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79화>
* * *
“얼레?”
이호성은 맹구 같은 표정으로 눈을 끔뻑였다.
뭐 이런 개똥 같은 시스템이 다 있어?
왜 파티원이 다 같이 들어가야 하는 거냐고!
어차피 자신은 한 것도 없고, 마인을 때려잡은 건 강민성인데.
“하…….”
이호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하긴, 구사일생을 안 찍으면 이호성이 아니지.
이호성은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보스룸을 터치했다.
그러자 다시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마인의 방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승인 / 거절]
‘그래. 들어간다, 들어가. 이 망할 시스템아.’
이호성이 썩은 오징어 같은 표정으로 승인을 터치했다.
민성도 바로 뒤이어 승인을 터치했고, 그 즉시 마신의 방이 열렸다.
그그그그극!
돌이 긁히는 소리가 나면서, 커다랗고 웅장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호성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템창에서 데스 나이트의 검을 꺼내 꽉 쥐었다.
전에도 테스트 서버 형식으로 나타난 마탑 보스룸에서 마신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쳐다보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패닉 상태가 올 텐데…… 버틸 수 있을까?
불안감이 이호성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더군다나 이번 마신은 시간을 끄는 게 아니라, 싸움에 모든 걸 걸었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위기와는 차원이 다른 상황에 놓이게 된 터라, 이호성은 마신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온몸이 가늘게 떨릴 수밖에 없었다.
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언제나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어도, 죽음을 앞둔 순간은 결코 적응할 수 있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언제나처럼 반드시 살아남고야 말겠다는 각오 하나로 승부를 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쿠궁!
이펙트 음향이 귓전을 때리면서 문이 활짝 열렸다.
마신의 방은 넓었다.
그 넓은 공간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규모의 마인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족히 수백 마리는 넘을 법한 수.
그리고 그 뒤에, 인간의 뼈로 만든 의자에는 마신 ‘가이아’가 앉아 있었다.
이호성은 그 광경을 보고 심장에 폭탄이라도 달아 놓은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심장이 가슴을 찢고 튀어나올 것처럼, 맥박이 빨라졌다.
데스 나이트의 검을 들고 있는 이호성의 손이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벌벌 떨렸다.
이호성의 시야에 등을 보이고 서 있는 민성은, 이 무섭고도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오롯하게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호성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저 정도 숫자라면 버서커가 된다고 해도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을 것 같았다.
그리고 버서커가 되면 공포를 잊고 돌진한다.
그건 곧 죽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건 많아도 너무 많잖아.
이호성이 질린 얼굴로 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마인들과 마신 가이아를 보았다.
그때-
“둘 다, 출입구에 서 있어라.”
민성이 말했다.
이호성은 주변을 훑어보았다.
출입구 문이 크긴 했지만 민성이 출입구 앞쪽에서 막아 준다면, 그 범위는 충분히 민성이 커버가 가능한 공간이었다.
즉, 마인이 민성을 넘어서 이호성과 바가지를 공격하기에는 강민성이라는 벽이 너무 견고하고 튼튼했다.
터질 것처럼 뛰던 심장이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역시 강민성.
우리 헌터님이시다!
“야, 바가지. 얼른 이리와.”
이호성이 재촉하며 말했다.
바가지가 뒤뚱거리며 민성의 등 뒤, 이호성의 옆에 섰다.
* * *
마신 ‘가이아’는 마인들을 홍해처럼 가르며 민성의 앞 쪽으로 걸어가 적정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그리고 그는 민성을 보며 ‘흐흐흐!’하고 낮은 저음의 웃음소리를 흘렸다.
“입구 쪽에서 유리한 싸움을 하시겠다?”
마신 가이아가 저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크게 가로 저었다.
“멍청한 생각이야. 공간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외려 네 공간이 제약된다. 집중된 공격력이 가진 힘을 모르는 게 아닐 텐데. 역시 네놈도 인간은 인간이었어. 고작 그런 놈들을 지키자고…….”
민성이 듀랑달을 살짝 들어 올리는 것으로 마신 가이아의 말을 잘랐다.
가이아의 표정이 바짝 굳었다.
“죽어라.”
민성이 낮은 소리로 말하며 듀랑달을 발검 자세로, 안쪽으로 당겼다.
마신 가이아와 마인들의 눈이 커졌을 때.
민성이 듀랑달을 휘둘렀다.
콰르르르릉!
격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뇌력을 잔뜩 머금은 새하얀 섬광의 빛줄기가 떼거지로 모여 있는 마인들에게 향했다.
마신 가이아가 마계의 능력을 사용했다.
마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마법벽이 세워졌다.
민성이 발출시킨 마기와 가기아의 마법벽이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앙-!
커다란 충돌음과 함께, 마법벽에 거미줄과도 같은 균열이 생겼다.
마신 가이아는 마인들을 지키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마법벽을 세워야 했기 때문에 마력 손실이 컸다.
그에 반해, 민성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저 몸풀기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새삼, 민성의 능력을 확인하고서 마신 가이아는 불편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시작해.”
마신 가이아가 날카로운 이를 바드득 갈면서 낮은 톤으로 명령을 내렸다.
마인은 겁이 많지만 감정적으로 유기적인 관계가 깊게 형성되어 있다.
더불어 명령 체계가 확실하기 때문에, 아무리 두려움을 느끼더라도, 우두머리의 지시가 떨어지면 죽음을 불사하고 불나방처럼 뛰어 든다.
민성의 지난 기억에, 마계가 끔찍했던 건 그런 탓이었다.
수십 년에 걸친 죽여도, 죽여도 끊이지 않는 전투.
그 끝없는 전투에 지쳐 갔던 것이다.
하지만, 여긴 다르다.
고작해야 수백 정도의 숫자는 민성에게 있어,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심리적 편안함을 선사했다.
마신이 있어 조금 피곤하긴 하겠지만, 역시나 마계에 비교해 보면 여긴 천국이나 다름없다.
민성은 듀랑달을 쥐고서, 자신을 향해 폭발적인 속도로 일시에 덤벼드는 마인들을 보며 옅게 웃었다.
적어도, 한국의 마탑에서 싸우는 이놈들과의 전투는 민성에게 있어 어린애 장난과도 같은 수준에 불과했다.
민성이 바닥에 왼발을 한차례 굴렸다.
쿠우우우웅-!
바닥에 발자국이 깊게 패이면서, 바닥이 울렁거렸다.
피이이이이잉-!
강렬한 공명을 만들어 내며 마기가 담긴 힘의 파장이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그러자 마인들의 몸이 중심을 잃고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인들이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은 착시를 느낄 때, 민성의 듀랑달 한 자루에서 발출된 마기가 마치 장미의 가시처럼 튀어나왔다.
콰르릉!
짧은 단발마의 비명과도 같은 천둥소리가 울렸지만, 그 마기의 발출 속도는 조금 전에 휘둘렀던 마기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민성의 검 한 자루에서 사방으로 튀어 나간 마기가 마인들의 몸통을 꿰뚫었다.
샤먼 마인들이 민성을 향해 마법과 주술을 부렸지만 그 모든 효과들이 무효화되며 흩어져 나갔다.
민성의 마기에 당하지 않은 마인들이 민성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두르기 위해 파도처럼 밀려오며 접근했다.
민성은 냉철한 눈으로 마인들을 지켜보며 마인들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휘두른 민성의 쾌검은 압도적이었다.
가뜩이나 빠른 속도에, 거대한 힘마저 깃들어 있었으니 마인들이 감당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민성의 앞에서 몸이 찢겨 나가 마인의 사체 조각이 사방으로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가이아가 초조함이 잔뜩 담긴 얼굴로 민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른손에 쥔, 대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민성의 눈에서 일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그 순간, 민성의 손에서 듀랑달을 놓았다.
그리고.
콰르릉!
이기어검술에 의해, 듀랑달이 마인들을 뚫으며 마신 가이아에게 광속으로 날아갔다.
가이아가 광속에 채 반응하기도 전에, 민성의 듀랑달이 그의 명치를 꿰뚫었다.
가이아가 입 밖으로 옅은 피를 뿜으며 달려들던 속도가 급격하게 감속되었다.
그사이 민성의 손으로 회수된 듀랑달이 바닥을 찍었다.
콰아아아앙-!
바닥을 깨부수며 들어간 듀랑달에서 흘러 나간 마기가, 이내 바닥을 뚫고 올라오며 마치 꼬치처럼 꿰듯 마인들의 몸을 찔렀다.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마인들이 쌓여 갔다.
그사이, 바가지가 마인들을 삼키기 위해 민성의 앞으로 나가 근처에 있는 특성 마인 ‘샤먼’을 향해 흑마법을 캐스팅했다.
죽기 직전의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마인에게 바가지의 검은 기운이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특성 마인 ‘챔피언’의 손톱이 바가지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이호성이 튀어 나가 데스 나이트의 검으로 바가지를 공격하는 ‘챔피언’의 공격을 막았다.
바가지가 화들짝 놀라며 옆을 돌아보았고, 이호성은 챔피언의 2차 공격을 막아 내지 못했다.
옆구리부터 가슴까지 찢어지며 날아가 출입구 부근의 벽에 부딪쳐 바닥에 철퍽 떨어졌다.
“똥개……!”
바가지가 미안함과 걱정이 담긴 눈길로 이호성을 보며 소리쳤을 때, 챔피언이 바가지를 그대로 삼켜 버리기 위해 입을 길게 찢었다.
그때-
푸북!
민성의 듀랑달이 바가지를 삼키려고 했던 챔피언의 머리통을 그대로 꿰뚫었다.
챔피언이 즉사하면서 소멸되어 버렸다.
“포션 먹어라.”
민성이 이호성을 향해 그렇게, 짧게 말하곤 다시 듀랑달을 휘둘렀다.
몰려들던 마인들이 반토막 나며 바닥을 우르르 굴렀다.
가이아는 민성의 공격에 당했던 상처를 어느새 회복하고, 다시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민성의 듀랑달에 의해 마인들은 마치 불나방처럼 진입과 동시에 죽어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인들은 공포를 잊고, 가이아의 명령에 의해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과반수를 잃은 탓에, 마인들의 공격은 힘이 빠질 대로 빠졌고, 가이아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가고 있었다.
체력과 상처는 회복했지만 상황이 답이 없게 흘러가는 것을 인지한 가이아가 민성을 보며 한탄이 섞인 숨을 뱉었다.
그러고는 민성의 검에 의해 추풍낙엽처럼 죽어 나가는 마인들을 보며 허탈한 심정으로 눈살을 구겼다.
“뭐 저런 게 다 있냐……?”
마계에서도 느낀 거지만, 저 검은 학살자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 인간 놈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강해도 너무 답이 없게 강했다.
가이아는 남아 있는 마인의 숫자를 확인한 뒤에, 슬쩍 발을 뒤로 뺐다.
일이 이왕 이렇게 물 건너 간 이상, 최소한 시간이라도 뺏어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민성이 자신의 마인 수하들을 죽이고 있는 동안, 가이아는 혀를 차며, 비늘 덮인 손톱으로 공간을 찢어 균열의 틈으로 몸을 던져 넣었다.
아니, 던져 넣으려고 했다.
강민성도 아닌, 시뻘건 머리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정신이 나간 듯 한, 관심에도 없었던 웬 잡놈만 아니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