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170화 (170/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70화>

* * *

민성은 한국에 새롭게 생성된 마인의 탑 앞에 도착했다.

마인의 탑이 나타난 위치는 마포대교 위.

민성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한쪽 눈살을 찌푸리며 탑을 올려다보았다.

현재 기자들은 군사 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진입이 금지 되어 있었다.

현재 탑 주변에 위치한 건 모두 중앙 기관의 헌터들뿐이었다.

드론만이 촬영을 위해 탑 주변을 떠다니고 있었고, 헌터들이 부산스럽게 뭔가를 체크하고 다녔다.

민성이 탑을 보고 있을 때, 그의 옆으로 완전 무장을 한 김지유가 다가와 섰다.

“탑으로 진입이 불가능해요.”

김지유가 민성의 옆에 서며 말했다.

민성은 굳은 얼굴로 탑을 보았다.

탑은 맨하튼에 나타났던 탑과는 양상이 달랐다.

50층 전부, 등장과 동시에 모든 플로어의 불빛이 밝아 있었다.

“다른 정보는?”

민성이 여전히 탑을 보는 채로 물었다.

“저길 보세요.”

김지유가 탑의 한쪽 측면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그곳에는 일전, 맨하튼의 마탑에서는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인의 탑 좌우로 검은 빛이 아주 조금씩 천천히, 뻗어져 나오고 있었다.

“뭐야, 저게?”

민성이 눈썹을 꿈틀 거리며 말했다.

“우리 한국에 나타난 마탑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 나타난 마탑도 마찬가지예요. 검은빛이 서서히 길어지고 있어요. 이건 위성으로 촬영한 건데, 한번 보시죠.”

김지유가 출력된 커다란 지도 사진 한 장을 넘겼다.

민성은 김지유가 넘겨준 그 지도를 펼쳐 확인해 보았다.

“이건…….”

민성이 지도를 보며 미간을 구겼다.

“혹시 블록체인이라는 기술 알아요?”

“설명해봐.”

“블록체인이라는 건, ‘블록(Block)’을 잇따라 ‘연결(Chain)’한 모음을 의미해요. 최초 가상화폐를 거래할 때 시작되었던 방법이죠.”

“대충 알겠고, 이게 그 블록체인의 형태라는 건가?”

“비슷해요. 추정컨대, 현재 마탑에서 나오고 있는 저 검은 불빛은 마탑과 서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에요.”

“그러니까, 저게 연결이 되면…….”

민성이 말끝을 흐렸고, 김지유는 민성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탑으로 진입이 가능해지거나, 그게 아니라면…….”

민성이 마포대교에 생성된 마인의 탑을 올려다보며 엷게 웃었다.

“놈들이 쏟아져 나오겠군.”

민성의 말에 김지유가 함께 마탑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민성은 지도를 반으로 접어 김지유에게 넘겼다.

“그럼 다행히 아직 시간은 좀 있다는 거네.”

민성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김지유는 민성을 따라 옆에서 걸으면서 쓰게 웃었다.

“그게 다행인가요?”

“적어도 시간을 더 확보했다는 걸 확인한 거니까. 방어선 구축은 어떻게 돼가?”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속도가 빨라요. 민성 씨가 한국을 최우선 방어 지역으로 선택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김지유가 짧게 한숨 쉬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모두. 현재의 불빛 속도로 보아 만약 방어선이 구축되기 전에 탑에서 마인들이 밖으로 나온다면…….”

김지유가 얼굴을 굳혔다.

“상상 이상의 일이 벌어질 거예요.”

“그러니까.”

민성이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네?”

김지유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고 민성을 보았다.

“알아내야지.”

“어떤 걸요?”

“마탑의 연결을 늦출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든가, 방어선 구축이 먼저 완성되도록 속도를 올리든가. 둘 중 하나라도 방법을 찾아야지.”

“최선을 다하겠지만…….”

“최선을 다해선 안 돼.”

민성이 마인의 탑을 차가운 눈으로 돌아보았다.

“무조건 그렇게 만들어야지.”

김지유는 짧게 한숨 쉬며 웃었다.

“네. 그렇게 만들어야죠.”

김지유는 민성과 함께 마인의 탑을 돌아보았다.

사상 최악의 시간이 째각째각 흐르고 있었다.

* * *

“X발……!”

이호성은 울먹이는 소리를 섞은 채, 욕설을 뱉으며 데스나이트의 검으로 벽을 후려쳤다.

이호성의 데스나이트 검이 보호 마법을 뚫고 벽에 퍽! 소리를 내며 틀어박혔다.

이호성은 벽을 짚은 채, 무릎을 꿇고서 부들부들 떨었다.

울분이 가슴 속에서 터져 나와, 좀처럼 그 감정이 가라앉지 않았다.

바가지는 그런 이호성에게 다가가 팔이 짧아 등을 토닥일 수 없어, 엎드려 있는 그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저리 비켜, 이 자식아!”

이호성이 손으로 바가지를 쳐 냈다.

휘둘러 오는 손을 슥 피한 바가지가 팔짱을 낀 채 답답하다는 듯 이호성을 보았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바가지가 물었다.

이호성은 스트레스와 울적한 감정이 섞인 얼굴로 벽에 등을 기대며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난 글러 먹었어.”

이호성이 체념한 얼굴로 초점 없이 허공을 보았다.

바가지가 탁탁 뛰어가 발로 이호성의 다리를 걷어찼다.

퍽!

“억……!”

이호성이 바가지에게 맞은 부위를 붙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아파! 이 망할 뼈다귀야!”

이호성이 빽 소리를 질렀다.

“어휴! 이 찌질아! 주인님이 수련하라고 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농땡이 부리려고 수작이야?”

바가지가 검은 불이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이호성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호성은 바가지에게 맞았던 부위를 문지르며 인상을 썼다.

“야. 이런 식으로는 절대로 마인에게 맞설 수가 없다고. 버서커 지속 능력은 꼴랑 2분 올라서 이제 겨우 10분 정도밖에 안 되는 데다가 버서커가 되어도 마인 하나 제대로 못 잡잖아. 마탑이 열리고 그놈의 본게임이라는 게 시작되면 끝장이라고.”

이호성이 그늘진 눈으로 바닥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포기한다고?”

바가지가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이호성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모르겠다, X발.”

이호성은 죽상을 한 얼굴로 템창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냥, 죽어, 이 똥개야!”

바가지가 화를 내며 완드로 이호성의 배를 푹 찔렀다.

“컥!”

이호성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툭 뱉으며 꺽꺽 소리를 내며 배를 붙잡고 옆으로 넘어졌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호성은 차가운 바닥에 엎어진 채, 배를 붙잡고 큭큭 웃었다.

“하하……. 이 와중에도 경험치는 오르고 레벨은 오르는구나…….”

이호성은 바닥에 누운 채로, 담배를 새로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스읍……. 후우!”

누운 채로 천장을 향해 담배 연기를 뿜던 이호성은 민성을 떠올렸다.

“야, 바가지.”

이호성이 민성을 떠올리며 바가지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자 이호성은 옆을 보았다.

바가지가 등을 돌린 채 토라진 것처럼 앉아 있었다.

“화났냐?”

이호성이 담배를 잘근잘근 깨물며 물었다.

바가지가 등을 보인 채, 단단히 삐친 듯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바가지를 빤히 보던 이호성은 다시 천장을 보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헌터님 말이야.”

이호성이 입에 물었던 담배를 던지고서, 이상하다는 듯 한쪽 눈을 찌푸렸다.

“어떻게 그 끔찍한 마계라는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걸까? 아무리 지금이야 말도 안 되게 강하다고는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강한 건 아니었을 것 아니야? 처음엔 헌터님도 꽤 약했을 거라고. 안 그래?”

“몰라.”

바가지가 여전히 등을 보인 채, 앉은 채로 말했다.

“어떻게 그 말도 안 되게 강한 마인들로부터 살아남았고, 강해진 거지?”

이호성은 그 의문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

그러자 등을 돌린 채 토라져 있던 바가지가 타박타박 걸어 이호성의 머리 앞에 섰다.

“난 그 이유를 알아.”

바가지가 말했다.

이호성은 눈을 크게 뜨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안다고? 정말?”

바가지가 이호성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뭔데? 어떻게 강해진 건데?”

이호성이 크게 뜬 눈으로 바가지를 보며 물었다.

“마인을 드셨던 거야.”

“……뭐라고?”

이호성은 믿고 싶지 않다는 듯 양쪽 입꼬리를 아래로 내리며 되물었다.

“주인님은 마계에서 마인을 드셨던 거라고.”

이호성은 멍한 표정으로 바가지를 보았다.

“그거 먹으면 강해져?”

“강해지겠지. 몸에 마기가 쌓일 테니까.”

“근데 그걸 왜 나한테 안 알려 줬어? 헌터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넌 그걸 먹고 싶어?”

“뭐 강해질 수만 있다……. 컥!”

이호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인간을 닮은 마인을 먹는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구역질이 나는 일이었다.

마인을 먹는 걸 떠올려 본 이호성의 얼굴은 상상만으로도 새파래졌다.

“넌 버티지 못할 거야. 주인님이랑 정신력이 다르니까. 그리고 자칫 잘못 먹었다간 네가 어떻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하, 할 수 있을지도? 네 그 샤먼 마인 팔 한 짝만 줘봐.”

“미쳤어?!”

바가지가 빽 소리를 질렀다.

이호성은 양손으로 귀를 막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 * *

이호성이 바가지와 함께 헌터 수련관에서 폐관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사이, 황금 고블린 쏠을 마당에 쏟아지는 소나기를 구경 중이었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 나무를 적시는 건, 쏠에게 있어 그냥 보고만 있어도 마냥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었다.

그렇게 유리창 너머로 정원에 비가 내리는 걸 지켜보던 ‘쏠’은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당 정원은 늘 관심 있게 봐 왔기 때문에, 어디에 어떤 나무가 있고, 어떤 꽃이 열렸는지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쏠이었다.

그런데 그런 쏠의 눈에 지금껏 보지 못했던 신기한 새싹 하나가 보였다.

그건 분명 어제까지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걸 보고, 쏠은 마치 홀린 듯이 테라스 창문을 열고 비를 맞으며 마당으로 타닥타닥 뛰어갔다.

쏠은 새롭게 자라나고 있는 새싹을 허리를 굽혀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평범한 새싹과는 다르게 초록빛이 다른 그 어떠한 잎들보다 진했으며, 새싹이라고 하기엔 주먹만 한 크기의 이 새싹이 너무나 신기하고 고귀해 보였다.

심지어 이 새싹은 자라나고 있는 속도가 눈에 보일 만큼 빨랐다.

쏠은 단 한 번도 이렇게 빠르게 자라는 식물을 본 적이 없었다.

쏠은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으면서도, 신비로운 새싹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우르르- 쾅쾅!

하늘에서 천둥 벼락이 쳤지만, 벼락의 공포를 잊게 할 만큼 정원에 새롭게 자라는 이 새싹은 ‘쏠’의 마음을 완전히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