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76화>
금빛 조명이 어스름한 탓에, 이번 마탑 역시 먼 곳은 어둡게 보였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마치 짐승의 눈처럼, 빨간 불빛이 번쩍였다.
붉은 눈.
분명 그 번쩍이는 붉은 불빛의 주인은 마인일 터였다.
하지만 민성이 그곳으로 가까워짐에 따라 그 붉은 불빛은 도망치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민성의 걸음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이호성과 바가지가 겨우 좇을 수 있는 속도까지 변하기 시작했다.
이호성과 바가지가 거리가 멀어지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한 것이었다.
반면 황금 고블린인 ‘쏠’은 애당초 이동 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편하게 민성과 속도를 맞추었다.
이호성이 그런 쏠을 대단하다는 듯 보던 중, 민성이 마인 한 마리를 발견해 냈다.
순식간에 민성의 신형이 사라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민성은 사냥에 능숙한 맹수처럼 단숨에 마인을 찾아 오리하르콘 단검이 마인의 목을 물어뜯듯이 찢어 냈다.
마인의 목 일부가 너덜너덜해지면서 빈사 상태에 가까워졌다.
바가지가 바짝 붙어서 언데드화시키기 위해 흑마법을 사용했다.
그사이 민성은 다음의 먹잇감을 찾아내기 위해 움직였다.
이호성은 바가지 옆에 머무르지 않고 앞서가는 민성을 바로 뒤쫓았다.
결국은 시간 싸움이기 때문에 바가지가 언데드화를 성공하는지 못하는지, 지켜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럴 시간에 민성은 한 마리의 마인이라도 더 죽여야 했으니까.
그런데 예상과 달리 마인의 탑 내부는 평범했다.
맨하튼에 나타났던 테스트 형식의 마탑과 별달리 차이점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가장 큰 문제거리는 마인의 탑이 전 세계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국의 마탑을 정리하는 동안, 준비를 마친 마인들이 전 세계로 쏟아져 나온다면.
그때부터는 생지옥이 펼쳐진다.
그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한국은 강민성이 있기에 마탑을 클리어하고 안전하게 지킬 수 있겠지만, 그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타국의 재앙은 실로 끔찍했다.
부디, 마인들의 마탑 밖으로 나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마인들은 드문드문 보였고, 민성은 그런 소수의 마인들을 가볍게 제거해 나갔다.
빠른 속도로 한 층 한 층을 클리어하면서 순식간에 10층에 도달했다.
일전에 테스트 형식의 마탑을 올라갈 때와 비교하면 차원이 다른 속도였다.
그것은 민성이 느긋하게, 혹은 여유를 부리지 않고 마음먹고 전투를 시작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민성이 오리하르콘 단검에 묻은 피를 털어 냄과 동시에 파앙-! 하고 자물쇠가 깨졌다.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플로어 입구 계단이 보였다.
“들어온 지 얼마나 됐어?”
민성이 물었다.
“약 59분가량 걸렸습니다.”
이호성은 말을 하면서도 질렸다는 듯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일반 던전도 아니고 마인의 탑을 10층까지 클리어하는 데 걸린 시간이 고작해야 59분이라니.
실로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하지만 그런 이호성의 생각과 달리 민성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너무 늦어.”
민성이 말했다.
‘너무 빠른 거 아닌가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왔다.
이런 시답잖은 대화로 시간을 지체하는 것도 아까울 지경의 상황이었으니까.
“바가지, 언데드로 획득한 마인의 수는?”
민성이 물었다.
“총 다섯 마리예요. 가지고 있던 특성 마인까지 합치면 이제 총 여섯!”
바가지가 민성의 주변을 동그랗게 뱅뱅 뛰어다니며 신난 듯이 말했다.
신이 난 건 바가지뿐이었다.
민성은 전혀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올라간다.”
민성이 앞장서서 철창을 지나 나선형 계단을 밟으려는 순간―
“어……?”
민성의 몸이 휘청! 하고 휘었다.
이호성이 깜짝 놀란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다행히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 직전, 민성은 가까스로 몸을 통제하며 바로 섰다.
바가지와 쏠이 놀란 채로 뛰어와 걱정이 가득한 채 민성을 살폈다.
“허, 헌터님!”
민성은 굳은 안색으로 계단에 털썩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이호성이 민성의 안색을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민성은 거칠게 호흡하며,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손으로 눈가를 짚으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조금 쉬어야겠다. 엄호하고 있어.”
민성이 손을 들어 보이며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알겠습니다.”
민성은 천천히 계단에 몸을 눕혔다.
몸이 마치 천근만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민성은 눈을 감았고, 이내 호흡이 옅어지며 의식 또한 흐려져 갔다.
쏠은 소리 없이 울었고, 반면 바가지는 검은 안광이 활활 불타는 눈으로 자신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호성은 영문을 모를 표정으로 민성을 보며 당혹스러움을 얼굴 만면에 감추지 못했다.
* * *
……또 그 빌어먹을 꿈인가?
일전에 경험한 적이 있다.
마치 안개 속을 해매는 것처럼 새하얀 공간이었다.
한 번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민성은 놈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공간을 울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일면식이 있는 사내가 나타났다.
전에 만났던 그 소년 같은 얼굴의 남자였다.
그는 이번에도 특유의 미소를 입가에 건 채로, 뒷짐을 지고서 다가와 민성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섰다.
빙글빙글 웃고 있는 낯짝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뜨거운 것이 꿈틀거렸다.
그런 민성의 태도에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사내는 마치 모든 걸 꿰뚫고 있다는 눈빛으로 민성을 응시했다.
“이제 네가 누군지 궁금하지도 않아. 바쁘니까 용건만 말하고, 사라져라.”
민성이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현실도 아닌 꿈의 세계.
놈과 아웅다웅 싸워 봐야 별달리 의미가 없었다.
그저 거슬릴 뿐이었다.
사내는 말없이 민성의 주변을 뚜벅뚜벅 걸었다.
꿈인데도 불구하고 소름 끼치도록 시야는 선명하며, 감각 또한 놀라우리만큼 선명했다.
민성이 그를 지켜보던 가운데, 그가 걸음을 멈추고 천장 쪽을 올려다보더니 싱긋 웃었다.
“당신에게 전해 줘야 할 말이 있어.”
사내의 목소리에는 부드러웠음에도 힘이 들어 있었고, 선명하게 민성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신비로운 눈으로 민성을 빤히 보며 말을 이었다.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는 영양분이 필요하지.”
사내의 알 수 없는 말에 민성은 눈살을 구겼다.
그가 민성에게 거리를 좁히며 걸어와 서서 말을 이었다.
“마계는 일종의 거름으로써 영양분의 역할을 하고, 인간계는 뿌리,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세상이 있지.”
민성은 대체 그 이야기를 왜 자신에게 하는 것인지, 대답을 원하는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거름을 치는 건 더럽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지. 그 일이 끝나고 나면,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할 텐데. 그 전에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야.”
사내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머지않아 험난한 겨울을 맞이하게 될 거야. 그때를 대비해야지.”
“말장난하지…….”
민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
소년 같은 이 사내가 팔을 한 번 휘두르자 홀로그램처럼 선명한 화질의 영상이 주르륵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간계 위에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는 영상이었다.
그 영상은 짧지만, 확실한 임팩트가 있어 민성의 기억에 뿌리를 남기고 사라졌다.
민성은 흥미로움이 담긴, 지금껏 한 번도 보인 적 없었던 눈빛으로 사내를 응시했다.
“저곳이…… 정말로 존재하는 세계인가?”
민성이 물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니까…… 지금의 시간을 절대 허투루 써서는 안 돼.”
그 말을 끝으로, 사내는 마치 연기처럼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하얀 공간에 검은 점 하나가 찍혔다.
그 점은 점점 커지더니 이내 커다란 어둠이 되어 민성을 삼켰다.
* * *
민성이 눈을 떴다.
“헌터님, 정신이 드세요?”
민성은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보고 이호성은 가슴을 붙잡고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쉬었다.
“완전 깜짝 놀랐잖아요. 여기서 저번처럼 계속 오랫동안 잠들어 계시는 거 아닌가 하고.”
“가자.”
민성이 계단을 밟고 앞서 올라가며 말했다.
쏠이 울음을 그치고 빵긋 웃는 얼굴로 민성을 따라갔고, 바가지도 신이 난 듯 좌우로 머리를 뒤뚱뒤뚱 흔들며 쫓아갔다.
이호성은 연거푸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반면 민성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사내는 분명 자신을 만나기 위해, 수면으로 유도하고 꿈속에서 나타났다.
단순히 개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꿈속에서의 감각이 너무 생생했다.
마계가 아닌, 인간계 위의 세계라…….
민성은 쯧! 하고 짧게 혀를 차며, 눈을 차갑게 번쩍였다.
* * *
최대한 빨리 한국의 마탑을 클리어하고, 타국으로 넘어가야 했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이미 놈들이 마법 방어벽을 부수고 있거나, 1차 마법 방어벽을 깨고 도시로 튀어나왔을 수도 있었다.
결국 ‘시간 제한’이 걸린 게임이다.
그 게임에서, 한 가지의 퀘스트가 더 붙었다.
꿈속에 나타난 ‘그자’가 말했던 새로운 세계를 대비하라고 했던 이야기.
물리적 성장에는 이미 한계가 있었다.
그자가 말한 ‘대비’라는 건 결국 ‘새로운 세계’에서의 전투를 대비할 ‘아이템’을 구하라는 것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오리하르콘 단검’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오리하르콘 단검으로도 마인을 잡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템창에 보유 중인 것은 ‘+7 마인의 듀랑달’.
좋은 아이템을 쓰면 자신에게도 효과가 있을까?
그자가 말했던 그 세계가 실존한다면, 아이템을 실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거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세상이었으니까.
민성이 이동을 멈추고 서 있자, 이호성과 바가지, 그리고 쏠은 민성을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때, 민성이 손에 쥐고 있던 ‘오리하르콘 단검’을 버렸다.
바닥에 단검이 떨어지면서, 금속이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커다랗게 퍼졌다.
바가지가 바닥에 떨어진 오리하르콘 단검을 보았다가 커다란 머리를 들어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민성은 템창을 열어 그 템창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콰지지지지직!
‘+7 마인의 듀랑달’이 커다란 뇌력을 사방으로 뿌리며 마치 우주 비행체가 도킹을 하듯 민성의 손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민성이 듀랑달을 손에 쥔 그 순간-
콰르르르르르르릉!
귀청을 때리는 커다란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