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86화>
* * *
마신들은 당황했다.
완벽하게 기회를 잡았고, 지금의 이 잠복(潛伏)이 기습을 위한 완벽한 준비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검은 학살자’ 강민성은 그들의 전략을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황금 고블린이라는 몬스터의 예상치 못한 등장에 한 마리의 마신이 당황하며 기척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 실수는 치명적이었고, 민성은 그런 마신들의 실수를 놓치지 않았다.
미리 감각을 극대화시켜 놓았던 민성은 마신의 위치를 즉각 파악해 냈다.
파밧!
순식간에 위치를 발각당한 마신 앞에 나타난 민성이 눈을 하얗게 번쩍이며 듀랑달을 내질렀다.
콰르릉-!
민성의 듀랑달이 하얀 벼락과 함께 마신의 가슴은 관통하여 등 뒤로 빠져나왔다.
민성은 마신의 목을 틀어잡으며 찔러 넣었던 듀랑달을 뽑았다.
마신이 입 밖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게 보였다.
민성이 듀랑달을 뒤로 당겨, 다시 휘둘렀다.
콰르릉!
서걱!
마신의 목이 잘리면서,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민성이 듀랑달을 하늘로 내던졌다.
하늘을 향해 날아가던 검이 다시 서서히 아래로 추락하려고 하기 직전, 민성은 자신이 던진 듀랑달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는 순간.
하늘에서 마치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사방으로 뇌전의 마기가 퍼져 나갔다.
이건 최근 삼천교의 비급서를 통해 배운 것들 중에 유용하게 쓸 만한 기술들이 있어 응용을 해 본 것인데, 그 효과가 상당했다.
그로 인해 인비전과 같은 투명화로 은신을 하고 있던 마신들의 형체가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민성은 옅게 웃으며 듀랑달을 끌어당겨, 자신의 품으로 날아온 무기를 손으로 낚아챈 뒤, 맹렬하게 듀랑달을 휘둘렀다.
민성의 공격이 뿌려지자 형체를 드러낸 마신들은 저릿저릿한 마기에 의해 몸이 휘어지면서 저마다 고통스러운 듯 일그러진 얼굴이 되었다.
지금이 아니면, 마신들을 잡을 수 있는 기회는 요원할 수도 있었다.
놈들이 작정하고 도망 다니면 승부를 건 의미가 없으니까.
하지만 초조하다고 해서 민성은 서두르지 않았다.
자신은 적어도 마계에서 전사였다.
전사는 냉정해야 하며, 이성적이면서도 망설임이 없어야 했다.
그것은 누가 알려 준 것이 아니라, 민성이 직접 마계에서 몸으로 배운 것이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무리 굶주린 트라우마가 머릿속을 잠식한다고 해도.
전투는 늘, 순서를 지켜야 한다.
오롯한 집중에서 비롯되는, 생명의 불빛이 꺼지고 켜지는, 한순간에 벌어지는 생사의 갈림길.
그 갈림길에서 민성 자신은 늘, 상대의 생명을 꺼트리는 차가운 바람이자, 얼음이었고, 물이었다.
민성은 마치 고대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 속에 나오는 신화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전신의 위엄을 드러냈다.
마신들은 이대로 당할 수 없다는 듯, 사방에서 마계의 마법을 사용했다.
허공에 마계어로 된, 검은 붓글씨와도 같은 두꺼운 글자가 새겨지면서 마계의 힘이 휘몰아쳤다.
민성은 그들이 최상위의 마신들임을 알고 있었다.
완벽한 기회가 찾아왔다고, 민성은 생각했다.
그런 만큼 지금 마신을 죽이는 것으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마인들의 움직임을 통제해야만 했다.
하지만 마신 한 마리가 아닌 9명이나 되는 수의 마신들과 전투를 벌이는 상황이기 때문에, 체력 조절은 물론 한 수 한 수의 공방 역시도 신중해야 했다.
마신들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민성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눈에 힘을 주었다.
마신들의 움직임을 체크하면서, 민성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펼쳤다.
민성은 마치 천둥의 신처럼 뇌전을 뿌리며 마신들을 몰아붙였다.
마신들의 마법이 민성에게 사방에서 쇄도했지만, 민성은 그 모든 마법 공격을 무효화시키며, 듀랑달을 차례차례 마신들의 몸에 찔러 넣었다.
최고 서열의 마신들이 모여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성의 화력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마신들은 인간계에 내려온 모든 마신들에게 현 위치로 모일 것을 명령한 상태였다.
곧 몇 분 지나지 않으면 72 마신들이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마신들은 불행히도 강민성 앞에서 그 몇 분을 버틸 만큼의 능력이 없었다.
마신들의 총공세가 민성에게 쏟아지고 있음에도, 민성은 그 모든 공격을 뚫고 들어가 마인들의 몸에 듀랑달을 밀어 넣었다.
찌르고 베고, 휘두르자 마인들은 피를 뿌리며 사방으로 쓰러져 나갔다.
뇌전의 천둥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 * *
“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이호성은 어두운 얼굴로 낯빛을 굳혔다.
헌터들이 죽어 가고 있었다.
놀라운 힘을 펼쳐 냈던 중국 헌터들이 체력이 바닥나면서, 더 이상 마법벽을 깨고 넘어오는 마인들의 공격을 버텨 내지 못했다.
그 와중에 이호성은, 죽어 가고 있는 마인을 보면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X발, 이걸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마인은 기본적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체형이 인간을 닮아 있었다.
거기다 시커먼 피부에 빨간 눈.
괴물처럼 생긴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맛있는 산해진미를 가져다줘도, 먹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강해지기 위해서는, 방법이 없는 바.
이호성은 마인의 팔을 잡아 입을 크게 벌리고, 그 팔을 콱 씹었다.
하지만 아무리 깨물어도, 이호성 자신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마인의 피부가 워낙 단단했기 때문에 이빨 자국도 남지 않았다.
게다가 느낌이 너무 징그러웠다.
이호성은 입을 떼면서 마치 춤을 추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아…… 도저히 못하겠다. 미친!”
마인의 피라도 마셔야 하는 건가?
이호성은 역한 심정으로 죽어 가는 마인을 보며 한숨과 함께 데스나이트의 검을 찔러 넣으려 했다.
그때―
“똥개……!”
바가지의 외침이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한 마리의 마인이 날개를 퍼덕이며 자신에게 고속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퍼어억!
마인의 손이 이호성의 가슴을 꿰뚫었다.
“쿨럭-!”
피를 토하며 축 늘어진 이호성을 보고, 머리를 씹어 먹으려던 마인에게 바가지가 언데드 마인을 보냈다.
그로 인해 이호성을 공격했던 마인은 이호성을 잡아 뒤로 던진 후, 자신에게 달려오는 바가지의 언데드 마인과 맞붙었다.
그사이 바닥에 콸콸 피를 흘리며 누운 이호성은 흐릿하게 보이는 풍경을 보며, 피 섞인 기침을 토하며 눈살을 구겼다.
버서커가 되면서 체력이 재생된다고 죽지 않는 불사신인 게 아니다.
버서커 상태에서 죽게 되면, 두 번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시체가 돼서, 영원히 잠드는 것이다.
중국 헌터들의 수는 눈에 띄게 줄었고, 상황은 마인들에 의해 모두 전멸할 것 같았다.
초반의 그 기세 좋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중국의 헌터들은 마인들의 숫자를 이기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쓰러지거나, 마인에게 그대로 잡아 먹혔다.
……빌어먹을.
이제 정말 끝인 건가?
바가지랑 마지막 인사 정도는 하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이호성은 의식을 잃으며 그대로, 버서커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 * *
마신들은 현재 당황하고 있었다.
분명 계획이 있었다.
그것은 전략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높은 성공 가능성을 갖고 있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마신들은 미처 알지 못했다.
검은 학살자 강민성이 얼마나 마계에 오래 있었고, 얼마나 자신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는지.
때문에 마신들은 몰랐다.
민성이 마인의 탑을 미끼로 자신들을 역으로 칠 것이라고는.
‘젠장……!’
서열 1위의 마신 ‘자크’는 자칫 이대로 가다가는, 설령 모든 마신들이 이곳에 모인다고 해도 강민성을 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감정이 가슴에 파고들었다.
생각해 보면 마계에서도 놈을 죽이기 위해 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런 놈을 상대로, 이렇게 간단히 승리를 쟁취할 거라고 생각한 건 무모하다 못해 멍청한 생각이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자크는 ‘검은 학살자’에 의해 피를 흘리고, 본체로 변한 상태에서도 비실비실 힘을 쓰지 못하는 동족들을 보며 송곳니를 빠득 갈았다.
마신들의 왕.
마왕 벨드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 싸움은 마계의 새로운 구축을 위한 정치적 물갈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검은 학살자를 너무 무시했어.’
민성이 듀랑달로 본체로 변한 서열 6위의 마신을 갈라 버렸을 때.
“그만!”
자크가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민성과 마신들의 격돌로 인해, 주변이 황폐하게 변했다.
그 가운데 마신들의 피를 묻힌 듀랑달을 들고 서 있는 민성은 마치 귀신같은 얼굴로 아주 조금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며 마신 ‘자크’를 응시했다.
서열 1위의 자크.
그는 마계에서 마왕 다음으로 가장 강한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검은 학살자와 눈이 마주치자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놈은 인간이 아니었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을 때의 검은 학살자는, 마치 절대 넘을 수 없는 차원의 영역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을 끌 생각이라면…….”
자크가 말을 잘랐다.
“지금 당장 마인들에게 공격을 멈추고, 탑으로 돌아오라고 명하겠다.”
그 말에 주변에서 피를 흘리고 있던 마신들이 놀란 눈으로 자크를 보았다.
자크는 동료 마신들을 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우리는 이길 수 없다. 우리는 패했다.”
마신들의 얼굴에 굴욕감과 좌절감, 그리고 패배감이 진하게 내려앉았다.
그들이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마계를 떠나, 장악하려고 했던 새로운 세계의 영지.
인간계를 정복할 수 없었던 것은, 단 한 명의 인간에 의해 실패하고 무너진 것이니까.
“아그라크, 피스 투 호드!”
자크가 커다랗게 소리쳤다.
그 소리는 마치 동굴 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처럼, 크고 웅장하게 메아리치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 * *
마신 자크의 외침은 곧 명령이었고, 그 명령은 마인의 탑에서 튀어나온 모든 마인들에게 전달되었다.
폭발적으로 날뛰던 마인들은 마신 자크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즉각 그 기민하던 움직임을 멈췄다.
당장 죽기 직전의 위기를 맞이했던 전 세계의 헌터들과 사람들은, 마인들이 갑자기 마치 석상처럼 굳어서 움직임을 멈추자 의아한 눈으로 마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경계를 멈추지 않았다.
폭풍이 지나간 후, 체감 상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것만 같은 고요한 적막함이 내려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