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191화 (191/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91화>

민성은 현재 쏠의 상황을 모르고 있다.

그 점이 이호성의 심장을 거칠게 뛰게 만들었다.

“어째서요?”

“설명하기 귀찮다.”

이호성은 뻘뻘 땀을 흘렸다.

만약 쏠이 소개팅에 실패해서 우울증에 걸려 버리면 끝장이다.

“근데 넌 얼굴 상태가 왜 그래?”

민성이 이호성을 이상하다는 듯이 보며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할 말 있어서 온 거 아니야?”

“아닙니다. 인사 차 들른 거죠, 뭐. 하하. 요즘 뭐 바쁜 일도 없고요. 그나저나 나무가 참 쑥쑥 자라네요. 무섭게. 하하. 헛소리 그만하고 가 보겠습니다.”

이호성은 90도로 꾸벅 인사를 한 후 서둘러 민성이 있는 마당 정원에서 거실로 나왔다.

그나마 일찍 알아서 다행이다.

빨리 쏠을 찾아야 했다.

일단 그에게 아이템부터 다 떠넘기는 게 급선무였다.

소개팅은 그다음이었다.

* * *

쏠은 정원 마당에 없었다.

‘이 녀석 어디 있는 거지?’

이호성은 부리나케 숨바꼭질 놀이를 하듯 쏠을 찾아 나섰다.

조금 헤맨 끝에, 현관문 밖 마당에서 쏠을 찾을 수 있었다.

이호성은 흙장난을 치고 있는 쏠에게 가서 멈춰 선 뒤, 숨을 크게 골라 쉬었다.

“야, 쏠!”

그 부름에, 햇빛을 받아 금빛을 번쩍번쩍 뿌리며 흙장난을 하고 있던 쏠이 빵긋 웃으며 이호성을 올려다보았다.

“헌터님한테 가자. 어서.”

이호성이 말했다.

“왜?”

“헌터님 장비 필요하대.”

쏠이 자신의 황금 주머니를 미련이 담긴 눈으로 돌아보았다.

이호성은 마른침을 삼키며 가식적으로 웃었다.

“하하, 너 전에 소개팅시켜 주기로 한 거 있잖아? 그거 이 형이 벌써 다 세팅하고 있다. 네가 헌터님한테 장비 전부 넘기고 나면 내가 내일 바로 소개팅시켜 줄게. 어때?”

쏠의 얼굴이 빵긋 웃음으로 번졌다가 다시 무표정한 상태로 되돌아갔다.

“소개팅부터 시켜 줘.”

쏠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뭐, 뭐라고? 아니, 헌터님은 네 주인이잖아. 헌터님이 지금 당장 아이템이 필요하다니까?”

“소개팅이 먼저야.”

“너 날 못 믿는 거냐?”

이호성이 뺨을 씰룩이며 되물었다.

그때 구덩이가 파여 있던 곳에서 바가지가 흙을 뚫고 올라왔다.

“우왁!”

갑작스러운 바가지의 등장에 이호성이 깜짝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내가 진짜인지 헌터님한테 물어보고 올게.”

바가지가 흙이 묻은 채로 집 안으로 탁탁 뛰어갔다.

이호성은 바가지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순수함의 극치를 달렸던 쏠이 어째서 이런 식의 반응이 나왔는지 그제야 이호성은 눈치챘다.

일이 골치 아프게 되었다.

이호성은 바가지가 뛰어간 곳을 보며 심장이 서늘했다.

그리고 불안감이 솟구쳤는데, 그 불안감은 곧장 현실이 되었다.

“헌터님, 당장 무기가 필요한 건 아니래.”

바가지가 마당으로 돌아오며 말을 이었다.

“우리 쏠, 소개팅부터 먼저 시켜 줘.”

바가지가 다시 흙 속으로 파고 들어가며 말했다.

이호성은 바닥으로 들어가고 있어 다리밖에 보이지 않는 바가지와 쏠을 번갈아 보았다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얼굴에 묻은 땀을 팔뚝으로 훔쳐 냈다.

이호성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마음을 크게 먹고 민성에게 다시 갔다.

민성은 호스로 커다란 나무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헌터님.”

“말해.”

민성이 물을 주면서 말했다.

이호성은 민성에게 쏠에게 약속한 소개팅 준비가 끝났다고 보고했다.

그 뒤, 아이템이 필요하다면 쏠이 우울증에 걸리기 전에 먼저 아이템을 정리하는 게 속 시끄럽지 않게 일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냥 소개팅부터 시켜 줘.”

민성이 여전히 이호성을 쳐다보지 않고 나무에 물을 주며 말했다.

“그러다 쏠이 우울증 걸려서 황금 주머니를 닫으면 헌터님이 장비를 마련하지 못 하실 텐데요.”

“약속은 약속이니까.”

이호성은 입을 동그랗게 말면서 민성을 보았다.

‘뭐야? 이 인간 언제부터 이렇게, 너그러워진 거지?’

어쨌든 호랑이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여우 입장인 자신으로서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런데 헌터님, 문뜩 이 나무. 이렇게 파릇파릇한 잎을 키우는 걸 보니, 어쩌면 우리의 땅을 지켜 주는 그런 나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호성이 민성이 물을 주고 있는 신비롭고 커다란 나무를 고개 젖혀 보며 말했다.

“이호성.”

“네, 헌터님.”

이호성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쏠이 반드시 짝을 이룰 수 있도록 해라.”

민성에게서 무시무시한 암흑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도 아닌데, 이호성은 이 임무를 실패할 경우 처형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직감했다.

X발.

명령이 떨어졌다.

명령이 떨어지면, 반드시 완수해야만 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불문율이다.

이호성은 급속도로 가슴에 불안감이 물드는 걸 느꼈지만, 이겨 내기 위해 온몸에 힘을 꽉 주었다.

“예. 알겠습니다.”

토 달지 않고, 꾸벅 인사를 올린 뒤, 이호성은 복잡한 심정으로 마당 정원을 나왔다.

* * *

다음 날 아침.

쏠은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2시간 동안이나 했다.

샤워 후, 황금빛으로 빛나는 자신의 몸을 신줏단지 대하듯 조심스럽게 물기를 닦아 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호성은 한없이 마음이 무거워졌다.

강민성은 반드시 쏠의 소개팅을 성공시키라고 했다.

이호성은 쏠을 보면서 턱을 문질렀다.

쏠은 기본적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황금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암컷 고블린들에게, 상당한 거부감을 주는 듯했다.

예컨대 역으로 생각해 보면, 자신에게 황금으로 된 여자와 만날 수 있느냐고 물으면 그걸 질문이냐고 쏘아붙일 것이 틀림없다.

결국 암컷 고블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분명 100이면 100 쏠이 싫다고 퇴짜를 놓을 것이 분명했다.

이호성은 콧노래를 부르며 꽃단장에 열심이인 쏠을 보면서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답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그만큼 민성에 대한 공포가 커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하면 소개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이호성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쏠을 지켜보면서, 해답을 찾기 위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나갔다.

* * *

쏠의 꽃단장이 끝났다.

쏠은 어린아이처럼 들뜬 체, 출발을 기다렸다.

이호성은 민성에게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바가지와 쏠을 데리고 차를 탔다.

몬스터 분석 기관으로 향하면서, 이호성은 담배를 뻑뻑 피우며 찌그러진 얼굴을 펴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100퍼센트 차인다.

대체 어떻게 해야 쏠이 매력적으로 보여서, 연애까지 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걸까?

머리가 터질 정도로 고민했지만 여전히 답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몬스터 분석 기관으로 가면서도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민성이 명령을 내린 이상 반드시 해결을 해야 하는데, 여전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이호성은 누군가 자신의 눈을 감긴 것처럼, 앞이 캄캄했다.

* * *

“쏠?”

이호성이 쏠을 불렀다.

쏠은 대답이 없었다.

출발할 때만 해도, 소풍 가는 아이처럼 신나 있던 녀석이 지금은 냉동실에서 냉동된 것처럼 얼어 있었다.

아마도 트라우마의 재현.

오래 전, 미운 오리 새끼처럼 암컷 고블린들에게 차인 것은 물론, 온몸이 황금으로 되어 있다는 이유로 고블린들 무리에서 쫓겨난 기억이 트라우마를 만들어 병적인 증상을 재발시킨 듯했다.

이호성은 쏠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쫄지 마. 이 소개팅을 주도하고 있는 건, 저 녀석들이 아니라 바로 너니까.”

위로 같은 건 귀에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쏠은 여전히 딱딱하게 얼어 있었다.

이호성은 짧게 한숨 쉬며, 그런 쏠을 데리고 소개팅이 예정된 무대로 향했다.

본래는 방을 총 8개로, 열둘에서 열셋 사이의 고블린들이 방마다 넣어 놓기로 했지만, 그 방법은 거의 막판에 변경됐다.

정말로 TV에 나왔던 방송처럼 무대에 세우기로 한 것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엄청난 스케일의 소개팅을 도와주기로 했다.

세계를 구한 강민성 때문에, 덩달아 자신까지 무슨 일을 하려고만 하면 두 팔 걷고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대에 도착하자, 쏠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 만들었는지 화려한 무대가 세팅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넓은 홀과 피라미드 계단 형식으로 된 100개의 좌석이 있었고, 가장 높은 곳에는 ‘쏠’이 앉을 왕좌가 마련되어 있었다.

TV에서 보았던 프로그램 그대로, 쏠의 소개팅을 위한 무대가 꾸며져 있었다.

그건 쏠뿐만이 아니라 이호성마저도 놀랄 만큼의 고퀄리티 무대였다.

그때, 몇 명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무대를 설치한 방송국 쪽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조심스레 촬영을 하면 안 되겠냐고 제안했지만, 이호성은 단박에 거절했다.

만약 성공하면 영화지만, 실패하면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다.

분명 어딜 갈 때마다 인간들이 수군거릴 게 틀림없었다.

이호성은극도로 긴장하고 있는 쏠의 등을 토닥여 주며 이 프로그램을 시작해 달라고 전했다.

* * *

어디서 어떻게 듣고 나타났는지, 연예인이 MC를 보기 위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무슨 고블린 소개팅하는 데 연예인까지 나오나 싶었지만, 강민성의 위업과 유명세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신기하기만 할 일은 아니었다.

직원이 쏠을 자리에 앉히라고 말했다.

이호성은 얼어 있는 쏠을 데리고, 피라미드 형식으로 되어 있는 가장 높은 위치의 자리에 쏠을 데려가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역대급으로 충격적인 프로그램.

바로 쏠을 포함한 101의 고블린이 참여하는 ‘101 프러포즈’가 시작됐다.

비로소 무대 위로 음악이 깔리며, 분석 기관의 직원들이 고블린을 대동하고 무대 위로 나오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이익!”

“취에에에엑!”

“크아아악!”

“크륵! 크륵!”

저마다 흉측한 소리를 내며, 무대 위로 고블린들이 기관 직원에 의해 이끌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쏠과 달리 말을 하지 못하는 고블린들이었기 때문에, 야생의 습성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호성은 그 엽기적인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쏠은 그 진풍경을 보고 입을 벌린 채, 넋이 나가 버리고 말았다.

황금 고블린 쏠은 무대 위로 올라온, 100의 숫자를 꽉 채운 암컷 고블린을 보며 설레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지금의 이 현장은 쏠의 삶에 있어서, 잊지 못할, 그야말로 최고의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