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189화 (189/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89화>

* * *

원형 테이블 위에 놓인 아주 커다란 냄비.

그 냄비의 뚜껑을 열면서, 뜨거운 김이 위로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메인 요리의 정체가 드디어 빛을 뿜는다.

장웅의 메인 요리는 ‘해물탕’이었다.

해물탕을 보는 민성의 눈이 하얗게 번쩍였다.

큰 냄비 안에 해산물이 꽉 차 있다.

보통, 먹고 싶었던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 별로 생각이 없어지기 마련이지만, 민성에게 있어 해물탕은 그렇지 않았다.

민성이 마인과 마신을 잡으면서 해물탕이 얼마나 먹고 싶었냐 하면, 마인과 마신을 죽이고, 마탑을 날리면서도 단 1초도 머릿속에서 해물탕이 떠나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먹고 싶었던 해물탕이었다.

손이 떨릴 정도다.

“양은 충분하니까. 마음껏 드십시오.”

전담 셰프 장웅이 따뜻한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당연히 그럴 생각이다.

“감사히.”

민성은 짤막하게 전담 셰프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존중의 의사를 전달한 뒤, 하얀 쌀밥을 한 입 먹었다.

그리고 따뜻한 쌀알이 입안을 감도는 가운데, 해물탕의 국물을 떠먹었다.

게살이 둥둥 떠다니는 해물탕의 국물은 내장이 진동으로 요동칠 정도로 맛있었다.

무엇보다 제주산 딱새우가 들어가서 국물의 향이 기가 막히다.

민성은 국물을 연거푸 떠먹으면서 게를 비롯한 해산물로 낸 깊은 맛보다, 딱새우의 저력에 크게 놀랐다.

딱새우가 들어가면 해산물의 풍미는 몇 배나 강력해진다.

딱새우를 넣어서 국물을 내면 향이 진하기 때문인데, 해물탕을 삼키면서 맡아지는 후각의 그 깊이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민성은 전복을 뜯어서, 가위로 반토막을 낸 뒤, 밥이랑 함께 먹었다.

우물우물……!

전복과 쌀밥을 먹으면서 국물을 후룩! 떠먹으면 그야말로 그것이 천국이었다.

먹기 좋게 잘려진 분홍빛의 낙지를 먹고, 게를 들어 입으로 통째로 와작 씹었다.

그러자 게살이 입안으로 움푹 튀어나오는데, 그 게살의 맛은 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꿀꺽꿀꺽-!

목울대가 연속적으로 출렁인다.

“와……. 셰프님, 이 해물탕 진짜 맛있네요.”

이호성도 맛있다고, 장웅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극찬했다.

장웅은 그런 이호성의 칭찬에 찡끗 윙크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역시 우리 할아버지 음식 솜씨는 최고라니까.”

하하 호호 웃으며 떠드는 주변의 소리.

하지만 그것은 민성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민성의 모든 의식은 오로지 해물탕에 집중되어 있었다.

국물을 떠먹으면 마치 뜨거운 온도의 폭포수가 쏟아지는 것만 같은 폭발적인 감각의 위력을 선사한다.

절로 표정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너무 맛있어서, 곧 무너질 것만 같은 의식의 끝을 붙잡고 민성은 순식간에 밥 한 그릇을 비우며, 해물탕을 향한 식사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전력질주로 내달렸다.

* * *

폭풍 같은 한 끼 식사를 마친 민성은 마당 정원 벤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쭉 빨아 마시면서 일상의 여유를 만끽했다.

아주 오래간만에 즐기는 자유였다.

민성은 눈을 감고, 자연의 바람을 맞으며, 정원의 풀 내음을 맡으면서 아메리카노를 쭉 빨아 당겨 묵직하게 한 모금을 또다시 음미했다.

코끝으로 흘러나오는 커피 향을 즐기며 천천히 눈을 떴을 때였다.

……뭐지?

민성은 약간의 경계감, 그리고 약간의 호기심이 섞인 눈으로 정원의 중심에서 커다랗게 자라 버린 나무를 응시했다.

나무 주변으로 보라색의, 마치 반딧불과 같은 빛이 떠다녔다.

그 빛이 나타나자 갑자기 나무가 마치 살아 있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꿈틀꿈틀-!

나무가 뒤틀리듯 움직이고, 나뭇가지에 붙은 잎들이 파르르 떨렸다.

민성은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거슬린다는 시선으로 나무를 응시했다.

신비한 나무는 마치 근육이 움직이는 것처럼 작게 꿈틀 거리더니 이내 촬영된 영상을 초고속 카메라로 보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민성은 턱을 괴고서 그런 현상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콰드드드득!

뿌리가 빠르게 퍼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나무의 높이는 이내 지붕을 넘어설 정도로 커졌다.

반딧불과 같은 보랏빛이 사라지고 나자, 나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게 침묵을 되찾았다.

민성은 찌푸린 눈으로 나무를 보았다.

“크고 빠르게 자라는 나무. 마계……. 마인, 마신, 마탑…….”

민성은 나무를 보면서 빠르고 낮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내 날카롭던 민성의 눈빛은 여느 일상과 다름없는 평범히 덤덤한 눈빛으로 되돌아왔다.

당장은 알 수 없는 일.

민성은 짧게 한숨 쉬며, 남은 아메리카노를 마저 마신 뒤, 벤치에 누웠다.

커다란 나무의 풀잎을 뚫고 떨어지는 햇빛의 조각을 받으며 누워 있자 솔솔 낮잠을 자고 싶어졌다.

민성은 마치 아기처럼, 벤치에 누운 채 새근새근 낮잠에 빠져들었다.

* * *

마계로 돌아온 마신들의 왕 벨드는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면서, 아쉬움에 온몸으로 진저리를 쳤다.

검은 학살자만 아니었다면, 뜻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벨드는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면서 “으으으……!” 하고 끙끙 앓는 신음을 흘렸다.

“멍청한, 멍청한 새끼들……!”

벨드는 자신들의 수하가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며 자신의 명령을 거부한 것에 대해 통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이 아니라면 기회가 없었다.

군대를 정비하고, 인간계를 치는 건 그들의 말대로 뒤로 미뤄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인간계를 쳐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를 밝힐 수 없는 건 인간계에서 얻을 수 있는 권능을 독점하기 위해서였다.

“젠장…….”

일을 그르치자 벨드는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머리를 붙잡고, 당장 쓰러질 것처럼 앓던 벨드는 이내 이를 으드득 갈았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자신의 야망은 물론, 마계의 입지도 구렁텅이 속으로 빠지게 된다.

벨드는 갈등에 빠졌다.

혼자서 권능을 독점하기 위해 마계의 존속을 걸고 모험을 하느냐, ‘사실’을 알려 다시 계획을 구성해, 군대를 편성하느냐.

두 가지 길 앞에서, 기로에 서게 된 벨드는 쉽게 선택권 앞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벨드는 흥분하지 않고 냉정히, 침착하게 생각에 생각을 더했다.

그리고 이내 결정을 내린 듯, 벨드의 눈이 흉흉하게 번쩍였다.

어차피 검은 학살자와 붙으면 답이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벨드의 눈이 먼 미래에 대한 탐욕으로 기름지게 번들거렸다.

* * *

민성의 집 정원 마당에 생겨난 나무에 생각 없이 정신이 팔려 있던 황금 고블린 쏠은 불쑥 이호성의 약속이 기억났다.

기억이 떠오르자 쏠의 머리 위로, 황금색 느낌표가 팍! 하고 나타났다.

쏠은 마치 홀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집 안으로 들어가 이호성을 찾아 나섰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이호성을 발견한 쏠은 이호성의 엉덩이를 주먹으로 툭툭 쳤다.

설저지를 하던 이호성이 바가지를 돌아보면서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응, 쏠. 왜?”

“프로듀스 101. 소개팅.”

쏠이 두 단어를 짤막하게 말했다.

그러자 이호성은 손에서 들고 있던 그릇을 싱크대에 떨어트렸다.

그릇이 그릇과 부딪치면서 쨍그랑하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

쏠은 이호성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호성은 그 짧은 찰나에, 어느새 얼굴에 비 오듯이 땀을 흘리면서 어색한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왜 그래?”

쏠이 이호성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 그, 그, 그, 그랬었지. 소개팅. 하하, 그래. 소개팅을 해 주기로 했었지.”

이호성은 마치 마비 증상이 온 사람처럼 움직이지 못하며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말을 더듬었다.

“언제 해 줄 거야?”

쏠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당시, 쏠을 설득하기 위해 밑도 끝도 없이 공수표를 날렸던 걸 떠올리자 이호성은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얗게 변하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지. 내가 꼭 해 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쏠이 신난다는 듯 활짝 웃으며 양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다시 마당 정원으로 눈부신 속도로 뛰어갔다.

이호성은 싱크대 앞에서 멍한 표정으로 초점 없이 먼 곳을 보다가 눈을 질끈 감으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고블린 101마리를 어디서 구해…….”

이호성은 나무 주변에서 뛰어놀고 있을 정원 테라스 쪽을 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 * *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이호성 역시 인류를 구한 영웅으로서, 최고의 스타가 되어 있었다.

이호성은 한국 최고의 정보기관인 그림자 길드를 찾아갔는데, 가는 길부터 도착지인 그림자 길드 본관 건물 부근에도 취재진이 잔뜩 몰려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아니, 숨을 쉴 때마다 카메라가 플래시가 번쩍였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이호성은 속이 쓰라렸다.

- 역시 넌 약하구나.

- 정신도, 몸도.

- 원래 인간은 잘 안 변해.

플래시가 터지는 그 매 순간, 민성의 말이 칼날처럼 몸을 푹푹 찔러 왔다.

‘젠장.’

기자들이, 시민들이 영웅으로 떠받들어 주는 건 전혀 기쁘지도 않았고, 영웅이라는 이름에 도취되어 우월감을 느낄 수도 없었다.

강민성 앞에서, 자신은 아직 그저 밥값 못하는 하수인에 불과했다.

언제쯤이면 강민성의 기대를 아주 조금이나마 충족시킬 수 있을까?

그런 부분을 생각해 보면 그저 까마득한 일이라 결국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이호성은 우울하게 로비 데스크로 가서 신청서를 작성했다.

신청서를 데스크 여직원에게 넘기자 대기 순번 없이 바로 안내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강민성에 의해 유명세를 타면서 여러모로 편해진 것만큼은 확실히 좋았다.

죽을 위기가 너무 많아서, 이런 삶이 전체적으로 좋은 건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이쪽 방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직원이 ‘VIP’라고 적혀 있는 방에 노크를 하고, 문을 열어 주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이호성을 담당하게 된 귀여운 젊은 여성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푹신한 최고급 소파로 아양을 떨며 안내해 주었다.

이호성은 자리에 앉았고, 담당 직원이 어떤 용무로 왔는지 물어왔다.

그리고 이호성은.

“암컷 고블린 좀 찾아주십쇼.”라고 낮게 말했다.

“…….”

이호성과 담당 직원 사이로,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그러니까 ……암컷 고블린이요?”

담당직원이 잘못 들은 게 아닌지, 확인 차 다시 되물었다.

그리고 이호성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네. 암컷 고블린.”

“…….”

다시금 어색한 정적이 찾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