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82화>
* * *
마인은 워프 게이트 없이도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
그 말인즉슨 1차 방어선을 돌파하자마자 목표 위치만 찾아낸다면 2차 방어선으로 도달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뜻이었다.
마인들은 마인들끼리 신호 체계가 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자신들만이 가진 특성으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때문에 주요 타격 지점을 발견하는 즉시, 그곳으로 마인들이 몰려들게 된다.
현재 마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마법벽이 세워져 있는 2차 방어선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다만 마법벽은 마인들이 공간 이동을 통해 벽을 넘어설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 데다 마법 무효화 능력의 성능이 좋았기 때문에, 마인들은 이렇게 설계된 마법벽을 순수하게 물리적 충돌로 깨트려야만 했다.
그래서 마인들은 급하게 움직였고, 그런 마인들을 민성은 이동 중에 눈에 보이는 족족 쓸어 담고 있었다.
민성의 듀랑달에 의해 마인들은 찢어지듯 죽었다.
인간을 벌레처럼 여겼던 마인들은 역설적으로 민성에 의해 마치 종이처럼 잘려 나갔다.
마인들의 1차 목표는 민성을 노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투 전력 자체는 민성 쪽으로 압도적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성의 입장에서는 그게 스트레스였다.
차라리 자신을 노렸다면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놈들의 목적은 인간을 죽이고, 영역을 확보한 다음 마인의 수적 물량을 늘려 가는 거니까.
혼자서 그 많은 양의 마인들을 치워 내야 하는 건 분명 생각만으로도 지칠 만한 일이었다.
“……젠장.”
마인들을 베어 내면서도 입 밖으로 짜증이 자동적으로 튀어 나왔다.
마인을 죽이면 죽일수록 놈들의 숫자에 대한 체감이 점점 더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마인 한 마리는 단 몇 초 만에 수많은 헌터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헌터가 아닌 일반인들이 죽어 가는 속도는 말할 가치조차 없다.
결국 최단 시간 안에 전 세계에 퍼지고 있는 마인들을 잡아내야 했다.
일망타진해야 한다는, 원초적 작전으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필드에 퍼진 마인은 많지 않다.
어차피 한곳으로 모여들게 되어 있고, 이미 마인들이 퍼진 현 시점에서 필드 체크는 시간 손실이 너무 컸다.
민성의 눈이 하얗게 번쩍였고, 민성의 가뜩이나 빠른 속도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 * *
마인들이 결국 몽골의 2차 방어선을 찾아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신호 특성을 이용해 동족에게 그 신호를 보냈다.
이내 2차 마법벽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는 위치로 마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일정 수준의 숫자가 모여 들었지만, 마인들은 동료가 모두 채워지기까지 침착하게 기다렸다.
적정 숫자가 차면 그때 한순간에 달려들어 마법벽을 부숴 버릴 예정인 듯했다.
마법벽 안에서 그 광경을 불안한 눈초리로 보고 있던 헌터 책임자는 초조하게 입술을 잘근 잘근 깨물었다.
바로 저 2차 마법벽이 마인에 의해 깨지면, 그때부터는 이곳을 지키는 헌터들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2차 방어선을 책임지고 있는 자신은 물론, 주변의 헌터들 모두 죽음을 앞두고 있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강민성이 이 나라를 도와주기 위해 왔다고 해도, 그 사실을 전달받았던 시각이 지금으로부터 얼마 되지 않았다.
아마 강민성이 도착하기 전에 이 2차 마법벽은 무너지고야 말 것이다.
2차 방어선의 책임을 지고 있는 헌터는 그늘진 얼굴로, 기하급수적으로 모여들고 있는 마인들을 보며 죽음을 각오했다.
죽음 자체는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방어선이 깨지고, 훗날 이 세상의 미래가 저 마인들에게 지배당하는 것만큼은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는 가족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함께 이 방어선을 지키고 있는 모든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했고,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시야조차 어려운 상황 속에서, 헌터들이 절망을 품은 눈으로 마법벽 너머로 모여들고 있는 마인들을 보고 있을 때였다.
놈들은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군대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는지 본격적인 이동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방어선을 파괴하기 위한 마인들의 전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광경에 헌터들이 모두 긴장한 채로 무장 상태에 돌입했다.
무기를 꺼내 들고, 공격 아이템과 스크롤을 준비했으며, 마법사들은 마법 영창을 준비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야 했다.
그것이 이곳을 지키고 있는, 헌터들의 사명이자 몫이었다.
비록, 그 시간이 의미가 없을 만큼 짧다고 할지라도……!
헌터들의 눈빛에 투쟁심과 두려움이 끈적끈적하게 섞여 들었다.
분석 상 마인들이 마법벽을 깨고 넘어올 경우,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된다.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헌터들이었지만, 그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어차피 도망쳐도 놈들에게 죽는 건 매한가지.
대열을 지키고, 전투를 치르는 것이, 헌터로서 명예로운 죽음에 이르는 길이었다.
헌터들은 죽음을 각오한 비장한 얼굴로, 마법벽을 향해 달려오는 마인들을 보며 일제히 이를 악물었다.
떼거지로 시커멓게 달려오는 마인들이 일제히 마법 벽에 몸을 박았다.
콰콰콰쾅 콰콰쾅 쾅!
마인들과 마법벽이 부딪치면서 귓전을 때리는 폭음과도 같은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 강렬한 파괴음에 헌터들은 저도 모르게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죽음은 각오했지만, 본능적으로 몸이 떨리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전신이 시커먼 피부를 가진 악마 같은 것들이 마법벽을 깨기 위해 일제히 달라붙으며 칼날과도 같은 손톱을 휘둘렀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가족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왔다.
이 마법벽이 무너지면 일어나게 될 참사가 머릿속에 명확히 그려졌다.
죽는다.
사람들이.
그리고 가족들이…….
마인들이 마법벽을 깨트리고 있는 과정을 보면서 머릿속을 장식하는 건 오직 인간의 죽음과 가족의 안위뿐이었다.
애초에 ‘승리’라는 글자가 존재하지 않는 절망 안에서, ‘투쟁’이라는 건 단 몇 초를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그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 세상에는 마인들이 들이닥쳤지만, 강민성도 있으니까.
그 사실 하나로 그들은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드드드드드드드드!
마법벽이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인들에 의해 마법벽은 곧 깨질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최초의 탑에서 마인들이 쏟아져 나올 때, 마탑 주변에 세팅되었던 마법벽이 무너진 속도와는 차원이 다르게 빨랐다.
그것은 한 공간에 집중적으로 모여든 마인이 일제히 화력을 폭발시키며 마법벽을 두드렸기 때문에 나타난, 확연히 차이 나는 결과였다.
이대로라면 단 몇 분도 버티지 못하고 2차 방어선이 그대로 뚫려 버리게 될 것 같았다.
마법벽에 균열이 가고, 마법벽 파편이 떨어져 나가면서 일부 마법벽의 구멍이 뚫리기 바로 직전.
어디선가 전투기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였다.
마법벽 안쪽에 대열을 잡고 서 있던 헌터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훑었다.
전투기 따위로 마인에게 데미지를 줄 수 없다.
그건 굳이 마인에게 시험해 보지 않아도 최초에 던전이 나타났을 때부터 몬스터를 통해 확인한 결과였으니까.
그렇다면 대체 이 소리의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마인들을 상대로 의미 없는 싸움을 할 공군 병사들이 있을 리가 없다.
2차 방어선을 책임지고 있는 헌터와 주변의 헌터들이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그 근원지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강민성이었다!
대기를 찢으며 나타난 민성이 급격하게 속도를 늦추면서 그와 동시에 뒤로 당겼던 듀랑달을 휘둘렀다.
콰르르르르르릉!
거대한 힘을 머금은 마기가 쏟아지는 빗줄기를 가르며, 천둥소리와 함께 한 줄기의 긴 일섬이 마법벽에 달라붙고 있는 마인들에게로 향했다.
마치 두 눈을 멀어 버리게 할 만큼 강렬한 빛이 터졌고, 헌터들에게조차 공포의 대상이었던 마인들은 마치 불길에 휩싸인 나약한 생명체처럼 사라지듯 소멸했다.
단 한 번의 공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려 있던 마인들은 약 절반 이상이, 형체도 없이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마법벽 안에서 헌터들이 두 눈으로 지켜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마법벽 안의 헌터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민성과 남아있는 마인들을 번갈아 보았다.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헌터.
전신(戰神)의 등장이었다.
* * *
마기의 소모가 꽤 있다.
그동안 마기가 손실되는 것에 대한 피로도는 거의 느껴 본 적이 없었지만,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 마인들을 만나게 되자 몸이 꽤 더워진다.
전투로써 몸이 예열되는 감각은 꽤 오랜만이었다.
추억이 돋는다기보다는, 또다시 그 끔찍한 마계의 환경이 떠올라서 짜증이 났다.
원래라면 쏟아지는 비는 투명한 오러의 막을 만들어 막았을 테지만, 마기를 아껴야 했기 때문에 굵은 빗줄기를 그대로 맞았다.
비를 맞자 외려 시원했다.
쏟아지는 빗물이 몸을 잔뜩 적신다.
민성은 마법벽이 아닌, 자신에게로 시선이 쏠려 있는 마인들을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하-. 해물탕 먹고 싶네.”
비가 와서 그런지 소주 한 잔 곁들이면 더 좋을 것 같다.
민성은 짧은 한숨과 함께 듀랑달을 고쳐 잡고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마인들이 긴장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마인이라는 게 번거롭고 징글징글하기는 한데, 마계에서도 그랬지만 이 마인이라는 것들은 은근하게 멍청해서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마계에서 그랬듯, 전 병력을 이 인간계에 쏟아부어 자신을 죽일 생각부터 해야 했다.
그러니까 결국, 여전히, 너무…… 물러터진 거지.
쇄애애애애액!
이기어검술의 출두.
듀랑달이 민성의 손을 떠났다.
“빨리 좀 뒤져라. 밥 좀 먹게.”
민성의 그 말과 동시에, 이기어검술로 튀어 나갔던 듀랑달이 마치 탄환처럼 날아가 모여 있는 마인들을 일시에 터트렸다.
파아아아아아앙-!
마인들이 민성의 듀랑달에 의해 데미지가 들어감과 동시에 파편이 되어 소멸했다.
민성이, 찢어 내는 파공음을 만들어 내며 놈들과 거리를 좁히면서 이기어검술로 날렸던 듀랑달을 다시 불렀다.
듀랑달은 빠르게 민성의 손으로 되돌아왔고, 민성의 듀랑달은 다시금 눈부신 궤적을 그렸다.
전신(戰神)의 검에 의해 마법벽을 넘어서려고 했던 마인들이 무력하게 죽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