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187화 (187/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87화>

쏟아지는 비.

피와 뒤섞인 바닥.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인간의 시체와 마인의 흔적.

마치 지옥을 연상하게 하는 그 공간에서.

전 세계의 마인들이 일제히 한 방향을 바라보더니, 이내 그곳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세계를 곧 멸망시킬 듯이 몰려들었던 마인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을 찢으며 눈앞에서 사라졌다.

마인에 의해 죽음을 앞두고 있었던 사람들은 영문 모를 표정으로 멍해 있다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거나 지쳐 의식을 잃으며 기절했다.

* * *

마신들의 왕 ‘벨드’는 온몸에서 화가 들끓었다.

저 멍청한 마신들이,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열 1위의 마신 자크에게는 마인들을 통솔할 수 있는 권능이 있었다.

설마하니, 저놈이 마인들을 다시 탑으로 불러들이는 짓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벨드였다.

벨드는 전음을 통해, 마신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 뭐 하는 짓이냐! 어째서 마인들을 다시 탑으로 불러 모으는 것이야!

“…….”

전음으로 크게 호통쳤지만, 마신들의 회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벨드는 애가 탔다.

- 다시 마인들에게 인간계 공격 명령을 내려!”

마신의 왕인 자신은 마신들을 통솔할 수 있지만, 마인을 부릴 수 있는 군권은 그들에게 있었다.

또한 마신들은 마인과 달라서, 본능에 의해 명령을 듣는 게 아니라 이성으로 판단했다.

“몇 십 년을 준비한 일인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벨드는 수정체를 보며 갈등했다.

검은 학살자와 마신들이 있는 저곳으로 가서 마신을 설득할 것인지, 아니면 후일을 도모할 것인지.

결론은 빠르게 정해졌다.

마신들과 함께 움직이지 않은 건 자신의 안위 때문이었다.

마신들의 왕인 자신이 죽으면 마계는 끝이었으니까.

벨드는 수정체를 지켜보다가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그 수정체를 깨트려 버렸다.

* * *

“지금 보이는 것처럼, 마인들은 탑으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전쟁을 멈출 생각이다. 그러니 우리들을 그만 보내 줘.”

서열 1위의 마신 ‘자크’가 말했다.

민성은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를 맞으면서 주변을 훑어보았다.

마신들과의 짧은 전투만으로도 주변은 마치 폐허처럼 변해 있었다.

마인들이 급습한 전 세계는 굳이 내다보지 않아도, 어떤 그림일지 눈에 선했다.

“멋대로 쳐들어와서 난장판을 쳐 놓고…… 뻔뻔하기도 하지.”

민성이 낮은 톤으로, 서늘하게 말했다.

마신들은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온몸이 움찔움찔 떨렸고, 그가 내뱉은 말의 내용은 훨씬 더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를 죽이려 든다면, 어쩔 수 없이 마인들에게 다시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다. 너 역시 그걸 바라는 건 아닐 텐데.”

주변 풍경을 보고 있던 민성이 차가운 눈으로 마신 자크를 보며 웃었다.

“그건 그런데, 보통 ‘군권’을 쥐고 있는 놈은 하나잖아?”

마계에서도 놈들의 체계는 욕심만큼이나 까다로웠고, 분명했다.

그런 점이, 지금과 같은 이점을 만들어 냈다.

“……헉?!”

자크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을 때, 민성의 검 듀랑달은 이미 민성의 손을 떠난 후였다.

민성의 듀랑달이 눈부신 속도로 자크의 목을 탄환처럼 꿰뚫었다.

협상 중이었던 탓에 방심하고 있던 터라, 미처 전력으로 펼친 민성의 이기어검술을 막아 낼 수 없었다.

자크는 그대로 본체로도 변하지 못한 채, 파편이 되어 소멸해 버렸다.

남은 마신들이 공포에 물든 얼굴로 민성을 보며, 마치 몸이 굳은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차라리 나를 끝까지 배제했더라면, 마인을 통해 최소한 인간계를 잠시나마 장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텐데. 역시 너희 족속들의 욕심이란…… 여전하군.”

이기어검술을 전력으로 펼쳐, 서열 1위 자크를 소멸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민성에게는 아직 마신들을 상대할 여력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동족 중 최고의 마신이 죽었으니, 그들은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다.

불안감을 느낀 마신들이 이구동성으로 굴복의 뜻을 전했다.

“우린 전쟁을 포기했다. 항복이라고!”

“그만 칼을 거둬라.”

“약속하지. 더 이상 인간계에…….”

“우리는……!”

여기저기서 마신들의 항복 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럽게 나불나불하고 있는 걸 보니, 그 모습이 꽤 귀여워서 조금 더 괴롭혀 볼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놈들은 어쨌거나 그 끔찍한 마계에서 내려온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민성의 미련을 잘라 냈다.

이것들은 하루라도 빨리 죽여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민성의 듀랑달은 협상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콰르릉!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신들이 피를 뿌리며, 하나둘 본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비겁한…….”

“항복을 했는데도……!”

분명 지옥과도 같은 마계에서 사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신들의 반응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에 가까웠다.

때문에 민성은 그런 놈들의 반응이 재밌고, 불쾌했으며, 거슬렸다.

민성의 듀랑달이 마기에 의해, 맹수의 울음 같은 소리를 내며 부르르 떨렸다.

“밥 좀 먹게, 어서들 가자.”

민성의 시선이 용서 없이 마신들을 직시했다.

그 시선에 마신들은 경기를 일으키듯 질색했다.

애초에 민성으로부터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까지 마신들은, 충분한 음식물과 수면을 취한 민성을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늘 지쳐 있고, 수면 부족 상태와, 영양분이 없는 상태인 민성과 싸워 왔다.

그러나 지금 최상의 컨디션을 갖고 있는 민성은, 마신들에게 있어 왜 검은 학살자가 그들의 천적임을 확실하게 알게 해 주었다.

민성은 마치 말벌이 꿀벌을 죽이듯이 무차별적인 학살을 시작했다.

본체로 변한 마신들이 전력을 다해 민성에게 전력을 다한 공격을 쏟아부었지만, 민성은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그들의 공격을 피하며, 그들의 마법을 무효화시켰다.

그리고 이내 하나 하나의 마신들에게 충격적인 데미지를 선사했다.

민성은 흔들림이 없었고, 여유를 가지면서도 냉철하고 또한 강직함을 유지했다.

지쳐 있지 않은 민성에게, 마신들의 공격이란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민성의 듀랑달이 본체를 이룬, 마신들의 거대한 몸체를 찌를 때마다 마신들은 끔찍한 비명과 함께 고통으로 몸을 떨며, 온몸으로 울었다.

무엇보다 민성은 마신들의 습성까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놈들의 전투 형식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최상의 컨디션에, 놈들에 대한 정보도 가득했으니, 애초에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또한 민성은 삼천교의 비급을 통해 여러 가지 응용 기술을 익히게 되면서 한층 더 성장하여 여유롭게 마기를 운용할 수 있었다.

민성은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인간계를 삽시간에 지옥으로 만들 뻔했던, 이 일의 주동자들인 마신들은 마치 가지고 놀듯이 상대했다.

민성의 앞에서 마신들은 안타까울 정도로 한없이 나약한 모습처럼 보였다.

하늘의 누군가가 본다면, 마신들의 그 모습은 가히 마신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안쓰러울 정도였다.

꼬르륵…….

배에서 다시금 신호가 들린다.

민성은 가라앉은 눈으로 마신들을 보며, 듀랑달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내 세계에서, 꺼져라.”

민성의 듀랑달에서 마기가 거대한 빛의 파장을 뿜었다.

남아 있는 마신들을 향해, 민성이 가진 최대 출력의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마기가 마신들을 집어삼켰다.

인간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을 만큼의 힘을 지닌 마신들이 민성의 한칼에 의해 거대한 몸이 찢어지며 사라졌다.

* * *

최고의 서열을 가진 마신들이 검은 학살자에 의해 소멸하자 해당 위치로 이동하던, 아직 죽지 않은 마신들은 크게 동요했다.

그들은 부근에 다다라서, 이동을 멈추고 혼란 속에서 갈등했다.

마신들의 왕 ‘벨드’가 마인을 통솔할 수 있는 군권을 다른 마신에게 내리려 했지만, 마신들은 갈등하며, 그 군권을 받아 들지 않았다.

지금의 형세로 검은 학살자가 있는 인간계를 치는 건, 너무 무모했고 위험했다.

그리고 이내 마신들은 직감했다.

마인을 통해 이 세상을 반 이상 초토화시킬 수는 있어도, 그럴 경우 검은 학살자에 의해 자신이 소멸할 가능성이 너무 높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 어서 군권을 받아 들고, 인간계를 점령하란 말이다!

벨드가 발악적으로 소리쳤지만.

“인간계를 점령하면 뭐 합니까? 검은 학살자에게 다 소멸되게 생겼는데.”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우린 다시 마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검은 학살자가 너무 강합니다…….”

“과욕 때문에, 대의를 잃게 될 수 있는 일.”

“지금은 물러서야 할 때입니다.”

“다시 새로운 준비를…….”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마계의 지배자들은 마계로 돌아갈 것을 벨드에게 촉구했다.

마신들의 왕 벨드는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 얼굴로 분노의 외침을 허공에 터트렸다.

* * *

전 세계에 나타났던 탑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벨드와 마신들이 다시 비옥한 땅인, 마계로 돌아가는 것임을 의미했다.

마인의 탑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자, 움츠려 있던 인간들은 다시 수면 위로 스스로를 드러냈다.

강민성에 의해, 어둠으로 뒤덮으려던 세상에 빛이 찾아왔음을 직감한 것이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살아남은 언론인들이었다.

그들은 가장 먼저 민성이 마계를 몰아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퍼트렸다.

그들을 필두로, 숨어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하나둘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전히 불안감에 떨었지만, 가슴 한쪽에서는 민성에 대한 감정만큼은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계로부터 이 세상을 구원하고 지켜 낸 것은 오직 민성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민성은 살아 있는 신화였고, 수호자였다.

언론에서 민성의 위대한 업에 대해 쉴 틈 없이 기사를 내보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그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

마인과 마신, 그리고 마인의 탑을 몰아낸 민성은 전 세계인들 모두의 가슴에 신(神)으로 각인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 *

결국 마인의 탑이 완전히 그 모습을 감추게 되자, 사람들은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하지만 아직 불씨는 남아 있었다.

던전이 사라지고 좋아했었던 그들이었지만, 마인의 탑이 나타났다.

결국 지금 마인의 탑이 없어졌다고 해서, 이 세계가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런 만큼 불안감은 전보다 훨씬 강하게 그 후유증을 남겼다.

시민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지독한 불안감에 시달리면서도, 민성이 있었기에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이 다시 웃을 수 있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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