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71화>
* * *
마인의 탑이 나타난 이후, 방어선 구축을 위한 작업 속도는 훨씬 더 빨라졌다.
비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에도 작업자들은 방어선 구축에 한창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부족한 만큼, 방어선 구축 현장은 극도로 예민했다.
사방에서 고성이 오갔다.
마법 장치를 이용해 마법 보호벽을 만드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자가 충분하다고는 해도, 마법벽 만들 수 있는 핵심인력들은 한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시간은 부족했으며, 초조함 때문인지 작업 속도는 아무리 서둘러도 더디게만 느껴졌다.
1차 방어선은 마탑을 에워싸는 돔(Dome) 형태의 마법벽을 만드는 것.
그리고 2차 방어선은 지도상 인천에서 울릉도까지 선을 긋는 라인 형태로, 마법벽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구광역시’에 마지막 보루로, 돔 형태의 마법벽을 구축하는 것이 마지막 3차 방어선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분석으로 마탑이 블록체인 형식으로 연결이 되기까지 3차 방어선까지 구축하는 건 사실 상 불가능했다.
다만 1차 방어선이 최소 며칠이라도 시간을 벌어 준다면, 그사이에 3차 방어선 구축은 아슬아슬하게 가능할지도 몰랐다.
때문에 마법벽을 구축하는 현장은 바쁘고, 예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마탑에서 나오는 검은 불빛과 마법벽이 마찰을 일으키는 건 아닐지 엄청 불안했지만, 다행히 거기엔 문제가 없었어요. 탑에서 나오는 빛은 단순히 연결을 위한 진행 과정에 불과한 거였어요. 결국 지금부터는 1차 방어선이 얼마나 버텨 주느냐가 관건인 거죠.”
방어선 구축에 한창인 현장에서 김지유가 민성의 옆에서 말했다.
“지하 대피소는?”
민성이 물었다.
“지하 대피소는 지역별로 이미 완공을 끝냈어요. 사전에 작업을 시작했었으니까. 문제는……”
김지유가 태블릿을 민성에게 보여 주었다.
“시민들의 불안이 크다는 거예요.”
민성은 김지유가 보여주는 화면을 덤덤한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화면에는 현재 시민들의 추측으로, 가장 안전지대로 손꼽히고 있는 ‘대구’에 대해 문제가 붉어지고 있었다.
대구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렸던 탓이었다.
대구시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추가 인원을 막겠다는 발표가 잇따르자, 이에 따라 국민들의 불만과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마인의 탑이 나타나기 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분위기였다.
민성은 태블릿에 나오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며, 공사 현장을 훑었다.
“현재 마탑이 완전히 연결되는 데까지 걸리는 예상 날짜는?”
민성이 물었다.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어요. 이대로라면 일주일도 되지 않아 연결이 완료될 겁니다.”
김지유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일주일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만약 전 세계 마탑이 서로 연결되고 마인이 쏟아져 나온다면, 전 세계의 인구가 얼마나 줄어들게 될지는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바가지를 이용해, 마인을 최대한 많이 보유하려고 했지만, 애초에 바가지가 마인을 보유하는 숫자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마인을 언데드로 부릴 수 있는 바가지의 능력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민성은 탐탁지 않은 얼굴로 대교 위에 떠 있는 마탑을 응시했다.
결국 블록체인처럼, 전 세계 마탑이 연결된 이후의 상황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민성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 * *
방어선 구축 공사를 위한 시민 단체가 생겨났다.
대구와 제주도로 들어가는 길이 막히자 시민들은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 두 팔을 걷고 방어선 구축 공사에 자원했다.
가족을 지키거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방어선 구축에 속도를 올리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시민들이 단체로 공사 현장에 들어오자, 규칙이 잡히지 않아 혼선이 있긴 했지만,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마법벽을 설치하는 전문가들에게 보조가 많이 붙게 되면서 확실히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치료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헌터들은 마법벽을 설치하는 전문가들이 지치지 않도록 힐(Heal)을 주기적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근력을 키워 줄 수 있는 버프 헌터들도 자신들의 능력을 통해 힘을 실어 주었다.
그 상황에 자원 인력이 많아지자 조금이지만, 완공까지 시간은 단축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드론 카메라에 잡혀 방송을 탔고, 대구와 제주도의 3차 방어선 최고 안전지대에 있던 시민들이 직접 나와 자원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수는 놀라우리만큼 많았다.
아직 마인의 탑이 연결되지도 않은 상황에, 추후 안전지대에 들어갈 수 없다는 두려움으로 숨어 있던 국민들도 용기를 내고 방어선 구축 공사에 자원을 신청했다.
다소 헐렁하게 느껴졌던 마포대교의 부근은, 어느새 북적이는 사람들로 가득해졌다.
나라를, 그리고 인류를 지키기 위한 힘이 늦게나마 모여들고 있었다.
* * *
민성은 자신의 두 번째 집인 그랜드 월드 타워 펜트하우스에 도착했다.
그는 냉장고 안에서 탄산수 하나를 꺼내서 꿀꺽 꿀꺽 마신 뒤, 걸음을 옮겨 펜트하우스 실내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민성은 헬기의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 착석한 뒤, 이호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고, 잠시 후, 이호성이 전화를 받았다.
- 네, 헌터님.
“대구 맛집.”
민성이 짧게 말했다.
“대구 맛집이요? 아, 잠시만요. 한 1분만 주세요.”
이호성은 정확히 46초가 되었을 때.
“모처럼 대구에 가셨으니, 신화반점에 가셔서 중화비빔밥을 드시면 됩니다.”
민성은 전화를 끊고, 헬기의 시동을 걸었다.
투투투투투투투-!
프로펠러가 돌아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맹렬하게 고속으로 회전했다.
헬기가 서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민성은 비치된 선글라스를 끼고서, 헬기를 운전했다.
헬기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 * *
전에도 느낀 거지만 민성은 헬기를 운전하는 게 상당히 재밌었다.
목적지로 빨리 가는 건 두 발로 직접 뛰어가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그건 귀찮고 또 불편한 일이었다.
기계를 운전하는 건 생각보다 취미에 맞는 일이어서, 민성은 여유롭고 편안하게 헬기를 타고 경치를 구경하며 마치 여행을 하듯 즐겁게 이동했다.
민성은 자유롭게 풍경을 감상하며, 이호성이 말했던 중화비빔밥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전에 반점에 갔을 때, 메뉴에 중화비빔밥이라는 메뉴는 없었다.
어떤 음식일까?
민성은 기대감을 품으며, 헬기의 속도를 올렸다.
* * *
헬기를 착륙시키고, 빌딩 아래로 내려오자 로비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직원 한 명이 민성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는 차를 준비시켜 놓았다고 말하며 차키를 내어 주었다.
아마 이호성이 미리 조치를 취한 모양이었다.
민성은 키를 받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지상 1층에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노란색 포르쉐였다.
민성은 로비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차를 타고, 도로 밖으로 빠져 나왔다.
도로로 나오자, 대구의 거리에는 3차 방어선 안전지대라 그런지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게 민성의 눈에 보였다.
도로는 헌터들이 일반 차량은 이동을 못 하도록, 통제를 하고 있었다.
현 지역에 인구가 밀집되면서 인명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차량 통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탓에 민성의 차량을 보고, 수상하게 여긴 헌터 한 명이 즉각 달려와 창문을 거칠게 툭툭 두드렸다.
민성이 창문을 내리자, 도로를 통제 중이었던 헌터가 잔뜩 예민함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민성을 노려보았다.
“이 새끼. 너 도로 통제 중이라는 거 몰라? 그리고 어디 건방지게 선글라스는 끼-.”
헌터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선배 헌터 한 명이 달려와 민성을 노려보고 있는 후배 헌터를 날라 차기로 차 버렸기 때문이었다.
선배 헌터의 발차기에 후배 헌터가 바닥에 넙죽 나동그라졌다.
그사이 선배 헌터는 민성에게 꾸벅 절도 있게 머리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지금 즉시, 바리게이트 치워 드리겠습니다. 대구 전 헌터 병력에게 차량 번호 문자 메시지 보냈으니, 지금부터는 이동에 전혀 불편함이 없으실 겁니다.”
“으윽, 선배님?”
날라 차기에 당한, 후배 헌터가 어깨를 붙잡고 비틀 거리며 일어서자 선배 헌터가 그에게 눈알을 부라렸다.
“강민성 헌터님이다. 당장 사과드려!”
“헉……!”
후배 헌터는 곧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민성의 운전석 창가로 뛰어가 90도로 머리를 숙였다.
“몰라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후배 헌터가 바들바들 떨면서 사과했다.
“됐어.”
민성이 짧게 말하고, 창문을 다시 올렸다.
곧 바리게이트가 치워졌고, 민성이 탄 포르쉐 차량이 배기음을 토해 내며 ‘신화반점’에서 중화비빔밥을 먹기 위해, 도로를 질주했다.
후배 헌터는 멍한 얼굴로 멀어진 민성의 슈퍼카 차량을 응시했다.
선배 헌터가 그런 후배 헌터를 보며 ‘쯧쯧!’ 하고 혀를 찼다.
“넌 나 아니었으면 죽었어, 인마. 사람을 잘못 봐도 정도가 있지 감히 강민성 헌터님을 몰라봐?”
선배 헌터가 으스대며 말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후배 헌터가 여전히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민성이 간 방향을 보면서 대답했다.
선배 헌터는 그런 후배 헌터를 보며 피식 웃었다.
“뭘 그렇게 넋을 놓고 있어?”
“다른 분도 아니고 강민성 헌터님 아닙니까? 심장 터질 뻔했습니다, 진짜.”
“뭐, 하긴 놀랄 만도 하지. 하하!”
선배 헌터가 알겠다는 듯 후배 헌터의 시선을 이으며 말했다.
“그런데 저렇게 대단한 분이 여기는 왜 오신 걸까요?”
후배 헌터가 선배를 보며 물었다.
“낸들 알겠냐? 그렇지만…… 모르긴 몰라도.”
선배 헌터가 민성이 간 방향을 보며 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 엄청 중요한 일이 있으시겠지?”
“그렇겠죠? 하…….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제가 저런 엄청난 분을 만났다는 게. 그리고 그런 분에게 그런 끔찍한 태도를 보였다는 게.”
“나도 좀 그래. 실물을 영접할 줄은 몰랐다.”
“실제로 존재하는 분이셨네요. 무슨 고대 신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분처럼 느껴졌었는데.”
선배가 후배 헌터의 뒤통수를 가볍게 탁 쳤다.
“정신 차려. 이제 그만 일하자. 바쁘다. 우리의 일에 충실해야지.”
선배 헌터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후배 헌터는 선배를 뒤따르면서도 민성이 차를 타고 간 사라진 방향으로, 선망이 가득 담긴 시선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