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193화 (193/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93화>

* * *

초인종 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 주자 김지유가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목례로 인사했다.

“본론은?”

민성이 현관문에 앞에서 물었다.

김지유가 이마에 혈관이 빠직 세우며 웃었다.

“일단 좀 들어가면 안 될까요?”

민성은 턱짓으로 들어오라고 한 뒤, 소파에 가서 먼저 앉았다.

“와……. 이거구나. 직접 보니까 정말 멋진데요?”

김지유가 통유리 너머, 마당 정원에서 쑥쑥 자라고 있는 신비한 나무를 반짝거리는 눈으로 보며 말했다.

“설마, 우리 집 마당에서 자란 나무 때문에 온 건 아닐 테고. 왜 왔어?”

민성이 물었다.

“나무 보러 온 거 맞는데요?”

김지유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나무가 왜?”

김지유가 진지해진 눈으로 나무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너무 공교롭잖아요. 이런 시기에, 이러 타이밍에, 이런 신비한 나무가 생겼다는 게.”

“그래서?”

“우선 다른 문제를 차치하고, 전 세계에서 벌써 이 나무에 관심이 많아요. 일각에서는 이 땅을 수호하는 세계수라는 말도 나오고 있어요. 물론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필요한 게 뭐야?”

“연구요.”

“누구 마음대로?”

“그래서 이렇게 직접 부탁하러 찾아왔잖아요.”

“허락 안 해. 허락하는 순간,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릴 거고, 내 공간에 누가 그렇게 침범하는 건 용납 못 하지.”

“연구 때문에 부탁드리는 것만은 아니에요. 던전도, 탑도 사라졌지만, 시민들의 불안은 여전해요. 아니, 훨씬 더 심각한 후유증들을 남겼죠.”

민성이 손가락으로 정원의 신비한 나무를 쿡쿡 찔렀다.

“저게 그걸 해결해 줄 것이다?”

“물론이에요. 사람들은 의지할 곳이 필요하니까.”

“그게 왜 하필 내 공간이야?”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

민성이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먼 곳을 보았다.

김지유는 작게 웃었다.

“세계의 사람들을 위해서 구원을 내려 주시죠. 강민성 헌터님.”

“또박또박 말은 잘하네.”

김지유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중앙 기관의 총군주로서, 제 역할이니까요.”

민성은 쯧 하고 짧게 혀를 차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천히 일어섰다.

“대가는?”

민성이 김지유를 직시하며 물었다.

김지유가 생글 웃었다.

“원하시는 걸 말씀해 보세요.”

“계약.”

“어떤…… 계약이요?”

“지금부터 그 어떠한 비밀도 내게 숨기지 않는다는 계약 정도로.”

“그건 굳이 계약하지 않아도…….”

“아니. 인간은 본래 여유라는 게 생기면 다른 생각을 하기 마련이고. 그게 날 엿 먹이는 가장 큰 이유가 될 테니까.”

“철저하시네요.”

“명확한 계약 조건에 대해선…….”

“아니. 조건은 단 하나.”

민성이 차가운 눈으로 김지유를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네 목숨이다.”

김지유가 어색하게 웃었다.

“제 목숨이요?”

민성이 걸음을 옮겨 김지유 가까이에 섰다.

“잘 들어. 네가 죽는다는 건, 중앙 기관의 총군주가 사라진다는 것이고.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인간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명심해. 즉 네 죽음과 동시에,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기억하라는 얘기야.”

“저만큼이나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건 민성 씨도…….”

“그건 그런데, 세상은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질서를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는 거지. 난 당신처럼 책임을 질 만한 자리에 앉지는 않았으니까.”

김지유가 쓴웃음을 지었다.

“굉장히 위협적이네요.”

“그러니까 계약인 거고.”

“계약서 준비해 주시죠. 준비하시는 대로 도장 찍을게요.”

“내 집에 들어오는 인간의 수는 최소화하도록.”

김지유가 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얘기 끝났으면.”

“저 나무 좀 더 보다 가면 안 돼요?”

김지유가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애교 섞인 표정을 보였다.

민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검지손가락으로 현관을 가리켰다.

김지유는 짧게 한숨 쉬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현관 쪽으로 걸어가던 김지유가 민성을 돌아보았다.

“아 참. 호성 씨는 어디 있어요?”

“걘 왜?”

김지유가 생긋 웃었다.

* * *

쏠이 파티를 즐기고 있을 무렵, 이호성은 운전석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이 순간, 이호성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입 밖으로 뿜은 매캐한 연기처럼이나 답답하고 진득한 불쾌감이었다.

강민성이 말했던 말.

“넌 여전히 약하구나.”

쓸모없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비수처럼 꽂혔던 말.

그리고 그 비수를 장웅 셰프의 손녀딸 장시아가 뽑아 주었다.

목숨을 걸고 싸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가 서로 상충하여 마음을 괴롭혔다.

앞으로 던전이나 탑과 같은, 헌터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게 가장 좋은 것이겠지만, 어느 무엇 하나 장담할 수가 없다.

던전이 사라지고 탑이 생겼던 것처럼.

시민들이 불안에 떠는 이유와 같은 종류로 이호성도 불안감을 느꼈다.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같다.

어차피 자신은 강민성에게 1인분을 할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

이호성에게는 그 점이 가장 심각했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호성은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 벽이 되어, 이호성의 생각을 가로막았다.

이호성은 담배를 창밖으로 버리며 얼굴을 굳혔다.

그랬다면 변해야지.

자신이 변해야, 상황의 변수도 만들어 내는 법.

눈을 질끈 감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우선 자기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

이호성은 곧 눈을 뜨며 차량의 시동을 걸었다.

* * *

이호성이 쏠을 데리고 집으로 복귀했다.

“다녀왔습니다, 헌터님.”

민성은 이호성과 쏠을 번갈아 보았다.

이호성은 스트라이프로 된 명품 슈트에 구두는 물론, 헤어스타일까지 풀 세팅한 말쑥한 차림새였다.

반면 쏠은 먼 곳을 보며 뭐가 그렇게 좋은지 바보처럼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몬스터 분석 기관에서 언제든지 쏠을 데리고 오면 고블린을 만나게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호성이 말했다.

민성은 이호성을 소리 없이 응시하다가 일어서서 정원 쪽으로 이동했다.

이호성이 곧장 그런 민성을 뒤따랐다.

정원으로 나온 민성이 벌써 지붕 위로 넘어갈 만큼 커져 버린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중앙 기관에서 분석 팀이 올 거다.”

이호성이 민성이 보는 나무를 같이 올려다보았다.

“이 나무를 분석하는 거겠죠?”

“그래. 당분간 거처를 옮긴다. 장웅에게 따라오라고 해.”

이호성이 눈치를 살폈다.

“저기, 헌터님. 그럼 장웅 셰프의 손녀딸은…….”

민성이 날카로운 눈으로 이호성을 보았다.

이호성이 눈치를 살피며 헛기침을 했다.

“알아서 해.”

이호성이 웃음을 감추며 머리를 숙였다.

“네.”

“근데 갑자기 그 복장은 뭐야? 쏠이 연애하겠다니까, 너도 연애 사업 좀 해 보려고?”

이호성이 빙글 웃었다.

“안 됩니까?”

“안 될 건 없는데,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 인간이 연애는 하겠나 싶어서.”

“이 옷은, 앞으로 뭐든 제대로 하겠다는 제 의지입니다. 변화가 시작된 거죠.”

이호성이 민성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받았다.

민성은 그런 이호성을 핏 웃으며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계약서를 쓰기로 했다. 우리 집 정원에 생긴 저 이상한 나무를 중앙 기관 책임으로 분석하는 조건하에 내가 챙기는 대가는 중앙 기관에서 어떠한 비밀도 숨기지 않겠다는 서약이다. 그리고 그 조건을 어길 경우, 내가 취하는 건 중앙 기관의 총군주. 김지유의 목숨이 그 명분.”

이호성이 깜짝 놀란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계약서 준비해서 내 도장 찍고, 중앙 기관으로 보내.”

“네, 알겠습니다.”

민성이 안방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이호성은 꾸벅 인사를 했던 머리를 위로 들며 숨을 짧게 내쉬었다.

“목숨을 대가로 한 계약이라…….”

이호성은 작게 웃었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김지유였다.

이호성은 정원 쪽으로 다시 나가며 전화를 받았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 민성씨에게 얘기 들었어요?

“네. 들었습니다. 계약서 준비되는 대로 찾아뵙겠습니다.”

- 언제쯤일까요?

“내일 오전 어떠세요?”

- 좋아요.

“몇 시가 괜찮으십니까?”

- 전 어느 때든 상관없어요.

“음, 그럼 9시 괜찮으십니까?”

- 그래요.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 호성 씨랑 따로 할 얘기가 있으니까, 계약 말고도 그 뒤에 시간 가능하면 비워 주시고요.

이호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랑 따로 할 얘기요? 헌터님이랑 관련된 이야기입니까?”

- 아니요. 호성 씨랑 할 얘기예요. 그럼 내일 봬요.

“아……. 네.”

전화를 끊었다.

이호성은 휴대폰을 내려다보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총군주님이 나랑 할 얘기가 뭐가 있으신 거지?”

이호성이 의문을 품었다가, 내일이 되어 봐야 그 사실을 알 수 있음에, 그냥 생각을 지웠다.

일단은 계약서 준비부터다.

이호성은 유명한 변호사 로펌 회사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 네, 제일 로펌입니다.

“헌터 이호성입니다.”

신분을 밝히자마자 대표에게 전화를 넘기겠다는 답변이 들려왔다.

로펌 대표와 통화가 연결되었고, 이호성은 지금 바로 출발하겠다고 전한 뒤, 외투를 챙기고 로펌 대표와 통화를 이어 가며 민성의 집을 나섰다.

* * *

다음 날 아침.

이호성은 약속대로 계약서를 챙겨 들고, 중앙 기관을 찾아갔다.

김지유가 밝은 미소로 이호성을 맞아 주었다.

“오랜만에 뵙는 것 같네요.”

김지유가 웃으며 악수를 청해 왔다.

이호성은 김지유와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뭔가 기분이 묘하네요. 총군주님과 여기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호성이 말을 잇다가 실수했음을 자각했다.

“아, 무안을 드리려는 의도로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이호성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김지유가 옅게 웃었다.

“호성 씨를 지키지 못했던, 아니, 지키려 하지 않았던 제 책임이 크다고, 후회를 많이 했어요. 호성 씨를 외국으로 보내려 했던 거 지금 생각해도 정말 창피하네요. 한 나라의 책임자로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호성 씨가 얘기하지 않아도, 그 얘기. 제가 하려고 했었으니까요.”

이호성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다가.

“아! 여기 계약서입니다.”

계약서를 내밀었다.

“대형 로펌 회사에 법률 자문을 구해 만든 계약서입니다. 헌터님의 조건대로 만들어진 계약서고, 만약 문제가 있다면 변호사가 밖에서 대기 중이니, 지금 바로 수정 가능합니다.”

김지유는 계약서를 훑어본 뒤, 미소 지었다.

“문제없는 계약서네요. 저희 쪽 변호사가 한 번 더 체크하겠지만, 아마 수정 없이 이대로 계약이 진행될 겁니다.”

김지유가 계약서를 한쪽으로 치우며 이호성을 보았다.

“자 그럼, 이제 호성 씨 얘기를 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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