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12화>
소고기국의 소고기는 부드럽고 야들야들했으며 또한 쫀쫀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환상적으로 화려한 떡갈비와 비빔 밀면의 조합은 정말이지 최고였다.
* * *
아레스 길드의 길드장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뱅가드 프론티어로 노비스 하나를 협박하기 위해 보낸 길드원들이 박살이 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름이 뭐라고?”
길드장이 거슬린다는 표정으로 초조하게 서 있는 길드원 하나에게 물었다.
“지구라는 별에서 온 강민성이라는 플레이어입니다.”
“다른 정보는?”
“거기까지는 아직 파악된 바가…….”
의자에 앉아 있던 길드장이 짧게 혀를 찼다.
“일단은 추적대 파견해서 지켜보고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보고할 것 없이 즉각 지원 요청해서 처리 해.”
“……알겠습니다.”
부하가 물러갔다.
‘새로운 랭커 따위, 누가 반겨 줄 것 같으냐? 어디 한번 살아남아 봐. 혹시 아나? 이 마르셀 길드장을 만나 뵙게 될지.’
아레스 길드의 길드장은 턱을 손으로 문지르며 웃음을 흘렸다.
* * *
식사가 끝났으니, 이제 움직일 차례다.
민성은 시스템 지도를 통해 주변에 업적 포인트를 받을 만한 사냥감들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랭커들이랑 맞부딪치고 싶은 심정이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만나게 될 놈들이었다.
미리 고여 있는 물이라면 한 번에 치우는 게 훨씬 편했다.
그리고 굳이 이쪽에서 찾아가지 않아도, 명성이 올라갈수록 놈들은 저절로 자신이라는 무덤 안으로 걸어들어 오게 되어 있었다.
늦장을 부릴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급하게 움직이는 것도 별로 효율적인 건 아니었다.
계단을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는 것이 정상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민성은 생각했다.
“어디로 가십니까?”
이호성이 물었다.
“포인트 쌓으러.”
민성은 심플하게 말하며, 숙소를 나섰다.
이호성과 바가지, 그리고 쏠이 그런 민성을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민성이 향하는 곳은 ‘뉴티’ 도시 부근에 있는 제 1던전이었다.
시스템 지도에는 던전에 대한 난이도가 붉은색 별표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제 1던전이 가장 높은 난이도인 별 7개짜리의 던전이었다.
높은 난이도의 던전인 만큼 빠르게 업적 포인트를 쌓고,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만큼 위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업적 포인트 선물 세례를 받았던 민성인 만큼, 이곳 뉴티 도시의 던전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여 7성급 던전인 제1 던전 앞에 민성의 일행은 도착했다.
던전 앞에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의 플레이어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최소 30명은 될 법한 숫자였다.
그들은 모두 값비싸 보이는 휘황찬란한 방어구들을 착용하고 있었으며, 모두 무기나 소모용 아이템을 체크 중에 있었다.
또한 그들의 어깨나 가슴과 같은 곳에는 길드 마크로 보이는 견장들이 하나씩 다 붙어 있었다.
길드 마크가 붙어 있지 않은 건, 오직 민성의 일행뿐이었다.
그래서일까?
노비스인 민성이 길드 마크도 달지 않고 던전 앞에 도착하자 플레이어들은 의아한 시선들을 쏟아 내듯 보냈다.
“엄청 쳐다보네요.”
이호성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민성은 무시하고, 던전의 입구가 어디 있는지부터 살폈다.
그리고 이내 던전의 입구를 쉽게 찾았다.
이번 던전은 꽤 특이하게 생긴, 처음 보는 유형의 던전 입구였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마법 언어가 새겨진, 뻥 뚫려 있는 문 하나만 달랑 세워져 있었다.
그 문이 던전으로 들어가는 게이트의 입구인 듯했다.
“저긴 어떻게 들어가는 거지?”
민성이 가까이 있는, 낯선 플레이어 한 명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플레이어는 민성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길드에 가입도 안 했고, 이상한 동물들 데리고 여길 들어가겠다고? 노비스 같은데. 길드 가입부터 해. 우리 길드는 어때?”
“필요 없어. 어떻게 들어가는지만 설명해라.”
민성과 대화를 나눈 플레이어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마음에 안 드네. 그 명령질 말이야.”
“던전 안으로 어떻게 들어가는 거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그렇게 어렵나?”
플레이어가 민성을 쏘아보았다.
주변의 분위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이호성은 곧 싸움이 일어날 것 같자 마른침을 삼켰다.
이호성이 보기에 민성이 아무리 강하다고는 해도 이 곳 베아트리체에서는 아직 노비스였다.
섣불리 싸움을 만드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못 되는 일이었다.
“헌터님. 가급적이면 지금 상황에서 분란을 조장하는 건 좋지가…….”
민성이 귓속말을 전해 오는 이호성을 손바닥으로 훅 밀어내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플레이어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수건으로 검을 닦고 있던 그 플레이어는 피식 웃으며 들고 있던 수건을 바닥에 툭 던졌다.
주변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위기는 마치 싸움을 구경하기 위한 파티장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환호를 보내고 싸움을 부추긴다.
“노비스인 것 같은데, 길드도 없으면서 꽤 하잖아?”
“남자다운데?”
“플레이어라면 그래야지.”
“노비스 파이팅!”
노골적인 비웃음이었다.
정말로 자신을 기대하고 던지는 말들 같지는 않았다.
그냥 주제 파악 못 하는 노비스가 잔뼈 굵은 길드 플레이어에게 당해 바닥을 뒹굴며 추한 꼴을 내보이기를 기대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민성은 그런 사실에 별달리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쓰레기 같은 놈들이라는 사실은 외려 안도감을 준다.
민성은 지금 미끼를 던진 거다.
낚시는 이미 시작된 후였다.
미끼를 물어, 싸움을 걸어오면 정당방위로 PK 플레이어를 제거함으로써 업적 포인트, 혹은 그 이상의 선물을 기대할 수도 있다.
또한 지금까지 꽤 굉장한 업적 포인트를 선물 받았고, 그 포인트를 온전히 사용했다.
그로 인해 얻은 마기의 힘으로 당장 이곳에 모여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을 쓸어버리는 데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물론 데이터 따위는 없는 근거 없는 자신만의 생각이자 감각이었지만, 마계에서 100년 이상을 전투로 굴러먹으며 살아온 민성이었다.
더불어 자신의 감각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를 믿어야만 결과를 도출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려면 그 자신감에는 이유가 필요하다.
민성은 자신에게 그 이유가 이미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럴 경우, 민성은 그 누구보다 과감해질 수 있었다.
민성은 검의 손잡이를 잡아 번쩍이는 날을 훑어보는 그를 보면서, 어서 미끼를 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상대는 민성이 기대했던 그 미끼를 고맙게도 아주 덥석 물어 주었다.
“교육이 좀 필요하겠군. 우리의 노비스에게.”
플레이어를 보며 민성은 콧방귀로 응대해 주었다.
“내가 볼 때는 아직 젖을 덜 뗀 것 같은데?”
민성의 도발에 플레이어의 눈에 살기가 배여 들었다.
주변의 분위기는 한껏 더 부풀어 올랐다.
재미있다는 듯 축제를 즐기는 듯한 놈들을 배경으로 두고서, 민성은 플레이어를 직시했다.
“피도 안 마른 게 가관이구나.”
민성은 감정이 없는 눈으로 플레이어를 보며 그가 선공을 해 오길 기다렸다.
플레이어의 검은 연검이었다.
연검은 탄성이 강한 재질로 두께를 아주 얇게 만든 유연함을 가진 무기다.
엄청 잘 휘어지는 만큼 궤도를 읽기 힘든, 변화무쌍한 공격이 가능한 무기였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우리 신입 노비스에게 선배로서 한 수 가르쳐 주지.”
플레이어의 눈이 요사스럽게 번쩍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공격을 시작했다.
변화가 많은 연검을 쓰는 만큼, 검은 마치 뱀의 움직임처럼 빠르게 전개되었다.
오러가 사방으로 번지듯 퍼져 나간다.
민성은 오러가 맺힌 그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하면서 핏- 하고 짧게 웃었다.
오만하다.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자신을 체크하려 하고 있어.
그건 곧 방심을 하고 있다는 얘기로 직결된다.
민성의 눈에는 노출된 플레이어의 약점이 보였다.
선공을 양보했으니, 이 정도면 예의를 다 한 셈이다.
민성은 템창에서 궁니르도 꺼내지 않고 맨손으로 싸울 작정이었다.
전신에서 마기가 어서 자신을 내보내 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민성은 노출된 그의 약점을 향해 마기가 실린 탄(彈)을 쏘았다.
마탄이 마치 총알처럼 날아가 플레이어의 허벅지에 틀어박혔다.
퍽! 소리가 나면서 플레이어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고 자세는 무너졌으며 이내 그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민성은 적당히 봐줄 생각이 없었다.
업적 포인트를 신경 쓰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베아트리체에서 단체를 이루고 있는 길드를 상대로 몸을 사리거나, 머리를 굴릴 생각 따위는 없었다.
몇 명이 덤비든, 몇 십, 몇 백 명이 덤비든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려는 놈들이 있다면 모조리 씹어 삼킬 것이다.
민성의 눈이 유령처럼 번쩍였다.
플레이어는 그런 민성의 안광에 의해 일순 몸이 굳어 버리는 듯했다.
죽음이 목전에 드리웠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눈치챈 것이리라.
민성의 주먹이 마기의 빛을 뿌리며 날아들었다.
플레이어는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죽음에 대한 공포로 몸이 꽁꽁 묶여 있었다.
방어가 가능할 리 없었다.
이미 민성이 쏘아 보낸 마탄에 당해 버린 후여서, 반격은커녕 방어할 틈도 없었고, 무엇보다 공포가 전신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였다.
무력화된 플레이어를 향해 민성의 주먹이 안면을 강타했다.
퍼엉-!
마치 가죽이 크게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소리가 난 만큼 민성의 주먹에 맞은 플레이어의 모습은 처참했다.
바닥에 등을 떨어트리며 풀썩 쓰러진 플레이어는 머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사이 민성은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굉장한데……?
민성은 자신의 힘에 자신이 놀라고 말았다.
주신들의 업적 포인트를 통해 획득하게 된 마기의 양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힘이었다.
꿀꺽-
강한 힘은 중독적이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은 표출을 원한다.
지금 당장 여기 던전 앞에 모여든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자신이 가진 힘을 시험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마기는 마치 마르지 않는 대해의 바다처럼이나 망망대해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힘에 취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일이라는 건, 이미 마계에서 경험한 바가 있었던 일이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엄격하게 관리하여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끔찍한 재앙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민성이었다.
민성은 빠르게 뛰는 심장과 폭발할 것처럼 충동적인 마기의 힘을 위해 제어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거칠어져 버린 숨을 가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