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05화>
[출력 / ‘율리스’ 플레이어의 스킬 중 하나를 선택해주세요. ]
민성은 일말의 고민 없이 ‘출력’을 선택했다.
시답잖은 율리스의 잔기술 따위를 갖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출력을 선택했습니다.]
[마기의 출력이 +1 증가합니다.]
[모든 스탯이 +1 올랐습니다.]
[주신들의 즐겨찾기가 ☆10로 증가하였습니다!]
[메르스 주신이 300의 업적 포인트를 선물했습니다.]
[(TIP)업적 포인트를 통해 상점에서 아이템이나 스킬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민성은 자신의 팔과 몸을 내려다보았다.
새하얀 연기와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민성은 느꼈다.
자신에게서 엄청난 활력과 힘이 흘러넘치는 것을.
고작해야 스탯이 +1 올랐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체감이 완전히 달라졌다.
민성은 이어서 죽은 율리스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어째서, 이토록이나 PK에 목숨을 거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이 세상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많았기에 무턱대고 사람들을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간 예상하지 못했던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거나, 애초에 아이리스 나무를 제거하는 것에 대한 목표가 희미해질 수도 있었다.
힘에 취하면 안 된다.
냉철한 이성을 유지해야만 한다.
민성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옆을 보았다.
엘프와 묘인족.
두 명의 여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둘 모두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녀들은 무서워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볼 뿐, 도망치거나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대로 얼어 있었다.
“왜 함께 싸우지 않는 거지? 동료 아니었나?”
민성이 그녀들을 보며 물었다.
“우리는…… 그를 이길 수 없어서 따랐을 뿐이에요.”
작은 키의 묘인족 여자가 말했다.
엘프가 자신 역시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베아트리체는 각 별에서 가장 강한 자들만이 모이는 곳이라고 하던데.”
민성의 시선이 묘인족과 엘프를 번갈아 훑었다.
“너희들은 뭐야?”
민성이 물었다.
그 질문에 엘프가 입을 열었다.
“베아트리체는 원래 우리들의 세계였어요. 당신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민성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존재하는 별을 주신들이 무대로 삼은 모양이었다.
그 말인 즉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나머지는 모두 베아트리체인이었다.
“저 마을은 너희들이 살던 곳이었나?”
묘인족과 엘프가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뛰어난 연기일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어차피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시간이다.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고, 아이리스 나무는 지구의 자원을 빨아먹으며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저기……. 염치없게 들리겠지만. 다음 목적지까지만 같이 동행할 수 없을까요?”
엘프가 겁먹은 사슴 같은 표정으로 부탁을 해 왔다.
그때, 때마침 이호성과 바가지, 그리고 쏠이 도착했다.
“헌터님이 무사하신 것 같아서 이쪽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누구예요?”
이호성이 인형보다 인형처럼 생긴 엘프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순간.
띠링-
[메인 퀘스트 #3 마을을 잃어버린 엘프와 묘인족에게 안전한 거처를 마련해 줄 것.]
“아란시아 마을에 살던 이들이다. 퀘스트가 떴어.”
“아, 네 저도 방금 퀘스트 확인했습니다. 헌터님이 저랑 파티라서 저한테도 퀘스트가 떠요.”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곤, 시스템 지도를 확인했다.
이 근처에 도시로 표기되어 있는 곳이 있었다.
도시의 이름은 뱅가드 프론티아.
약, 1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뱅가드 프론티아로 간다.”
민성이 그렇게 말하며 앞장섰고, 엘프와 묘인족이 아주 조금은 안도하며, 눈치를 보면서 민성의 일행을 뒤따랐다.
* * *
뱅가드 프론티아라는 첫 번째 도시로 가면서 민성의 일행은 엘프와 묘인족에게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들의 말에 의하면 뱅가드 프론티아의 주변에는 3개의 던전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보통 베아트리체 사람들이 노비스를 상대로 물건을 사고파는 상업 도시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노비스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지금은 비교적 도시 자체가 한산하다는 것이 그녀들의 설명이었다.
또한 미처 요정 아린에게 물어보지 못했던 것들을 그녀들에게서 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각자 고향의 별과 이곳 베아트리체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요. 이곳에서의 한 달은 플레이어들의 고향에서 한 시간과 같다고 들었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생각이 드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그럼 헌터님, 로그아웃을 통해서 지구로 돌아가면, 장을 보자마자 다시 이곳 베아트리체로 올라와야겠는데요? 현실에서는 시간이 빨리 흐르니까, 당분간 베아트리체에서 식사를 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호성의 말에 민성은 동의했다.
마계처럼 시간의 흐름이 달라, 현실의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는 건 희소식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사이, 민성의 일행은 그녀들에게서 각 도시에서 로그아웃을 해야 한다는 팁 역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야만 로그아웃 후에 서로를 찾기 편하며, 도시의 워프 게이트를 통해 다른 도시로 넘어갈 수 있었다.
때문에 도시를 거점으로 잡는 습관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도시 ‘뱅가드 프론티아’가 멀리서 보였다.
마음먹고 이동하면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베아트리체와 지구가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또 퀘스트상 그녀들을 안전하게 도시로 데려다 놔야만 퀘스트를 완수하여 업적 포인트를 받을 수 있기에, 이동 속도와 보폭을 맞춰 줘야만 했다.
하지만 엘프와 묘인족은 기본적으로 이동 능력이 좋아서, 이동 속도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지금의 속도라면 오래 걸리지 않아 목적지인 뱅가드 프론티아에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플레이어 중에 랭커들은 랭커라는 걸 알 수 있게, 표시가 되어 있거나 티가 나나요?”
이호성이 호기심 많은 표정으로 엘프에게 물었다.
엘프는 거기까지는 잘 알지 못한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은 베아트리체에 들어온 플레이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세세히는 알지 못했다.
때문에 대화는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걷는 속도를 조금씩이지만 민성이 올렸고, 모여 있는 인원 모두 뱅가드 프론티아로 가기 위해 말없이 걸음을 계속 옮겨 갔다.
꽤 길게 이어진 침묵을 깬 건 이번에도 이호성이었다.
“헌터님.”
“왜?”
“도시로 가게 되면, 바로 로그아웃을 해서 제가 장부터 봐 오는 게 어떨까요? 도시에 있을 때 장을 봐야 할 것 같은데.”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신이라는 분들도 참 재밌게 사네요. 인간을 TV 보듯 하질 않나, 게임 시스템을 넣지를 않나.”
이호성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뭐 그러니까, 헌터라는 직업도 생겨난 거겠지만.”
이호성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첫 번째 도시 뱅가드 프론티아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숲을 벗어나자 사막 길과 비슷한 땅이 나타났고, 두 명의 경비병이 서 있는 것도 보이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체라는 세계로 넘어온 후, 처음으로 입성하게 될 도시였다.
* * *
“멈추시오.”
두 명의 경비병들이 기다란 창으로 X자를 만들며 막아섰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그들은 군기가 꽉 찬 모습들이었다.
“노비스들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거기 엘프와 묘인족은 왜 뱅가드 프론티아를 찾은 겁니까?”
우측에 서 있는 경비병이 딱딱하고 강한 어조로 물었다.
“플레이어에 의해, 마을을 잃었어요. 저희는 아란시아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들입니다.”
좌측에 선 경비병이 우측의 경비병에게 귓속말을 했다.
고개를 끄덕인 우측의 경비병이 이번엔 민성과 이호성 그리고 바가지와 쏠을 눈에 똑똑히 담았다.
“당신들은 베아트리체 세계로 처음 들어온 노비스들입니까?”
우측 경비병이 물었다.
이호성이 그렇다고 대답했고, 경비병은 절차에 따라, 시스템 인터페이스를 이용해 ‘노비스 등록’을 하라고 말했다.
노비스 등록이란 일종의 신분증이었고, 그것은 인터페이스에 있는 시스템을 통해 등록이 가능했다.
일행은 경비병의 도움으로, 설정 모드를 찾아 베아트리체 세계에서 신분증으로 쓰일 노비스 카드를 만들어 등록했다.
노비스 카드는 간단히 이름과 어느 별에서 왔는지와 같은 간단한 신상 명세서였다.
그것을 들고 마치 보안 검색대와 같은 장치를 통과함으로써 사람들은 노비스임을 확인하고 도시 안으로 입성할 수 있는 듯했다.
꽤 까다로운 절차까지는 아니었다.
노비스 등록을 하고, 도시로 들어가기까지 5분도 걸리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으니까.
“베아트리체에 온 것을 환영하오.”
경비병은 무뚝뚝한 어조의 환영 인사를 받으며, 민성의 일행은 도시 뱅가드 프론티아로 입성했다.
* * *
뱅가드 프론티아 도시 내의 풍경은 묘인족과 엘프의 말대로 한산하다는 것이 딱 맞아떨어졌다.
노비스를 상대로 장사하는 가게가 열려 있을 뿐, 넓은 크기에 비해 플레이어나 도시 안에서 살고 있는 베아트리체 사람들도 아주 간간히 보일 뿐이었다.
“뭔 도시가 엄청 썰렁하네.”
이호성이 그렇게 말했을 때, 띠링 하고 시스템 알림 소리가 났다.
[메인 퀘스트#3 클리어]
[보상으로 50의 업적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현재의 업적 포인트는 +700. 앞으로 300포인트만 더 모으면, 상점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업적 포인트를 획득했다는 말만 나왔지, 다음의 연계 퀘스트는 나타나지 않았다.
“저희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율리스라는 플레이어에게 억지로 끌려다닐 뻔했는데. 덕분에 자유를 얻었습니다.”
묘인족과 엘프가 감사의 인사를 전해 왔다.
“퀘스트 때문이었으니까 고마워할 필요 없어.”
민성이 무뚝뚝하게 말했지만, 묘인족과 엘프들이 민성을 보는 눈빛은 여전히 호의적이었고 감사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당장 다음 도시로 이동할 계획이 아니시라면, 제가 숙소를 소개시켜 드릴 수 있는데 안내해 드릴까요?”
엘프가 정중한 태도로 민성을 보며 물었다.
이호성이 어떻게 할 건지 의중을 묻는 눈빛을 민성에게 보냈다.
“숙소로 갔다가, 이호성 넌 위치만 확인하고, 바로 장 봐 와.”
“알겠습니다.”
민성이 가겠다는 뜻을 밝히자 엘프와 묘인족은 함께 밝은 미소를 지었다.
순수한 태도였고,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소개하는 숙소로 가서 자리를 잡는 건 나쁠 게 없었다.
앞장서는 엘프와 묘인족을 따라 민성의 일행은 숙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