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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85화 (185/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85화>

적막 끝에, 묵직하게 울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소리가 멎어 들었을 때, 러시아의 험준한 산 위에 있었던 마인의 탑은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마인의 탑 주변의 날아간 지형이 민성에 의해 마인의 탑이 사라졌다는 것을 유일하게 알려 줄 수 있는 증거였다.

황금 고블린 쏠은 그 광경을 입을 벌리고서, 멍하니 쳐다보았다.

“후우-.”

그사이 민성은 지친 기색이 만연한 상태로 들고 있던 듀랑달을 아래로 내렸다.

마기의 소모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 듀랑달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굉장히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민성은 근처 바닥에 앉아 피가 섞인, 마른침을 툭 뱉으며,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 몸에 은근하게 배여 있는 땀을 식혔다.

* * *

“저런 미친놈이……!”

서열 3위의 마신이 수정구를 통해 민성의 모습을 영상으로 확인하고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건 마인의 탑 50층.

최종 플로어에 모여 있는 모든 마신들 역시 마찬가지의 감정이었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인의 탑을 날려 버릴 거라고는.

수정구를 통해 민성의 힘을 확인한 10명의 마신들은 공포를 느꼈다.

검은 학살자라는 놈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마인의 탑을 통째로 날려 버릴 정도의 출력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실감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마왕 ‘벨드’가 말했던 것처럼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 아니었다.

외려, 추격에 쫓기고 있는 건 바로 자신들이었다.

하지만 동요하고 있는 마신들과 달리 그들의 주인인 ‘벨드’는 표정이나 감정의 변화 없이 침착했다.

마신들은 그런 벨드의 눈치를 살피면서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벨드는 왕좌에 앉은 채, 마신들을 내려다보며 쯧쯧 하고 혀를 찼다.

“그렇게들 겁이 많아서야, 너희들이 그러고도 마신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마왕 벨드의 꾸중에 마신들이 면목 없다는 듯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놈이 제 아무리 탑을 날릴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정도의 마기 소모는 놈을 급속도로 지치게 만든다. 고로, 그것은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마신들이 눈을 크게 뜨며 벨드를 올려다보았다.

벨드가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었다.

“검은 학살자니 뭐니 해도, 결국은 마계에서 죽었던 놈이고, 고작 인간에 불과하다. 마인의 탑 몇 개만 그런 식으로 날려도, 놈은 손가락 하나 까딱 할 힘이 없을 것이다.”

그 말에 마신들은 긴장이 한결 가신 표정으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들의 왕 벨드의 말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 아무리 검은 학살자라고 해도, 저 정도의 마기를 소모하고서는 얼마 가지 않아 벨드의 말대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 것이 분명했다.

굳이 자신들이 나서지 않아도, 충분히 마인들에 의해 처리될 수 있을 만큼.

그런 예상을 하게 되자 마신들은 그제야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 징글징글한 검은 학살자 놈. 인간계에서 죽으면 다시는 태어나지 못하겠지.”

“이번 기회로 두 번 다시 그 지긋지긋한 낯짝을 볼 일은 없겠군요.”

“멍청한 놈. 차라리 인간계를 버린다고 생각하고 맞섰다면 명줄이라도 길어졌을 텐데, 크크크크큭!”

소란스럽게 떠들던 마신들이 벨드의 사나운 시선에 모두 합죽이가 된 것처럼 일시에 입을 다물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그럼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도, 놈을 손쉽게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신들이 벨드를 향해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 * *

이호성이 민성이 명령했던 합류를 위해 바가지와 함께 중국의 2차 방어선에 도착했을 때 중국 헌터들과 인사를 나눌 시간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마법벽이 부서지지 않도록 추가 보수 작업은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또한 부서진 공간을 통해 들어온 마인들은 중국의 헌터들이 힘을 합쳐, 마인을 죽이는 데 전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이호성은 중국 헌터들이 마인들과 싸우는 걸 보고 크게 놀랐다.

중국 헌터들은 이호성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고, 그런 만큼 눈부신 전투 능력으로 마법벽을 뚫고 들어오는 마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호성이 보기에 그들은 삼천교보다도 훨씬 고강한 능력을 가진 헌터들인 듯했다.

저런 자들이 왜 이름을 날리지 않았을까?

왜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그런 의문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무리 그들이 출중한 헌터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해도 힘에 부쳐 체력이 빠지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호성은 데스나이트의 검을 쥐고 바가지와 시선을 주고받은 뒤 중국 헌터들을 협력하기 위해 마법벽으로 뛰었다.

그나저나…….

‘대체 저걸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이호성은 마법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간을 닮은 마인들을 보자 속이 울렁거렸다.

* * *

폐허처럼 변해 버린 주변의 풍경을 보며, 민성은 템창에서 생수 한 통을 꺼내 꿀꺽꿀꺽 마셨다.

생수를 다 마시고, 뚜껑을 닫던 때.

울음과 신음이 섞인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쏠이 민성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민성은 템창에서 다시 듀랑달을 꺼내며 일어섰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 보자, 아직 죽지 않은 마인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마인들은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린 채,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있었다.

민성이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마인들에게 걸어가자 쏠은 손으로 자신의 두 눈을 가렸다.

민성은 무정한 눈으로 바닥을 기고 있는 마인을 내려다보았다.

“이짓만큼은 안 하고 싶었는데, 결국 또 먹는구나.”

민성은 울면서 기어가고 있는 마인을 보며 얼굴을 불쾌하게 굳혔다.

마인의 탑을 통째로 날려 버렸기 때문에 마기를 회복시키는 데 있어 마인을 먹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민성은 마인의 목을 ‘덥석―!’ 잡아 위로 들어 올렸다.

죽어 가는 마인이 살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 표정으로 ‘켁켁!’거리며 버둥거렸다.

“내가 지칠 거라고 기대하지 마라. 그리고…….”

민성이 자신의 손에 잡혀 버둥거리는 마인의 눈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날 만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그것은 마인의 눈을 통해 먼 곳을 볼 수 있는 마신들에게 전한 얘기였다.

민성의 말은 거기서 끝이었고.

콰드드득-!

마인에게서 마치 전신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 이후.

츠츠츠츠츠츠츠!

마인의 몸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마계에 갔을 때는, 몬스터를 음식 먹듯이 씹어 먹었지만, 여러 가지 능력을 쓸 수 있게 되면서, 민성은 흡성(吸性)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능력은, 대상의 생명력을 강제로 흡수하는 것.

그런 탓에 민성의 흡성 능력이 사용되자 마인의 시커먼 몸은 순식간에 미라처럼 말라 가기 시작했다.

체내의 수분이 다 빠지고, 생기마저 잃게 된 마인은 마치 밀랍처럼 변해 버렸다.

민성이 손을 놓자, 흡성 능력에 의해 바짝 말라 버린 마인은 마치 흙모래가 부서지듯 퍽! 소리를 내더니 이내 파편이 되어 소멸되어 사라졌다.

마인의 생기를 흡수하고 나자 지쳤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주변에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마인들이 있었다.

민성은 도망을 치려는 마인을 향해, 무정한 눈으로 응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살기 위해 바닥을 필사적으로 기어가던 마인이 민성의 손에 의해 “컥!” 소리를 내며, 몸이 뒤틀려 나갔다.

* * *

마왕 ‘벨드’는 초조한 심정으로, 해골 뼛조각을 아그작아그작 씹었다.

검은 학살자는 예상과 달랐다.

마인의 탑을 통째로 날려 버리기 위한 마기 소모는, 분명 치명적인 체력 저하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마인 몇 마리의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비워 낸 마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에 벨드는 경악스러운 심정이었다.

마계에서 늘 못 먹고, 어두운 환경으로 인해 최악의 컨디션을 유지했던 때가 아니라, 인간계에서 최고의 컨디션을 갖고 있는 검은 학살자는, 마계에서보다 훨씬 전투적 기량이 상승되어 있었다.

마계에서의 기억을 갖고 놈을 상대하다가는, 마신들의 우려대로 검은 학살자에 의해 판이 뒤집어질 수도 있었다.

마신이 죽으면, 마인은 우두머리를 잃게 됨으로써 혼란이 찾아온다.

그건 곧, 목표에 대한 방향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일.

벨드는 손에 들고 있던 뼛조각을 버리고, 주먹으로 앉아 있던 해골 의자를 부수며 벌떡 일어났다.

수정체를 통해,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불안을 품고 있던 마인들은 자신들의 주인이 벌떡 일어서자 모두 벨드를 향해 자세를 갖추고 섰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밖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놈이 마인의 탑을 날리면, 바로 그때 놈이 살아남은 마인을 통해 생명력을 흡수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공격에 나선다.”

벨드의 말에 마신들이 눈을 번쩍 떴다.

제 아무리 검은 학살자라고 해도, 마인의 탑을 날린 직후라면 마기의 소모가 극심한 때.

놈이 마인의 생명력을 흡수하기 전이 가장 완벽한 빈틈이었다.

그때를 노린다면, 굳이 마계의 주인인 마왕 벨드가 나설 것도 없이, 끝을 낼 수 있었다.

마왕 벨드를 필두로 마신들의 눈이 흥분으로 번들거렸다.

* * *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민성이 워프 게이트를 통해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넘어갔을 그 시기, 대부분의 나라는, 2차 방어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3차 방어선 안쪽으로 미어터질 듯이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2차 방어선이 무너진 이상, 마지막 방어선인 3차 방어선까지 무너지게 된다면, 그건 인류의 멸망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사실과 직결되는 일이었다.

인류는 대혼란 속에서 공포에 물들어 패닉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모든 나라가 마지막 3차 방어선에 추가 마법벽을 겹겹이 쌓아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법벽은 마치 종이로 세운 것처럼 걱정스럽고, 불안하고, 위태롭게 느껴졌다.

인류의 목숨을 구원할 마지막 3차 방어선이었기에, 전 인류의 공포는 극에 달하고 있었다.

* * *

미국의 시애틀에서 400킬로미터 내륙에 위치한 도시 스포캔에 도착했다.

스포캔에 나타난 마인의 탑은 전 세계에 나타난 마인의 탑 중 가장 중심부라고 부를 수 있는 탑이었다.

민성은 수많은 건물들 위에 부양되어 있는 마인의 탑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했다.

탑을 날리고 있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3차 마법벽이 버티는 시간을 계산해 보면, 놈들의 입장에서도 초조해질 때가 됐다.

마신이든 마인이든, 놈들은 본래 수동적이라기보다 능동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마기의 소모가 크다는 것을 미끼로 놈들을 유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민성은 기감을 극대화시켜, 그 감각을 주변으로 퍼트렸다.

그리고 그 기감에 놈들이 걸려들 수 있도록, 이동 속도가 빠른 황금 고블린 쏠을 이용해 주변을 탐색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쏠의 수색에 의해, 주변의 공기가 뒤틀리는 게 느껴졌다.

민성은 옅게 웃었다.

놈들은 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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