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73화>
황급히 그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려고 하던 때.
전음이 들렸다.
- 나가 있어.
소리가 피부를 뚫고 들어와 마음 안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실로 기괴한 능력이었다.
그가 강민성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피부로 느껴졌다.
4성 군단장 김태혁은 긴장으로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 민성을 보다가 짧게 목례를 올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몰려 있는 작은 야외 대기석 쪽에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대기표를 들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커다란 덩치의 김태혁을 부담스러워하며 비를 피하기 위해, 위치한 좁은 처마 밑에서도 흠칫흠칫 물러났다.
김태혁에게서 흘러나오는 헌터 특유의 위압감을 무서워한 탓이었다.
* * *
민성은 마치 온몸을 맑게 정화시켜 주는 듯한 차가운 생수로 말끔하게 한 끼 식사를 시원하게 마무리했다.
이호성이 추천했기에 당연히 아쉬움이란 없지만, 이번 식사는 특별히 더 맛있게 느껴졌다.
민성은 휴지 한 장을 뽑아 입을 닦은 뒤, 일어섰다.
테이블에서 일어나자마자 노련한 사장이 바로 와서 카드를 받았다.
그는 결제를 하고, 절도 있게 인사한 뒤, 곧바로 다음 손님을 받을 준비를 했다.
그사이 민성은 가게 밖으로 나와 처마 바깥의 쏟아지는 비를 고개를 빼꼼 내밀어 올려다보았다.
빗줄기가 상당히 강했다.
그런 민성의 옆으로 4성 군단장 김태혁이 와서 우산을 씌어 주었다.
“됐어.”
민성은 그렇게 말한 뒤, 앞장서서 걸었다.
쏟아지는 소나기가 민성을 조금도 적시지 못하는 것을 보고 김태혁은 입을 떡 벌리며, 그 뒤를 따랐다.
민성은 가까운 곳에 주차시켜 둔 노란색 포르쉐의 운전석에 올라 차를 살짝 뺀 뒤, 창문을 살짝 내려 기다리고 있는 김태혁을 보며 입을 열었다.
“타.”
민성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김태혁은 우산을 접으며 허겁지겁 뛰어 차문을 열고 조수석에 탔다.
김태혁이 조수석에 타자마자 민성은 액셀을 밟았다.
민성의 노란색 포르쉐가 골목을 벗어났다.
‘신천동로’를 타고 유통 단지 쪽으로 넘어가면서, 인적이 드문 카페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민성은 차를 세우고, 뒤따르는 김태혁과 함께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중화 비빔밥을 먹어서 그런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고 싶었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으면, 약간의 느끼함이 남아 있는 속이 훨씬 더 깨끗해질 것 같았고, 카페인 흡수도 빨라서 기분 좋게 커피를 즐길 수 있을 듯했다.
민성은 진동 벨을 받아 넓은 통유리가 있는 창가 자리로 가서 앉았다.
김태혁은 어깨를 오므린 채, 종종 걸음으로 그의 맞은편에 조심스레 앉았다.
민성은 말없이 소나기가 쏟아지는 창밖으로 보았고, 김태혁은 눈치를 살피며 무거운 공기를 견뎠다.
잠시 후, 민성의 손에서 진동이 울렸다.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4성 군단장 김태혁이 벌떡 일어나 진동 벨을 받아 뛰어갔다.
그는 커피 한 잔을 들고 공손히 민성의 앞에 내려놓고 앉아 민성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민성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데 집중했다.
* * *
마치 몸이 스펀지처럼 아메리카노의 카페인 성분을 흡수한다.
식사를 마치고 먹는 아메리카노의 맛은 참맛이다.
이런 식으로 커피를 대체할 수 있는 음료가 과연 있기는 할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식후에 먹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정말 대단했다.
시원한 커피의 맛.
커피의 향.
온몸에 퍼지는 카페인 성분을 느끼면서, 민성은 천천히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중앙 헌터 기관의 4성 군단장 김태혁을 직시했다.
잠시 풀어져 있던 김태혁이 바짝 허리를 세우고, 어깨를 펴고 꼿꼿한 자세로 허공을 보며 차려 자세와 같은 각 잡힌 군기를 내보였다.
“대구 통제를 맡은 게 너라고?”
민성이 그를 보며 물었다.
“예! 제가 대구 지역 관리 총책임을 맡은 중앙 기관 소속 4성 군단장 김태혁입니다.”
김태혁이 잔뜩 긴장을 머금은 상태로 대답했다.
민성이 김태혁을 보며 조용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 눈길에 김태혁은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직감적으로 감이 왔다.
그다지 좋은 이유를 자신을 찾은 게 아니라는 것이.
“너 돈 먹었지?”
민성이 물었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김태혁은 잠시 고민했다.
변명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하지만 상대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 이상, 어쭙잖은 변명은 명을 단축시키는 일이기에, 이미 그가 자신을 찾은 이상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판단했다.
상대가 강민성인 이상, 변명에 칩을 거는 건 단 한 번의 도박으로 잭팟을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위험한 도박이었으니까.
차라리 모든 걸 밝히고 처분을 받는 것이 사는 길이다.
“예, 받았습니다.”
김태혁이 시선을 내리며 솔직하게 말했다.
“돈을 받고 네가 한 일은?”
이미 모든 걸 다 알고서 묻는 것인지, 지금 캐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김태혁은 이미 고분고분하게 말하기로 마음을 먹은 후였다.
“대구시에 인구 밀집이 과열되어, 대구시로 진입하는 인원을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통제가 시작된 이후, 대구시로 들어오고자 하는 인원을, 제가 돈을 받고 몇 명 들여보냈습니다.”
“몇 명인 거 확실한가?”
김태혁이 굵은 침을 삼켰다.
“총 12명입니다.”
민성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유리잔을 매만졌다.
민성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창밖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태혁은 마치 온몸이 찌그러질 것만 같은, 숨 막히는 압박감을 받았다.
“콜록!”
김태혁은 기침을 하며 손바닥으로 가슴을 문질렀다.
숨을 제대로 쉬기조차 힘들었다.
그리고 이내 민성이 시선을 돌려 눈이 마주쳤을 때는, 김태혁은 마치 죽음을 목전에 둔 것을 느꼈다.
강민성은 사신(死神) 그 자체였다.
“헉……!”
김태혁은 의자 밖으로 나와 바닥에 철퍽 엎드렸다.
“사, 살려 주십시오.”
온몸을 당장이라도 분쇄시킬 것만 같은 공포감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일어서.”
민성이 말했다.
김태혁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바들바들 떨리는 양손을 깍지 끼고서 초조하게 민성의 앞에 후들거리며 섰다.
“다시 묻는다. 몇 명이야?”
민성이 해당 사안에 대한 마지막 물음을 던졌다.
“14명입니다.”
“2명을 속인 이유는?”
“제 친척입니다.”
“예외 없이 1차 방어선으로 보낸다.”
“……예.”
“그 14명 다 찾아서, 직접 1차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마포로 올라가라. 그리고 거기에 잡부로 써.”
“알겠습니다.”
김태혁이 창백한 얼굴로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 14명은, 3차 방어선 및 지하 벙커에 가장 마지막 후순위다.”
“문제없도록 처리하겠습니다. 저 그런데, 제 처분은……?”
김태혁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자세를 낮추어 물었다.
“너희들 총군주에게 직접 보고하고 처분도 거기서 받아. 그리고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런 소식이 내 귀로 들어오면, 책임자는 물론 관계자 모두 1차 방어선의 방패가 된다.”
“네, 정확하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민성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라를 버리고 도망간 놈들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다.”
김태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예. 다른 분부는 없으십니까?”
“아, 총군주에게 전달하고 그 일도 바로 시행해.”
“어떤 일 말씀이십니까……?”
“3차 방어선인 이곳 대구에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하라고.”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어른들은 다 대구 밖으로 내몰아. 3차 방어선에는 어린 아이들을 우선순위로 한다. 어머니가 필요한 갓난아이를 가진 여자만이 대구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고. 뭐 대충 그렇게 전달해.”
“아! 그 문제에 대해선 이미 총군주께서도 생각한 부분이라 강민성 헌터님의 허락을 구하는 일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민성은 김태혁을 보며 웃었다.
“그걸 알고 있었다는 넌 돈만 받고 어차피 그 인간들 대구 밖으로 갔다 버릴 생각이었다는 거네.”
“……죄송합니다.”
“대구의 통제관은 바뀔 거다. 1차 방어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라. 안 그럼 내 손에 죽을 거니까.”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전투하겠습니다. 미덥지 않으시겠지만, 부디 믿어 주십시오.”
김태혁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가 봐.”
중앙 기관의 4성 군단장이 인사를 올리고 나갔다.
그가 사라진 후, 민성은 쏟아지는 빗줄기를 응시했다.
머지않아, 곧 이 평화로워 보이는 세상이 뒤집어질 것이라는 사실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민성은 마탑의 등장으로 인해, 변한 날씨를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 * *
중앙 기관의 4성 군단장 김태혁의 명령에 의해 즉각 불법 자금으로 대구에 들어온 인원이 헌터들에 의해 잡혀 서울로 이송되기 시작했다.
불법으로 대구에 들어온 사람들이 체포되어 연행되었다.
그들은 헌터들에게 잡혀, 1차 방어선 구축이 진행되고 있는 마포로 올라갔다.
김태혁은 민성의 명령대로, 자신의 죄를 총군주에게 보고하고, 강민성의 3차 방어선 우선순위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했다.
기를 쓰고 대구에 들어가려고 했던 어른들이 아이들이 최우선 순위로 3차 방어선인 대구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2차 방어선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법으로 대구에 들어온 인원은 1차 방어선으로 올라간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그러자 시끄러웠던 어른들의 대구에 들어가고자 하는 집착은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
* * *
일주일이 흘렀다.
2차 방어선 구축 공사가 끝이 나고, 3차 방어선 구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고 한 시점.
72개의 마인의 탑이 마치 블록체인처럼 모두 검은빛이 연결되기까지 추정 시간으로 약 2시간도 남지 않았다.
그 무렵 시민들과 숨을 죽인 채, 곧 시작될 전쟁을 앞두고 불안에 떨고 있었고, 중앙 기관 핵심 헌터 병력은 마포의 마탑 부근에서 대기 중이었다.
전 세계가 비상 상태에 들어선 이때.
민성은 장웅이 만들어 준 치즈 샌드위치를 집었다.
이호성에게 이제 그만 폐관에서 나와 장을 보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낸 뒤,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겉보기엔 양상추와 베이컨, 그리고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지만, 장웅의 특별한 비법으로 만들어진 소스가 배합된 이 샌드위치의 맛은 심각하게 맛있었다.
민성은 달콤 짭짜름하게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휴대폰으로 시간을 체크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그렸다.
만약 마인의 탑이 오픈되었을 때, 몬스터가 곧바로 도시로 쏟아져 나올 경우.
한국의 마탑을 클리어하고, 다른 나라의 마탑을 정리하러 가는 순서와 방식을 한 번 더 되새겼다.
민성은 꿀맛과도 같은 샌드위치를 다 먹은 후, 손을 탁탁 털면서 일어섰다.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했으니…….
이제 슬슬 마탑을 처리하러 가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