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64화>
* * *
냉면은 겨자와 식초를 얼마나 잘 배합하는지 중요하다.
하지만 요리 능력이 거의 마이너스에 달하는 민성에게 겨자와 식초의 배합은 어려운 난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냉면집은 처음 냉면이 나올 때부터 이 가게만의 겨자와 식초가 배합된 채 나왔다.
아마 민성은 이호성이 이런 점까지 생각을 해서 가게를 추천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호성의 맛집 추천은 언제나 진리였으니까.
그보다 이제 먹어 볼까?
민성은 냉면을 가위로 중앙을 한 번 자른 뒤, 면발을 풀고 냉면의 면발을 젓가락으로 들어 후루룩 시원하게 빨아 당겼다.
물냉면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뭐니 뭐니 해도 육수와 면 익힘의 정도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 가게의 냉면집은 그 부분이 가히 완벽하다고 해도 좋았다.
면발은 탱탱하면서도 씹을 때는 부드럽다.
면발에 육수의 맛이 깊게 배여 들어 있어 단맛과 신맛이 아주 적절했다.
민성은 아직 덜 씹힌 냉면을 더 씹으며, 그릇을 들어 입을 대고 대접채로 마셨다.
후루루루룩!
꿀꺽, 꿀꺽, 꿀꺽!
경쾌하고 밝은 소리가 난다.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차가운 물냉면의 육수는 마치 폭포 아래에서 폭포수가 정수리에 떨어지는 것만 같은 시원한 맛이다.
정말 맛있어.
먹으면 먹을수록 맛있다.
냉면이라는 것은 먹다 보면 정신없이 빠져들게 된다.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음식.
자연스럽게 먹는 속도는 올라가게 된다.
맛있어.
오직 그 생각 하나로 냉면에 집중했다.
민성은 순식간에 냉면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양이 조금 적긴 했지만, 이호성의 말대로 어차피 파티에 가게 되면 먹을 수 있는 것이야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배를 채운 이상 급할 필요는 없었다.
민성은 휴지로 입을 닦은 후, 개운한 느낌으로 일어섰다.
카드를 내밀자, 여주인이 호호 웃었다.
“식사는 괜찮게 하셨어요?”
“네. 맛있게 먹었습니다.”
민성이 건조하면서도 아주 조금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돈은 다음에 받을게요. 세상을 구해 주신 분인데, 이 정도 서비스는 해 드려야지요.”
민성이 카드를 들고 머뭇거리자, 여주인이 호호 웃으며 민성의 등을 떠밀었다.
“어서 가 보세요.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헌터님.”
여주인이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깊이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민성은 여주인을 빤히 보다가, 목례를 하고서 가게를 나갔다.
* * *
강민성과 월드 헌터와 주 VIP로 참석하게 되는 코리아 그랜드 파티는 강남에서 가장 높고 고급스러운 빌딩에서 진행되었다.
빌딩의 입구에는 레드 카펫이 깔려 있었으며, 바리게이트 주변에는 몇 시간 전부터 기자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었다.
기자들이 파티에 입성할 수 있는 건 밤 10시.
오직 예정된 인터뷰 시간 때뿐이었다.
때문에 10시 전까지 민성을 촬영할 수 있는 건 아주 잠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빌딩 주변에서 장사진을 겹겹이 이루었다.
약속된 시간인 6시가 점점 가까워져 오면서 기자들은 곧 유명인들이 등장할 것이라는 사실에 바빠졌다.
그들은 카메라를 점검하거나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부산스러웠다.
6시까지 약 30여 분을 남겨 둔 시각.
검은 세단 차량이 레드 카펫 앞에 도착했고, 게스트가 내렸다.
오늘 행사 진행을 맡게 된 국내 유명 아나운서였다.
그가 차에서 내려 레드 카펫을 걷자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번쩍였다.
그 모습이 마치 마치 화려한 영화제 파티를 방불케 했다.
그 이후부터 VIP 코리아 그랜드 파티에 참석하게 될 게스트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한국의 행사라고 느낄 수 없을 만큼 세계인들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
전 세계 돈과 권력을 가진 셀럽은 물론 자리를 빛내기 위해 연예인들도 참석했다.
국내 연예인은 물론, 전 세계 연예인들.
그중에서도 정말 유명한 연예인들만이 초청을 받아 파티에 들어올 수 있었다.
전 세계 란제리 회사로 유명한 빅토리아 X 모델들도 당당한 워킹으로 파티 홀을 향해 레드 카펫을 밟으며 입성했다.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셀럽들의 출연이 이어지고, 드디어 월드 헌터들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에서 번쩍번쩍 터지는 플래시 세례.
다른 셀럽들과 달리 월드 헌터들은 그다지 밝은 표정이 아니었다.
언론의 공격을 받게 될 그들이었기에 월드 헌터들은 하나같이 파티가 아닌 도살장에 끌려가는 얼굴들이었다.
그런 만큼 그들은 카메라를 즐기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파티장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대부분의 VVIP 인사가 레드 카펫을 밟은 가운데.
오후 6시를 약 5분 정도 남겨 둔 시각.
중앙 기관의 총군주 김지유와 이호성이 차에서 내렸다.
기자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현 시점,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건 강민성이지만, 언론에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한 것은 중앙 기관과 이호성도 같았다.
때문에 김지유와 이호성이 나타나자 취재진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앞다투어 한 컷이라도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기자들의 자리 싸움이 치열했다.
그사이 김지유와 이호성은 레드 카펫 앞에서 민성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호성은 취재진들의 관심에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었지만, 카메라 앞에 자주 서 봤던 탓인지 김지유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어 상당히 여유로워 보였다.
이호성이 어서 민성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가운데, 멀지 않은 곳에서 강렬한 배기음이 들렸다.
누가 들어도 슈퍼 카의 배기음이 분명했다.
그에 기자들이 긴장한 채로 허리를 세우고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잠시 후, 납작한 자세를 가진 슈퍼카 R12가 거친 배기음 소리를 토해 내며 레드 카펫 앞으로 도착했다.
차량이 멈춰 서자, 차량의 주인이 내리기도 전에 플래시 세례가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기자들의 촬영은, 마치 남은 필름을 남김없이 쓰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는 듯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정신없이 번쩍이는 스포트라이트.
달칵- 소리를 내며 민성이 운전석에서 내리자 번쩍이는 플래시의 속도는 더 빠르게 올라갔다.
민성은 엄청난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레드 카펫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은 슈트를 입은 민성의 모습은 정말 살아 있는 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멋졌다.
민성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넋이 나간 얼굴로, 큰 키에 늘씬한 몸매, 잘생긴 얼굴을 가진 민성을 보며 입을 닫지 못했다.
민성은 주변의 감탄하는 눈길에도 무심히, 레드 카펫을 밟았다.
김지유와 이호성이 앞장서는 민성의 등 뒤를 뒤따랐다.
민성은 기자들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받으며 당당한 발걸음으로 파티장으로 향했다.
* * *
민성은 기자들 촬영 세례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레드 카펫을 걸었다.
수많은 기자들이 터트리는 플래시를 하얗게 받으며 민성은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민성이 들어가자 파티장 내에 있던 유명한 셀럽들이 민성을 향해 활짝 웃으며 모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짝짝 울렸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민성은 유명한 셀럽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신기했다.
마계에서 100년을 구르고 귀환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미친 세상이었고, 어쩌면 이미 미쳐 버렸을지 모를 자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건 생태계의 파괴를 불러일으키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 웃기는 세상은 자신을 영웅으로 추대하고 있었다.
단지 밥 먹는 걸 방해받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는데.
일이 꽤 커졌다.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 역시…… 결국 살 만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에서 시작한 일들이 꽤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애초에, 그렇다면.
귀찮아도 어느 정도 그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편해지니까.
어차피 인간은 보고 싶은 걸 보려고밖에 하지 않는다.
멋대로 생각하게 내버려 두면 된다.
본래 미쳐 버린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는 거라고.
민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민성이 지나가자 지켜보고 있던 중앙 줄의 셀럽들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민성은 군중 속을 걸어 긴 테이블 앞에 섰다.
수많은 유명 셀럽이 지켜보는 가운데 민성은 무표정하게 샴페인 병을 들어 뚜껑을 따고, 잔에 샴페인을 채웠다.
그리고 잔을 천천히 들자, 지켜보고 있던 셀럽들이 민성을 보고 따라서 잔을 채우고 잔을 명치 부근에 들었다.
셀럽들은 숨죽인 채 등을 보이고 있는 민성을 향해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민성이 샴페인 잔을 얼굴 높이까지 들었다가 곧바로 원샷으로 잔을 비웠다.
셀럽들이 환하게 웃으며 환호를 보내며 잔을 일시에 마셨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이 민성을 향해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강민성의 주관하에 준비된 파티가 시작됐다.
* * *
이호성은 손으로 연신 눈을 비볐다.
지금 자신이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게 사실인지 믿기지가 않았다.
저거 진짜 강민성 맞아?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그렇게 되물었다.
현재 강민성은 한차례 유명인들과 인사를 나눈 후, 지금은 한국 여자 연예인부터, 빅토리아 속옷 모델과 할리우드 여배우들에게 휩싸여 있다시피 했다.
단 한 명도 만나기 힘든 최고의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민성은 이호성에게 그야말로 ‘신(神) 그 자체로 보였다.
‘고자 주변에 왜 엄청난 여자들이 마구마구 있는 거지?!’
부러움과 질투가 뱃속을 마구 휘저었다.
심지어 민성은 지금 평소의 그 냉철하고 차가운 모습은 다소 사라지고, 눈빛이나 표정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물론 아주 조금이지만, 이호성이 보기에 그 차이는 컸다.
누구보다 강민성을 잘알고 있는 게 바로 이호성 자신이었으니까.
어째서 여자에 대한 경계를 푸는 거냐고!
당신이 강해진 이유가 그거라며!
‘……아!’
이호성은 일순 충격을 받았다.
그래…….
강민성이 말한 의미.
조금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보면, 그건 결국 강해질 수 있었던 과정에 대한 이유였을 뿐이다.
강민성은 이미 강하다.
어느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만큼 압도적으로.
더군다나 던전과 마인의 탑이 사라진 지금, 민성이 경계할 건 없었다.
이호성은 맥 빠진 얼굴로 민성을 보며 숨을 탁 뱉었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부러운 남자였다.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남자.
그게 바로 강민성이었다.
이호성은 민성을 부러운 듯이 보며 테킬라를 병째로 마셨다가 콜록 콜록 기침을 했다.