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11화>
민성은 멋진 디잔인으로 업그레이드를 마친 상점창의 메뉴 목록을 확인해 보았다.
최고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한 만큼, 업적 포인트로 구매 가능한 목록은 사치스러울 정도로 화려했다.
그리고 상점창 안에서, 민성의 관심을 받은 건 딱 두 가지였다.
[전설급 마기 출력+1 (하, 중, 상, 최상 중 무작위로 획득 가능) / +1당 업적 포인트 1,000 소모]
[기술 : (무작위) 하, 중, 상, 최상, 전설, 신화 기술 중 하나를 습득. 업적 포인트 +50,000 소모]
민성은 두 가지의 목록을 보면서 잠깐의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복잡하게 이런 저런 여러 가지 기술들을 사고 싶지 않았다.
심플하게 주는 대로 쓰는 게 성미에 맞았다.
민성은 +50,000짜리 무작위 기술서 하나를 구매하고, 나머지 업적 포인트는 ‘전설급 마기 출력+1’을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승인을 터치하자 ‘구매를 완료했습니다.’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남은 업적 포인트는 +900입니다.>
민성은 곧바로 인벤토리를 확인해 보았다.
정확히 상점에서 구매한 다음 두 개의 아이템이 들어 있었다.
[전설급 마기 출력+5]
[무작위 기술서 +1]
민성이 ‘전설급 마기 출력+5’ 아이템을 터치하여 바로 사용하려 하자, 그 직전.
[강민성 플레이어에게 업적 포인트를 선물한 주신들이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주신들이 신중을 기할 것을 충고합니다.]
[주신들의 시청자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시청자 수는 1200. 즐겨찾기는 ☆518입니다.]
민성은 코웃음을 쳤다.
완전 도박꾼들이 따로 없군.
이 엄청난 업적 포인트를 무작위 템을 구입한 자신도 딱히 할 말은 없는 입장이지만.
승인과 거절을 묻는 시스템 문구가 보였다.
민성은 빠르게 승인을 터치했다.
[전설급 마기 출력+5를 모두 오픈합니다.]
[최상150x2, 상급100x1, 하급10x3으로 총 획득한 마기는 +430입니다.]
[강민성 플레이어에게 업적 포인트를 선물한 주신들이 즐거워합니다.]
[마신들의 왕 벨드가 크게 환호합니다.]
[즐겨찾기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민성은 시스템 문구를 거의 무시하다시피 하고 곧바로 손가락을 다음 아이템인 ‘무작위 기술서’로 향했다.
[주신들이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강민성 플레이어를 지켜보는 주신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 중입니다.]
민성은 시스템창의 문구를 보면서 생각했다.
자신을 지켜보는 주신들이 많을수록 많은 업적 포인트를 선물 받을 수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주신들의 수를 늘리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이었다.
민성은 기술서를 터치하려던 걸 멈추고 팔짱을 낀 채, 템창 안에 들어 있는 무작위 기술서를 빤히 응시하며 지켜보았다.
그러자 예상대로였다.
[주신들이 의아해합니다.]
[대부분의 주신들이 플레이어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주신들의 시청수가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주신들이 답답해하기 시작합니다.]
그 글이 보였을 때, 민성은 이제 그만 아이템을 사용해야 할 때라고 판단하고 ‘무작위 기술서’를 터치했다.
승인과 거절을 묻는 창이 나타났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어 볼까?
민성이 고민하는 척을 하자 주신들은 애가 닳았다.
[주신들이 어서 기술서를 사용하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주신들이 총 업적 포인트 +3,000을 선물했습니다.]
[주신들이 어서 서두르기를 바랍니다.]
민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신이나 되는 작자들이 인간만큼이나 단순했다.
조금 시간을 끄는 것만으로 결국 업적 포인트를 헌납하다니.
우습군.
민성은 픽 웃으며 <승인>을 터치했다.
그러자 파란빛이 눈을 멀게 할 것처럼이나 강렬하게 번쩍였다.
이윽고 그 빛이 사라지고, 허공에 떠오른 하나의 아이템이 보였다.
[‘카운터 배리어’를 획득했습니다.]
카운터 배리어?
민성은 아이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기술서>를 터치해 보았다.
카운터 배리어 : 상대의 궁극기 능력 중 하나를 역으로 되돌려 준다.
아아. 그런 거였군.
덤덤한 민성의 반응과 주신들의 반응은 극히 대조적이었다.
[주신들이 플레이어의 행운을 믿을 수 없어 합니다.]
[마신들의 왕 벨드가 춤을 추며 환호합니다.]
[주신들이 플레이어의 행운에 미소를 보냅니다.]
[주신들이 플레이어에게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합니다.]
근데 이거 좀 끌 수 없나?
민성은 그놈의 주신 주신 얘기하는 게 지긋지긋해서 인터페이스 설정으로 이 문구를 차단할 수는 없는지 찾아보았지만,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민성은 짧게 혀를 차며, 기술서를 터치했다.
[축하합니다. 기술서 카운터 배리어를 습득했습니다.]
베아트리체 세계에서 구한 기술서의 경우, 머릿속으로 스킬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 강하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편하게 사용이 가능했다.
민성이 상점창을 닫았을 때, 때마침 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울렸다.
문이 열리고, 고양이 귀를 하고 있는 묘인족이 머리를 빼꼼 안으로 내밀었다.
“식사 준비 다 됐다고 내려오시래요.”
묘인족이 경계와 부끄러움이 섞인 눈길로 민성을 보며 말했다.
“곧 내려간다고 전해.”
“네!”
민첩하고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 묘인족이 사라지고, 민성은 숨을 길게 가다듬었다.
만약 아이리스라는 나무를 잘라 내지 못하고, 지구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민성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상상할 필요 없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게 만들지 않을 거니까.
민성은 템창을 끄고, 침대에 걸쳐 놓았던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 * *
뒤뜰에 도착하자 이호성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자신감만큼이나 맛있는 냄새가 났다.
“이제 헌터 그만두고 요리사 해도 되겠는데요? 하하.”
이호성이 너스레를 떨었다.
민성은 무시하고 이호성이 요리한 메인 메뉴를 가까이서 두 눈으로 확인했다.
이호성이 메인으로 만든 한식은 따뜻해 보이는 궁중 떡갈비였다.
얼핏 봐도 절대 냉동으로 되어 있던 떡갈비를 구운 것이 아니다.
윤기가 좔좔 흐르고, 촘촘하면서도 한없이 부드러워 보이는 떡갈비의 모습은 도저히 먹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놀랍고, 훌륭하군.”
민성이 떡갈비에 시선을 떼지 못하며 진심으로 감탄하여 말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이호성이 왜 자신만만했는지 아직 먹어 보지는 않았지만, 보는 것과 냄새만으로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떡갈비 주변으로는 곁들이 한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밝은 색을 띠고 있는 새빨간 김치와 같은 각종 반찬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메인 음식이 등장했다.
메인 음식은 단순히 떡갈비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떡갈비와 가까운 곳에 그릇 하나가 있었다.
그 그릇 안에는 면이 있다.
“네. 바로 비빔 밀면입니다!”
이호성이 당당하게 말했다.
민성은 가슴이 쿵 하고 충격이 오는 것만 같았다.
비빔 밀면과 떡갈비의 조합?
글쎄.
처음에는 다소 안 어울리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보면 볼수록 침샘이 폭발하고 뱃속에서는 용이 몸을 비트는 것만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당장 식기 전에 먹지 않으면 안 된다.
민성은 빠르게, 젓가락을 들고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이호성이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지켜보고 있던 묘인족과 엘프에게도 먹어 보라고 손짓 했다.
“많이 준비했으니까. 마음껏들 드세요.”
이호성의 말에 묘인족과 엘프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민성의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 *
“맛있어!”
“마, 맛있어요!”
떡갈비를 먹어 본 묘인족과 엘프가 저마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묘인족은 귀를 쫑긋 세우며, 고개를 높게 치켜들고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엘프는 경악한 듯 손으로 입을 가리며 떡갈비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들처럼 떡갈비를 먹어 본 민성 역시 절로 그녀들의 반응을 인정하고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맛있다.
고기임에도 불구하고 따듯하고 부드러우며 입안에서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게 녹아내린다.
민성은 긴장한 시선으로 비빔 밀면을 보았다.
아주 작은 육수 위로 새하얀 면이 있고, 그 면을 마치 모자처럼 덮고 있는 빨간 소스와 브로치와도 같은 삶은 계란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너무 강하다.
이번엔 정말 너무 강해.
민성은 짧게 고개를 내젓고서 마음을 다잡고 젓가락을 비빔 밀면으로 옮겼다.
젓가락으로 면을 풀어헤치면서 빨간 양념이 속속 잘 배여 들도록 비볐다.
이내 비빔을 완성시킨 민성은 면을 쭉 들어 후루룩! 흡입했다.
그와 동시에 마치 매의 눈빛으로 떡갈비를 향해 젓가락을 옮겼다.
그리고 밀면과 떡갈비를 함께 입에 넣어 씹게 된 민성은 눈을 질끈 감고 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비빔 밀면과 떡갈비의 조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모니.
하모니라는 말은 지금과 같을 때 쓰는 말이 아닐까?
“헌터님,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호성이 숨겨 둔 메뉴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뚝배기 안에서 팔팔 끓고 있는 소고기 국밥이었다.
그 소고기 국밥을 보는 민성의 눈은 커다랗게 변해 있었다.
민성은 순간 너무 좋아서 이호성의 멱살을 잡을 뻔했다.
왜 이런 깜짝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냐고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침착하게 이성을 되찾았다.
“내 앞에 내려놔.”
민성이 마치 초조한 것처럼 손가락을 아래로 흔들었다.
진한 소고기 국밥의 국물에는 고추기름이 동동 떠 있고, 먹기 좋게 많지 않은, 딱 알맞은 양의 콩나물들은 뇌를 팽팽하게 당겨 오게끔 만들었다.
거기다 군데군데 자신의 존재감을 표출하고 있는 소고기는 민성이 가진 이성의 끈을 잘라 내기에 충분했다.
민성은 곧바로 숟가락을 뻗었다.
소고기 건더기와 콩나물과 맛있게 푹 익혀서 젖어 있는 파를 한 번에 올려서 입으로 후루룩! 흡입했다.
민성은 너무 맛있어서 황홀함에 인상을 팍 썼다.
인상을 쓰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그대로 기절해 버릴 것 같은 맛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신선한 조합이라니.
“최고다, 이호성.”
민성은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다시 비빔 밀면과 떡갈비의 조합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다시 미치도록 뜨거운 뚝배기의 온도를 콩나물과 파, 그리고 소고기와 더불어 진한 소고기국 육수의 깊이를 한 몸에 쏟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