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74화>
* * *
1차 방어선이 구축되어 있는 마탑으로 가기 위해 거실로 나온 민성은 우뚝 멈춰 서서 테라스 바깥의 정원을 보았다.
황금 고블린 쏠이 어린아이처럼 쭈그려 앉아 뭔가를 세심하게 보고 있었다.
민성은 정원으로 가서 쏠을 불렀다.
“뭐 해?”
민성의 부름에 쏠이 발딱 일어서서 양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며 다리를 동동 굴리며 웃었다.
그런 쏠을 이상하다는 듯이 보던 민성은 쏠이 보고 있던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곳엔 식물 하나가 자라나 있었다.
민성은 그 식물을 빤히 보았다.
마당 정원에 약 두 뼘만 한 나무가 자라 있었다.
쏠은 이 작은 나무를 보며 넘어갈 듯이 좋아하고 있었다.
민성은 쏠을 보며 엷게 웃었다.
“가자. 이제 가야 한다.”
민성의 말에 쏠이 아쉬운 듯 나무를 바라보다가 민성을 뒤따랐다.
* * *
민성은 이호성이 타고 온 차량 ‘벤틀리’ 뒷좌석에 타고 마포로 향했다.
넓은 차 안에는 운전석에 이호성, 조수석에 쏠, 뒷좌석에 민성과 바가지가 앉았다.
크고 넓은 세단이라 그런지 굉장히 좌석이 편했다.
“뭐 마실 것 없어?”
민성이 물었다.
“거기 좌석 등받이 쪽 중간에 보시면 냉장고가 있습니다. 샴페인은 어떠십니까? 굉장히 비싼 초고가의 샴페인입니다.”
이호성의 말대로 냉장고를 확인해 열어보자 샴페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샴페인을 먹어 본 적은 없어서, 민성은 샴페인을 먹어 보기로 했다.
“이거 어떻게 여는 거냐?”
민성이 샴페인을 꺼내며 물었다.
이호성이 곧장 여는 법을 설명해 주었다.
민성은 샴페인을 손에 들고 살펴보았다.
상당히 화려하다.
이 고가의 샴페인은 전 세계에서 1천 병밖에 생산되지 않는 한정판이었는데, 샴페인 겉면이 금빛으로 번쩍거렸다.
어떤 맛일까?
민성은 샴페인의 호일을 벗겨 내고, 엄지로 코르크 마개를 누르고 고정 핀을 뺀 뒤, 뚜껑을 부드럽게 돌려서 마개를 열어 샴페인을 오픈했다.
차가워져 있는 플루트 잔에 샴페인을 따른 뒤, 마셔 보았다.
탁탁 튀는 탄산의 맛과 달콤한 맛이 입안에 삭 퍼졌다.
민성은 샴페인을 마시면서 창밖의 풍경을 감상했다.
저 멀리, 마포 대교 위에 떠 있는 마인의 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민성은 마포대교 앞에 도착했다.
마인의 탑 앞, 마포대교에 도착했을 때 쏟아지던 빗줄기는 약해져 있었다.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대교 부근에는 1차 방어선 구축이 끝난 탓에 인부들은 모두 3차 방어선 구축을 위해 떠난 후였다.
하여 현장에는 중앙 헌터 기관 병력과 불법 자금 청탁으로 대구에 들어왔던 돈 많은 기업가나 정치가들이 처분을 위해 야외 철창에 감금되어 있었다.
민성이 현장에 도착하자 철창 안에서 동물원 짐승처럼 갇혀 있던 재벌가와 정치가 등 사회 지도층 부류였던 인간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강민성 헌터님!”
“헌터님!”
“야!”
“우릴 왜 여기 가둔 겁니까!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민성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가 철창 앞에 섰다.
막상 민성이 가까이 오자 그들은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며 눈치를 살폈다.
민성이 빤히 보는 시선으로 그들을 훑었다.
노역을 하고, 야외 철창 신세를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풍요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들은 뽀얀 피부를 갖고 있었다.
민성은 그들을 보다가 주변을 훑어, 일전 대구에서 만났던 중앙 헌터 기관의 4성 군단장 김태혁을 발견하고 전음을 날렸다.
장비를 체크하고 있던 김태혁이 화들짝 놀라며 두리번거리다가 민성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뛰어와서 민성의 옆에 섰다.
김택혁은 뒷짐을 쥔 자세로 부동자세를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김태혁이 긴장한 채 대답했다.
“야.”
민성이 그를 차가운 눈으로 보며 불렀다.
“중앙 기관 헌터 군단장 김태혁!”
김태혁이 각 잡힌 자세로 복명복창을 했다.
민성이 발끝으로 김태혁의 정강이를 툭 찼다.
김태혁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는 새어 나오려는 신음을 씹어 삼키며, 표정을 구기지 않으려 애쓰면서 다시 자세를 잡았다.
살짝 찼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김태혁의 얼굴은 벌겋게 변했으며 몸은 가늘게 떨렸다.
민성이 손바닥을 휘둘렀다.
짜아아아악!
김태혁의 입술이 찢어지며 얼굴이 철창 쪽으로 팩 돌아갔다.
철창 안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가, 김태혁의 눈빛을 보고 헛바람을 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14명의 사람들이 철창 안에서 우르르 물러나면서 반대편 철창벽에 등을 대고 모여들었다.
주변에서 중앙 기관 헌터들이 긴장한 눈으로 사태를 지켜보았다.
민성이 검지로 바닥을 가리켰다.
그러자 4성 군단장 김태혁은 굳은 얼굴로 재빨리 본래의 위치로 돌아와 다시 부동자세를 취했다.
“귀하신 분들이 왜 이렇게 철창 안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어떻게 된 거야?”
민성의 말에 김태혁이 당황한 얼굴이 되었고, 철창 안에 있던 사람들은 표정이 밝아졌다.
14명의 사람들이 후다닥 민성 쪽 철창으로 다닥다닥 붙었다.
“역시 우리의 영웅이신 헌터님이 내린 결정이 아니었군요.”
“이 중앙 기관 개자식들이 우리를 얼마나 모질게 대했는지 아십니까!”
“헌터님, 이번 던전이 마무리되면, 따로 자리 마련하겠습니다. 저희랑 같이 맛있는 식사 하시면서 얘기를 나누시죠.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민성이 미간을 구기며 철창을 발로 밀어 찼다.
쾅!
그러자 철창이 마치 주사위가 굴러가듯 쾅쾅 소리를 내며 굴렀다.
“아악!”
“으어어……!”
“아이고……!”
“콜록!”
“으으으……!”
철창 안에서 신음과 비명이 흘러나왔다.
“어이.”
민성의 부름에 김태혁이 긴장으로 동공이 흔들렸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데?”
민성이 물었다.
“그, 그것이…….”
“귀하신 분들이라고, 교육에 문제가 있었나? 저 개만도 못한 것들이 왜 개보다 시끄럽게 짖어 대고 있는 거냐고.”
“죄송합니다.”
김태혁이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머리를 숙였다.
민성이 경멸하는 눈으로 굴러갔던 철창 쪽을 돌아보았다.
“꺼내.”
민성이 말했다.
김태혁이 이동하자, 그의 부하들이 뛰어왔다.
그는 자신들이 하겠다는 부하들을 물리고, 직접 철창문을 열어 하나하나 밖으로 꺼냈다.
그들은 일어서지도 못하고 아프다고 꽥꽥거리며 질척거리는 진흙 바닥을 굴렀다.
민성이 근처에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헌터 한 명을 손짓했다.
그가 깜짝 놀라며 민성에게 뛰어갔다.
민성은 헌터가 앞에 서자마자 그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롱 소드를 스르릉 뽑아 곧바로 누워 있는 이들 쪽으로 집어 던졌다.
쇄애애애액!
퍼어어어어억!
민성이 던진 롱 소드가 공기를 찢어 내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 끙끙 앓으며 누워 있는 이들의 중앙 바닥에 박혀 들어갔다.
크고 검신이 길었던 롱 소드는 3분의 2 이상이 바닥에 박혀 들어가면서 손잡이가 부르르 진동했다.
그에 누워 있던 이들이 경악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바닥을 엉금엉금 기었다.
민성은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는 그들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가관이군, 정말.”
민성은 양손을 허리에 얹고, 고개를 모로 꺾으며 그들을 보았다.
그들은 마치 갓난아이처럼 울면서 바닥을 기어 다녔다.
중앙 기관의 총군주 김지유가 굳은 안색으로 다가왔다.
“민성 씨…….”
김지유의 등장에 민성은 짧게 혀를 찼다.
“난 관심 없으니까 알아서 처리해.”
민성의 말에 김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 저런 쓰레기들이 3차 방어선으로 들어가는 건 확실하게 막아. 불쾌하니까.”
“네.”
김지유가 조금은 안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민성은 마포대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호성이 쏠과 함께 민성의 뒤로 바짝 따라붙었고, 김지유도 할 말이 남았는지 민성의 뒤를 따랐다.
민성은 마포대교의 중심 부근에 이르러, 주머니에 양손을 꽂은 채 마인의 탑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민성을 따라 이호성과 바가지, 그리고 쏠과 김지유도 민성의 시선을 따라 마인의 탑으로 눈길이 향했다.
“시간 얼마나 남았어?”
민성이 마탑을 보며 물었다.
“이제 30분 정도예요.”
김지유가 시간을 체크하며 대답했다.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식은 전과 같다. 만약 진입이 가능할 경우, 우리가 들어가면, 밖에서 유출 가능성이 있는 마인들을 막는다.”
“알겠어요.”
“바가지.”
민성의 부름에 민성의 주머니 안에 있던 바가지가 민둥민둥한 머리를 꺼내며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네?”
“마인이 보이면,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워.”
바가지의 검은 안광이 활활 타올랐다.
“맡겨 주세요!”
“그리고 이호성.”
“네!”
이호성이 비장한 표정으로 민성의 말을 기다렸다.
“연포탕이다.”
“……예?”
“갈 땐 가더라도, 밥은 먹고 가야지.”
이호성은 맥 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드셔야죠. 왜 아니겠습니까. 저에 대한 기대는 조금도 없으시죠?”
민성이 의아한 눈으로 이호성을 보았다.
“해야 하나?”
민성은 그 말을 남기고 템창에서 간이 의자 하나를 꺼내 앉았다.
이호성은 상처받은 표정으로 한숨 쉬며, 김지유에게 다가갔다.
“일단, 음식을 하기에 앞서 대형 텐트 하나를 쳐야 할 것 같습니다. 비가 오고 있어서 음식 하기가 어려워서요. 텐트 설치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김지유가 무전을 통해 중앙 기관의 헌터들을 불러, 텐트 설치를 명령했다.
헌터들은 빠르게 뛰어와 눈 깜짝할 사이에 뚝딱 대형 군용 텐트를 쳤다.
“마지막 전략 회의 좀 하고 올게요. 식사 맛있게 하시고 이따가 봬요.”
김지유가 텐트를 설치한 헌터들과 함께 마포대교 밖으로 함께 나갔다.
그사이 이호성은 대형 군용 텐트 안에서, 요리를 준비했다.
텐트 안에 간이 테이블까지 설치를 해 둔 탓에, 편하게 요리를 준비하고 식사까지 할 수 있도록 세팅되어 있었다.
가스버너 위에, 냄비를 올리고 생수를 콸콸 부은 다음 이호성은 텐트 바깥에서 부슬비를 즐기고 있는 황금 고블린 쏠을 불렀다.
“쏠!”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쏠이 텐트 안으로 밝게 웃는 표정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호성이 가스버너에 불을 켠 다음, 자신의 옆에 선 쏠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낙지 살아 있냐?”
이호성의 물음에 쏠이 낙지? 하고 되물었다.
이호성은 휴대폰을 꺼내 낙지 사진을 인터넷으로 찾아 보여 주었다.
그러자 쏠의 머리 위로 느낌표가 나타났다.
쏠은 자신의 황금 주머니를 뒤지더니, 살아서 꿈을 거리는 낙지를 꺼내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