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75화>
이호성은 쏠의 손 위에서 꿈틀거리는 낙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머니 안에 넣었는데도 아직 살아 있네.”
이호성은 신기하다는 듯 낙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리 줘.”
쏠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낙지를 넘겨주었다.
이호성은 낙지를 받아, 그릇에 물을 채워 굵은 소금을 넣고 빨래질하듯 힘 줘서 바락바락 씻은 다음, 본격적으로 재료를 준비했다.
이호성은 연포탕 요리를 위해, 템창에서 조금 큰 사이즈의 태블릿을 꺼냈다.
그리고 프로그램 어플을 통해, 레시피를 모두 보기 쉽게 정리해 놓았다.
그림까지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파악하기 쉽게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좋아. 오케이.”
이호성은 태블릿을 테이블 위에 거치시켜 두고, 요리를 준비했다.
조금 있으면 전 세계가 공포에 떨게 될, 마인의 탑이 연결되어 오픈되는 시점.
이호성은 이제 이런 심각한 상황에, 음식을 최우선으로 작업하게 되는 이 환경이 낯설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만들고 먹는 것까지 완료할 수 있을까?
이호성은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하며 바가지를 호출했다.
“야, 바가지. 불 좀 만들어 줘야겠다.”
이호성의 부름에 바가지가 테이블 위로 펄쩍 뛰어 올라왔다.
그사이 이호성은 버너 안에 들어 있는 부탄가스를 빼고, 냄비에 물을 부은 다음, 무를 한 줌 썰어 넣었다.
이호성이 신호를 주자 바가지가 바로 불을 피웠다.
파앗-!
강한 불길에 의해 냄비 안에서 물이 순식간에 팔팔 끓었다.
“좋았어. 이제 불길을 조금 줄여!”
그에 바가지가 불을 작게 낮추었다.
이호성은 무가 반쯤 익은 것을 확인하고 내장이 제거된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다시 팔팔 끓이다가, 해감시킨 왕바지락을 냄비 안으로 투하했다.
그리고 살아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산낙지 하나를 집었다.
“미안하다.”
이호성은 그렇게 말하며 살아 있는 낙지를 끓고 있는 물에 넣었다.
그리고 장웅 셰프의 레시피대로 다진 마늘, 생강술, 맛술을 넣어 주고 소금과 후추를 톡톡 친 다음, 대파와 미나리를 넣고 뚜껑을 닫았다.
이제 한소끔 끓이기만 하면 끝.
이호성은 바가지를 날카로운 눈으로 보며 검지를 세웠다.
“강한 불 부탁한다, 바가지.”
바가지의 검은 안광이 활활 타올랐다.
이내 검은 불길이 순식간에 냄비에 열을 가했고, 그 시간이 오래되기 전에 이호성은 불을 끄라는 사인을 보냈다.
낙지는 오래 익으면 질겨지기 때문에 분홍빛이 보인다 싶을 때 바로 먹어야 했다.
이호성은 뚜껑을 까고, 쏠의 주머니에서 즉석밥을 꺼내서 바가지에게 열을 가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로써 모락모락 김을 피우는 밥과 연포탕이 완성되었다.
이호성은 완성된 연포탕을 보며 ‘크-!’ 하고 감탄사를 흘렸다.
“비주얼 끝장이군.”
이호성은 즉석밥과 연포탕의 세팅을 끝마친 후, 민성을 돌아보며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었다.
“헌터님! 식사 준비 끝났습니다!”
* * *
민성은 요리가 완성된 테이블 앞에 앉았다.
이호성이 템창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 씻어서 넘겨주었다.
민성이 수저를 받았을 때, 이호성은 집게와 가위를 꺼내 깨끗하게 씻은 다음, 연포탕에 들어 있는 낙지를 먹기 좋게 잘랐다.
“산낙지라서 맛있게 드실 수 있을 겁니다.”
민성은 고개를 끄덕여서 밥을 먹으려다 시선을 들었다.
후두두두!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퍼붓듯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민성은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소주 있나?”
“물론입니다.”
이호성은 템창에서 잔을 꺼내 민성의 앞에 세팅해 준 뒤, 쏠을 불러 황금 주머니 안에서 초록빛의 소주 한 병을 꺼내 병뚜껑을 짜작 소리 나게 땄다.
그리고 잔에 소주를 꼴꼴 채워 주었다.
“시작되기 전에 너도 배 좀 채워 둬.”
민성이 소주잔을 들면서 말했다.
이호성이 옅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민성은 입안으로 소주잔을 탁 털면서 꼴깍 삼켰다.
쓰디쓴 소주를 삼키고, 쏟아지는 빗물을 마치 안주처럼 눈에 담은 뒤, 민성은 숟가락으로 정갈하게 연포탕의 국물을 떠서 먹어 보았다.
장웅 셰프의 레시피 덕분인지, 이호성의 요리 실력이 발전된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몰라도.
국물에서 마치 지하 깊은 곳을 경험하는 것만 같은 국물 맛을 즐길 수 있었다.
“하아…….”
감탄이 섞인 깊은 숨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전투를 앞두고,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야외 천막 안에서 먹는 국물 맛은 그야말로 최고다.
음식이라는 건, 환경조차도 음식의 일부가 된다.
어디서 어떻게 먹는지에 따라 맛이 변한다.
놀라운 마법이라고 생각하면서 민성은 숟가락으로 윤기가 흐르는 밥을 떠서 먹었다.
역시 맛있다.
마치 꿀이라도 바른 것처럼 맛있다.
부드러우면서도 밀도를 갖고 있는 밥알은 그 자체로, 맛있다.
즉석밥은 애초에 좋은 재료가 쓰였는데, 시간이 흘러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면서 최고의 맛을 만들어 냈다.
민성은 밥알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씹고, 먹기 좋게 잘려 있는 낙지를 먹었다.
감칠맛 있게 낙지가 혀를 확 휘어 감는 느낌이 들었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탄력 있다.
산낙지라 그런지 신선도가 높아 분홍빛으로 물든 낙지는 정말 맛있게 느껴졌다.
커다란 왕바지락 껍질을 손으로 들어 안에 들어 있는 조개를 젓가락으로 빼서 먹었다.
쫄깃쫄깃하면서도 짭짜름한 조개 맛이 일품이다.
민성은 앞 접시를 들어 국자로 국물을 세 번 정도 퍼서 담은 다음, 그대로 뜨거운 국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먹는 뜨거운 연포탕의 국물은 무한한 전투를 벌일 수 있게 할 것만 같은, 최고의 스태미나 충전 음식처럼 느껴졌다.
몸 안에 뜨거운 열기가 휘돈다.
음식의 든든함이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
민성은 하나의 감각도 놓치지 않기 위해 음식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 * *
“잘 먹었다. 맛있었어.”
민성이 식사를 만족스럽게 마치며 말했다.
그 말에 이호성은 마치 셰프들이 느끼는 감정을 느꼈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다른 누구도 아닌 민성이 맛있게 먹었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게 느껴졌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충족감 같은 게 생긴다.
셰프들이 음식에 미치는 이유가 이런 거구나 하고 이호성은 생각했다.
이호성이 바가지와 함께 냄비와 그릇을 정리하는 사이, 민성은 천막 밖으로 나와 곧 오픈을 앞둔 마인의 탑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시간을 체크했다.
이제 곧 카운트다운이 시작될 것이다.
그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퍼붓는 비를 맞으며 비장한 표정으로 마포대교 위를 걸으며 다가오고 있는 중앙 헌터 기관의 병력들이 보였다.
총군주 김지유를 비롯한 중앙 헌터 기관의 헌터들이 민성의 등 뒤로 도열해서 섰다.
“이제 1분 남았네요.”
김지유가 남은 시간을 말한 바로 그 순간-
마인의 탑에서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종은 총 12번 울렸다.
민성은 덤덤하게 마인의 탑을 응시했고, 김지유를 비롯한 중앙 헌터 기관의 헌터들은 잔뜩 긴장한 채 마인의 탑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곧바로 마인이나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지는 않았다.
“종이 12번 울렸어요. 어쩌면 그건 12시간 후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김지유가 추측성이 담긴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그건 민성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아니었다.
자신은 그럴 시간에 먼저 움직여, 한 마리라도 빨리 마인을 죽여야 했으니까.
“들어간다.”
민성이 걸음을 옮겨 앞장서며 말했다.
이호성과 바가지, 그리고 쏠이 앞장서는 민성을 뒤따라갔다.
총군주 김지유가 민성을 향해 정중히 머리를 숙이자, 뒤이어 중앙 헌터 기관의 헌터들이 일제히 민성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마탑의 바로 밑, 하단에 이르자 진입에 대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승인을 터치한 후, 민성은 파티원과 함께 마인의 탑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1층입니다.]
시스템 음성이 마인의 탑 1층임을 알려 왔다.
전에 들어갔던 실내 풍경과는 분위기가 상이하게 달랐다.
전 세계에 나타난 마인의 탑 중, 한국 마포대교에 나타난 이 마인의 탑 내부는 전형적인 던전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벽과 바닥이 모두 벽돌로 되어 있었고, 천장은 아득할 정도로 높았다.
그리고 그랜드 홀처럼이나 넓었던 것과 달리 스타팅 지점은 복도의 형태를 보이고 있었고, 조금은 좁은 편이었다.
조명은 어스름했다.
“바가지.”
민성이 바가지를 부르자, 바가지는 등에 매고 있던 완드를 꺼내 쥐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타닥타닥 뛰어 민성의 옆에 섰다.
“속도를 올릴 거다. 언데드화에 실패하면, 포기하고 곧장 내 쪽으로 따라붙어라. 미련을 남기지 말고, 최대한 많은 마인을 확보해야 한다.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실망시키지 마라.”
“네, 주인님!”
바가지가 호기롭게 외치며 검은 안광을 활활 불태웠다.
“이호성.”
“네, 헌터님.”
“바가지가 마인을 언데드화하는 데 확실하게 보조해라.”
“네, 알겠습니다.”
상황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이호성이었기 때문에, 바가지의 서포트를 맡는 데 있어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개인이 아닌 국가와 인류를 위해 싸워야 할 때였다.
시간이 생명인 만큼, 성장보다 클리어가 우선이었다.
이호성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토 달지 않고 몸을 긴장시켰다.
마인을 잡는 데 조금이나마 민성에게 도움이 되고 조력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었다.
이호성은 전투를 앞두고, 그간 풀어져 있던 긴장이 꽉 조여드는 걸 느꼈다.
* * *
파지지지지직!
템창에서 ‘오리하르콘 단검’이 뇌력을 뿌리며 천천히 스스로 나와 민성이 잡기 편하게 공중에 머물렀다.
민성은 자신의 무기를 잡고, 템창을 껐다.
지금부터는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중요한 시점이었다.
반드시 최단 시간 안에 한국의 마탑을 클리어해야 했다.
그다음, 남아 있는 전 세계의 마탑을 해결해야 했다.
마인의 탑을 클리어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건 다소 스트레스였지만, 그런 문제로 시시콜콜하게 신경을 쓰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세상이 망가지면, 식당도 망가진다.
요리사도 죽는다.
이 넓은 세상에, 모두 죽고 자신만 살아 있어 봐야 그런 건 마계나 다름없는 세상이었다.
절대로 그런 세상을 마주할 마음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민성은 오리하르콘 단검을 꽉 쥐고 앞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