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92화>
* * *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민성은 주스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거실로 나왔을 때, 눈앞으로 시스템 문구 하나가 뜨는 게 보였다.
[계약된 몬스터 황금 고블린 ‘쏠’과 너무 멀리 떨어졌습니다.]
[황금 고블린 ‘쏠’이 불안해합니다.]
[황금 고블린 ‘쏠’의 불안감이 가속화됩니다.]
[황금 고블린 ‘쏠’의 안정감을 위해서는 주인의 곁이 필요합니다.]
민성은 자꾸 걸리적거리게 나타나는 시스템 문구를 보고 한쪽 눈살을 찌푸리며 컵에 오렌지 주스 한 잔을 따랐다.
민성은 주스를 한 번에 들이켠 뒤, “쯧!” 하고 혀를 짧게 차며 집을 나섰다.
* * *
차를 타고 집을 나서자마자 마치 맹수처럼 숨어 있던 취재진들이 일제히 튀어나와 촬영을 해 댔다.
민성은 인터뷰 요청은 간단히 무시했다.
더 이상 언론 앞에서, 원숭이처럼 굴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었다.
민성은 취재진을 뚫고, 쏠의 ‘101 프러포즈’가 진행되고 있을 장소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하자 꽤 그럴 듯한 무대, 아니, 꽤 훌륭한 무대 위에 100마리에 달하는 고블린들이 올라가 있었고, 기관 직원들이 낑낑대며 고블린들을 통제했다.
사방에서 고블린 울음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이벤트를 진행해야 하는 연예인 MC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 난장판에 가까운 상황 속에서도 ‘101 프러포즈’라는 이 믿을 수 없는 프로그램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황금 고블린 ‘쏠’과 안정감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눈에 띄게 얼어 있던 쏠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쏠은 이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민성을 발견하고서 빵긋 웃는 표정으로 아이처럼 손을 흔들었다.
높은 계단 위, 피라미드 최상층 의자에 앉아 손을 흔드는 쏠을 보며 민성은 손바닥을 살짝 보여 주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호성도 그를 보고 놀란 얼굴로 꾸벅 인사했다.
“취이이이이익!”
“크이이에엑!”
“퀴이이이잇!”
사방에서 고블린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끄러워.
민성이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장내에 민성의 살기가 아주 옅게 깔렸다.
일부러 고블린들만 느낄 수 있도록 민성은 몬스터들이 두려워하는 종류의 살기를 내뿜었다.
그러자 난동을 부리려 몸부림치며 거친 울음소리를 내던 고블린들이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갑자기 고블린들이 얌전해지자 연예인 MC는 잠깐 놀랐다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재빨리 진행을 이어 갔다.
첫 번째 순서는 쏠이 외모를 기준으로 순위를 정해서 암컷 고블린들을 자리에 앉히는 일이었다.
한쪽 자리에 의자를 대고 앉은 민성이 보기에 도저히 고블린들의 외양이라는 건 차이점을 찾아보기가 힘들었지만, 놀랍게도 쏠은 의외로 자신만의 취향이 확고했다.
쏠은 고민 없이 속전속결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순위를 정해 암컷 고블린들을 하나하나 순위를 정해 자리에 앉혔다.
본격적인 소개팅이 시작된 건, 고블린들이 모두 착석하고 나서부터였다.
* * *
쏠은 생각했다.
일백이나 되는 숫자의 암컷 고블린들이 있으니, 그중에 자신의 짝 하나가 없겠냐는 생각.
그 기대감을 가지고 소개팅에 임했다.
소개팅은 무대에서 일대일 형식으로 총 100번의 만남을 가지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인원이 많은 만큼, 소개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소개팅이 시작되자마자.
“취이이이이이이이익!”
암컷 고블린이 황금 고블린 쏠을 마주하고선 가까이 오면 죽일 것처럼 괴성을 빡빡 질러 댔다.
당황한 쏠은 어떻게든 1순위의 암컷 고블린과 친밀감을 다져 보려고 했지만, 암컷 고블린은 쏠을 마치 발악하듯 몸부림쳤다.
마치 다가오면 죽일 거라는 눈빛으로.
그런 암컷 고블린의 반응에 쏠은 상처받은 표정이 되었다.
예상을 못 했던 건 아니지만, 막상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하자 슬픔이 밀려왔다.
시작부터 분위기가 다운되자 이호성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쏠은 순수한 만큼 정신력이 약했다.
그리고 이호성이 불안을 느낀 만큼, 두 번째, 세 번째 암컷 고블린 역시 마찬가지의 반응을 내보였고 쏠의 기분은 점점 더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소개팅을 하는 족족 암컷 고블린들이 퇴짜를 놓았다.
이대로라면 틀림없이 실패다.
이호성은 관자놀이를 꽉꽉 누르면서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실패한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민성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임무 실패.
기대치 부족.
실망.
이 세 가지는 이호성이 가장 싫고, 또 두려워하는 것들이었다.
‘방법을 찾자, 방법을.’
머릿속으로 고민에 고민을 더하던 이호성은 이내 눈을 번뜩였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없으니,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해 접근했다.
그러자 넌센스 문제의 해답을 알게 된 것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야.’
이호성은 방법을 찾아낸 뒤, 기민하게 움직였다.
* * *
MC에게 잠시 휴식 시간을 갖자고 말한 뒤에 이호성은 몬스터 분석 기관의 직원에서 강력한 마취총을 여러 자루 빌렸다.
충분한 수량의 마취총을 구비해 놓은 뒤에, 다시 소개팅이 시작됐다.
이호성은 암컷 고블린들이 쏠과 소개팅을 하고, 거부의 의사를 표시하는 그 즉시 마취총을 발사했다.
마취총에 맞고 힘없이 주룩 쓰러지는 동족을 보며, 암컷 고블린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혼란과 공포였다.
마취총을 맞고 기절하고 나면, 기관의 직원들이 기절한 고블린을 질질 끌고 갔다.
이러한 이호성의 전략은 꽤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고블린 몇이 기절하여 실려 나가자, 고블린들은 두려움에 의해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마치 애완동물을 길들이는 것처럼, 쏠을 거부하면 마취총에 맞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건 분명한 효과가 있었다.
다소 비인도적인 처사이긴 하지만, 판을 뒤집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 * *
“야, 쏠. 정신 차려.”
이호성은 마치 복서의 코치처럼 쏠의 약해진 정신력을 되살리기 위해 쏠의 어깨를 탁탁 두드리고,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쏠의 눈빛은 흐리멍덩했다.
“야, 기죽을 것 없어. 너 쟤네들이 널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하하, 그런 거 아니야.”
이호성의 말에 축 늘어져 있던 쏠이 이호성을 올려다보았다.
“조금 당황한 것뿐이야. 생김새가 다르니까. 하지만 내가 전에도 얘기했지? 넌 그냥 특별한 거야. 너무 특별해서 우월하기까지 한 존재라고. 어느 수컷 고블린이 너처럼 이런 소개팅을 할 수가 있겠냐?”
“하지만 모두 날 싫어해…….”
“적응을 못 했을 뿐인 거야. 그리고 쏠. 넌 다른 고블린들과 다른 만큼 다른 고블린들처럼 짝을 이룰 필요가 없어.”
쏠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호성을 보았다.
이호성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쏠, 너의 특별함을 봐 봐. 온몸이 황금으로 되어 있잖아. 엄청난 가치를 가진 몸이라고. 그게 뭘 뜻하는 건지 알아?”
이호성의 물음에 쏠은 고개를 도리도리 가로저었다.
“네가 바로 고블린들의 왕이라는 얘기다.”
쏠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내가 왕……?”
“그래. 왕. 네가 바로 고블린들의 신화이자 왕인 거야. 그러니 굳이 네 자신을 설명하려 할 필요가 없어. 본래 이 동물의 세계에서 암컷이라는 건 가장 강한 수컷이 차지하게 되어 있는 법이야. 너도 알지?”
눈알을 굴리던 쏠이 이내 이호성의 말에 휩쓸려 고개를 끄덕였다.
“쏠, 네가 누구라고?”
“와, 왕. 나는 고블린들의 왕이야.”
“그래. 너는 고블린들의 왕이다. 그것도 아주 큰 힘을 가진. 그러니 인정을 바라지 말고, 네 존재로서 암컷을 차지해라. 너의 힘으로.”
“어떻게?”
이호성이 훗! 하고 웃었다.
“인마. 내가 있잖아. 내가 다 도와주마.”
이호성의 든든한 말에 우울해하던 쏠이 빵긋 웃음 지었다.
* * *
이호성은 마지막 승부라고 생각하고 던진 얘기였는데, 자신의 말은 쏠에게 있어 의외로 꽤 큰 영향을 끼친 듯했다.
수컷 고블린 몇 마리를 무대 위로 올려 보냈는데, 그들은 본능적으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서열을 정리하기 위해 쏠에게 싸움을 걸었다.
엄청난 속도로,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쏠에게 일반 수컷 고블린들이 승산이 있을 리 만무했다.
쏠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수컷 고블린들을 정리했다.
그것은 곧 자신이 수컷으로서의 강함을 증명하는 결과였다.
그러자 그 광경에 놀랍게도, 암컷 고블린들의 태도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수컷 고블린을 단숨에 처치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고블린.
인간과 섞일 수 있는 고블린.
특별한 고블린이라는 생각이 암컷 고블린들의 머릿속에 아주 서서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이호성은 그 부분을 집중 공략했다.
쏠과 짜고 연극 한 편을 진행한 것이다.
암컷 고블린들이 쏠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여러 가지 상황을 만들어 짜서 몰아붙였고, 그렇게 할수록 암컷 고블린들에게서 쏠의 ‘가치’는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도저히 두 눈으로 믿을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암컷들이 서로 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암컷 고블린들 사이에서 자신감을 되찾은 쏠이 행복하게 웃었다.
현장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이호성은 쏠의 목에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었고, 꽃으로 된 왕관을 씌어 주었다.
쏠은 암컷 고블린들과 춤을 추며 놀았다.
완벽하게 성공한 ‘101 프러포즈’였다.
* * *
“헌터님, 문제없이 해결됐습니다.”
이호성이 의기양양하게 쏠의 소개팅 건에 대해 보고를 올렸다.
의자에 앉아 있던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90도로 꾸벅 인사를 올린 이호성에게 수고했다고, 마무리하고 돌아오라는 말을 전한 뒤, 후련한 표정으로 무대를 돌아보는 이호성을 남겨 두고, 민성은 밖으로 나왔다.
이미 쏠의 안정감은 최고치를 찍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굳이 자신이 없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쏠의 즐거운(?) 시간을 위해서라도, 자리를 피해 줘야 할 때이기도 했다.
* * *
그리고 기관을 떠나 집으로 향하는 길,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의 주인은 중앙 기관의 총군주 김지유였다.
민성은 운전을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중요한 얘기인가?”
- 물론입니다.
“집으로 와.”
민성은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