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67화>
“헌터님은 독선적이고, 이기적이고, 냉정하고, 차갑고, 무서워요. 무엇보다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그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음……. 제가 알기로 이번 인터뷰가 한국 방송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전파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반말은 좀 문제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헌터님은 상대가 누구든 거의 반말을 하시니까. 사실 초면인데 반말을 하면은 기분 나쁘거든요. 나이가 어리든 많든 말이에요.”
“…….”
민성이 반응이 없자 이호성이 눈알을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혹시나 자신이 선을 넘은 건 아닌가 불안해졌다.
“하하……. 물론 근데 뭐 그건 한국 정서고, 외국에서는 뭐 딱히 문제 삼을 만한 부분도 아니고. 그리고 그런 것 까지 굳이 신경 안 쓰셔도 될 만큼 헌터님은 위대하시니까. 굳이, 굳이 예를 들어서 찾아보라고 하시니까 그렇게 말씀드린 겁니다. 하하하…….”
이호성이 눈치를 섞어 웃으면서 말했다.
“또 얘기해 봐.”
이호성은 등에 묻어난 땀을 손으로 닦아 훔쳐 내며 눈치를 살폈다.
“예? 또요?”
“그래.”
“없어요.”
“말해.”
“그냥…… 조금 기계 같으시죠.”
“기계?”
“네. 웃지도 않으시고. 화를 내실 때도 그다지 감정 표현이 크지 않으시니까. 하하, 그래서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다소 있죠. 근데 그만큼 완벽하게 보이신다는 거니까요. 하하……. 완벽주의자들이 보통 그런 느낌을 상대방에게 주잖아요?”
“다른 건 더 없나?”
계속된 물음에 이호성이 살짝 지친 얼굴로 짧게 한숨 쉬었다.
“헌터님, 이해를 못 하시는 것 같아 정말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근데 저를 때리거나 밖으로 던지거나 안 한다고 약속하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약속하지.”
“헌터님은 그냥 싸가지가 없는 거예요. 태생적으로. 그리고 어차피 그런 사람 잘 안 변합니다. 그러니까 굳이 애쓰지 마시고, 지금처럼 사시는 게 주변을 위해서 여러모로…….”
민성이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이호성이 무섭게 다가오는 민성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흠칫 어깨를 떨었다.
아차……!
자신도 모르게 지쳐서 그만 속에 있던 말까지 꺼내고 말았다.
먼지 나게 맞거나 자신을 저 빌딩 아래로 내던지는 건 아닌가 싶어 이호성은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호성이 눈을 질끈 감고 팔로 머리를 감싸 쥐며 몸을 웅크렸다.
끔찍한 고통의 시간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다행히 민성은 이호성의 어깨를 툭 짚으며, 이호성을 지나쳐 옥상을 나갔다.
“……?”
이호성은 민성이 나갔음을 뒤늦게 확인하고 그제야 안도한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이호성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체조를 하듯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 거렸다.
“왜 안 때리지?”
평소랑 다른 민성의 모습에 안심되면서도 찜찜한 기분이 드는 이호성이었다.
* * *
무대 홀 위에, 공식 인터뷰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무대 위에는 빨간 소파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한국의 여성 사회자가 질문 형식의 인터뷰를 할 예정이었고, 그 인터뷰 내용은 전 세계 언론사의 질문을 압축하여 모아 놓은 질문이었다.
무대 앞 홀에는 엄청난 인원의 취재진들이 무대 가까이, 발 디딜 곳 없을 정도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들은 모두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같은 마음으로 민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앙 기관의 헌터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기자들이 서로 다투지 않도록 감시 및 체크했다.
잠시 후, 사회자가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무대 위로 올라왔다.
사회자는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 세례를 받으면서 인사를 했다.
그러곤 자리에 앉아, 큐 시트를 확인했다.
인터뷰 준비가 무르익는 사이 무대 뒤 화면에 사회자의 얼굴이 잡혔다.
민성의 이번 인터뷰는 전 세계에 전파를 타고 방송이 될 예정이었다.
촬영을 위한 스탠바이가 끝나고, 카메라가 돌았다.
사회자가 민성에 대해 소개를 했고, 음악이 깔렸다.
음악을 배경으로 민성이 등장하자, 취재진들이 열기를 올리며 촬영했다.
실내 촬영이었기 때문에 플래시는 자제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초대 셀럽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사회자가 활짝 미소 지으며 민성에게 악수를 청했다.
민성은 가볍게 악수를 하고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민성이 착석하자 홀을 가득 울리던 박수 소리와 환호의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반가워요. 저는 KOR에서 독점 인터뷰 진행을 맡게 된 최소연이에요. 먼저 간단히 소개를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사회자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강민성입니다.”
“…….”
민성의 심각하리만큼 짧은 소개에 잠시 인터뷰 홀에 적막이 흘렀다.
잠시 당황했던 사회자는 애써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웃으면서 큐 시트대로 진행을 시작했다.
“하하, 정말 짧은 인사네요. 하긴 요즘 강민성 씨를 모르시는 분은 전 세계에서 아무도 없겠죠. 이름만으로도 힘이 있을 만큼, 대단한 일을 하셨으니까요.”
“…….”
민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회자는 이미 민성의 성격을 파악했다.
“그래서 정말 전 세계 사람들은 물론 저 역시도 민성 씨에게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당황하지 않고, 첫 번째 질문으로 빠르게 넘어갔다.
“그럼 지금부터 KOR의 독점 인터뷰를 정식으로 시작해 볼게요. 음……. 민성 씨는 세계 최고의 헌터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까지 헌터로서 많이 알려지지 않으셨는데요. 이토록 뛰어난 헌터로서의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을까요? 일부로 스스로를 숨기셨던 걸까요?”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그런 중요하지 않은 얘기는 패스하죠.”
민성이 말했다.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굳이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걸 말할 필요는 없다고 민성은 생각했다.
사회자는 민성의 포스에 압도당해 사회자로서의 본분을 잊고 그만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필요한 정보는 헌터 기관에서 알려 줄 겁니다.”
사회자가 침을 꿀꺽 삼키곤, 헛기침을 했다.
“네. 그렇군요.”
사회자가 살짝 떨리는 손으로 큐 시트를 만지며 다음 질문을 찾았다.
“불과 1시간 전에 월드 헌터들이 공식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방어선 구축을 위한 대대적인 공사가 내일 이른 새벽부터 시작될 거라고 했는데요. 이건 던전이나 탑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건가요?”
“아마도. 확실한 건 아니지만 추정으로는 거의 확실시되는 사안입니다.”
그 말에 취재진들은 물론 지켜보고 있던 셀럽들도 모두 동요하며 술렁였다.
사회자는 숨을 삼키며 마른침을 삼켰다.
진행을 맡은 최소연은 경력이 많은 프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충격적인 발언에 대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마음을 다잡았다.
“방어선을 구축한다면 시민들의 안전은 지켜질 수 있는 거겠죠?”
“방어선은 깨질 겁니다.”
민성이 말했다.
그에 사회자의 눈이 커지며 입이 벌어졌다.
기자들은 타이핑을 멈추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 어떻게 그렇게 장담하실 수 있는 거죠? 현재 던전도 사라졌고, 탑도 사라졌으며 아직 아무것도 시작된 게 없는 시점인데.”
“탑을 클리어할 때, 그 탑이 테스트 수준에 불과한 탑이라는 걸 알았고, 곧 본체를 드러내겠죠.”
“…….”
홀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충격에 빠져 목소리를 내지 않고 민성을 주시했다.
“만약, 방어선이 깨지게 된다면…… 어떤 결과를 예상하시나요?”
사회자가 물었다.
“죽겠지. 많은 사람들이.”
민성이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보며 말했다.
공포를 끌어안은 혼란이 시작됐다.
홀 내부가 급격히 술렁이며 시끄러워졌다.
사회자는 굳은 얼굴로 민성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파급 효과가 큰 사실을 공식 인터뷰로 밝히는 이유를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사회자가 마지막 희망을 담은 눈으로 민성을 보며 물었다.
“피해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민성은 차가운 눈으로 놈들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그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막을 겁니다.”
민성에게서 압도적인 기류의 포스가 흘러나왔다.
혼란으로 정신없이 흔들리던 홀 내부가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기자들은 움직임을 멈췄고, 셀럽들도 넋을 놓고 민성을 보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각이 그들의 몸에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민성이 말을 이었다.
“굳이 이렇게 공식적인 인터뷰를 열게 된 이유는.”
사회자가 민성을 지켜보면서 굵은 침을 삼키며 저도 모르게 몸에 힘이 꽉 들어갔다.
그건 그 사회자뿐만이 아니라, 홀 안에 있는 인원들과 지금 이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는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분명 대중이 아는 걸 귀찮고 부담스럽게 여길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요즘 같은 때, 내가 말하면 그래도 조금은 알아듣지 않을까 싶은 것도 있었고.”
민성은 솔직했다.
숨김없이, 비극이 시작되리라는 사실을 알렸다.
“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나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을 무서워할 텐데.”
사회자가 물었다.
민성은 왜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느냐는 듯 사회자를 빤히 보았다.
그러나 사회자는 지지 않고 민성의 시선을 맞받았다.
“듣고 싶을 거예요. 지금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이. 진실이 왜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냥……. 맛있는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누군가에겐 그 시간이 앞으로 없을 수도 있으니까.”
민성이 덤덤하게 말했다.
파티 분위기였던 홀 내부는 마치 장례식장만큼이나 숙연했다.
하지만 두려워하던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인간은 본래 극한의 상황에 닥치면, 놀라우리만큼 아름다운 힘을 가지게 되는 법이다.
공포와 두려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달은 것이다.
홀로 마탑을 클리어하고, 삼천교를 단신으로 정리해 버린 남자가 강민성이었다.
그런 남자가, 전면에 나서서 지구를 위협하려는 대상을 남김없이 없앨 거라고 선언했다.
그와 함께 그가 밝힌 진실은 거대한 파문이 되어 민성을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에 퍼졌다.
민성의 존재는 지켜보는 이들에겐 일종의 살아 있는 ‘신화’였고, 유일하게 의지할 영웅이었으며, 그 누구보다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영웅이었다.
그 사실이 민성을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