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72화>
이호성이 알려 준 맛집 신화반점은 북구에 위치한 한 동네 골목길에 위치해 있었다.
노란색 포르쉐로 좁은 골목길에 들어가자 바로 신화반점의 간판이 보였다.
다만 주차할 공간이 여의치 않았는데, 다행히 불이 꺼져 있는 가게를 하나 발견할 수 있어 민성은 그 앞에 차를 주차시키고 내렸다.
신화반점은 그냥 동네 반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오래된 중국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표를 받아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민성은 선글라스를 올려 쓰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 대기표를 뽑았다.
주변에서 민성을 흘깃흘깃 쳐다보았지만, 민성을 알아보지는 못했는지 금세 관심을 껐다.
대기 순번은 101번.
오늘 안에 밥을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 갈 정도로 대기가 길었다.
선글라스를 벗으면 앞당길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굳이 동물원 원숭이 신세가 되 가면서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순서가 되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 같아, 민성은 가게 주인에게 차에서 잠시 쉬고 오겠다고 말했다.
가게 사장은 흔쾌히 수락했다.
이 신화반점이라는 중국집은 평소에도 대기 줄이 긴데, 대구가 3차 방어선이 되면서 손님이 최근 많이 몰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민성은 대기 번호표를 손에 꼭 쥐고 자신이 타고 온 노란색 차량으로 돌아왔다.
운전석에 타서 휴식을 취하면서 민성은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라디오를 대충 틀었다.
-……현재 3차 방어선을 구축할 예정인 ‘대구 진입 통제’에 대한 문제로 논란이 뜨겁습니다. 대기업 오너 일가는 물론, 재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 불법 자금 청탁으로 통제를 시작한 대구에 자리를 잡은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갑질 행태가 심각합니다.
민성은 라디오를 통해, 뉴스를 들으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요즘 같은 때에, 이렇듯 검은돈이 활개를 친다는 게 신기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개뿔.”
민성은 미간을 구기며 라디오를 끄고 품 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민성은 이호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얼마 가지 않아 이호성이 전화를 받았다.
- 헉! 헉! 예, 헌터님! 이호성 전화 받았습니다.
“잠깐 할 일이 있어. 할 일만 하고 다시 ‘폐관’ 들어가.”
- 알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사람 하나만 찾아서 이쪽으로 보내라.”
- 누구를요?
민성이 엷게 웃었다.
“쓰레기.”
* * *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한쪽 눈살을 찌푸렸다.
“뭐? 누가 대구에 와?”
그의 물음에 오른팔 격으로 쓰이는 부하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강민성입니다.”
부하의 말에, 사내는 좌우로 눈알을 굴리며 미간을 구겼다.
“왜?”
사내가 부하를 보며 물었다.
“왜 왔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위치는?”
“신화반점입니다.”
“신화반점?”
“네. 대기표 뽑고 기다리고 있답니다.”
부하의 말에 사내는 코웃음을 흘렸다.
“그 인간 진짜 강민성 맞아?”
“예. 지금 파악하기로는 거의 확실합니다.”
사내가 찜찜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중앙 기관 직통 전화였다.
사내는 부하에게 나가 보라고 손짓한 뒤, 부하가 나가는 걸 보고 짧게 숨을 고르고서 전화를 받았다.
“누구?”
사내가 휴대폰을 귀에 대고 물었다.
- 중앙 헌터 기관 4성 군단장 김종필 씨 맞습니까?
사내는 휴대폰을 한 번 내려다 보았다가 다시 휴대폰을 귀에 붙이며 인상을 썼다.
“너 누구야? 중앙 소속 아니지?”
- 네. 아닙니다.
중앙 헌터 기관의 4성 군단장 ‘김태혁’은 이빨이 보이도록 웃었다.
“뭐냐, 너? 어떻게 중앙 헌터 기관 직통으로 전화를 걸었어? 뭐 하는 자식이야?”
-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자식이라고 하는 겁니까? 중앙 헌터들은 자식 소리를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
“너 뭐냐고, 인마.”
4성 군단장 김태혁이 목소리를 깔면서 말했다.
- 이호성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김태혁은 미간을 훅 구겼다.
이호성이라면 강민성과 함께 다니는 헌터였다.
만약 그가 자신이 알고 있는 이호성이라면……?
김태혁은 추측만으로도 등에 땀이 솟았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전화를 고쳐 받았다.
“혹시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장, 이호성 님이십니까?”
김태혁이 급격히 태세를 바꾸어 예의를 갖춘 목소리로 물었다.
- 하하, 편하게 하세요. 너무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 에이, 뭐 저 같은 것 때문에 죄송할 것까지야 없으시고. 군단장님, 어디 좀 가셔야겠습니다.
“어디를 말씀이십니까?”
- 신화반점으로.
김태혁은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신화반점이라면 조금 전 부하가 강민성이 식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는 곳이었다.
“거길 제가 왜……?”
- 강민성 헌터님이 보자고 하십니다. 물어볼 것도 있고 시킬 일도 있다고 하니 서두르시죠,
“이, 일단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 네. 그럼. 가면서 3분의 1 지점 주기로 연락 주세요. 군단장님 늦으면 제가 엄청 곤란해지거든요.
“늦지 않게 가겠습니다.”
4성 군단장 김태혁이 황급히 외투를 챙겨 입으며, 서둘러 룸을 나섰다.
* * *
기다림 끝에 드디어 민성 자신의 대기 번호 차례가 됐다.
민성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검은 선글라스를 살짝 올려 쓰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는 상당히 작았다.
이렇게 작은 동네 가게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줄을 서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가게 안에는 좌식으로 앉을 수 있는 단체석 자리 테이블이 2개.
나머지는 작은 테이블이 3개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가게였다.
민성은 가게 내부를 훑어보며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도 사람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민성을 이상하다는 듯이 보았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모두들 식사에 집중했다.
탁! 탁!
단무지와 양파가 들어 있는 작은 그릇 하나가 놓이고, 바로 연달아 춘장이 들어 있는 그릇이 놓였다.
민성은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양파는 아주 하얀 것이 맛있고 신선해 보였고, 단무지도 흠집 없이 아주 깔끔했다.
식초를 들어 단무지에 뿌려 주자 마치 가뭄에 단비를 내린 것처럼, 단무지는 마치 숨을 쉬듯 반짝반짝해졌다.
민성은 수저통에서 젓가락을 꺼내, 먼저 양파부터 집어 춘장에 찍어 먹어 보았다.
아삭아삭한 식감과 함께 양파의 향이 기분 좋게 코끝을 자극했다.
양파와 춘장의 조합은 정말이지 절묘하다.
쌉싸름한 춘장의 맛과 양파의 단맛이 상큼하게 섞이는 건 입맛을 깔끔하게 살려 준다.
민성은 선글라스 안의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짜장면을 먹는 사람도 있었고 짬뽕을 먹는 사람도 있었다.
‘짬뽕에는 계란 프라이가 올라오는군.’
그러고 보면 중국집에서 짬뽕에 반숙된 계란 후라이를 올려 주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가게만의 특징인가?
그렇게 생각하던 중 중화 비빔밥으로 추정되는 음식이 민성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게 중화 비빔밥?
빨갛다.
마치 고추장을 넣은 비빔밥 같다.
그리고 그런 민성의 추측은 정답이었다.
민성의 식탁 위로 중화 비빔밥이 올라왔다.
다소 생소한 음식 중화 비빔밥.
보통의 중국집에는 없는 음식.
이 음식은 이름처럼 중화의 특성을 살린 비빔밥처럼 보였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빨간 색깔을 가지고 있다.
민성은 이 중화 비빔밥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먼저 보인 것은 역시 이 가게만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반숙된, 유일하게 빨갛지 않은 귀여운 계란 프라이다.
그리고 그 밑으로 돼지고기가 보이고, 잘게 썰린 애호박이 보였으며, 당근과 양파, 그리고 파와 매운 고추가 들어가 있었다.
재료 자체는 비빔밥이라 그런지 상당히 심플해 보였다.
하지만 이 중화 비빔밥이라는 메뉴의 핵심은 재료 보다 중요한 바로 양념의 맛일 거다.
이 신화반점이라는 곳에서 개발한, ‘특제 양념 소스’로 거칠고 강한 불길에 의해 만들어진 비빔밥.
분명 보통 비빔밥은 아닐 것이다.
이호성이 추천한 만큼 그 이유가 이 음식 안에 분명히 들어 있을 것이다.
민성은 은빛의 숟가락을 들어 계란을 자르면서 양념이 묻어있는 재료가 밥과 잘 섞이도록 삭삭 섞었다.
밥을 섞으면 섞을수록 윤기가 좔좔 흘렀다.
정말 먹음직스럽다.
민성은 순식간에 비빔밥이 되도록 섞은 후, 중화 비빔밥을 한 숟가락 떴다.
윤기의 빛을 머금은 한 숟가락에는 부드러운 밥알과 돼지고기, 그리고 애호박과 당근 등 이 한 숟가락 안에 중화 비빔밥의 모든 재료가 모두 들어가 있었다.
민성은 기대감을 품고 중화 비빔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민성은 중화 비빔밥을 씹자마자 눈을 질끈 감았다.
맛있다.
이토록이나 비빔밥이 달짝지근할 수 있으며, 이렇게나 달짝지근한 비빔밥이 결코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느끼하지 않았으며,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게 바로 이 음식의 최대 장점이자 마법이었다.
돼지고기의 푹신하면서도 공격적인 느낌의 식감과 더불어 애호박, 당근, 양파가 단맛을 극대화시켰다.
매운 고추를 머금은 매콤한 양념이 코를 훅 찔러 오고 이 모든 재료가 어우러진 중화 비빔밥은 부드럽게 목을 넘어 위장 속으로 진입한다.
정말 환상적이다.
이게 바로, 대구의 중화비빔밥!
민성은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 꺾으며 다시 숟가락을 놀렸다.
민성은 마치 수비를 모르는 공격수처럼 중화비빔밥을 폭풍 흡입했다.
* * *
중앙 헌터 기관의 4성 군단장 김태혁은 잔뜩 어그러진 얼굴로 커다란 외제 SUV를 타고서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가뜩이나 골목이 좁은데, 불법 주차된 차들까지 많아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김태혁은 주차할 자리를 어렵게 찾아낸 뒤, 지나오면서 봤던 가게 신화반점으로 향하며 우산을 펼쳤다.
비가 그쳤나 싶더니, 마탑의 영향 때문인지 다시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두두 떨어지는 빗소리와 서늘한 바람이 김태혁은 오늘따라 유독 차갑게 느껴졌다.
가게 안에 들어가기 전, 김태혁은 시간을 체크했다.
그다지 늦지 않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식사 중이겠지.
김태혁은 담배를 태우면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대체 무슨 일로 자신을 부른 걸까?
김태혁은 초조하게 담배를 태운 후에, 민성을 만나기 위해 신화반점 안으로 들어갔다.
응? 어딨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김태혁은 이내 선글라스를 끼고서 식사 한 그릇을 비우고 물을 먹고 있는 사내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몰랐는데, 얼핏 보니 그가 바로 일전 마탑 안에서 봤던 강민성이 맞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