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13화>
* * *
‘저, 정말 대단하다.’
이호성은 민성을 보면서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이호성 역시 베아트리체라는 세계에 대해서는 설명을 들은 만큼 이곳이 어떤 세상인지 잘 알고 있었다.
무려 전 우주의 별에서 최고만이 ‘플레이어’ 자격을 갖고 오는, 우주 최강을 가리는 무대가 바로 베아트리체였다.
아무리 강민성이라고 하더라도 분명 신중히 움직일 것이고, 전투가 벌어지면 힘겨운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강민성은 변함이 없었다.
마치 오로지 직진밖에 모르는 남자 같았다.
이렇게 많은 ‘플레이어’들이 있는 곳에서 길드에 속한 플레이어를 그냥 죽여 버리다니.
저지른 일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민성의 위력이 무시무시했다.
베아트리체 플레이어를 저렇게 쉽게 무너트리다니.
민성이 업적 포인트를 통해 마기가 성장한 것을 아직 모르는 이호성으로서는 민성의 존재 자체에 대한 전율이 멈추지 않았다.
* * *
마치 파티장을 연상하게 했던 뉴티 도시 부근의 제1 던전 앞은, 한순간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했다.
그 원인은 당연히 민성의 무력 때문이었다.
“저 자식…….”
“감히 홀로 ‘아난티 길드’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생각이라고?”
“고작 노비스 주제에……!”
정적은 곧 죽은 플레이어가 소속되어 있던 길드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여론으로 이어졌다.
딱히 플레이어가 죽은 것에 대한 불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길드에 대한 도전장으로 받아들인 것뿐이었다.
현재 던전 앞에 모여 있는 아난티 길드원들의 수는 총 7명이었다.
그들은 전음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 이대로 물러설 수 없어.
- 상대는 한 명이다.
- 여기서 놈을 그냥 보낸다면, 아난티 길드는 두고두고 놀림을 받게 될 것이다.
- 뿐만 아니라 주신들이 우리를 버리고 말 거야.
- 의견에 이견은 없는 듯하군.
- 처리하지.
- 동의.
7명의 ‘아난티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전음으로 서로의 합의 의사를 확인했고, 결정이 떨어지자마자 그들은 강민성을 잡기 위해 전투 대열을 잡아 나가기 시작했다.
던전 앞에서 구경 중이던 플레이어들은 이제 더 이상 환호를 하거나 민성을 비웃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전투에 대한 흥미와 관심은 배로 불어나 있었다.
아난티 길드원 7명 대 아직 길드에도 들어가지 않은 노비스 솔로 플레이어.
방금 전 민성의 무력을 봤던 만큼, 아무리 플레이어의 수가 많은 아난티 길드라고 해도 승부의 결과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만큼 민성이 보여 준 힘은, 지켜본 플레이어들에게 충격적이었다.
화려하거나 대단한 파장의 효과를 보인 것도 아니고, 그저 단숨에 해치워 버린 것이 더 놀라운 부분이었다.
* * *
[주신들이 흥미진진해합니다.]
[다수를 상대로 하는 전투를 앞두고, 주신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습니다.]
[일정 비율의 주신들이 걱정합니다.]
[자극적인 행보에 일정 주신들이 실망감을 표합니다.]
시끄럽네, 정말.
업적 포인트 좀 줬다고 유세라도 부리는 건가?
민성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주변에 경계 거리를 두고 전투를 준비하는 아난티 길드를 보며 템창을 열었다.
민성이 손을 뻗자 템창에서 콰르릉! 하고 천둥소리가 나며 +9궁니르가 뽑혀 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풀템이 장착되었다.
투구부터 갑옷과 각반, 그리고 방패와 액세서리까지.
템창 인터페이스에는 장비를 한 번에 장착하는 단축키가 있었기 때문에 한 번에 장비를 장착하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민성의 장비를 보고 ‘플레이어’들의 긴장감은 배로 올라갔다.
한눈에 봐도, 민성의 장비는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긴장한 상태로 쉽사리 덤벼들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그들과 대조적으로 침착한 상태인 민성에게 그들은 허섭스레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던전 앞에 모인 이 길드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은 자신을 노비스라며 무시한 것에 비해, 랭커에도 들지 못한 잔챙이들이었다.
굳이 이런 것들을 상대로 아이템을 풀로 장착해야 하는 건지는 의문이 들지만, 정보가 빈약한 만큼 최소한 방심하지는 않아야 한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사력을 다하는 법.
민성의 안광이 유령처럼 번쩍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변의 공기는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민성의 살기는 주변을 완벽하게 장악해 나갔다.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아난티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숨 막히는 민성의 공격적인 살기에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그사이 바가지가 자박자박 걸어 나와 민성의 옆에 섰다.
그리고 그런 바가지의 옆에는 이호성이 섰다.
“제가 심혈을 기울여 재배치한 서포터로서의 능력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호성이 아난티 길드의 플레이어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냥 빠져.”
“……예.”
이호성이 뒤로 물러났다.
“바가지, 너도 가담할 필요 없다.”
민성이 딱 잘라 말했다.
바가지도 뒤로 물러났다.
“안 덤비고 뭐 해? 혼자인 날 상대로 겁이라도 먹은 건가? 그럴 거면 시작도 말았어야지.”
민성의 도발은 전투의 시발점이 되었다.
7명의 아난티 길드 플레이어들이 민성을 향해 다각도에서 달려들었다.
찰나와도 같은 짧은 시각.
투구 안에서 놈들을 훑어보는 민성의 시선은 도깨비불과도 같이 빛났다.
시험해 보고 싶었다.
아무리 허섭스레기라고 해도 각 별에서 최강의 플레이어들이다.
7명을 상대로, 어느 정도의 기량을 펼쳐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그리고 이 힘이 랭커에게도 통할지에 대한 의문.
그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갖고 싶었다.
이것은 오만이 아닌, 향상심이었다.
그런 향상심은 늘, 극대화된 힘과 경험의 토대가 되어 준다.
쿠크크크- 콰콰콰콰!
전 방향에서 오러의 힘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민성은 나가고 싶어 미치려고 하는 마기들에게 자유를 풀어주기 시작했다.
마기의 해방은 곧 플레이어들의 악몽이 되었다.
민성이 궁니르를 바닥에 찍자, 궁니르가 박혀 들어간 바닥에서 올라온 마기는 마치 허기진 괴물처럼 아난티 길드 플레이어들의 오러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마기가 사라졌을 때.
아직 허기가 사라지지 않은 마기라는 이름의 괴물들이 향한 곳은 당연히……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있는 7인의 아난티 길드 플레이어들이었다.
뇌전을 뿌리는 새하얀 유령과도 같은 마기들은 플레이어들의 몸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마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목을 물어뜯어 죽일 수 있지만, 사슴이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며 가지고 노는 듯한 사자처럼 보였다.
메시지.
그것은 지금 이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던전 앞 모든 플레이어들을 향한 메시지였다.
“아아아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비산했다.
피가 허공을 날았고, 비명은 교차되어 허공에서 섞여 들었으며 고통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그들을 괴롭혔다.
민성이 땅에 박아 넣었던 궁니르를 서서히 다시 끌어 올렸을 때, 아난티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전신을 피로 물들인 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바가지.”
민성이 바가지를 불렀다.
바가지가 탁탁 뛰어가 민성의 다리 밑에 서서 자신의 주인을 올려다본다.
민성은 유령 같은 눈으로 쓰러져 있는 아난티 길드의 플레이어들을 보며 투구 속에서, 입을 열었다.
“식사 시간이다.”
바가지의 안광에 검은 불이 화악! 하고 타올랐다.
민성의 창 궁니르가 첫 번째 플레이어의 복부를 관통하며 땅에 박혀 들어갔다.
퍽!
“쿨럭!”
피를 뿜으며 초점이 흐려진다.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
바가지는 귀신처럼, 자신의 흑마법으로 그 생명을 자신의 것으로 취한다.
언데드화로 변화하는 플레이어.
그 기괴한 광경에, 아난티 길드가 아닌 수많은 다른 플레이어들은 숨을 삼켰다.
그들은 마치 지옥을 엿보는 것처럼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민성은 해야 할 일을 하는, 의무감에 책임을 느끼는 것처럼 쓰러져 있는 플레이어들 하나하나에게 죽음을 선사했다.
푹!
푹!
푹……!
궁니르가 살을 찢고 꿰며, 관통한다.
이제는 비명 소리보다 죽어 가는 소리가 더 명확했다.
죽기 싫어 흐느끼는 목소리가 퍼졌지만, 그 흐느낌은 오래가지 않았다.
민성의 용서 없는 창날에, 그들은 목숨을 잃었고, 바가지는 그들의 목숨을 취했다.
[죽음의 신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립니다.]
[천사들이 눈살을 찌푸립니다.]
[다수의 주신들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냅니다.]
[주신들이 업적 포인트를 선물하기 시작했습니다.]
[총 획득한 업적 포인트는 +1200입니다.]
[메인 퀘스트 발동]
[뉴티 도시의 제1던전을 클리어하세요.]
[보상으로 업적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 * *
민성의 싸움을 지켜본 플레이어들의 얼굴은 가관이었다.
처음에만 해도 축제 분위기와도 같았던 그들이, 지금은 지옥을 다녀온 듯 초췌했다.
그들의 눈에 민성은 귀신처럼 보였다.
또한 바가지 주변으로 죽었던 플레이어들이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서 있는 광경은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을 만큼 기괴했다.
플레이어들은 감히 민성을 오래 쳐다보지 못했고, 사냥이고 뭐고 뒷전으로 미루며,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떠나기 시작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제1 던전 앞에는 민성의 일행과 언데드가 되어 버린 플레이어들뿐이었다.
바가지는 언데드들을 땅속으로 다시 돌려보낸 뒤, 민성을 쳐다보았다.
이호성도 숨을 삼키고 민성을 보았다.
민성은 미동 없이 서 있었다.
* * *
마기의 능력은 압도적이다 못해 자칫하면 자신을 삼킬 정도로 강대했다.
지금도 당장 이 힘을 쓰지 않으면 괴로울 정도로, 근질거리는 감각이 전신을 긁어 댔다.
불쾌했다.
마치 금단 증상처럼 이 힘은 끊임없이 꿈틀거린다.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려고 하는 마기들을 다스리기 위해 민성은 감각을 억눌러야 했다.
극도로 예민한 상태로 약 5분 정도가 지나자, 미쳐 날뛰던 마기들은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후우.”
민성은 짧은 숨을 뱉어 내며, 던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대량의 마기가 갑작스럽게 들어온 만큼 편안하게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걸릴 듯했다.
* * *
뉴티 도시 부근에 위치한 7성급 난이도의 제1 던전 안으로 입성했다.
던전은 일반적인 벽돌의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베아트리체 세계의 중세풍과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한국의 던전에서도 이런 디자인의 던전은 꽤 많았기 때문에 익숙하긴 했지만, 낯선 점은 따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