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10화>
민성은 차가운 눈으로 바닥에 힘없이 풀썩 쓰러진 크로스 남작을 내려다보다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일행을 돌아보았다.
“묘인족과 엘프를 워프 게이트 앞으로 데려와라.”
민성이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이호성이 마른침을 삼키며 꾸벅 머리를 조아렸다.
* * *
민성은 바가지와 쏠을 데리고, 워프 게이트 앞에 도착해 이호성이 묘인족과 엘프를 데려오기를 기다렸다.
크로스 남작의 승인 없이 임의로 사용하려 했지만, 워프 게이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작동되지 않았다.
이미 크로스 남작이 죽어 버렸고, 성 안에 남아있는 베아트리체인들은 모두 민성을 두려워해 떠난 이후였다.
결국 엘프와 묘인족에게 워프 게이트의 사용법에 대해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이호성이 묘인족과 엘프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녀들은 워프 게이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크로스 남작이 가진 워프 게이트 열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성은 쏠에게 워프 게이트 열쇠를 찾아오라고 명령했고, 쏠은 그 명령을 이행했다.
웬만한 헌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스피드를 가진 쏠이었기 때문에, 워프 게이트 열쇠를 찾아오는 데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았다.
“저희도 함께 갈 수 없을까요?”
엘프가 묘인족의 손을 잡은 채로, 절박한 눈빛으로 말했다.
“굳이 따라오려는 이유가 뭐야?”
“크로스 남작이 죽었고, 당신들이 떠나면 그 책임을 우리는 피할 수 없을 거예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크로스 남작이 죽었다는 사실은 상부 길드로 전해지게 될 것이고, 그들이 관계자로 볼 수 있는 묘인족과 엘프를 얌전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민성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기도 했고, 그녀들은 길을 찾는 능력이 뛰어나니 데리고 다니면 꽤 쓸 만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당분간이다.”
민성의 말에 엘프와 묘인족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즐거워했다.
민성은 짧게 한숨 쉬며, 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쏠은 오래 걸리지 않아 열쇠를 찾아왔다.
평범해 보이는 구리 열쇠였다.
그 열쇠를 워프가 가능한 포탈 게이트 하단부 쪽 열쇠 구멍에 넣고 돌리자, 쿠궁! 하는 이펙트 음향 사운드와 함께 콰지직! 하고 파란 포탈 게이트가 생겨났다.
민성의 일행과 묘인족, 그리고 엘프는 머뭇거리거나 기다릴 것 없이 곧장 포탈 게이트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 * *
마신들의 왕 ‘벨드’는 수정체를 통해 ‘인간계’의 현 분위기를 보고 일그러진 얼굴을 펴지 못했다.
인간계에 아이리스 나무가 생겨나면서, 벨드의 목표였던 인간계가 불분명한 상태에 빠져 들었기 때문이다.
검은 학살자가 베아트리체의 세계로 넘어가 있는 지금이 인간계를 정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죽어 가고 있는 땅인 인간계를 점령해 봐야 점령의 의미가 없었다.
외려 베아트리체에서 자신의 별을 지킨 랭킹 1위의 세계를 찾아 점령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베아트리체라는 세계가 오픈된 이상, 자신 역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신계에서 마계는 가장 낮은 서열의 위치였다.
마계는 오래전부터 신계 모임에는 낄 수도 없는, 마치 들개 취급이나 받고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 상황을 역전하기 위해서는 자신 역시 이번 베아트리체 세계에 관여할 필요가 있었다.
비록 신계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기에 플레이어로서 참가할 수는 없지만, 배팅은 가능했다.
‘베아트리체’는 신들에게 있어 거대한 도박판이었다.
자신들이 가진 포인트를 투자하여, 결과를 맺으면 권능을 얻을 수 있다.
실패는 곧 다시 포인트를 모아야만 하는 긴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때문에 포인트 투자는 신중해야 한다.
고랭크의 플레이어에게 포인트를 투자하면 성장이 크지 않기 때문에 큰 결실을 맺을 수 없다.
하지만 노비스나 아직 랭크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플레이어에게 포인트를 투자하면, 대박이 난다.
물론 반대로 실패하면 쪽박이지만, 원래 베아트리체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체계.
마신들의 왕 벨드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차피 자신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최하위인 마계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도박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도박에는 최고의 배당을 자랑하는 플레이어가 있다.
바로 검은 학살자.
그라면, 자신에게 수많은 권능을 물어다 줄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그동안 마계에서 모은 모든 포인트를 너에게 투자하겠다. 그리고 그 권능으로 너를 파괴해 주겠어.’
마신들의 왕 벨드는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손톱을 긁어 공간을 연 뒤에 베아트리체의 도박판으로 휙! 뛰어 들었다.
* * *
[마신들의 왕 벨드가 업적 포인트 +10,000을 선물합니다.]
[마신들의 왕 벨드의 업적 포인트 선물에 수많은 주신들이 깜짝 놀랍니다.]
[주신들이 마신들의 왕 벨드에게 코웃음을 치며 비웃습니다.]
[마신들의 왕 벨드가 업적 포인트 +10,000을 선물합니다.]
[주신들이 마신들의 왕 벨드의 계속된 업적 포인트 선물에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강민성 플레이어가 주신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주신들의 즐겨찾기가 ☆500을 돌파했습니다.]
[명성이 +100 오릅니다.]
[즐겨찾기 특별 보상으로 모든 스탯이 +5 오릅니다.]
[상점이 업그레이드됩니다.]
[마신들의 왕 벨드를 따라 주신들의 업적 포인트 선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집계 중.]
[200여 주신들이 선물한 총 업적 포인트는 +44,800입니다.]
[랭크 최하위권에으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습니다.]
민성은 끊임없이 올라와 버린 시스템 메시지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뱅가드 프론티어에서 워프 포탈을 타고 뉴티 도시로 넘어와 숙소를 찾던 중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시스템창이 뭔가 싶었다.
그런데 그 발단의 시작이 마신들의 왕 벨드라니,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주신들의 놀음판이 어떤 것인지 민성은 유추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악감정이 깊을 벨드가 업적 포인트를 선물하는 것만 봐도 뻔한 일이었다.
탐욕스러움의 끝을 달리는 벨드가 순수한 의도로 업적 포인트를 선물할 리가 없었다.
이렇든 저렇든 벨드 덕분에 성장 속도가 눈부시게 빨라진 것만은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거부할 수도 없고, 당장 베아트리체에서 도움이 될 일이니 고맙게 쓰고 돌려주면 된다.
죽음과 소멸로.
민성은 무한하게 차오르고 있는 에너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마기는 넘치다 못해 파도가 자신을 삼키는 듯했다.
흘러넘치는 힘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을 정도다.
이런 갑작스러운 힘은 처음이라, 민성도 솔직히 조금 놀랄 정도였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업적 포인트를 사용한다면 대체 얼마나 강해질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민성의 변화는 민성뿐만이 아니라 이호성과 바가지와 쏠, 그리고 묘인족과 엘프까지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헌터님, 이게 무슨……?!”
일행의 눈에 민성은 마치 태양과도 같았다.
민성의 성장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걸 모르는 그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단순한 경악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민성은 지금 베아트리체 안에서 절대적 영역을 굳혀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랭킹을 향한 비상의 시작이었다.
* * *
뉴티 도시는 첫 도시인 뱅가드 프론티어와 달리 생기와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곳곳에 플레이어로 보이는 장비를 착용한 이들도 있었고, 기본적으로 베아트리체인들의 숫자가 굉장히 많았다.
야채상부터 시작해 노점상들이 줄을 잇듯 이어져 있었다.
뉴티 도시는 이제 막 노비스 티를 벗은 플레이어들이 많은 만큼 장사를 하는 베아트리체인 인구가 많은 편인 듯했다.
그런 그들을 구경하고 스쳐 지나가면서 숙소 하나를 찾아 들어갔다.
당분간 머물 방을 계약하고, 민성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업적 포인트를 통해 상점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숙소의 식당을 찾아가 메뉴판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호성은 민성과 함께 나란히 서서 메뉴판을 읽었다.
메뉴판의 내용은 묘인족과 엘프의 도움으로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메뉴판]
- 양고기 스튜
- 안심 스테이크
- 치즈 샐러드
- 고구마튀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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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은 줄줄이 나와 있는 메뉴판을 보면서 얼굴을 굳혔다.
이호성은 그런 민성의 표정을 보고 민성의 심리 상태를 완벽히 파악해 냈다.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군요. 제가 한식으로 준비해 드릴까요?”
“어디서?”
민성이 이호성을 보며 물었다.
“여기에 조리를 할 만한 곳이 있는지 제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이호성이 잽싸게 움직였다.
그사이, 민성은 가까이에 있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아 이호성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이호성은 오래 걸리지 않아 돌아왔고,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답변을 내어 놓았다.
“숙소 뒤뜰을 사용해도 된답니다. 요리 준비가 끝나는 대로, 모시겠습니다.”
민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수고.”
민성은 그 말을 남기고 계단을 밟으며 방으로 올라갔다.
이호성은 뒤뜰로 향했고, 묘인족과 엘프는 궁금했는지 그런 이호성을 따라나섰다.
바가지와 쏠도 이호성을 따라갔다.
* * *
뒤뜰에 위치한 공터는 꽤 넓은 편이었고, 그늘이 져 있어 조금 어둡긴 했지만, 음식을 준비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이호성은 템창에서 미리 구비해 둔 요리용 테이블을 꺼냈다.
긴 테이블이 펼쳐지자 요리하기에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묘인족과 엘프는 신기한 듯 그런 이호성을 반짝거리는 눈으로 지켜보았다.
이호성은 이계의 종족인 두 미녀가 자신을 호감 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자 어쩐지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기가 막힌 음식을 만들어 주지.”
이호성은 장웅 셰프가 정리한 요리 레시피를 펼친 뒤, 장인 정신을 가슴에 아로새기며 음식 준비를 시작했다.
* * *
숙소 뒤뜰에서 요리 준비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사이 민성은 인터페이스 시스템을 통해 <상점>을 열었다.
현재 보유 중인 업적 포인트는 무려 +65,900이었다.
상점을 최고 단계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드는 업적 포인트 비용은 +10,000포인트.
업적 포인트는 충분히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민성은 고민 없이, 과감하게 상점 업그레이드를 터치했다.
일순 하얀 빛이 번쩍였고, 단순한 창에 불과했던 상점창은 드래곤 문양이 테두리를 감싸고 있는 멋진 상점창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