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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84화 (184/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84화>

“…….”

적막한 침묵이 흘렀다.

바가지도 놀란 표정으로 민성과 이호성을 번갈아 보았고,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쏠은 피곤함이 역력한 표정으로 벽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았다.

이호성이 잘못 들은 게 아니냐는 표정으로 민성을 보며 눈을 퀭하게 떴다.

“마, 마인을 먹으라고요?”

믿고 싶지 않은 표정으로.

하지만 민성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을 이었다.

“마인을 먹으면, 마기가 쌓일 거다. 그 힘이라면 성장 속도가 훨씬 빨라질 거야. 그리고 마인을 먹으면 마인으로부터 타깃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인간의 냄새를 지워 주는 효과가 있으니까. 생존 확률이 올라갈 거다.”

“그냥 안 먹고 헌터님 따라가면 안 될까요?”

“그러기엔 아직, 네가, 너무 쓸모가 없지.”

딱딱 끊어서 말하는 민성의 냉정한 말에 이호성은 고개를 떨구었다.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다. 네 선택이야. 그리고 바가지.”

민성의 부름에 바가지가 경례를 올려붙였다.

“네, 주인님!”

“어차피 넌 일정 HP가 하락하면 내 곁으로 소환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자신감을 갖고 성장해라.”

“네. 걱정 마세요!”

바가지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민성이 게이트실로 떠났고, 쏠은 민성을 졸졸 따라갔다.

바가지와 함께 복도에 남게 된 이호성은 강시같이 푸르스름한 얼굴로 숨을 꼴딱꼴딱 쉬었다.

“괜찮을 거야.”

넋이 나가 있는 이호성을, 바가지가 손으로 다리를 톡톡 두드려 주었다.

이호성이 곧 토할 것 같은 얼굴로 바가지를 노려보았다.

“괜찮겠냐? 엉? 너야 HP 빠지면 자동으로 헌터님 곁으로 돌아가겠지만 말이야. 난? 엉? 난 죽으면 끝이라고. 아직 결혼도 못 했는데 말이야. 엉?”

“…….”

“…….”

바가지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이호성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어쩌라구?”

이호성은 비교적 큰 손으로 자신의 눈가를 툭 짚으며 피식 웃었다.

“그래. 뭘 어쩔 도리는 없지. 이 무지막지한 상황을 즐겨 주는 수밖에. 훗!”

바가지는 이호성을 보며 커다란 머리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었다.

“……뭐라는 건지.”

* * *

미국에 생성된, 마인의 탑 50층.

그곳에 10명의 마신들이 모여 있었다.

그 10명은 72 마신 중에서도, 최상급의 순위를 갖고 있는 10위에서 1위까지 속해 있는 ‘마신’들이었다.

그들은 마인의 탑 안에서, 곤혹스러운 얼굴로 불편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 불편한 침묵이 이어진 이유는 오직 단 하나, ‘검은 학살자’ 때문이었다.

은은한 어둠이 감도는 마인의 탑 50층 라스트 플로어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허공을 떠다녔다.

“놈이 우릴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긴 침묵을 깬 건 서열 7위의 마신이었다.

그의 말에 한자리에 모인 마신들에게는 무거운 적막감이 찾아왔다.

“흥! 검은 학살자는 무슨. 그래 봤자 인간 아닙니까?!”

서열 5위의 마신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지만 그의 말에 동의하는 마신은 단 하나도 없었다.

마신들에게 있어 ‘검은 학살자’는 공포의 대상이 맞았고, ‘천적’이라 부를 만한 인간이었다.

민성의 종족이 그들이 그토록이나 무시했던 ‘인간’이라는 건, 이미 마신들의 머릿속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그리고 반론을 제시한 서열 5위의 마신도 그저 이 답답한 상황을 향한 짜증을 표출한 것뿐이었다.

“마계에서 놈을 죽인 전적이 있지 않소? 그렇게 겁먹을 필요는…….”

서열 9위의 말에, 서열 4위가 비웃음을 던졌다.

“그놈 하나 잡자고 우리 마신은 물론 마계 병력 전부가 투입되었어. 그럼에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심지어 그 자식은…….”

서열 4위의 마신은 얼굴을 와락 찌푸리며 더 말하기 싫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때-

공간이 찢어지면서, 마치 블랙홀과도 같은 검은 구체가 생성되었다.

거대한 존재감에 의해 마신들은 화들짝 놀라며, 그 구체로부터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그 검은 홀에서 서서히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고 그 연기는 이내 명확한 형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10명의 마신들조차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 절대적 위치를 가진 마신들의 왕.

그는 마왕 ‘벨드’였다.

검은 망토를 펄럭이며 나타난 벨드를 향해, 마신들이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했다.

“검은 학살자가 우리의 새로운 영역 확보에 대한 제약이라고? 웃기는 소리!”

벨드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놈이 우리를 제거하려고 하는 거라면, 우린 그것을 역이용해야 한다.”

그의 말에 주변에 있던 마신들이 모두 더 깊이 고개를 조아렸다.

벨드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인간의 목숨을 빼앗고, 땅을 점령하여 우리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 굳이 검은 학살자와 싸울 필요는 없다. 수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계속 이어 가면 돼. 놈은 우리의 흔적을 좇는 것만으로도 체력을 소모하고 그만큼의 시간을 버리게 되는 일일 것이니.”

그 말에, ‘검은 학살자’라는 이유 하나로 긴장했던 고 서열 마신들의 얼굴에 편안함이 어렸다.

벨드는 낮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놈이 우리의 뒤를 쫓는 사이, 그리고 마인을 죽이는 사이에 이 세계는 마계의 땅이 될 것이다. 이곳 인간계는, 우리의 안식처가 될 것이다. 검은 학살자는 인간. 결국, 홀로 저항하다 지쳐 나가떨어지게 될 것이다. 마계에서 그랬듯이.”

마왕 벨드의 음험한 웃음이 마인의 탑 1층에 울려 퍼져 나갔다.

* * *

필드에서 마신을 찾는 작업은 순서에서 제외했다.

아직 마신이 발견되었다는 정보도 없었기 때문에, 필드를 헤매는 건 시간 낭비가 컸다.

마인의 탑 역시 그 개수가 최초 72개에 달했던 만큼 탑에서 마인들을 제거하는 일 또한 극히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끔 만드는 일이었다.

놈들의 인간계 침범을 완전히 제로화시키는 방법이 필요했으나 그 방법을 찾는 것은 묘연했다.

때문에 결국 그 방법을 찾는 건, 직접 몸으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신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광고 하고 다닐 리 만무하다.

놈들의 목적은 분명하다.

자신이 마인이나 마신을 죽이는 사이 인해전술로, 숫자로써 이 세계를 먼저 장악하겠다는 뜻이다.

결국 살을 내어 주고 뼈를 먹겠다는 의미.

때문에 마인들을 일시에 소멸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했지만, 그조차 지금은 불확실한 추정에 지나지 않았다.

세계에 엄청난 속도로 퍼지고 있는 마인들을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마음 속 한구석에 희망을 걸어 봤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그저 ‘바람’뿐인 도박에 지나지 않았다.

민성은 짧게 혀를 차며, 신경질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워프 게이트를 통해 러시아로 넘어갔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11월이 돼서 그런지 상당히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건물 밖으로 조금 더 걸어 나오자,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는 곳 너머에 엄청난 인원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민성이 나타나자 러시아 사람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민성을 향해 넙죽 엎드렸다.

자신을 마치 교주나 신을 대하 듯 웅성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민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나라처럼 자신을 극진히 모시려는 러시아 헌터들을 민성은 간단하게 물리고, 마인의 탑 위치를 물었다.

이곳에서 크게 멀지 않은 곳이었다.

민성은 두려움에 떨며, 자신을 칭송하고 있는 러시아 사람들을 잠깐 훑어보았다가 마인의 탑으로 향했다.

러시아의 사람들은 물론, 헌터들까지도 떠나는 민성을 향해 끝까지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렸다.

* * *

첫 번째 마인의 탑 앞에 도착했다.

러시아는 땅이 큰 만큼 마인의 탑도 3개나 있었다.

워프 게이트 앞에서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사람들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가장 가까운 마인의 탑을 찾아가는 길, 어째서인지 이 곳만큼은 마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듣기로 마인의 탑 주변에 설치한 마법벽.

즉 1차 방어선은 이미 무너졌다고 들었다.

땅이 넓은 탓에, 아직 놈들이 2차 방어선의 위치를 찾아내지 못한 건가?

그래도 좀 이상한데.

민성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험한 지형이었다.

러시아에 나타난 첫 번째 마인의 탑은, 험준한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었고, 마인의 탑이 있는 주변 일대에는 마인들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민성은 주변 체크를 한 차례 끝낸 뒤, 마인의 탑을 올려다보며 템창에서 듀랑달을 꺼냈다.

뇌전을 뿌리며 템 창에서 나온 듀랑달이 민성의 손에 잡혔다.

민성은 마인의 탑을 올려다보면서 뒤로 이동했다.

필드에 마신이 없다면, 다른 마신들 역시 현세의 인간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건 곧, 놈들이 필드가 아니라 마탑 안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수적 유리함을 가지고 자신을 압박하려고 했던 마신들에게, 지금부터 민성은 그들에게 역으로 숨 막히는 두려움을 안겨다 줄 작정이었다.

민성은 마인의 탑과 적정 거리를 둔 뒤, 차가운 눈으로 탑을 응시했다.

그리고 서서히 체내의 마기가 듀랑달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민성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강렬한 기류를 이루며 듀랑달 주위로 그 거대한 힘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쥐새끼처럼 숨어 있지 말고 나와야 할 거다.

이쪽에서도 이제는 진심이니까.

꼬르륵―!

민성은 작게 한숨 쉬며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저 마인들 때문에 식사를 거르고 있다는 사실에, 뒷목을 뻐근하게 만들 정도의 스트레스가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민성은 목을 돌리며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 후에, 듀랑달의 손잡이를 힘주어 잡았다.

꼭꼭 숨어 봐.

머리카락 보이지 않게.

민성이 이를 바드득 갈며, 마인의 탑을 향해 최대 출력의 마기를 쏟아부으며 듀랑달을 휘둘렀다.

콰르르르르르르르릉!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민성의 최전력 중 일부가 개방되었다.

구그그그그그-

땅이 떨리면서 휘둘러진 듀랑달에 의해 마기의 빛이 폭발했다.

콰콰콰콰콰콰콰!

땅을 터트리듯 하며 날아간 민성의 마기가 마인의 탑에 직격되었다.

그 순간.

소리가 사라졌다.

번쩍! 하고 벼락이 치듯, 마치 온 세상이 눈부시게 하얀 빛으로 휩싸이듯 민성의 마기가 마인의 탑을 집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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