
자신들이 상대할 대상이 아니었다.
호기심과 의문은 깊고 어두운 곳 아래로 내려보내야 할 때였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 것뿐이었다.
그제야 살기는 서서히 풀렸고, 민성이 점차 멀어져 갔다.
“무슨 일이야?”
살기는 온전히 길드장 자신만 옭아맸었던 것.
지켜보던 길드원이나 타 길드 플레이어들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며,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만했다.
“그는 노비스가 아니야.”
길드장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페이크 플레이어라고?”
“굳이 뉴티 도시 제1 던전에?”
길드장은 침음을 삼키며 민성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 * *
제1 던전 앞에 모여 있는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던전 사냥을 실패한 가운데, 그 모든 광경을 은밀히 지켜본 사내가 한 명 있었다.
그는 민첩하게 몸을 휙 날렸고, 높은 나무 위에 서서, 키에르코 산맥 방향으로 가고 있는 민성의 일행을 보면서 시스템 창을 열었다.
그리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즉시 전송을 터치했다.
창을 닫은 뒤, 사내는 다시 민성의 일행을 일정 거리 안에서 추적을 이어 갔다.
* * *
“쥐새끼가 한 마리 있군.”
민성이 말했다.
“……네?”
이호성이 영문 모를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이호성의 능력으로는 아직 기척을 숨기고 있는 미행자를 찾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어리둥절한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대기해라. 놈을 잡고 나면, 한 끼 먹고 마저 이동하는 걸로.”
“아, 알겠습니다.”
이호성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앙!
폭음과 함께 눈앞에 있던 민성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호성은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와……. 더 빨라졌어. 야 ,바가지. 너 헌터님 움직이는 거 봤어?”
이호성이 물었다.
바가지는 좌우로 고개를 흔들며 도리질 쳤다.
“쏠 너는?”
쏠은 이호성을 향해 위아래로 크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와. 쏠 끝내주네. 그게 보였다고?”
“난 빠르니까.”
“굉장한데……?”
이호성은 내심 부러움과 부끄러움이 들었다.
자신이 고블린보다도 못하다는 것이 굉장히 뼈아팠다.
서포터로 역할을 꽤 훌륭히 전환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그 능력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이호성은 허탈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며 민성을 기다렸다.
* * *
민성의 일행을 미행하며 감시하려던 복면의 사내는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대상’이 자신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이동해 왔기 때문이었다.
달아나려 했지만, 갑작스럽기도 했고, 속도 자체가 눈부시게 빨랐기 때문에 피할 수가 없었다.
복면의 사내는 마음을 바꿔 도망치지 않고 나뭇가지 위에서 땅 아래로 풀쩍 뛰어내린 다음 그를 기다렸다.
쿠궁!
민성이 복면 사내의 바로 코앞에 순간 이동을 하듯 나타났다.
그의 움직임으로 인해 주변에 거친 바람이 불었고, 커다란 나무의 나뭇가지와 잎들이 거세게 흔들렸다.
복면의 사내는 무정한 눈빛으로 코앞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미행 대상’ 강민성 플레이어의 두 눈을 마주 보았다.
“누구냐, 너희들은?”
민성이 물었다.
“이미 상부로 보고는 올라갔다.”
복면의 사내가 말했다.
“랭커 쪽을 말하는 건가?”
민성이 되물었다.
“베아트리체를 우습게 보고 있군. 분명 난 전서구 정도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지만, 그분들은 너랑 차원이 달라.”
민성은 복면의 사내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별로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너희 같은 것들은 지금까지 지겹게 봐 왔으니까.”
“…….”
민성의 눈빛과 복면 사내의 눈빛이 섞이면서 공기가 쩌적 쩌적 얼어붙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