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95화>
반찬의 종류는 다양했다.
멸치 볶음부터 갓김치와 오뎅 볶음 등 맛있어 보이는 반찬들이 테이블을 채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점심 특선의 메인 메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이한 것은, 보통 점심 특선에서 나오는 메인 메뉴가 계속해서 이어졌다는 점이다.
처음엔 청국장과 비빔밥이 나오기에, 이게 끝인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계란말이가 나오고 뒤이어 상추와 마늘, 그리고 고추와 함께 돼지 불고기가 나왔다.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조금 뒤에는 카레가 나왔다.
더불어 카레 안에는 한우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 있었다.
민성이 놀란 눈으로 메뉴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렇게 많이 주는 거지? 설마…….”
“아닙니다. 헌터님이라서 이렇게 주는 게 아니에요. 여기가 원래 이렇게 많이 주는 곳입니다.”
“6천 원에?”
“그렇습니다. 놀라운 가성비를 자랑하는 곳이죠.”
이호성이 그렇게 말했을 때 문이 열리면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밥을 먹으러 회사원들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민성을 보자마자 얼어 버리거나 굳어 버렸고, 또는 비명을 질렀다.
이호성이 곧바로 일어나 민성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그들을 통제했다.
그사이 따끈따끈한 밥그릇이 도착했다.
자리로 돌아온 이호성이 수저를 챙겨 주었고, 민성은 식사를 시작했다.
먼저 따뜻한 밥을 입안에 머금고 갓김치를 먹었다.
맛있다.
상큼하면서도 짭쪼롬하고 깊은 향을 가진 갓김치의 맛은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뱃속이 마치 폭주 기관차처럼 과열된 연기를 뿜어내는 듯했다.
상추에 돼지 불고기와 마늘 그리고 고추를 넣은 다음 쌈장을 발라서 그대로 쌈을 입안에 넣었다.
우물우물-!
입안 가득 씹히는 쌈의 맛을 즐기며, 이내 민성은 숟가락으로 청국장을 떠먹었다.
청국장은 진한 색깔만큼이나 진한 맛이 난다.
코를 묵직하게 눌러 오는, 청국장 특유의 맛은 가히 일품이다.
그다음으로는 카레.
카레를 한 숟갈 가득 떠서 밥에 쏟은 다음 삭삭 비비고, 그대로 입안으로 직행.
소고기가 가득 들어 있는 이 카레는, 보통의 카레와는 당연히 그 맛이 달랐다.
한우가 들어 있는 만큼, 카레의 향과 부드럽게 씹히는 소고기의 식감은 도저히 6천 원의 점심 특선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거기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계란말이는 먹기도 전에 개나리와도 같은 그 노란빛이 너무 귀여웠다.
민성은 그 귀여운 계란말이를 가볍게 젓가락으로 찢어 내며 한입 먹었다.
몰캉하게 씹히는 계란말이와 더불어, 다시 한번 청국장으로 넘어가는 이 간단한 연결 코스에서 민성은 음식과 한식의 중요성과 그 가치에 대해 새삼 존경스러움이 들었다.
어떠한 나라에서도 한국만큼의 한국적 정서를 가진 이 맛의 깊이는 따라올 수도, 흉내 낼 수도 없다.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특별한 든든함이라는 게 있다.
그게 바로 한국의 밥이다.
민성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청국장을 떠먹었다.
* * *
식사를 마치고 근처 커피숍에 왔다.
가격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2천 원.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아니라서 가격이 싸다.
하지만 실내는 넓었고, 인테리어는 인간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소소하면서도 심플한 형태로 장식되어 있었다.
다만, 커피의 맛이 저렴한 가격만큼 품질이 못한 건 아닌지 걱정되었으나 외려 그 반대였다.
민성은 이호성이 배달한 커피를 마셔 보고서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2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노가 굉장히 진했다.
어느 정도로 진하냐 하면, 얼음이 다 녹아도, 커피 본연의 맛이 강하게 살아 있을 정도로 진한 아메리카노였다.
기본적으로 이 커피숍의 사장은 인심이 아주 후한 듯했다.
놀라우리만큼 진한 아메리카노의 맛과 카페인의 흡수를 경험하고 있는 가운데.
“헌터님.”
이호성이 자신을 불렀다.
“식사하러 가기 전에 말씀드렸던 것 말입니다.”
민성은 이호성을 응시했고, 이호성은 말을 이었다.
“제 변화 말입니다.”
“관심 없어.”
“관심 없어도 들어 주십시오.”
민성은 커피 잔을 내려놓으면서, 이호성을 보았다.
말해 보라는 의미의 시선이었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헌터님이 말씀하셨던, 밥값. 1인분. 뭐 그런 것에 대해서요.”
“그래서 결론은?”
“불가능했습니다.”
민성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호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금의 저로서는 헌터님의 기대를 채울 만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그래서 먼저 제 자신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죠. 애초에, 너무 못난 인간이었어요, 저는. 뒷골목 출신에 쓰레기 같은 짓이나 하던. 그런 인간이 빛을 내려고 하니, 빛이 날 수가 있나요. 더군다나 헌터님처럼 밝은 빛이 있는데. 저 같은 건 티도 나지 않죠.”
“그래서 한다는 게 네 자기혐오야?”
“아니요. 앞으로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설령 헌터님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더 이상 제 과거에 발목을 잡히거나,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를 그리고 앞으로를 향해 움직일 거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방식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제가 강해짐으로써 헌터님을 보좌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죠. 그래서 길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어쭙잖은 딜러나, 탱커의 역할이 아닌. 철저히 헌터님만을 위한 서포터로의 전향 말입니다.”
민성은 옅게 웃고선, 커피를 들어 다시 마셨다.
이호성이 말을 이었다.
“중앙 기관에서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무기를 날려 먹었던 것과, 국가에 목숨을 바쳐 싸웠다는 이유로요. 제가 그 금액을 받을 만한지는 모르겠으나, 거부할 이유는 없다고 결정해 그 금액을 받았고, 큰돈을 들여서 제가 가진 특성 스킬 트리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서포터로?”
“그렇습니다.”
“결국 포기네.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좌절 앞에서 선택한 지름길.”
“아니요. 저는 신중하게 생각했고, 신중하게 결정했습니다. 좌절이 아닙니다. 인정한 거죠. 제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다음 스텝을 위해 새로운 전략을 구성한 겁니다.”
“말은 그럴 듯한데, 서포터로 특성 스킬을 개편한다고 해도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의식의 변화라는 무기가 있죠.”
“의식의 변화?”
“네. 의식의 변화가 만든 힘은 헌터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꽤 쓸 만할 겁니다.”
“…….”
“전 몰랐는데요. 중앙 기관의 총군주님이 말하더군요. 제가 의외로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거기서 영향을 받아 깨달았습니다. 머리를 쓰면 헌터님에게 제 머리가 꽤 날카로운 ‘칼’이 될 수도 있겠다, 하는 걸요.”
“전투 관련에 있어 네가 나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아무리 헌터님이라고 해도, 늘 완벽한 선택을 하는 건 아닐 겁니다. 제가 결정한 스킬의 변화에는 그런 부분에 만족할 만한 능력들이 있습니다. 제가 헌터님의 지름길이자, 방향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야?”
이호성이 민성을 보며 작게 웃었다.
“처음에는요. 단순히, 헌터님이 식사 때문에 저를 데리고 다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헌터님이 저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단순히 맛집에 대한 추천만으로 저를 선택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헌터님이라면 더더욱.”
이호성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깨달은 사실은. 설령 제가 아무리 부족하다고 해도, 자신감을 가져야 저에게도, 그리고 헌터님에게도, 헌터님이 말하는 결과라는 걸 이끌어 낼 수 있을 거라는 걸 말입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추악한 민폐일 뿐이다.”
“그렇겠죠. 그래서 증명해 보일 겁니다. 제가 발전했다는 사실을. 곧 보게 되실 겁니다.”
민성은 천천히 일어나 차가운 눈으로 이호성을 내려다보았다.
이호성은 여느 때와 달리, 당당히 민성의 시선을 맞받았다.
민성은 커피를 집어 들면서 픽 웃었다.
“앞으로 마당에서 잘 일은 없겠네. 사람 된 거 축하한다.”
이호성이 미소를 지으려는 찰나.
“그런데.”
민성이 강한 악센트로 이호성의 미소를 끊었다.
“…….”
“네가 가진 그 ‘칼’을 뽑아 들었으면, 실수는 하지 마. 네 실수는 곧, 방금의 말이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할 뿐이니까.”
이호성이 벌떡 일어나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웃었다.
“예, 헌터님.”
* * *
오래간만에 옷도 사고 장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장웅 셰프와 장시아가 짐을 풀어놓을 때, 민성과 이호성 역시 그랜드 월드 타워 펜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장웅과 장시아가 인사했고, 민성은 짧은 고갯짓으로 인사를 받은 후, 방으로 들어갔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이호성의 물음에, 장웅과 장시아는 대답하지 않고 이호성의 차림새를 훑어보며 입을 동그랗게 말며 마치 코미디 콤비처럼 오오! 하는 소리를 냈다.
이호성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턱을 치켜들고, 골반을 비틀면서 자세를 잡았다.
“멋있죠?”
장웅이 웃으며 이호성의 어깨를 토닥였다.
“좋은 슈트구만. 그런데 너무 비싸 보이는걸?”
장웅이 말했다.
“큰마음 먹고 질렀습니다. 앞으로 제 마음가짐을 위한 각오를 새기고자.”
“그 마음가짐이라는 건 옷이 중요한 게 속에 들어 있는 호성 군 본인이어야 할 거야. 그건 알고 있지?”
“하하. 물론입니다.”
장시아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무릎으로 이호성의 엉덩이를 살짝 쿡! 하고 찔러 찼다.
“아저씨만 좋은 거 사 입고. 그 마음가짐에 우리는 왜 없는데? 할아버지랑 나랑, 우리 선물은 없냐구.”
이호성은 장시아를 보며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너랑 아무 사이가 아닌데 왜 선물을 사 줘? 선물 받고 싶으면 나랑 진지하게 만나 보든가.”
이호성이 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장웅 셰프가 소리 없이 다가와 이호성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어디서 감히 호랑말코 같은 소리를 하는 건가?”
악마의 어둠이 서려 있는, 본 적 없는, 엄청난 위압감을 표출해 내는 장웅의 얼굴을 보고 이호성은 그의 시선을 피해 눈알을 돌렸다.
장웅은 이호성의 멱살을 잡았던 손을 풀면서 호탕하게 웃으며 이호성의 등을 퍽퍽! 두드렸다.
“농담일세, 농담. 허허허허!”
조용히 멀어지는 장웅 셰프를 보고 있자니 절대 농담 같지가 않았다.
“선물 안 받고 말지. 내가 아저씨랑 연애할 것 같아?”
장시아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쿡 찔러 올 때, 문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장시아에게 장난 섞인 펀치를 맞으면서 이호성은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 내용을 확인했다.
그 순간, 이호성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