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96화>
이호성은 문자 메시지를 보면서 굵은 침을 꿀꺽 삼켰다.
문자 메시지로 파란색으로 된 웹사이트가 연결된 주소가 도착했다.
그걸 터치해 나타났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아직 언론에는 발표되지 않은 사실이었고, 그림자 길드조차 미처 파악하지 못한, 중앙 기관 직통으로 도착한 1급 기밀이었다.
그 내용은 민성의 집 마당 정원에서 자라고 있는 신비한 나무에 대한 내용이었다.
“왜 그래?”
장시아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이호성을 보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이호성은 장시아에게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심각한 표정인데. 무슨 일 또 생긴 거야?”
장시아의 얼굴에 두려움이 번졌다.
그녀 역시 전 세계의 시민들처럼 던전에 이은 탑, 그리고 마인들의 침공에 의한 후유증이 남아 있는 평범한 사람 중 하나였다.
“아니야. 일은 무슨. 별일 아니야. 그게 아니고, 헌터님이 또 폐관 수련 하러 들어가라네. 하하, 바깥 생활 좀 하고 싶은데. 젠장, 또 마늘 까먹으러 동굴에 들어가야 하는구만. 어휴.”
이호성이 짜증 섞인 연기를 하자 장시아가 이호성을 보며 그제야 안심한 표정으로 웃었다.
“난 또 뭐라고. 놀랐잖아. 하여튼 별일도 아닌 일에 엄살 심하다니까.”
“야, 폐관 수련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싸움인지 아냐?”
“알고 싶지 않네요.”
장시아가 혀를 쭉 내밀며 메롱을 하고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잠잠해진 것을 확인한 이호성은 곧바로 민성의 안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노크를 한 후에 바로 문을 열려는 찰나, 문이 열렸다.
“무슨 일이야?”
민성이 이호성을 보면서 문밖으로 나오며 물었다.
“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잠깐 테라스로 좀 가시죠.”
이호성이 장시아가 있는 방을 돌아보며 말했다.
민성은 이호성의 표정을 확인하곤, 함께 테라스로 이동했다.
고층의 펜트하우스인 만큼 테라스로 나오자 서울 야경이 한눈에 보이는, 바깥 풍경이 펼쳐진다.
고층의 휘도는 바람을 맞으며, 민성은 고급 강철 의자에 앉았고, 이호성은 선 채로 보고를 준비했다.
민성은 풍경을 보며 이호성의 말을 기다렸다.
“헌터님 집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에 대한 보고입니다.”
“시간 끌지 말고 빨리 얘기해.”
“나무가 엄청난 속도로 자라고 있는 건 알고 계시죠?”
“그래.”
“빨리 자라는 만큼…… 엄청난 양의 양분을 먹고 있는 모양입니다.”
민성이 미간을 구기며 이호성을 보았다.
이호성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오래 지나지 않아, 농작물에 피해가 가는 건 물론 급속도로 땅이 피폐해질 거라는 분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집 마당 정원에서 자랐던 그 나무가, 이 지구라는 땅을 삼키고 있다. 뭐 그런 얘기인가?”
“네. 뿐만 아니라, 만약 그렇게 될 경우 헌터님에 대한 시민들의 우호적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내 이미지 같은 건 어떻게 되든 별 상관이 없는데, 농작물에 피해를 주면 안 되지.”
민성의 눈빛을 보고 이호성이 살짝 긴장한 표정이 됐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떡하긴 뭘 어떡해? 잘라 내야지.”
민성이 그 말을 끝으로, 테라스를 나섰다.
이호성은 긴 한숨을 푹 내쉬곤 민성을 뒤따랐다.
* * *
이호성이 운전대를 잡고, 민성을 태워 가는 길.
백미러로 민성을 흘금 흘금 보며 입을 달싹였다.
그리고 이내.
“저, 헌터님……. 단순히 나무를 자르면 해결이 되는 일일까요?”
“무슨 뜻이야?”
“아니, 아무래도 여론적으로, 시민들이 워낙 헌터님 집에서 자라는 나무에 대한 애정이 깊은 데다, 갑자기 제거하는 쪽으로 해결을 보게 되면 그로 인한 파장 역시…….”
“결국 선택지는 두 개 아니야?”
“연구 중이니까. 시간을 조금 벌어서, 극단적인 선택이 아닌 다른 방향을 모색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 문제가 있을 수 있는 건 애당초 싹을 자른다. 그게 내 방식이야.”
이호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골랐다.
“알겠습니다.”
이호성이 그렇게 말하며 우회전을 했을 때-
뚝. 뚝!
앞 유리창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이호성은 그 빗방울을 보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빗방울을 보자 탑과 마인이 생각나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고작해야 빗방울이고, 곧 쏟아질 빗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이호성은 침착하게 핸들을 잡고 운전에 집중했다.
별일 없을 거라고.
이호성은 그렇게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 * *
끼이익!
차가 멈추자마자, 민성은 뒷좌석에서 내려 저벅저벅 빠른 속도로 걸었다.
사방에서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번쩍이는 플래시를 받으며 민성은 집 안으로 들어갔고, 집 안에는 연구자들과 현장을 지키는 헌터들로 가득 했다.
헌터들은 물론, 연구자들이 민성을 보자마자 깍듯하게 인사했다.
테라스 너머 마당 정원 쪽으로 가자, 그곳에 연구원들과 중앙 기관의 총군주 김지유가 있었다.
“오셨네요.”
김지유가 밝지 않은 얼굴로 인사했다.
그녀의 얼굴은 상황만큼이나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민성은 현재 문제의 핵심인 신비한 나무를 응시하며 얼굴을 굳혔다.
나무는 못 본 새 훨씬 더 크게 자라 있었다.
애초에 차를 타고 오면서도 보일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자라다가는 구름도 곧 뚫을 기세였다.
“그냥 잘라 버리면 될 거 아니야.”
민성의 툭 던진 듯한 말에 김지유는 물론 연구자들이 흠칫 놀랐다.
“하지만 민성 씨,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할 문제가…….”
“이 나무가 땅을 죽이고 있다며? 이렇게 계속 자라다 보면 단순히 농작물에 피해가 가는 정도가 아니라 지구 전체가 폐허의 땅이 될 텐데. 그럼 이걸 그냥 두고 보자고?”
“그건 그렇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 있을 수 있어서요. 일단 단점에 대해서만 민성 씨에게 보고를 드렸지만…….”
“그래서 장점이라는 건 찾았나?”
“그건 아직…….”
민성이 연구자들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연구의 미친 인간들이라면 지구가 어떻게 되든, 연구에 파고들고 싶어 하겠지. 그런 거에 일일이 휘둘려서 총군주 자리는 어떻게 계속 이어 나가겠어?”
민성의 일침에 김지유의 얼굴이 흐려졌다.
콰르르르릉!
때마침 들린 천둥소리에 김지유가 놀란 얼굴을 들었고, 연구자들이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민성이 템창에서 듀랑달을 꺼내 든 소리였다.
두 눈으로, 실제로 민성이 무기를 잡은 모습을 처음 보는 연구자들은 온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연구자로서, 나무를 더 연구하고 싶은 마음에 민성을 막아서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을지 모르나, 감히 민성의 앞을 가로막는 이는 없었다.
“저 나무는 겉보기엔 그럴 듯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 이 땅을 좀먹는 해충 같은 것뿐이야. 미련 가지지 마라.”
선택과 결단 앞에서 절대 흔들리지 않는 것이 민성이었다.
그 사실은 김지유와 연구진들에게 피부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그런 만큼 민성을 막을 수 없었다.
민성의 눈이 하얗게 번쩍였고, 듀랑달이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휘둘러졌다.
지켜보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저 천둥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그리고 벼락의 충돌음이 터졌다.
아니, 터질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민성이 듀랑달을 통해 발출시킨 마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민성은 놀란 눈으로 신비한 나무를 응시했다.
나무에는 흠집조차 없었다.
비단 놀란 건 민성뿐만이 아니었다.
김지유와 이호성이 가장 크게 놀랐고, 그다음은 연구진들과 지켜보고 있던 헌터들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왜 데미지가 안 들어가?”
이호성이 황당하다는 듯 나무를 살피며 말했다.
그사이 민성은 나무 앞으로 걸어가 겉 표면을 매만졌다.
분명 촉감 자체는 평범한 나무다.
그런데 마기를 흡수한다?
민성은 옅게 웃으며 대기 중에 있는 오러의 힘을 운용하여 손으로 나무를 강하게 밀어 보았다.
아무리 큰 나무라고 해도 이 정도 힘이라면 가볍게 부러지기 마련이건만, 자신의 집 마당 정원에서 자란 이 나무는 어째서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계에도 통하는 힘이 고작 나무 한 그루에 불과한 것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니.
민성은 쓴웃음이 나왔다.
김지유와 이호성이 조심스레 민성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호성이 말했고, 김지유는 생각이 많은 얼굴로 나무를 응시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민성이 나무를 보며 혀를 짧게 찼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민성이 나무를 향해 짜증이 담긴 목소리를 뱉자 이호성은 놀란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민성의 이런 모습은 이호성이 그를 만난 이후로 처음 겪는 것이었으니까.
“비켜 봐.”
민성이 듀랑달을 든 채 말했다.
이호성과 김지유는 민성의 말에 뒤로 훌쩍 거리를 두었다.
민성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고, 이내 듀랑달을 나무에 박아 넣었다.
듀랑달은 부드럽게 나무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신비한 나무는 듀랑달을 타고 흘러 들어간 마기를, 발출됨과 동시에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그리고 이내 꿈틀거리더니 자라는 속도가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민성은 듀랑달을 꺼내면서 눈살을 구겼다.
“이 자식 봐라. 마기를 먹는다고?”
민성이 옅게 웃으며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세간에서 근거 없이, 일명 ‘세계수’라 떠들고 있는 이 신비한 나무는 민성이 보기에도 절대 평범한 나무가 아니었다.
이 나무는 단순히 주변의 자원을 빨아먹는 정도가 아니라, 지구라는 별 전체를 송두리째 삼킬 기세로 커 나가고 있었다.
마기를 흡수하는 데서부터 느낌이 왔다.
이 나무는 위험하다고.
세계수니 수호신이니 뭐니, 그런 것은 겉으로 보이는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위험한 나무는 지구를 병들게 할 것이고, 이내 지구를 통째로 삼킬 것이 틀림없었다.
지구 전체에 뿌리를 내릴 셈인 거야.
그런데 중요한 건 왜 이런 게 나타났냐는 점이다.
어째서 이런 시기에?
분명 이유는 존재한다.
그 이유가 뭐지?
이유의 꼬리를 추적하던 끝에, 민성은 한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마계.”
민성이 말했다.
그러자 이호성과 김지유가 의아한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그리고 그때 민성은 확신했다.
“마계 때문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