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204화>
“인사드립니다. 저는 페르시스 왕국의 왕자, 율리스입니다. 아, 물론 페르시스 왕국이라는 건 이곳 베아트리체 세계가 아닌, 저의 고향을 의미하는 것이죠.”
민성은 관심 없는 눈길로 자신을 율리스라고 소개한 미소년을 보며 궁니르의 창대를 고쳐 잡았다.
“아란시아 마을을 약탈한 게 너지?”
민성이 무정한 눈길로 율리스를 직시하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는 순순히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어차피 맞붙을 거라면, 처음 봤을 때부터 칼을 들었으면 됐을 텐데. 이렇게 기다렸다는 건…….”
율리스가 선한 얼굴로 긴 민소를 지었다.
“우리는 노비스 사냥꾼이거든요. 당신이 업적 포인트를 하나라도 더 먹었을 때 처치를 해야, 더 많은 업적 포인트를 먹을 수 있으니까.”
율리스는 자신만만했다.
그는 지금, 비밀이 없었다.
“약탈이든 살인이든. 그런 짓엔 명성에 문제가 될 텐데.”
율리스가 후후 하며 웃었다.
“역시 노비스라 그런지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군요. 요정에게 설명을 듣지 못했나요? 주신들이 이 세계를 만든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주에 있어 쓰레기 같은 별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서죠. 결국 쓰레기를 제거하고 최고인 강자만을 남기겠다. 그런는 뜻이니, 우리가 그 증명을 보여야 겠죠.”
율리스가 느슨한 눈으로 민성을 보며 말했다.
“그건 네 생각이야, 아니면 베아트리체의 룰이야?”
“제 생각이 곧 베아트리체의 룰이 되게끔 만들 겁니다. 당신은 그 과정 속 일부가 될 거고요.”
“아란시아 마을을 저렇게 만든 건 노비스를 사냥하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었다는 거고?”
율리스가 웃었다.
“문제가 되나요?”
민성은 짧게 한숨 쉬었다.
“문제가 될 건 없지.”
“그런데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둡죠? 두렵나요?”
율리스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민성의 표정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려 애쓰며 웃었다.
“그냥 배가 좀 고파서.”
“……뭐라고요?”
예상치 못했던 대답인 듯 율리스가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사이 민성은 공격을 준비했다.
베아트리체라는 세계는 하나의 별에서 최고의 강자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
때문에 민성은 그의 수준이 궁금했다.
붙어 보면 알 일이지.
민성은 율리스에게 걸어갔다.
율리스는 엷게 미소 지으며, 엘프와 묘인족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손짓으로 지시한 뒤, 얇고 긴 검신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고, 어깨는 당당하게 폈으며, 눈빛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기본적으로 베아트리체라는 세계는 최고의 강자들만이 모이는 곳.
때문에 민성은 방심하지 않고,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페르시스 왕국의 왕자라.
생긴 건 샌님인데.
마기를 흔적도 없이 흘려보낸 건 사실 꽤 인상적이었다.
거리를 좁힌 민성이 먼저 선공을 준비했다.
* * *
율리스는 다가오고 있는 민성을 보면서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노비스를 사냥한 지 벌써 2달이 지났다.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자신들도 노비스라고 소개한 건 거짓말이었다.
이 베아트리체라는 세계는 최고의 강자들이 모여, 성장하여 랭킹 순위를 다투는 곳.
그런 곳에서, 급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PK(Player Kill)를 통해 상대의 업적 포인트를 뺏어 와 성장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어리바리한 노비스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동맹을 맺는 척하다 배신을 했고, 그런 식으로 몇 번 업적 포인트를 뺏어 먹다 보니 그게 참 쏠쏠했다.
그들은 그렇게 모은 업적 포인트를 통해 스탯과 명성을 올렸다.
악명도 명성이라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사실 절반은 도박에 가까웠다.
PK가 곧 리스크가 되어 상황이 불리해지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자신의 판단은 옳았다.
이 세계는 피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피의 탑 위에서 선 자만이, 자신의 별을 지키고 나아가 우주 최고의 주인임을 증명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업적 포인트를 쌓아서는 답이 없다고 판단했다.
율리스는 자신보다 늦게 들어온 노비스를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 고속 성장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지금까지 최고의 결과를 보여 주었다.
베아트리체 세계의 몬스터는 굉장히 강했기 때문에, 힘들게 몬스터를 찾아서 잡는 것보다는 노비스를 죽여 업적 포인트를 훔치는 것이 훨씬 편했다.
또한 몬스터 사냥에 비해 그 효율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
그런 만큼 율리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경험도 있고,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신도 있다.
이번에도 저 어설픈 풋내기 노비스를 희생양 삼아 업적 포인트를 뺏을 거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거리가 좁혀지면서 율리스는 등 뒤로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이곳 베아트리체에서의 성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만큼 노비스 따위를 압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눈앞 사내의 존재감은 지금까지 봐왔던 노비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율리스는 방심했던 자신의 마음을 꽉 조였다.
그 순간 민성의 ‘궁니르’가 천둥소리를 내며 찔러 왔다.
강한 출력을 머금고 있는 궁니르의 칼끝은 날카로웠고, 힘이 있었으며, 정확했다.
기본기가 탄탄한 가운데, 엄청난 출력까지 머금은 것이 보였기에, 율리스는 순식간에 이마에 땀이 배여 들었다.
페르시스 왕국에 다시없을 천재라고 불리었던 자신이다.
단 한 번도, 좌절감 따위는 느껴 보지 못했던 삶.
앞을 내다보는 현안까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오늘.
태어나 처음으로, 상대를 잘못 골랐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율리스의 심장을 저며 왔다.
쐐애애애액!
율리스는 어금니를 깨물며 머리를 틀었다.
민성의 궁니르가 율리스의 귀를 살짝 스쳤다.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율리스는 반격에 나섰다.
민성이 창을 회수하기 전에, 율리스는 자신의 애검 ‘피안느’를 휘둘렀다.
오러를 머금은 피안느의 검기가 가까이 붙어 있는 민성에게로 십자가의 형태를 만들며 날아갔다.
그러나.
민성이 눈을 하얗게 번쩍이며 궁니르를 쥐지 않은 왼손 손바닥으로 그 검기를 그대로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앙!
율리스는 깜짝 놀란 얼굴로,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공간을 확보했다.
‘단순한 싸움으로는 안 되겠어.’
노비스를 상대로, 베아트리체에서 구한 스킬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율리스는 처음과 달리 확연하게 굳어진 표정으로 스킬 사용을 준비했다.
베아트리체에서 얻게 된 스킬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노비스 따위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니야.’
율리스의 얇고 긴 검신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은 이내, 용 세 마리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그 형상들이 민성을 향해 살아 있는 짐승처럼 날아갔다.
율리스는 이 공격으로 자신이 100퍼센트 승기를 잡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상대는 민첩하지 않고, 출력과 체력이 좋은 스타일이라는 걸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때문에 지금 자신의 비기 중 하나인 스킬을 사용한 만큼 분명 상대가 데미지와 함께 흔들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민성이 율리스가 발출한 3마리의 용을 보며 템창을 열었다.
그리고 방패를 터치했다.
그 즉시 왼팔에 방패가 장착이 됐다.
아이템을 착용하는 건 템창에서 아이템을 한 번 터치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했기 때문에 빠른 장착이 가능했다.
율리스가 발출시킨 3마리의 용을 닮은 형태의 검기는, 속도가 느린 대신 반드시 대상을 터치하기 위해 유도탄과 같은 타깃팅 공격이었다.
민성은 그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덤덤하게 그 공격을 보며 피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앞으로 전진했다.
방패를 어깨 쪽으로 당겨, 고정시키면서 정면으로 율리스가 보낸 3마리의 용과 방패가 맞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앙!
욱신거리는 통증이 올라왔다.
민성은 내심 자신에게 이 정도의 공격력을 보인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살짝 놀랐지만, 지금은 율리스와의 전투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었다.
율리스가 발출한 3마리의 용은 민성의 마기가 스며든 ‘+9 용 사냥꾼의 방패’에 막혀 사라졌다.
이제는 민성이 공격할 차례.
율리스가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기회를 잡은 민성이 순순히 그를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궁니르에서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콰르르릉!
뇌전을 머금은 민성의 마기가 천둥의 울음을 토하며 율리스를 향해 표출되었다.
궁니르에서 일직선의 마기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퍼어어어어억!
궁니르에서 발출된 마기가 율리스의 오른쪽 어깨를 관통했다.
“크읏!”
율리스가 얼굴을 뒤틀면서 휘청하고 몸이 휘었다.
그사이 거리를 좁힌 민성이 눈을 번쩍이며 궁니르를 휘둘렀다.
율리스는 오른쪽 어깨를 잃게 되면서, 쥐고 있던 검을 왼손으로 넘겨 그대로 민성의 공격을 쳐 내며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하지만 거기까지.
민성이 이기어검술로 창을 던진 순간, 더 이상 율리스에게 승산은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패배와 죽음뿐이었다.
퍼어어억!
궁니르가 율리스의 몸통을 꿰뚫으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
“컥……!”
율리스가 궁니르에 관통당한 채, 피를 뿜으며 전신에 힘이 쭉 빠지는 게 보였다.
이내 율리스가 철퍽 무릎을 꿇었다.
“어, 어떻게 노비스가 이렇게 강한…….”
율리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연거푸 피를 토하며 민성을 응시했다.
민성은 율리스의 시선을 받으며 조용히 율리스의 몸을 꿰고 있는 궁니르의 창대를 잡았다.
민성은 율리스의 눈을 보았다.
그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다.
하지만 그의 눈에 미련은 없었다.
아쉬움이 남지 않는 완벽한 패배였기 때문이다.
율리스는 힘들게 숨을 쉬면서 민성을 초췌한, 죽어 가는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이제 시작인 줄 알았는데. 여기서 끝날 줄이야.”
율리스는 죽어 가는 눈빛과 얼굴로 허망하다는 듯이 말했다.
민성은 소리 없이 율리스의 몸통을 꿰뚫었던 창을 뽑았다.
푸슉!
율리스가 입을 벌린 채, 눈을 감지 못하고 절명하며 바닥에 철퍽 쓰러졌다.
몬스터나 마계의 생명체가 아니었기에 그는 파편이 되어 사라지지 않았다.
육체를 가진 이계의 종족인 만큼, 그는 미동 없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이템은 나오지 않았지만, 시스템 보상은 존재했다.
[‘출력’과 ‘율리스의 베아트리체 스킬’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베아트리체에서 구한 율리스의 스킬은 1.25배의 힘을 발휘합니다.]
[출력은 누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볼 때 유리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