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81화>
* * *
“해물탕이 먹고 싶다.”
차를 타고 가면서 민성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해물탕이요?”
이호성이 백미러로 민성을 보면서 물었다.
“그래.”
바가지와 쏠이 머리를 스르륵 돌려 민성을 응시했다.
그러나 민성은 창밖을 보면서 미간을 구겼다.
“……먹을 시간이 없군.”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그로 인해 민성에게서는 무시무시할 정도의 예민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탓에 바가지, 그리고 쏠은 잔뜩 긴장한 채로 민성을 외면했다.
그러면서 어서 이호성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주었다.
바가지와 쏠이 이호성의 어깨와 옆구리를 마구 찔러 댔다.
* * *
워프 게이트 건물에 도착했다.
이호성이 차를 타고 가던 중, 미리 문자 메시지를 보내 놓았다.
해물탕을 준비해 달라는 말에, 최고급 VVIP 회원인 민성을 위해 유명한 요리사가 만든 해물탕이 준비되어 있었다.
민성은 화려한 해산물로 가득한 해물탕을 보면서 굳은 얼굴이 되었다.
“미리 연락해 놓았습니다. 조금만이라도 드시고 가시죠.”
이호성이 해물탕을 가리키며 말했다.
부글부글 끓는 탕 속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발휘하는 건 단연 빨간 꽃게다.
거기에 쫄깃하고 탱탱해 보이는 낙지와 문어.
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질 것만 같은 전복과 커다란 새우, 그리고 조개는 바다의 냄새를 물씬 풍겼다.
그 화려함의 극치 아래로, 바다의 심해만큼이나 깊이가 있어 보이는 국물이 보였다.
민성은 그 해물탕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맛있어 보였다.
새하얀 쌀밥과 함께 저 진한 국물을 떠먹으면서 해산물들을 씹어 삼키면 얼마나 맛있을지, 상상만으로도 목구멍으로 침이 꿀떡꿀떡 넘어갔다.
그래서인지 마치 배에서 우르르 쾅쾅 천둥이 치는 듯했다.
하지만 어설프게 음식을 입에 대는 짓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왕 먹을 거라면, 완벽하게 한 상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 싶었다.
민성은 해물탕을 보면서 숨을 깊게 한 차례 내쉬곤 온장고 안에 들어 있는 핫바 하나를 꺼내 해물탕을 강하게 노려보면서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해물탕은 다음으로 미룬다.
따뜻하고 물컹한 핫바를 간단히 먹은 뒤, 핫바 나무 막대를 쓰레기통에 대충 던지고, 민성은 미련 없이 이동 게이트실로 걸음을 옮겼다.
이호성은 식사를 하지 않고 가는 민성을 놀란 눈으로 보며 뒤쫓았다.
* * *
한국에 나타난 마인의 탑을 해결한 이후,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차를 타고 워프 게이트 건물로 오면서 스스로에게 계속 던졌던 질문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에 대해, 이호성이 의견을 제시했다.
“햄버거가 없어도 살 만합니다. 피자가 없어도 살만 합니다. 파스타가 없어도 살 만합니다. 하지만 한국인은 밥이 없으면 살 만하지가 않습니다. 살기가 괴롭죠. 그러니 굳이 고국이라는 이유가 아니더라도, 한국인은 한국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한국의 위협이 될 수 있는 인근 지역을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호성의 의견은 타당해 보였다.
반박할 여지가 없는 대답이었다.
한국보다 중요한 곳은 없다.
한국의 밥상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 이유로, 우선 지역의 후보지로 떠오른 곳은 몽골, 일본, 타이완, 중국이었다.
그나마 헌터력이 강한 일본과 중국을 배제하고 나면, 남은 곳은 몽골과 타이완.
그 둘 중 어디가 좋을지에 대한 대답 역시 이호성이 내어놓았다.
“타이완보다는 넓은 땅 덩어리를 가진 몽골 쪽을 먼저 처리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 편이 한국에서도, 바닷물을 중간에 끼고 있는 타이완 쪽 라인을 방어하는 게 조금은 편할 테니까요.”
“몽골에서 중국 쪽으로 내려오면서 제거해 나가면 되겠군.”
“네.”
이호성의 의견에 민성은 동의했고, 그에 따라 행선지는 ‘몽골’로 정해졌다.
* * *
민성은 워프 게이트를 타고 ‘몽골’에 도착했다.
몽골이라는 나라 자체가 워낙 땅덩어리가 넓다.
그래서 만약 마인이 1차 마법벽을 깨고 이미 바깥으로 퍼지기 시작했다면, 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이 바로 몽골이기도 했다.
하지만 애당초 계획이 몽골에서 중국 쪽으로 한국과 경계선을 짓는 구간을 중심으로, 이동 라인을 밟을 예정이었다.
민성의 속도는 과학적인 측면을 완전히 무시할 만큼 가공했기 때문에 그런 물리적인 이유 같은 건 전혀 문제될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헬기를 타고 했던 건 뛸 수 있는 사람이 걸어 다니는 것처럼 그저 귀찮았기 때문일 뿐이었다.
마음먹고 움직이면 거리는 민성에게 ‘제약’이 될 수 없었다.
워프 게이트를 타고, 넘어가자 워프 게이트에는 몽골을 담당하고 있는 책임 헌터장이 미리 소식을 받고 대기하고 있었다.
“강민성 헌터님을 뵙습니다.”
몽골의 헌터장이 민성을 향해 예의를 갖춰 극진하게 인사를 올렸다.
“브리핑부터.”
민성이 시간 없다는 듯 상황 보고를 재촉했다.
몽골 헌터장이 전문가를 불러 브리핑을 짧게 전했다.
민성은 브리핑을 전해 듣고 곧장 움직였다.
* * *
1차 방어선이 파괴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구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계 전쟁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민성이 도착한 나라 몽골 역시 1차 방어선이 뚫린 곳 중 하나였다.
민성은 1차 방어선을 뚫고 활개를 치고 있는 마인들을 잡기 위해 헬기를 타고 A파트 지점으로 이동 중이었다.
그 A파트 지점은 전문가가 마인이 가장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한 곳이었다.
때문에 민성은 가장 중요한 첫 번째, A파트 지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아직까지 마인은 보이지 않았다.
민성은 엄청난 속도로 땅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반면 민성의 속도를 쫓을 수 없었던 이호성과 바가지, 그리고 황금 고블린 쏠은 몽골 헌터장의 전용기를 타고 약속된 지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민성이 지나간 자리에는 드문드문 마인이 죽고 떨어트린 아이템이 보였지만, 그런 것들을 챙길 여력은 없었다.
현 시점에서는 상공을 통과해 민성과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 * *
“똥개.”
바가지의 부름에, 창밖을 보고 있던 이호성은 옆을 돌아보았다가 밑을 내려다보았다.
바가지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이호성이 바가지를 보며 물었다.
“축하해.”
“뭘?”
“레벨이 없어졌잖아.”
“그게 뭔 소리야?”
이호성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냐는 듯 바가지를 보며 피식 웃었다.
“네가 보스룸의 마신 막타를 먹었거든.”
이호성이 허공을 먼눈으로 보았다가 다시 바가지를 보았다.
“내가?”
바가지가 커다란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이호성은 벌떡 일어나 전용기 내에 있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거울을 확인했다.
그리고 머리 위에 이름이 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 기절할 것 같은 표정으로 다시 바가지의 앞으로 돌아왔다.
“뭐야? 뭐야? 왜 레벨이 안 떠?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진짜 내가 막타를 먹었다고? 어떻게……?!”
이호성이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바가지의 어깨를 잡고 거칠게 흔들며 물었다.
“으으…… 어지러워.”
바가지가 핑핑 돈다는 듯이 말했다.
“아, 미안!”
이호성이 얼른 손에 들었던 바가지를 바닥에 다시 내려놓았다.
“내가 어떻게 레벨이 사라지게 된 거야?!”
이호성이 바가지를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네가 버서커 상태에서 다 죽은 마신 막타를 쳤으니까 그렇지.”
바가지가 여전히 어지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래서 기억에 없었던 거구나. 내가 막타 먹어서 헌터님 화나신 건 아니지?”
“오히려 잘된 거야. 마신은 어차피 언데드로 부릴 수도 없었으니까 네가 먹는 게 가장 좋았지. 하지만 너무 위험했어. 헌터님이 미처 마인을 정리하지 못했다면…….”
바가지가 말끝을 흐렸다.
이호성은 바가지가 왜 말을 잇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쪽은 강민성이 아니니까…….
충분히 죽을 수 있다.
그것도 아주 높은 확률로.
이호성은 조용히 창밖의 하늘 풍경을 보았다.
기타 능력자가 된 것은 별달리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마인과 전투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마인과 싸울 수 있어야 적어도 강민성에게 1인분은 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
그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도, 기타 능력자라는 사실에 만족하면 안 된다.
이 마당에 기타 능력자 같은 건 절대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그것은 모두 강민성이 만들어 준 것이니까.
그의 세계를 지켜야 한다.
그가 누리고자 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
이호성은 많은 감정이 담겨져 있는 눈으로 새하얀 구름을 응시했다.
바가지는 그런 이호성을 보며 칵칵 웃었다.
* * *
민성은 그 속도만으로도 공기를 찢어 내는 굉음을 만들어 냈다.
이동하는 가운데 1차 방어선인 마법벽을 뚫고 나온 마인들이 나타나면 민성은 그런 마인들에게 당연히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민성의 듀랑달에서 여지없이 천둥소리를 뿜어내는 마기가 뿜어져 나왔고, 마인들은 마치 바람을 맞은 코스모스처럼 몸이 날아가 버렸다.
민성은 엄청난 속도로 대지를 가르며 마인들을 처리했다.
이동하면서 한국을 위협하는 라인을 체크하는 건 애초에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민성은 약 10분의 1 지점을 지날 무렵에 눈치챘다.
이런 식으로는 오히려 시간을 잡아먹는 결과가 되고 만다.
방향을 틀어야 돼.
놈들이 무리를 지어 움직인다는 특성을 그만 간과했다.
마인이 몰려드는 방향으로 가서 단숨에 놈들을 대량으로 쓸어버려야 한다.
잔챙이들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다.
어차피 방어선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잔챙이들이 남는다고 해도, 큰 무리부터 없애는 게 맞다.
그나마 다행히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는 않았다.
어차피 지금 상태에서 방향을 틀어도, 큰 차이는 나지 않을 듯했다.
민성은 이동을 멈췄다.
이동을 멈추고 서자, 민성이 바람을 몰고 온 탓에 주변에 광풍이 불어닥쳤다.
뿌연 흙모래가 흩날리는 가운데, 민성은 템창에서 휴대폰을 꺼내 이호성에게 약속 지점을 변경한다고 말한 뒤, 지도를 체크하고 다시 지면을 차고 뛰었다.
출발과 동시에 공기를 터트리는 듯한 무시무시한 굉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